카터 전 미국 대통령이 25일 오전 북한을 방문하자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은 26일 0시 전격적으로 중국을 방문했습니다. 무슨 운명처럼 두 사람의 동선이 극적으로 엇갈렸습니다. 이를 두고 말들이 많습니다. 하나는 김정일 위원장이 카터 전 대통령을 평양으로 불러놓고 왜 만나지 않았냐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김 위원장의 방중 목적이 무엇이냐는 것입니다.

김정일-카터 사이의 만남은 불발되었습니다. 마땅히 16년 전인 1994년 6월 1차 북핵위기 당시 부친 김일성 주석이 만났기에, 동양적 미덕을 앞세우는 김 위원장이 카터 전 대통령을 만나야 함에도 불구하고 만나지 않은 것입니다. 그렇다면 김 위원장의 대미 메시지는 명확합니다. 지금 상태에서 카터를 메신저로 해서 북미관계 개선을 꾀해도 별무효과라는 것입니다. 이는 오바마 행정부가 카터 전 대통령의 방북에 대해 ‘사적이고 인도주의적 임무’라고 선을 그은 것에 대한 답변입니다. 그래도 카터는 북한에 억류됐던 곰즈 씨의 사면을 받아내고 27일 곰즈 씨와 함께 귀국길에 올랐습니다. 어쨌든 카터는 ‘사적이고 인도주의적’인 소기의 임무를 완수한 것입니다.

아울러 김 위원장의 방북 목적을 두고 여러 설들이 난무하고 있습니다. 대체로 김정은 후계체제 공고화, 6자회담 재개 논의, 천안함 국면 탈출을 위한 북중공조 필요성, 수해 복구 및 식량난 해소를 위한 중국의 경제 지원 확보 등이 나오는데 모두가 나열적이고 상투적인 분석일 뿐입니다. 이 같은 천편일률적인 시각이 고루해선지 오죽하면 이번 방중이 지난 5월 방중에 이어 3개월여 만에 이뤄졌기에 하도 이례적이어서 ‘특수 목적’이라는 말도 나옵니다. 그런데 ‘특수 목적’이라 명명해도 어차피 목적을 파악하지 못하기는 마찬가지입니다. 어쨌든 김 위원장의 방중 목적은 후진타오 중국 국가주석과의 정상회담을 통해 드러날 것입니다.

그런 중에 확실한 게 하나 있습니다. 김 위원장이 26일 지린(吉林)성 지린시에 둘러 위원(毓文, 육문)중학교를 방문했으며 또한 김일성 독서기념관과 베이산(北山) 공원 등을 둘러본 것입니다. 위원중학교는 김일성 주석이 1927년부터 1930년까지 다녔던 학교이며 김일성 독서기념관과 베이산 공원은 김 주석의 항일유적지인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한마디로 혁명유적지를 답사한 것입니다.

그렇다면 남는 것은 김 위원장이 3남인 정은을 대동했느냐는 것입니다. 물론 정은을 대동했더라도 이는 중국에게 후계자 인정을 받고자 한 것이 아닐 것입니다. ‘자주’의 나라 북한이 중국에게 뭘 인정받고자 하지는 않을 것입니다. 정은을 대동했든 아니든 혁명유적지 순례를 통해 ‘김일성-김정일-김정은’이라는 ‘혁명의 혈통’을 강조하는 것으로 봐야겠지요. 그렇다면 김 위원장이 중국땅 혁명유적지를 순례했다는 것이 중요하지, 정은의 대동 여부는 그리 중요하지 않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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