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같은 시기에는 6.15공동선언의 정신이 더욱 절실해진다. 단지 6.15선언 발표 10돌을 맞이해서가 아니다. 모두 5개항으로 되어있는 6.15선언에는 오늘의 한반도 상황과 남북관계를 반영하는 정신이 깃들어있기 때문이다. 6.15선언은 그 정신에 ‘전쟁반대’, ‘전쟁종식’을 함의하고 있기에 그 가치가 더욱 돋보인다. 60년 전 이 땅에서 가공할 전쟁이 일어난 적이 있다는 이유 하나만으로도 6.15선언 정신이 갖는 가치는 절대적이라는 것이다. 아울러 그 가치는 선언의 두 주체인 당시 김대중 대통령과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육성에서도 새삼 확인된다.

2000년 당시 남북정상회담 성사 주역의 한 사람인 임동원 전 통일부장관에 따르면, 평양에서 6.15선언을 합의한 다음날 환송오찬에서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그동안 6월을 전쟁의 달로 기억해 왔는데 6.15선언이 발표된 이제부터는 6월을 민족화해의 달로 기억하자”는 요지의 말을 했다. 그날 김정일 국방위원장과 작별한 김대중 대통령은 성남 서울공항에 귀환해서 대국민 도착보고를 통해 첫 일성(一聲)으로 “앞으로 한반도에 전쟁은 없다”고 선언했다. 두 지도자의 이 같은 민족화해선언과 전쟁종식선언은 그간 갈라진 우리 민족이 얼마나 전쟁의 망령으로부터 시달려 왔는가를 웅변해 준다.

그런데 지금 남북관계는 어떠한가? 누구나 알다시피 지금 남북관계는 신냉전시대로 들어서고 있다. 이 차갑고 어두운 시대의 문을 연 것은 이명박 정부다. 이명박 정부 들어 2년 반 동안 남과 북은 대화다운 대화 한번 나누지 못하고 대결관계로 점철돼 왔다. 이유는 간단하다. 남측이 6.15선언 자체를 부정했기 때문이다. 민족화해의 정신이 들어있는 6.15선언을 부정하면 그 답은 대결일 수밖에 없음은 너무도 당연하다. 나아가 문제의 심각성은 대결의 시대에는 어떤 돌발사건이나 불상사가 일어날지 모른다는 데 있다. 실지로 이명박 정부 들어와 대청해전, 금강산 피격사건 그리고 천안함 사태 등이 터졌다.

남북 대결의 절정은 남측이 천안함 사건을 ‘북한의 소행’으로 단정하고부터다. 이어 남측 당국이 대북 심리전 재개를 선언하며 군사분계선(MDL) 일대에 대형 확성기를 설치한다고 하자 남북 간 긴장상태는 최고조에 달했다. 북한은 대북 확성기 설치를 ‘선전포고’로 규정했다. 지금 남아공월드컵에서는 남과 북의 대표단이 사상 최초로 동반 진출해 있지만 그에 관계없이 한반도는 전쟁을 우려해야 할 상황인 것이다. 그러기에 이번 6.2지방선거에서 정부 여당 측이 천안함 사태를 볼모로 북풍몰이를 하자 야당 등 시민사회 측에서 ‘전쟁이냐 평화냐’라는 구호를 들고 나온 것은 6.15선언의 정신을 부각시킨 것으로 정당한 것이 된다.

6.15선언 10돌을 맞이하는 지금, 6.15정신을 되살리는 일은 전쟁 국면으로부터 벗어나는 것이다. 천안함 사건 이전 남북관계가 단절된 상태에서는 남북이 금강산 관광 재개로 관계 복원에 나설 수 있었다. 그러나 천안함 사건 이후인 지금은 상황이 달라졌다. 남북 대결적 상태에서의 출구는 전쟁의 불씨를 제거하는 일이다. 지금 남북 간 전쟁의 불씨는 남측의 대북 심리전 재개다. 남측 당국은 대형 확성기를 철거하라! 오늘날 6.15정신을 되살리는 일은 전쟁의 불씨임이 확실한 확성기를 철거하는 것에서부터 시작된다. 6.15정신을 되살리고 6.15시대로 되돌아가자는 말은 결코 빈말이 될 수도 없고 또 되어서도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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