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안함 사태와 관련해 지난 9일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안보리)에서 의장성명이 채택되자 한반도 관련국들이 급격히 천안함 출구전략을 모색하고 있다. 그 공통분모는 ‘6자회담 재개’다. 북한이 곧바로 선수를 쳤다. 북한 외무성은 안보리 의장성명 채택에 ‘외교적 승리’를 선언하고는 그 다음날인 10일 “우리는 평등한 6자회담을 통해 평화협정 체결과 비핵화를 실현하기 위한 노력을 일관되게 기울여 나갈 것”이라고 밝혔다. 6자회담 의장국인 중국도 장단을 맞췄다. 중국 외교부 대변인은 “가급적 신속히 천안함 사건을 매듭짓기를 희망한다”면서 “우리는 조속히 6자회담이 재개돼 한반도의 평화와 안정을 공동으로 수호할 수 있게 되길 촉구한다”고 알렸다. 미국의 입장이 중요하다. 미국측은 아직까지 공식 반응을 내놓지 않고 있지만 6자회담 재개에 대해선 원칙적으로 찬성하는 입장을 가진 것으로 봐야 한다. 천안함 사태 이전에 북한과 미국은 ‘북미 추가 접촉-6자 예비회담-6자 본회담’ 수순에 합의한 적이 있기도 하다. 게다가 15일 북-유엔사(미) 대령급 실무접촉이 예정돼 있다는 것도 출구전략에 청신호다.

문제는 남한이다. 대북 전문가들 사이에서는 ‘포스트 천안함’ 등등이 심심찮게 나오고 있지만 남한 당국은 천안함 사태와 관련해 몇 가지 딜레마에 봉착해 있다. 우선, 사력을 다한 유엔 안보리에서의 천안함 외교가 전혀 소기의 목적을 거두지 못했다. 천안함 침몰 원인을 ‘북한의 소행’으로 규정짓는데 실패한 것이다. 민군 합동조사단의 조사결과가 국내외적으로 불신을 받고 있다는 방증이다. 게다가, 남한 당국은 고강도 대북 제재를 천명했다가 용두사미가 되고 있다. 대북 심리전이 취소될 상황에 놓였고, 서해 해상에서의 한미군사훈련도 중국측의 강력한 반발로 축소되거나 훈련장소가 변경될 처지에 놓였다. 나아가, 남한 당국이 주워 담기에는 쏟아낸 말들이 너무 많다. 남한은 “북한이 천안함 사태에 대해 사과하고 무엇보다 비핵화 의지를 보여야 6자회담 재개가 가능하다”는 ‘선 사과, 후 6자회담 재개’라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그런데 북한은 천안함에 대한 ‘사과’ 없이 이미 “6자회담을 통한 평화협정 체결과 비핵화 실현”을 선언했다. 유엔 의장성명에서도 북한의 소행으로 적시되지 않았기에 북한이 ‘사과’해야 할 원인이 없어진 것이다.

남한 당국은 천안함 수렁에 계속 머물러 있느냐 아니면 출구전략을 마련하느냐 하는 기로에 서 있다. 어느 쪽이든 곤혹스럽다. 어정쩡한 스탠스다. 전자에 머물러 있자니 움직일수록 천안함 의혹에 빠져 헤어 나오지 못하고, 후자로 가자니 영 체면이 서지 않는다. 전자와 관련해 남측 당국은 외교적 실패만이 아니라 북한 소행임을 입증하는 데도 실패했음을 인정해야 한다. 따라서 이를 만회하기 위해서라도 진실 규명의 길을 열어놔야 한다. 국내외에서 진실 규명을 위한 재조사를 요구하면 이에 응해 한 점 의혹 없는 결과를 내놔야 한다. 게다가 한반도 관련국들이 6자회담을 향해 노래를 부르게 되면 미국도 자연스럽게 6자회담 재개 논의에 합류할 공산이 크다. 이럴 경우 남측은 당장 외교적 미아로 전락할 우려가 있다. 그러기에 남측은 진실 규명의 창을 열어놓고 일단 천안함 수렁에 벗어나야 한다. 이 경우 남한의 천안함 출구전략은 그렇게 단순하지가 않다. 미국과 중국 등은 6자회담 재개로 자신의 역할을 다 한다고 할지는 몰라도 남한은 그것만으로는 출구전략을 온전히 찾았다고 볼 수 없다. 여기서 출구전략이란 단순히 천안함 정국을 빠져 나오는 게 아니라 남북관계를 개선시키는 것이 되어야 한다.

그러기에 지금 시기 남한의 천안함 출구전략은 6자회담의 차원을 넘어 보다 근본적인 것이어야 한다. 그것은 대북 정책의 결정적 전환을 요구한다. 대북 대결주의에서 대화와 교류로 탈바꿈하라는 것이다. 물론 대화와 교류는 이명박 정부가 한 번도 사용하지 않은 정책이기에 부담이 될 수도 있다. 하지만 이 방법 외엔 다른 수가 없다. 정책을 전환할 명분은 있다. 지난 6.2지방선거에서 국민은 정부 여당을 심판했다. 그 사이에 6.15공동선언 발표 10돌도 지나갔다. 두 사안의 공통점은 대북 정책의 전환이다. 이제 더 이상 실기해서는 안 된다. 대북 정책 전환의 요소는 많다. 선별적인 대북 인도적 지원을 풀고 또 민간 교류를 전면화하는 것도 한 방법이다. 금강산과 개성 관광 재개도 정책 전환의 본보기다. 그래도 가장 핵심은 인적 쇄신에 있다. 대결에서 대화로 전환하자면 이제까지 대결을 조장한 인물들이 쇄신돼야 한다. 특히 천안함 정국을 주도해온 통일, 국방, 외교 책임자들의 청산은 불가피하다. 이명박 대통령의 임기가 절반을 넘고 있다. 마침 청와대는 개각을 통해 인사 개편을 서두르고 있다. 이번 기회에 통일, 국방, 외교에서 새로운 인사진을 꾸려라. 그게 천안함 수렁에서 벗어나 6자회담 재개를 맞이하기 위한 채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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