향수도 짙은 부벽루의 「낚시질」
「호랑이」의 「수수께끼」푸는 날이 빨리 오기를
호박에다 물총 쏘아 심술부린 기억 새로워

 

▲ 청류벽(淸流碧)에서 부벽루(浮碧樓)를 거쳐 모란봉(牡丹峯)이 바라보이는 대동강변(大同江邊).  [사진-민족일보 2월 19일자 캡쳐]

오늘(19일)이 우수(雨水). 우수면 대동강 물도 풀린다 하지만 아직도 차가운 바람이 뺨을 스친다. 남쪽나라에서 전해오는 계절을 타고 머지않아 이 땅에도 봄은 오련만 남북이 가로막힌 겨레의 봄은 언제나 오려는지 기약할 수 없다.
그립다 북녘 땅의 내 고향, 가고파, 가고파, 애태우는 마음 - 그 산천(山川) 그 마을 또한 그 사람들을 꿈속에 그리면서 여기 15년 전의 「앨범」을 한 장 한 장 펼쳐 보기로 한다.

『서기산(瑞氣山) 꼭대기에 있는 오정포대(午正砲臺)의 기둥을 안고 있으면 정오 「사이렌」이 끝나야 몸이 떨어지던 일이 새롭고 순영리(巡營里) 일신학교 뒤 「윤사년」(미국인) 목사네집 뜰에서 연을 띄우며 놀다가도 미국학교 아이들과 날파람(싸움)이 벌어지면 목사네집 넝굴에 달린 큰 호박에다 고무줄총을 대고 쏘며 심술 부리던 일들도 새롭다』고 말하는 평양(平壤)출신의 김진섭(金鎭燮)씨는 어린 시절의 추억을 말하는 것이었다.

이렇게 그리운 고향이건만 자유와 공산독재라는 두 갈래의 「이데올로기」는 38선이라는 인위적 장벽을 만들어 남북을 갈라놓아 갈수도 올수도 없는 땅들이 되고 말았다. 많은 사람들의 아버지와 어머니들의 그리운 얼굴들 아들과 손자들의 귀여운 모습들을 서로 못보고 못  만나고 살고 죽어야 하는 것이 우리민족의 운명은 아니건만 이 장벽은 누가 만들어놓았으며 누가 걷어버려야 하는 것일까.

남북통일의 시안이 많이 보도되고 있지만 과연 언제나 우리민족은 통일이 되어 고향에 가볼는지 고대하는 마음 아득하게만 들린다.

평양의 추억에 젖은 김진섭씨는 『대동강 떡바위(溶溶水) 깊은 곳이 얼마나 깊은가 하고 자맥질을 해 보았으나 밑바닥이 안 닿게 깊었다고, 주암산(酒岩山) 반월도(半月島)에서「보트」도 저었으며 부벽루(浮碧樓) 바위위에 낚시질하는 노인과 시(詩)를 읊는 노인들도 보았다. 백선행(白善行) 기념관 대동문(大同門) 기생학교 등이 평양의 고전적인 정서를 더욱 북돋아 주었던 것』이라고 말하였다. 『지금 평양에는 어릴 때 귀여워 해주고 아껴주던 이모가 살고 계시는데 잘 지내는지 모르겠다』고 말하면서 모란봉(牡丹峯)에서 주암산(酒岩山)가는 길에 범의 새끼가 나오고 잰나비(원숭이)가 나온다기에 잡으러갔다가 영명사(永明寺) 주지에게 물으니 잰나비는 마끼노자야(牡乃茶屋)에 있는 일본사람을 말하는 것이고 호랑이는 모른다고 가르쳐 주었는데 아직도 수수께끼의 호랑이가 무엇인지 하루빨리 남북이 통일되면 고향에 가서 호랑이의 수수께끼부터 풀어보아야겠다』고 웃음을 짓는 것이다.

◇사진=청류벽(淸流碧)에서 부벽루(浮碧樓)를 거쳐 모란봉(牡丹峯)이 바라보이는 대동강변(大同江邊)

김진섭(평양출신=언론인)

[민족일보 1961년 2월 19일자]

 

▲ [사진-민족일보 2월 19일자 캡쳐]
가고파라 내故鄕(1)
鄕愁도 짙은 浮碧樓의 「낚시질」
「호랑이」의 「수수께끼」푸는날이 빨리오기를
호박에다 물총쏘아 심술부린 記憶새로워

오늘(十九일)이 우수(雨水) 우수면 대동강물도 풀린다 하지만 아직도 차가운 바람이 뺨을 스친다. 남쪽나라에서 전해오는 계절을 타고 멀지않아 이땅에도 봄은 오련만 남북이 가로막힌 겨레의 봄은 언제나 오려는지 기약할 수 없다.
그립다 북녘땅의 내 고향, 가고파, 가고파, 애태우는 마음-그 산천(山川) 그마을 또한 그사람들을 꿈속에 그리면서 여기 十五년전의 「앨범」을 한 장한장 펼쳐보기로한다.

『서기산(瑞氣山) 꼭대기에 있는 오정포대(午正砲臺)의 기둥을 안고있으면 정오 「사이렌」이 끝나야 몸이 떨어지던 일이 새롭고 순영리(巡營里) 일신학교 뒤 「윤사년」(미국인) 목사네집 뜰에서 연을 띄우며 놀다가도 미국학교 아이들과 날파람(싸움)이벌어지면 목사네집 넝굴에달린 큰호박에다 고무줄총을대고 쏘며 심술 부리던 일들도 새롭다』고 말하는 평양(平壤)출신의 김진섭(金鎭燮)씨는 어린시절의 추억을 말하는것이었다.

이렇게 그리운고향이건만 자유와 공산독재라는 두갈래의 「이데올로기」는 三八선이라는 인위적장벽을 만들어 남북을갈라놓아 갈수도 올수도없는 땅들이 되고 말았다. 많은사람들의 아버지와 어머니들의 그리운얼굴들 아들과 손자들의 귀여운 모습들을 서로못보고 못만나고 살고죽어야 하는 것이 우리민족의 운명은 아니건만 이장벽은 누가 만들어놓았으며 누가걷어버려야 하는것일까.

남북통일의 시안이많이 보도되고있지만 과연 언제나 우리민족은 통일이되어 고향에 가볼는지 고대하는 마음아득하게만 들린다.

평양의 추억에 젖은 김진섭씨는 『대동강 떡바위(溶溶水) 깊은곳이 얼마나 깊은가고 자맥질을해 보았으나 밑바닥이 안닿게 깊었다고주암살(酒岩山)반월도(半月島)에서「보트」도 저었으며 부벽루(浮碧樓) 바위위에 낚시질하는노인과 시(詩)를 읊는 노인들도 보았다. 백선행(白善行) 기념관 대동문(大同門) 기생학교 등이 평양의 고전적인 정서를 더욱 북돋아주었던것』이라고 말하였다. 『지금 평양에는 어릴 때 귀여워 해주고 아껴주던 이모가 살고계시는데 잘지내는지 모르겠다』고 말하면서모란봉(牡丹峯)에서 주안산(酒岩山)가는 길에 범의 새끼가나오고 잰나비(원숭이)가 나온다기에 잡으러갔다가 영명자(永明寺) 주지에게 물으니 잰나비는마끼노자야(牡乃茶屋)에 있는 일본사람을 말하는 것이고 호랑이는 모른다고 가르쳐주었는데 아직도 수수께끼의 호랑이가 무었인지 하루빨리 남북이 통일되면 고향에가서 호랑이의 수수께끼부터 풀어보아야겠다』고 웃음을 진는 것이다.

◇사진=청류벽(淸流碧)에서 부벽루(浮碧樓)를 거쳐 모란봉(牡丹峯)이 바라보이는 대동강변(大同江邊)

金鎭燮(平壤出身=言論人)

[民族日報 1961年 2月 19日字]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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