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5일 최근 바닷속 금속 부식 실험을 진행한 이종인 알파잠수기술공사 대표를 만났다.
[사진 - 통일뉴스 김치관 기자]
재미있는 실험 하나가 진행됐다.
지난 13일 인천 연안부두 알파잠수기술공사 앞바다. 이 회사 이종인 대표가 기자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50일 전 뻘 속에 묻어둔 가열한 알루미늄과 철, 스테인레스 조각을 꺼냈다.
결과는? 락커 칠보다 얇은 정도의 녹이 나타났을 뿐.

천안함을 침몰시킨 북한 어뢰 잔해라며 민.군 합동조사단(이하 합조단)이 내놓은 묵은 녹이 슨 ‘결정적 증거물’이 과학적으로 부인되는 순간이었다. 그의 경험에 따르면 최소한 7,8년 이상, 10년 가까이 부식된 것으로 판단된다는 것.

15일 이종인 대표는 <통일뉴스>와의 인터뷰에서 “실험 조건을 줄 때 되도록 녹이 많이 나는 조건으로 주려고 했다”며 “이 실험의 제일 중요한 포인트 중에 하나는, 될 수 있으면 녹이 많이 날 수 있게끔 조건을 해줬음에도 불구하고 이렇게 밖에 안 나왔다는 것”이라고 의미를 부여했다.

▲ 50일간 인천부두 앞바다 뻘에 묻어뒀다가 꺼낸 금속 조각들. 왼쪽부터 스텐레스, 철, 알루미늄.
[사진제공 - 미디어오늘]
▲ 합조단이 '결정적 증거물'로 제시한 녹슨 북한 어뢰 잔해. [자료사진 - 통일뉴스]
이처럼 기발하지만 어찌보면 ‘서글픈’ 실험까지 마다하지 않는 그가 누굴까 자못 궁금해 연안부두 사무실을 찾았다.

“물에 들어가는 게 취미”라는 그는 “어려서부터 오리발 하나 갖는 게 소원이었는데, 중3 때 어떻게 오리발 한조를 사게 돼 직업까지 연결됐다”고 소박한 웃음을 지었다.

그러나 “30년 내 직업상 희한하게 천안함 사건과 관련될 수 있는 경험을 다 했다”는 그의 말처럼 해저 재난구조에서는 둘 째 가라면 서러워하는 최고의 베테랑 잠수기사로 통한다.

그는 단호하게 천안함 침몰사건에 대해 “폭발이 절대 아니다”고 합조단 조사결과를 부정했다. “배 중간 좌현 선저 기준 1.2-1.5미터 정도의 암초에 부딪치면서 3,40미터 뒤쪽 프로펠러가 뻘에서 전후진하면서, 후진시 고속회전하면서 ‘따다당’해서 휜” 것이고 “좌초에 의해서 일차로 선체에 손상이 왔고, 물이 침수되면서 함수와 함미쪽 무게 작용의 방향 차이로 결국 배가 부러진” 것이라는 판단이다. 

그는 두 차례에 걸쳐 백령도 인근 사고 현장에 가서 물속을 조사하기도 했다. 특히 지난 6월 8일 합조단이 침몰지점 좌표로 발표한 곳 해저에서 직접 개스터빈 싸개(덮개, enclosure) 한쪽 벽 등 잔해들을 발견해 촬영에 성공함으로써 침몰지점 좌표가 정확하다는 것을 확인했다고 밝혔다.

그간 합조단이 KNTDS(해군전술지휘통제체제) 항적기록 상 천안함의 신호가 끊긴 3월 26일 오후 9시 22분 경 좌표, 즉 백령도 서남방 2.5km(37-55-45N, 124-36-02E) 지점을 침몰지점으로 발표했지만 민간에서는 논란이 있었던 사안이다.

또한 천안함 가족들에게 군이 브피링해줬던 ‘수심 6.4미터 지점’도 직접 가 보았지만 사건 당시 수심이 13미터 정도여서 “좌초 될 수 있는 상황이 전혀 아니”라는 결론을 얻기도 했다.

결국 "백령도든 대청도든 수심 낮은 곳에 배가 갔고 좌초돼서 배가 선저에 심하게 손상을 입고 거기서 빠져 나와 진행하는 도중 사고지점에서 침몰한 것"이라며 "(좌초 지점을) 군대에서 밝혀야 될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국민교육헌장을 외우고 반공을 국시로 아는 평범한 대한민국 국민”이었다. 그러나 천안함 사건을 계기로 달라졌다. “천안함은 내 전문분야다. 저렇게 간단한 거를, 뻔한 거를 딴 얘기 할 수 있을까? 그래서 억울해서 이야기한 거다”라고.

아울러 “국가에서 국제적으로 더군다나 북한이 있는 상황에서 그런 게 좀 창피스럽다고할까 국민으로서 좀더 준비한 다음에 발표했었어야 한다는 느낌이 든다”면서도 기자를 바래주는 길에 “지금 유엔 조치도 끝났는데 왜 진상규명을 요구하느냐고도 말하지만 정부가 잘못한 것을 국민의 힘으로 바로잡는 모습을 보여주는 것이 바로 우리 나라가 제대로 된 나라임을 증명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다음은 15일 오후 6시 알파잠수기술공사 사무실에서 가진 인터뷰 내용이다. 

"중 3때 오리발 한조를 사게 돼 직업까지 연결"

▲ "취미가 직업이 돼" 베테랑 잠수기사가 됐다는 이종인 대표. [사진 - 통일뉴스 김치관 기자]
□ 통일뉴스 : 어떻게 잠수기사가 됐나?

■ 태어난 게 인천 바닷가 만석동에서 태어났다. 『꼬방동네 사람들』이라는 소설에 나오는 곳이다. 계속 인천에서 학교를 다녔고 인하공대 조선공학과를 갔다. 중간에 해병대에 갔다 왔지만 포병이었다.

물에 들어가는 게 취미다. 그래서 어려서부터 오리발 하나 갖는 게 소원이었는데, 중3 때 어떻게 오리발 한조를 사게 돼 직업까지 연결됐다. 취미가 직업이 돼 하고 싶은 걸 하니까 좋고 애착도 있다.

대학 졸업하고는 네델란드에서 요트 만드는 회사를 2년간 다녔고 우연한 기회에 잠수회사를 소개받아 취직해 잠수를 시작했다.

당시만 해도 대학 나오고 경력있는 사람이 잠수회사에서 속칭 ‘머구리’를 한다는 게 사회적으로 위장취업자로 의심받는 상황이었다. 나중에야 알았지만 기관에서 10년 동안 관리대상이었다고 한다.

잠수회사에서 잠수부로 8년간 일하고 90년 초에 알파잠수를 설립하게 됐다. 돈을 벌려면 수중 토목공사를 해야 하는데 해난구조만 20년 동안 했다. 그러다 보니까 이 분야에 전문성을 갖추게 됐다.

□ 천안함 사건에 대해 어떻게 관심을 갖게 됐나?

■ 사고가 26일날 났는데, 23일자로 제2함대 전시동원 구난업체로 등록됐다고 등록증을 받았다. 당시는 인천항 입구에 가라앉은 2,400톤 선박을 크레인과 체인이 아니라 부력장치를 설치해 인양하는 획기적인 시도를 하고 있던 때다.

구난업체 등록증을 받은 직후라 ‘아, 우리가 곧 불려가겠구나’ 하고 여러 준비를 하고 있었는데 부르지 않더라.

그런데 국토해양부 산하 인천해양항만청 소개를 받고 KBS에서 방송출연을 제안해 28일 아침 생방송에 출연하게 됐다. 실제 경험한 사례들을 이야기 하니까 인터뷰 요청이 많이 들어왔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몰라도 일반 사람들이나 언론이 궁금해 하는 상황을 30년 해온 일이니까 대답해줄 수 있었던 것이다.

"녹이 많이 날 수 있게끔 조건을 해줬음에도 불구하고..."
"폭발이 절대 아니다.. 암초에 부딪친 자국이 보였다"

□ 최근 금속 부식실험 결과를 발표했는데 소개해달라.

■ <민중의소리>와 함께 동영상 촬영을 준비해서 5월 24일날 실험을 했다. 금속 표면에 글씨를 쓰고 열을 가했을 때 지워지나 안 지워지나와 뻘 속에서 50일이 지난 다음 합조단이 어뢰잔재라고 보여준 것처럼 녹이 날까, 이 두 가지를 실험했다. 매직 글씨는 지워졌다.

▲ 인천부두 앞바다 갯벌에 50일간 묻어둔 금속편을 꺼내고 있는 이종인 대표. [사진제공- 미디어오늘]
금속 부식 실험은 50일이 되는 7월 13일날 그것을 파서 꺼내본 결과 한마디로 라카를 얇게 칠한 정도의 녹만이 발견됐다. 하얗게 어뢰에 핀 산화알루미늄은 일부의 점 형태로 알루미늄 샘플에서 튀어나왔다.

상식적으로 생각했던 것은 합조단이 보여준 어뢰잔재 정도로 녹이 날려면 물속에서 4,5년 걸린다고 언론은 보도했지만 나는 물속이든 뻘이든 7,8년, 10년까지도 봤다. 쌍끌이로 끌어냈으니까 뻘 속이란 얘긴데, 평상시 딴 것을 봤을 때와 비교해 보니까 그렇게 보이더라.

그래서 실험 조건을 줄 때 되도록 녹이 많이 나는 조건으로 주려고 했다. 열을 가해서 급랭시키고, 알루미늄 반쪽은 열로 뭉그렸다. 알루미늄은 전기적 접촉이 일어나면 녹이 더 많이 나니까 바이스그립으로 접촉시켜 놓았고 두랄미늄 같은 녹이 잘 안 스는 알루미늄이 아니라 흔히 샷시에 쓰는 질이 안 좋은 녹이 많이 날 수 있는 재료를 쓴 거다.

그렇게 해서 넣었는데도 불구하고 녹이 얼마 안 났다. 저도 처음 실험해봤는데 저도 놀랐다. 이 실험의 제일 중요한 포인트 중에 하나는, 될 수 있으면 녹이 많이 날 수 있게끔 조건을 해줬음에도 불구하고 이렇게 밖에 안 나왔다는 것이다.

□ 천안함 사건에 대한 민군 합동조사단의 조사결과 발표에 의혹이 계속 제기되고 있다. 이 대표는 좌초설을 주장하고 있는 것으로 안다.

■ 처음에는 ‘쾅’하는 순간에 큰 배가 절단났다는 보도를 보고 방송에서 “어뢰밖에 없다”고 말했다. 2005년 필리핀에서 침몰한 미국 구축함을 탐사한 경험에 비추어 이북에서 쏜 어뢰밖에 없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4월 14일 배가 인양되면서 <인천일보> 기자가 “초기에 어뢰라 했는데 건져놓고 보니까 어떤가?”라고 물었다.

딱 보니까 폭발이 아니라는 거다. 함미가 올라오면서 시신도 발견됐는데 손상되지 않았다. 거기에다 함미 올려놓은 것을 사진으로 보니까 암초에 부딪친 자국이 보였다.

폭발이 절대 아니다. 어뢰 폭발에 노출되면 그 근처에 있는 사람들의 손상이 엄청나 눈과 귀도 그렇고, 가까이 있는 사람은 목이 날아간다. 파편 때문이 아니고 폭발 충격으로. 진주만공습 당한 사람들 구조에 참여한 잠수사가 쓴 책이 있다. 목없는 시체들이 그렇게 많더라는 거다.

폭발이 없었다면 어떻게 배가 부러졌을까? 좌초하고 물이 들어가면서 앞은 버티고 뒤쪽은 무거우니까 시간을 두고 “뜨뜨드”하고 뜯겨지다 “꽝”하고 부러진 거다.

폭발음이 났고 지진파가 폭발 파장이라고 얘기했는데 배가 부러질 때 소리가 무진장 크다. 실제 배 부러진 데서 겪어봐서 안다.

그렇게 대답을 했는데 지방지라 많이 보지 않은 것 같았는데, 나중에 <오마이뉴스>에서 인터뷰를 요청받아 다시 그대로 이야기해줬다.

“개인적인 믿음은 좌초지만 제 성향은 한나라당이다”

▲ '평범한 대한민국 국민'인 그가 천안함 사건에 대해서는 정부의 발표를 앞장서 부정하고 있다.
[사진 - 통일뉴스 김치관 기자]
□ 평소에도 정부의 발표에 비판적 시각을 가지고 있었나?

■ 저는 6.25 끝나고 53년에 태어난 사람이다. 60년대 자유당 시절을 만석동에서 고철을 주워가면서 소위 ‘꼬방동네’에서 살았고, 4.19와 5.16을 초등학교 다니면서 봤다. 정부에서 분위기 띄우는 대로 맞춰 살아온 사람이다.

국민교육헌장을 외우고 반공을 국시로 아는 평범한 대한국민 국민이었다. 사상이고 뭐고 없는. 최문순 민주당 의원이 주최하는 토론회에가서 “개인적인 믿음은 좌초지만 제 성향은 한나라당이다”고 먼저 이야기 했을 정도다.

박정희 대통령 돌아가셨을 때 조기까지 단 사람이다. ‘독재자 박정희’, ‘박통’이라는 말 자체를 죄의식 없이 하게 된 게 불과 몇 년 안 된다. 그만큼 국가에 대한 믿음이 셌다.

그런데 천안함은 내 전문분야다. 저렇게 간단한 거를, 뻔한 거를 딴 얘기 할 수 있을까? 그래서 억울해서 이야기한 거다. 하도 억울해서 이제까지 내가 믿고 살아왔던 게 막 엉킨 거다.

□ 좌초설에 대해 좀더 설명해달라.

■ 처음에는 천안함 방문 허가가 안 나 불가능했지만 6월 8일과 22일 두 번 2함대를 방문해 천안함을 직접 쭉 둘러봤다. 갑판은 못 올라가게 해도 밑에서 볼 수 있는 것 보고 만져보고, 묻어있는 심스러운 것은 찍어서 혓바닥으로 맛도 보고.

볼 건 다 봤는데 크게 달라진 것 없다. 어떤 사람은 핵잠수함 부딪친 자국이 있다고 하는데, 잠수함도 배다. 배하고 배끼리 부딪친 자국은 형상이 그렇게 나오지 않는다. 자연 암초하고 부딪친 것이다.

배 중간 좌현 선저 기준 1.2-1.5미터 정도의 암초에 부딪치면서 3,40미터 뒤쪽 프로펠러가 뻘에서 전후진하면서, 후진시 고속회전하면서 “따다당”해서 휜 거다.

그런데 프로펠러 제조회사가 관성 때문에 갑자기 딱 서면 그렇게 된다고 설명했다. 그것도 아니라고 다시 말했다. 내 말이 맞다고 다시 떠들 필요는 없다. 그냥 사실을 사실이라고 이야기하는 것이다.

배 손상을 직접 봤을 때 이건 좌초에 의해서 일차로 선체에 손상이 왔고, 물이 침수되면서 함수와 함미쪽 무게 작용의 방향 차이로 결국 배가 부러진 것이다. 확신한 것이 아니라 사실이 그런 것이다.

□ 그런데 합조단이 발표한 침몰지점은 암초가 없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 “KNTDS 상의 좌표를 보면 수심이 몇 미터인데 암초가 있느냐 바보같은 놈아?” 그렇게들 이야기 한다. 그런데 배가 그렇게 갔다는 것은 국방부나 합조단에서 한 이야기지, 그게 사실은 아니다.

배가 그렇게 만 움직이다 부러졌다면 거기는 암초가 있을 수가 없다. 그러나 배 손상으로 볼 때 암초다.

말이 될 수 있는 건 어디가 됐든 백령도든 대청도든 수심 낮은 곳에 배가 갔고 좌초돼서 배가 선저에 심하게 손상을 입고 거기서 빠져 나와 진행하는 도중 사고지점에서 침몰한 것이다.

"맞다고 확인한 것은 침몰좌표 하나"

▲ 이종인 대표는 함미의 파손 형태를 직접 보고 나서 좌초후 부러진 것이 분명하다는 입장을 더욱 굳히게 됐다고 밝혔다. [자료사진 - 통일뉴스]
□ 그렇다면 좌초후 침몰한 지점의 좌표는 합조단 발표가 맞다고 보나?

■ 국방부와 합조단이 발표한 좌표 중에서 맞다고 확인한 것은 침몰지점 좌표 하나다. 왜냐면 들어가 봤으니까. 천안함에서 떨어져 나온 조각들을 촬영해 확인했다. 혼자가 아니라 국회 특위 차원에서 갔다.

6월 8일 사고지점으로 발표된 지점의 좌표에서 (물속으로) 들어갔다. 조그만 파편도 아니고 개스터빈 싸개(덮개, enclosure) 한 벽을 거기서 발견했다. 22일 2함대에 가보니 개스터빈실 나머지 부분이 전시돼 있더라.

어디서 좌초됐냐는 정부가 이야기해줘야 한다.

□ 백령도 장촌항에서 주로 사고 수습을 하느라 분주한 모습이 목격됐고, 초기에 언론사들도 주로 그곳에서 취재한 것으로 들었다.

■ 사후 얘기다. 조류에 밀렸든 함수를 건질 때 그랬고, 함미도 이동해 인양해서 그렇다. 거기서 일어난 것 같이 착각하는 것이다.

□ 일각에서는 사고 직후 가족들에게 군에서 처음 브리핑한 ‘수심 6.4미터 지점’ 위치가 사고위치일 것이라는 추정이 있다.

■ 밝혀져야 한다. 6월 8일 문제의 ‘수심 6.4미터 지점’에 갔다. 그러나 물때에 따라 다른데 사고 당일 오후 9시 반 기준으로 수심이 13미터 나온다. 배로 수심 형태를 측정했다. 좌초 될 수 있는 상황이 전혀 아니었다. 군대에서 밝혀야 될 것 같다.

□ 한주호 준위가 베테랑인데 사망했다. 같은 잠수사로서 어떻게 보나?

■ 바다에는 베테랑이고 뭐고 확률이 작을 뿐이지 항상 사람이 당하게 돼 있다. 내 생각에는 수심은 그렇게 깊은 것은 아니고 수온이 차고 장시간 과로하다 보니까 그런 사고가 일어난 것 같다.

작전 상황상 과로할 수 밖에 없었던 것 아닐까. 그런 베테랑이 사고를 당하지 않고 좀더 오래 남아서 군에서 역할을 했으면 좋았을 텐데 안타깝다.

다만 미 군함 제압실로 갈 상황이 아닌 것 같았다. 다이빙 하는 사람들이 몸을 따뜻하게 하고 응급조치를 해줬으면 결과가 달라지지 않았을까 생각해본다.

□ 구조작업이나 조사결과 발표를 보고 화도 나고 심경도 착잡할 것 같다.

■ 평가를 하고 싶다. 사실 좀더 준비해서 발표했어야 실수들이 나타나지 않았을 것이다. 실제 원인은 나중에 밝혀지겠지만 합조단과 국방부는 정부기관이다. 국가에서 국제적으로 더군다나 북한이 있는 상황에서 그런 게 좀 창피스럽다고할까 국민으로서 좀더 준비한 다음에 발표했었어야 한다는 느낌이 든다.

30년 내 직업상 희한하게 천안함 사건과 관련될 수 있는 경험을 다 했다. 폭발로 가라앉은 배를 직접 눈으로 보고 만져도 봤다. 아산만 막는데 썼던 폐선을 ‘임의 좌초’시킨 경험도 있다. 크랙(균열)이 간 폐선을 일부러 뻘 위에 올려놓아 물이 나가니까 부러졌는데, 굉음과 에너지가 굉장했다. 집체보다 큰 물체가 30센티 이상 솟구쳤다가 부러졌다. 그 소리가 어마어마하다는 것을 알고 있다. 배가 좌초된 상태에서 기름을 막고 수중용접도 직접 해봤다. 배끼리 충돌해서 측면에 직경 8미터 짜리 구멍이 둥그렇게 뚫려있는 것을 두 달 동안 용접해 막아도 보았다.

다 눈으로 봤다. 이 손상 형태를 보면 뭣 때문이라고 판단할 수 있는 경험이 있다. 지식이 아니고. 그것들에 의거해 말한 것이다. 사람들이 물어보니까. 천안함이 갖고 있는 상황을 유일하게 설명할 수 있는 사람이다.

나는 희한하게 경험해서 본 걸 얘기한 것이다. 잘못한 게 뭐 있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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