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호석 (통일학연구소 소장)


백악관 국가안보회의의 60년 대북 제재

백악관 국가안보회의가 1917년에 제정된 적성국교역법(Trading with the Enemy Act)을 동원하여 대북 제재를 개시한 때는, 6.25전쟁 중인 1950년 12월 16일이다. 그 날부터 오늘까지 60년 동안 그들은 대북 제재를 집요하게 지속해오고 있다. 백악관 국가안보회의가 쿠바 제재를 개시한 때가 1962년 2월 7일이었으니, 전 세계에서 미국의 제재를 가장 오랫동안 받아오는 나라는 북측이다.

2008년 6월 27일 백악관 국가안보회의는 북측에 대한 테러지원국 지정을 해제하고 적성국교역법 적용을 58년만에 폐지하였다. 오늘 전 세계에서 미국의 적성국교역법으로 제재를 받는 나라는 쿠바밖에 없으며, 러시아에서 사회주의 10월 혁명이 일어난 해에 제정된 93년 묵은 제재법을 오늘도 반사회주의 공세에 동원하는 나라는 미국밖에 없다.

백악관 국가안보회의가 대북 제재에 동원하는 각양각색 제재법을 제정 연대순으로 열거하면, 1945년에 제정한 수출입은행법(Export-Import Bank Act)과 브레튼우즈협정법(Bretton Woods Agreement Act), 1961년에 제정한 대외원조법(Foreign Assistance Act), 1968년에 제정한 무기수출통제법(Arms Export Control Act), 1974년에 제정한 무역법(Trade Act), 1977년에 제정한 국제비상경제력법(International Emergency Economic Power Act), 1979년에 크게 개정한 수출관리법(Export Administration Act), 1982년에 제정한 국제금융기구법(International Financial Institutions Act), 1999년에 제정한 북코리아위협감소법(North Korea Threat Reduction Act), 2000년에 제정한 무역제재개혁법(Trade Sanctions Reform Act), 2006년에 제정한 북코리아 비확산법(North Korea Nonproliferation Act)과 대외경영, 수출금융 및 관련사업법(Foreign Operations, Export Financing and Related Programs Act) 등이다. 미국이 이처럼 각양각색 제재법을 동원하여 북측을 제재하고 있으므로, 그 가운데서 적성국교역법 한 가지만 적용하지 않겠다고 결정한 것은 무의미하다.

각양각색 대북 제재법을 동원하는 것도 부족해서, 백악관 국가안보회의는 2006년 6월 29일과 2008년 6월 26일에 대통령 행정명령 13382호와 대통령 행정명령 13466호를 각각 발표하여 기존 대북 제재조치를 한층 강화하였고, 한 술 더 떠서 유엔안전보장이사회를 움직여 2006년 10월 14일에 채택한 대북 결의 1718호와 2009년 6월 12일에 채택한 대북 결의 1874호를 들고 나와 대북 제재에 열을 올렸다.

그러나 제재법을 얼마나 촘촘하게 엮어놓았는가 하는 것이 문제가 아니라, 제재법을 동원하여 제재조치를 시행하는가 혹은 제재 결정만 발표해놓고 거의 시행하지 못하는가 하는 것이 문제다.

백악관 국가안보회의의 대북 제재는 북측의 대외무역과 대외경제협력을 봉쇄하려는 것이므로, 그들의 대북 제재 현황을 보려면, 그들이 북측 대외무역회사들을 어떻게 제재하는지 살펴볼 필요가 있다. 1992년부터 2005년까지 백악관 국가안보회의가 대량파괴무기(WMD)를 해외에 확산한다는 혐의를 두고 제재대상으로 지정한 북측 회사들을 열거하면, 창광신용회사, 룡각산무역회사, 조선부강무역회사, 백산련합회사, 조선련봉총회사, 혜성무역회사, 조선종합설비수입회사, 조선국제화학합영회사, 조선광성무역회사, 조선련하기계합영회사, 토성기술무역회사, 단천상업은행 등이다. 또한 유엔 안보리 대북 결의에 따라 지정된 제재대상은 조선광업개발무역회사, 조선단군무역회사, 조선혁신무역회사, 조선련봉총회사, 남천강무역회사, 단천상업은행, 원자력총국 등이다.

그런데 중요한 문제는, 백악관 국가안보회의가 이처럼 북측 대외무역회사들을 제재대상으로 지정하였으나, 제재의 실질적 효과가 자동적으로 나타나지 않았다는 것이다. 그들이 시행한 제재조치로 북측 대외무역회사의 국제금융거래가 중지되었을 때, 그때 비로소 제재의 실질적 효과가 나타났다고 말할 수 있는데, 실제로는 그렇지 않았다. 다시 말해서, 백악관 국가안보회의는 제재대상으로 지목한 북측 대외무역회사들의 국제금융거래를 실제로 중지시키지 못한 것이다. 이를테면, 백악관 국가안보회의는 창광신용회사를 1992년부터 2005년까지 무려 14회나 제제대상으로 반복하여 지정한 바 있다. 창광신용회사의 국제금융거래를 중지시키지 못하였기 때문에 그처럼 반복적으로 지정한 것이다. 다른 북측 무역회사들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그런 점에서, 백악관 국가안보회의의 60년 대북 제재는 실패의 연속이었다고 말할 수 있다.

‘스모킹 드래곤’은 모략극이었다

백악관 국가안보회의의 60년 대북 제재 가운데 유일한 성공사례로 손꼽히는 것은, 중국 마카오에 있는 중소은행 방코 델타 아시아(Banco Delta Asia)의 북측 대금결제계좌를 동결시킨 조치다. 백악관 국가안보회의는 이 사건이 터지기 오래 전부터 치밀하게 준비해 왔는데, 그 내막은 이렇다.

미국 국무부가 북측에게 달러위조 혐의를 뒤집어씌우기 시작한 때는 2003년이다. 미국 국무부 산하 국제 마약 및 사법집행국(Bureau of International Narcotics and Law Enforcement Affairs) 윌리엄 배취(William Bach) 국장이 2003년 5월 20일 연방상원 정무위원회 청문회에 출석하여 북측의 달러위조 혐의를 언급한 것이다. 2005년 2월 2일에는 존 니그로폰테(John Negroponte) 당시 국가정보국장(Director of National Intelligence)이 연방상원 정보위원회 청문회에 출석하여 북측의 달러위조 혐의를 또 언급하였다. 국가정보국장이 연방상원에서 그런 소리를 늘어놓은 것은, 백악관 국가안보회의가 북측을 달러위조국으로 낙인 찍으려는 모략을 이미 실행에 옮겼음을 말해준 것이었다.

아니나 다를까, 사건은 그로부터 여섯 달 뒤에 터졌다. 2005년 8월 미국 연방정부 합동수사반은 뉴저지주와 캘리포니아주에서 중국계 비밀범죄조직(Triad criminal sydicate)을 소탕하는 작전을 벌였다. 신랑과 신부로 가장한 미국 법무부 소속 비밀요원 남녀 한 쌍이 뉴저지주 앞바다에 유람선을 띄워놓고 호화판 선상 혼례식을 올리는 척하면서 중국계 비밀범죄조직 성원들을 유람선으로 끌어들였다. 위장결혼식에 사용된 유람선 이름이 로열 참(Royal Charm)이었는데, 연방정부 합동수사반은 그 이름을 따서 범죄조직 소탕작전명을 지었다. 연방정부 합동수사반은 거의 같은 시기에 로스앤젤레스에서도 스모킹 드래곤(Smoking Dragon)이라는 작전명으로 범죄조직 소탕작전을 벌였다. 그 소탕작전에서 약 400만 달러에 이르는 정밀위조달러(Supernote)를 압수하였고, 마약, 불법 담배, 불법 의약품도 압수하였다.

정밀위조달러를 거래한 혐의로 소탕작전 중에 체포된 대만인 차오 퉁 우(Chao Tung Wu)는 어느 나라라고 특정하지 않은 채 외국 정부가 정밀위조달러를 조폐하고 있다고 미국 연방사법당국에 진술하였는데, <워싱턴 타임스>가 2005년 9월 20일 그의 진술에 나온 외국 정부를 아무런 근거 없이 북측 정부라고 자의적으로 지목한 왜곡보도를 내보냈다. 나중에 밝혀진 것이지만, 미국 연방정부 합동수사반의 소탕작전은, 북측에서 제작한 정밀위조달러가 마카오 은행 방코 델타 아시아를 통해 중국계 비밀범죄조직에 흘러들어갔다는 식으로 허위정보를 날조하기 위한 모략이었다.

미국 언론매체들이 북측의 달러위조 혐의를 날조한 유언비어를 기사화하자, 미국 재무부는 그런 분위기에 편승하여 2005년 9월 15일 연방정부 <관보(Federal Register)>에 “조사결과에 따르면, 방코 델타 아시아와 정기적으로 거래하는 북측 고객 한 사람이 10년 이상 위조지폐를 유통하고 가짜 담배를 밀매하는 등 각종 불법행위를 저지르고 있다고 널리 통보되었다”고 고시하였다. 바로 이 고시가 북측에게 이른바 ‘범죄국가’라는 낙인을 찍은 모략극의 절정이었다.

2006년 1월 26일 조지 부쉬(George W. Bush) 당시 미국 대통령은 “누가 우리 돈을 위조하고 있다면, 우리는 그 행위를 중지시켜야 한다. 우리는 북측에게 우리 돈을 위조하지 말라고 공세적으로 말하고 있다”고 능청맞게 말했다. 미국 통신사 <맥클랫취 뉴스페이퍼즈(McClatchy Newspapers)>가 부쉬 당시 대통령에게 북측이 정밀위조달러를 제작하고 있다는 증거가 무엇인가고 묻자, 그는 “나는 정보문제에 대해 말할 자유가 없다”는 답변 아닌 답변을 꺼내놓고 슬그머니 질문을 피해 갔다.

2005년 9월 20일 미국 재무부 산하 금융범죄수사대(Financial Crimes Enforcement Network)는 미국 금융기관들이 방코 델타 아시아를 대신하여 대금결제계좌를 개설 또는 유지하는 것도 금하고, 방코 델타 아시아와의 거래에 간접적으로 사용되는 대금결제계좌를 개설하는 것도 금하는 제재조치를 취하였다. 제재조치가 발표된 날은, 37일 동안 재개여부를 둘러싸고 난항을 거듭하던 6자회담이 2005년 9월 13일에 다시 열리고, 9월 19일에 역사적인 9.19 공동성명을 채택한 바로 이튿날이었다.

미국 재무부의 전격적인 제재조치에 놀란 마카오 행정당국은 방코 델타 아시아에 있는 모든 북측 대금결제계좌를 동결하는 비상조치를 취하였다. 그로써 북측의 9개 은행과 23개 무역회사가 방코 델타 아시아에 예치한 미화 2,500만 달러가 동결되었다.

<맥클랫취 뉴스페이퍼즈> 2008년 1월 10일 보도에 따르면, 미국 뉴욕에 있는 세계 4대 금융회계기업인 어네스트 앤드 영(Ernest & Young)이 마카오 행정당국의 의뢰에 따라 방코 델타 아시아를 감사하였다. 감사를 실시한 결과, 북측이 그 은행에 개설한 대금결제계좌를 통해 정밀위조달러를 돈세탁하였다는 증거는 전혀 나타나지 않았다. 방코 델타 아시아가 1994년에 100달러 짜리 위조지폐 한 장을 발견하고 마카오 사법당국에 신고한 적은 있으나, 그 위조지폐가 북측에서 온 것이 아니었음이 밝혀진 것이다.

북측에게 달러위조 혐의를 뒤집어씌워 강행한 백악관 국가안보회의의 대북 제재는, 이치에 맞지 않는 정보들을 억지로 꿰어맞춰 ‘결론’을 날조한 모략극이었다. 북측으로부터 강력한 대응공세를 받고 견디지 못한 백악관 국가안보회의가 2007년 2월 13일 타결이라는 형식으로 물러남으로써 그 모략극은 끝났고, 2007년 6월 25일 북측은 동결되었던 2,500만 달러를 찾았다.

대북 제재조치는 소리만 요란한 빈 수레

<백악관 공보(White House Bulletin)> 2006년 3월 16일 고시에 따르면, 북측 대외무역회사들이 해외 각국 은행에 예치한 금융자산을 중국 은행으로 옮겼다는 보고를 미국 재무부가 받았다고 한다. 또한 <교도뉴스(Kyodo News)> 2006년 3월 13일 보도에 따르면, 오스트리아가 백악관 국가안보회의의 대북 제재를 외면하고 북측과 국제금융거래를 계속하였다고 한다. 이런 두 가지 사실만 봐도, 북측이 백악관 국가안보회의의 제재에 아랑곳하지 않고 중국과 오스트리아를 통해 국제금융거래를 해왔음을 알 수 있다. 이런 현상은, 백악관 국가안보회의가 제딴에는 강도 높은 제재조치를 연거푸 시행해도, 북측의 국제금융거래를 막을 수 없음을 말해준다. 비유로 말하면, 백악관 국가안보회의의 대북 제재는 소리만 요란한 빈 수레인 것이다. 그래서 미국 연방의회의 초당적 협의기구인 미국-중국 경제안보검토위원회(U.S.-China Economic and Security Review Commission)는 2007년 11월 15일에 발표한 연례보고서에서 중국이 유엔안보리 대북 제재 결의 1718호를 이행하지 않는 바람에 대북 제재조치가 사실상 무력화되었다고 지적하였다.

백악관 국가안보회의의 대북 제재조치가 사실상 무력화되었음을 객관적으로 입증해 주는 것은 북측의 대외무역 실태에 관한 정보다. 2008년 현재 대외무역총액을 기준으로 북측의 5대 무역대상국을 살펴보면, 중국 27억8,700만 달러(73.0%), 싱가포르 1억2,035만 달러(3.1%), 인도 1억2,000만 달러(3.1%), 러시아 1억1,052만 달러(2.8%), 브라질 8,085만 달러(2.1%)다. 북측이 이른바 브릭스(BRICs, 브라질, 러시아, 인도, 중국의 영어국명 첫 글자를 따서 만든 신조어)를 상대로 대외무역을 하고 있고, 특히 대외무역 총액의 73%가 중국에 집중되었음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이것은 북측의 대외무역이 자본주의세계시장을 직접 상대하지 않고, 중국을 통해 간접적으로 상대하고 있음을 말해준다. 간접 거래가 직접 거래보다 제재위험을 더 잘 피할 수 있음은 두말할 나위 없이 명백하다.

그러므로 백악관 국가안보회의는 북측과 중국의 무역을 가로막아야 대북 제재의 실효를 거둘 수 있는데, 북측과 중국의 무역은 그 어떤 걸림돌에 가로막히기는커녕 대북 제재를 비웃으며 지속적인 증가세를 보이고 있다. 2010년 5월 한국개발연구원 자료에 나타난 북측과 중국의 무역총액은 2003년 10억2,300만 달러, 2004년 13억8,500만 달러, 2005년 15억8,000만 달러, 2006년 17억 달러, 2007년 19억7,400만 달러, 2008년 27억8,700만 달러, 2009년 26억8,100달러로 해마다 늘어났다. <조선중앙통신> 2010년 7월 29일 보도에 따르면, 북측과 중국은 2010년 7월 29일 평양에서 경제기술협조에 관한 협정을 조인하였다. 이것은 북측과 중국의 경제협력이 백악관 국가안보회의의 대북 제재를 무력화하며 더욱 강화되었음을 말해준다.

북측과 중국의 무역총액이 해마다 늘어나는 것은, 북측의 대외무역 전반이 활성화된다는 뜻이다. 실제로, 2010년 5월 한국개발연구원 자료에 나타난 북측의 대외무역 총액은 2003년 31억1,115만 달러, 2004년 35억5,400만 달러, 2005년 40억5,700만 달러, 2006년 43억4,600만 달러, 2007년 47억3,800만 달러, 2008년 56억3,500만 달러로 꾸준히 늘어났다.

북측의 대외무역 전반이 이처럼 활성화되는 것은, 북측의 산업생산이 성장한다는 뜻이다. 심지어는, 북측을 낙후하고 가난한 나라로 깎아내리지 못해 안달하는 미국 중앙정보국(CIA)마저 북측의 국내총생산(GDP)이 2008년에 전년비 3.7% 늘어난 데 이어 2009년에도 3.7%가 늘어났다는 자료를 내놓을 정도이니, 북측의 산업생산이 전례 없이 성장하고 있음은 명백하다. 백악관 국가안보회의의 대북 제재조치는 소리만 요란하게 굴러가고, 북측의 산업생산은 소리 없이 증대되고 있다.

북측의 국가개발사업을 가로막으려는 백악관 국가안보회의

미국 관리 두 사람이 2010년 8월 2일 주한미국대사관 정보자료센터에서 기자회견을 가졌다. 그들은 미국 국무부 비확산 및 군비통제 담당 특별고문 로벗 아인혼(Robert J. Einhorn)과 미국 재무부 테러금융 및 금융범죄 담당 부차관보 대니얼 글레이저(Daniel Glaser)다.

이명박 정부의 고위관리들은 그 두 관리의 서울 방문에 대해 언급하면서 백악관 국가안보회의가 고강도 대북 추가 제재를 곧 시행할 것이라느니 또는 맞춤형 대북 추가 제재를 곧 시행할 것이라느니 하면서 입방아를 찧었고, 친미사대주의 성향의 남측 언론매체들은 “북측의 불법자금 통로를 원천봉쇄하려는 의도가 마침내 윤곽을 드러냈다”고 분석하면서 덩달아 호들갑을 떨었다.

길게 설명할 필요도 없이, 백악관 국가안보회의가 강행하려는 대북 추가 제재의 목적은 북측의 ‘불법행위’를 차단하려는 것이 아니다. 위에서 논한 것처럼, 북측의 ‘불법행위’에 관한 백악관 국가안보회의의 정보는 그들이 날조한 모략의 산물이어서 실제로는 존재하지 않는 것이기 때문에, 존재하지 않는 허상을 제재한다는 말은 황당한 궤변이다. 그들이 강행하려는 대북 추가 제재의 진짜 목적은 북측의 인민경제 발전을 차단하려는 것이다.

주목하는 것은, 북측의 국가개발은행이 초기 자금 100억 달러를 조달하고, 해외에서 1,250억 달러를 융자하는, 북측 경제건설사에서 가장 거창한 국책사업을 추진 중이라는 점이다.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이를 위해 국방위원장 명령과 국방위원회 결정으로 국제금융기구와 국제상업은행들과 거래하여 국가발전을 위한 중요 대상들에 투자하는 업무를 담당할 국가개발은행을 2010년 3월 10일에 공식 출범시켰다.

국가개발은행의 대외경제협력기관이 조선대풍국제투자그룹이다. 2010년 4월 16일 조선대풍국제투자그룹 박철수 총재가 평양에서 <교도뉴스>와 대담한 바에 따르면, 북측은 평양, 남포, 원산, 함흥, 김책, 라선, 청진, 신의주 8개 도시에 앞으로 5년 동안 1,200억 달러를 투입하여 사회간접자본(social overhead capital)을 개발하는 국가발전계획에 착수하였다.

국가개발은행의 재정사업은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2012년 구상’에 따라 인민경제 발전을 도약단계로 끌어올리기 위한 막대한 자금을 마련하는 것이다. 박철수 총재의 표현을 빌리면, 그 재정사업은 “사회주의강성대국 건설의 통로를 닦는 사업”이다. 북측이 국가개발은행을 설립하였다는 소식은, 미국발 국제금융위기가 터져나온 이후 투자처를 찾지 못해 요동치는 국제사회에 금세 퍼져나갔다. 워싱턴에 있는 <자유아시아방송>이 2010년 4월 12일 보도한 바에 따르면, 대북 투자의향을 지닌 중국, 오스트레일리아, 유럽 각국 기업 대표단들의 방북행렬이 줄을 이었다고 한다.

남측 경제가 세계 자본주의시장경제의 전반적 위기에서 발사된 직격탄을 맞고 치명상을 입은 조건에서, 북측의 인민경제 발전이 도약단계에 올라서고 그들의 사회주의강성대국 건설이 더욱 힘있게 추진되면, 그러한 북측의 모습을 바라보는 남측 국민의 인식은 바뀔 것이며, 그로써 평화통일을 향한 남측 대중의 관심과 열기가 각계각층에 확산될 것이다. 이러한 정세발전은 백악관 국가안보회의가 극렬하게 반대하는 것이다. 백악관 국가안보회의가 북측의 인민경제 발전을 가로막으려고 서두는 까닭이 거기에 있다.

백악관 국가안보회의가 북측의 인민경제 발전을 가로막는 길은 국가개발은행의 자금조달통로를 강제로 틀어막는 길밖에 없다. 그들이 이번에 공개한 대북 추가 제재 계획은, 북측을 정밀위조달러를 찍어내는 ‘불법국가’로 또 다시 모략하여, 국제금융거래에서 국가개발은행이 신용을 얻지 못하게 만들려는 음모로 보인다.

그러나 모략극 재연과 그에 따른 국제신용 손상으로 북측 국가개발은행의 자금조달통로를 틀어막으려는 백악관 국가안보회의의 음모는 이번에도 실패할 것이다. 그들이 지난 60년 동안 소리만 요란한 빈 수레를 끌고 온 길에 남은 것은 황량한 실패의 흔적뿐이라는 객관적 사실이, 실패의 흔적을 하나 더 남기게 될 것임을 예고한다.

아인혼과 글레이저는 왜 서울에 나타났을까?

이상한 것은, 백악관 국가안보회의가 대북 추가 제재를 강행하겠다고 하면서도 아인혼과 글레이저를 즉각 베이징에 보내지 않은 것이다. 백악관 국가안보회의가 북측 국가개발은행의 자금조달통로를 틀어막으려면, 해외 자금이 중국을 통해 북측으로 들어가는 것을 막아야 하며, 그렇게 하려면 응당 베이징부터 먼저 찾아가서 협조를 요청해야 한다. 그런데 그 두 관리는 서울에 나타나서 백악관 국가안보회의의 대북 추가 제재 계획을 공개하였다. 왜 그랬을까?

백악관 국가안보회의가 아인혼과 글레이저를 서울에 보낸 까닭은, 자기들의 발등에 떨어진 불부터 급히 꺼야 하기 때문이다. 그들의 발등에 떨어진 불이란, 이란에 대한 추가 제재를 강행하는 문제다. 거기에는 백악관 국가안보회의가 언론에 꺼내놓지 못할 복잡한 사연이 얽혀있다.

이란은 자국에서 생산한 저농축 우라늄 1,200kg을 터키로 반출한 뒤, 의료용 원자로 가동에 요구되는 20% 농도의 농축 우라늄 120kg을 터키로부터 돌려받기로 결정하였음을 2010년 5월 17일에 발표하였다. 이 발표가 나오자, 이란이 농축 우라늄을 해외로 반출하여 핵무기를 개발하지 않는다는 확증을 보일 때까지 이란에 대한 봉쇄와 압박을 계속하겠다고 위협하던 백악관 국가안보회의는 느닷없이 뒤통수를 맞은 꼴이 되었다. 뒤통수를 얻어맞고 톡톡히 망신을 당한 백악관 국가안보회의는 즉각 보복에 나섰다. 그들의 보복행위는 유엔안전보장이사회를 움직여 2010년 6월 9일 이란에 대한 4차 제재 결의안을 채택하게 만들고, 7월 1일에는 버락 오바마 (Barack H. Obama) 대통령이 이란에 대한 추가 제재법안에 서명하고, 8월 3일에는 해외에 진출한 21개 이란 국영회사들에 대한 추가 제재를 강행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유엔안보리의 이란 제재 결의 채택과 미국의 추가적인 독자 제재도 부족해서, 백악관 국가안보회의는 여러 동맹국들에게 이란 제재에 동참하라고 요구하였는데, 그 요구에 따라 2010년 7월 26일에는 유럽연합(EU)과 캐나다가, 7월 29일에는 오스트레일리아가, 8월 3일에는 일본이 각각 이란에 대한 추가적인 독자 제재를 시행하겠다고 발표하였다. 그것만이 아니라, 백악관 국가안보회의는 2010년 6월 19일 파키스탄에 특사를 보내 이란에서 천연가스를 수입하는 70억 달러 규모의 ‘평화가스관’ 협약을 이행하지 말라고 압력을 넣었고, 8월 2일에는 미국 정부 관리들을 브라질에 보내 이란 제재에 동참하라고 압력을 넣었다.

이란도 강경한 반격공세를 취했다. 이란은 2010년 6월 21일 허위보고를 한 국제원자력기구(IAEA) 사찰관 두 명의 입국을 금지했고, 7월 18일 이란 의회는 20% 농도로 농축한 우라늄 생산을 지속적으로 추진할 것을 의무화하고, 만일 적대국이 이란 화물선이나 이란 화물수송기를 유엔안보리 제재에 따라 검색하거나 중간급유를 거부하는 경우 그 나라에 보복할 것을 의무화한 대응법안을 채택하였다.

지금 중동정세를 극도로 긴장시키며 강행으로 치닫는 이란 제재조치의 실무를 총괄하는 관리가 2010년 8월 1일 서울에 나타난 로벗 아인혼이다. 2010년 8월 2일 그는 글레이저와 함께 주한미국대사관 정보자료센터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백악관 국가안보회의의 대북 추가 제재 계획을 설명하였다. 그가 기자회견에서 꺼내놓은 말만 들어보면, 그 자신과 글레이저가 서울을 방문한 목적이 대북 추가 제재를 강행하려는 데 있는 것처럼 들렸고, 그래서 내외 언론매체들은 아인혼과 글레이저의 서울 방문을 계기로 ‘고강도 또는 맞춤형 대북 추가 제재’가 곧 시작될 것이라고 보도하였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다. 백악관 국가안보회의가 아인혼과 글레이저를 서울에 보낸 가장 중요한 목적은, 이명박 정부를 이란 제재 대열에 끌어들이려는 데 있다.

이명박 정부를 이란 제재 대열에 끌고 가는 한미동맹의 비극

백악관 국가안보회의가 이란 제재에서 실효를 얻으려면, 무슨 수를 써서라도 이란의 국제금융거래를 차단해야 한다. 그렇게 하려면, 미국의 동맹국들을 이란 제재 대열에 끌어들이는 것은 말할 것도 없고, 이란과 무역 및 경제협력을 하는 나라들도 제재 대열에 끌어들여야 한다. 중국, 러시아, 파키스탄, 브라질, 아랍에미리트연방 그리고 남측이 이란과 무역 및 경제협력을 많이 하고 있다.

그 가운데서 백악관 국가안보회의가 이란 제재 대열에 끌어들인 나라는 아랍에미리트연방뿐이다. 러시아는 2010년 7월 14일 이란과 에너지 분야에서 상호협력을 확대하는 내용의 공동선언을 발표하였고, 파키스탄과 브라질은 백악관 국가안보회의의 제재 동참 요구를 받아들이지 않고 자기들의 계획을 계속 추진하기로 태도를 굳혔고, 중국은 유럽연합이 취한 이란에 대한 강력한 추가 제재를 비난하였다. 영국 언론 <파이낸셜 타임스(Financial Times)> 2010년 8월 2일 보도에 따르면, 중국이 에너지 개발을 위해 이란에 투자한 자금은 400억 달러나 된다니, 리커창(李克强) 중국 부총리가 2010년 8월 6일 베이징을 찾아간 마쑤드 미르카제미(Massoud Mirkazemi) 이란 석유장관과 회견하면서 이란과 경제협력을 계속하겠다고 말한 것은 당연한 일이다.

백악관 국가안보회의는 이란 경제가 세계 자본주의시장에 편입되어 있으므로 이란의 국제금융거래를 계속 조이면 제제 효과를 볼 수 있다고 타산하였으나, 그 타산은 빗나갔다. <뉴욕 타임스> 2010년 6월 10일 보도에 나온 것처럼, 이란의 우라늄 농축사업을 제재로 중지시킬 수 있다고 생각하는 관리는 미국 정부 안에 없다.

이란의 객관적 현실이 이란 제재 무용론을 입증한다. 이를테면, 이란의 종합주가지수(TEPIX)는 2010년 8월 2일 사상 최고 수준으로 올라섰다. 이란 증시에 상장된 기업은 330여 개이며, 시가총액은 750억 달러에 이르는데, 해외 투자가 차지하는 비중은 2%밖에 되지 않는다. 이란 증시에는 ‘외풍’이 강하게 불어오지 않는 것이다. 또한 세계에서 두 번째로 큰 산유국인 이란은 새로운 정유공장을 건설하고 기존 정유시설을 현대화하는 사업에 460억 달러를 투자하는 중이다.

러시아, 중국, 파키스탄, 브라질이 이란 제재를 외면한 상황에서, 백악관 국가안보회의가 이란 제재 대열에 끌어들일 만한 대상은 남측밖에 없다. 이란 제재를 밀어붙이는 백악관 국가안보회의가 남측과 이란의 무역 및 경제협력을 방치할 수는 없다. 그래서 그들은 아인혼과 글레이저를 서울에 보내 이명박 정부에게 유엔안보리 제재 결의보다 더 강한 독자적인 제재를 이란에게 가하라고 요구하였다. 죽으나 사나 한미동맹만 믿고 따르기로 맹약한 이명박 정부는 백악관 국가안보회의의 요구에 항변 한 마디 꺼내지 못했고, 2010년 8월 5일부터 독자적인 이란 제재방안을 검토하기 시작하였다.

그런데 사태가 이렇게 전개되리라고 예견하지 못한 남측은 그 동안 이란과 무역 및 경제협력을 심화시켜왔다. 중동지역에서 남측의 최대 수출시장은 이란이다. 남측과 이란의 연간 무역규모는 2009년에 100억 달러 수준에 이르렀고, 이란에 주재하는 남측 회사는 2,142개나 된다. 남측이 이란에서 사들이는 원유는 남측 전체 연간 원유수입량의 9.5%인 47억 달러다.

백악관 국가안보회의의 요구에 따라 이명박 정부가 독자적으로 이란을 제재하면, 어떤 사태가 벌어질까? 남측이 이란과 거래하는 막대한 결제대금 가운데 3분의 2를 처리해온 이란의 멜라트 은행 서울지점을 폐쇄하면, 이란과의 교역을 사실상 포기하는 것이고, 이란과의 교역을 포기하면, 이란에 나가있는 2,142개 남측 회사들이 철수할 것이다. 중소기업중앙회가 이란과 거래해온 남측 중소기업들을 최근 조사한 결과에 따르면, 미국의 이란 제재법이 발효되자 조사대상기업들 가운데 56%가 심각한 피해를 입었다. 남측 자동차 산업의 이란 시장 점유율은 60%에 이르는 데, 월평균 1,500대를 이란에 수출해온 현대자동차는 이미 2010년 7월 중순부터 수출 선적을 중단했다. 이란 시장 점유율이 70%에 이르는 남측 가전산업도 이란 제재로 타격을 입을 것이고, 건설 부문과 생산설비 수출부문도 마찬가지다.

이명박 정부가 이란에 대한 독자 제재를 시작하면, 이란으로부터 보복을 받을 것이다. 이란이 만만하게 보고 가장 강하게 보복할 대상은 남측밖에 없다. 만일 이란이 남측에 수출해온 연간 47억 달러의 원유공급을 중단하는 보복행동을 취하면, 가뜩이나 비틀거리는 남측 경제는 치명적 타격을 받게 된다. 아닌 게 아니라, 이란은 제재조치를 발표한 일본에게 원유공급을 중단하겠다고 즉각 위협하였다.

이처럼 치명적 타격을 받으리라는 점을 뻔히 아는 이명박 정부가 백악관 국가안보회의의 요구 대로 이란 제재 대열에 끌려가는 것은 자해행위다. 워싱턴만 바라보다가 테헤란으로부터 치명적 타격을 받게 된 이명박 정부는 자해의 비극에서 벗어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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