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연지기

사람들은 환경의 영향을 받고 살아간다. 주로 사람들이 만들어 놓은 문명이나 문화 같은 환경에 영향을 받지만 나무의 색이나 땅의 색조, 하늘의 색에도 영향을 받는다. 태양과 달, 지구의 자전과 공전에 의해 사계절이 생기고, 밀물과 썰물, 기온과 태풍, 장마는 인류의 문명과 문화에 엄청난 영향을 주고 있다.

처음 인류의 문명은 먹을 것이 풍부한 더운 지역에서 발생하였지만 지금은 인식의 수준이 높아지면서 약간 추운 지역의 나라들이 문명을 주도하고 있다. 다르게 말하면 먹고살기 편한 지역에서의 삶은 완결되었지만 먹고살기 힘든 지역에서는-홍수와 가뭄-삶의 질을 개선하기 위한 끊임없이 노력한 결과로 지금의 사회가 만들어졌을 수도 있다.

세부적으로는 지형이나 강과 산의 형세, 크기 따위는 알게 모르게 사람살이에 영향을 많이 준다고 한다. 산이 많은 경상도에서 이성적인 학문이 발전하고 넓은 평야가 펼쳐진 전라도에서 예술이 발전하는 것은 당연한 것일지도 모른다. 

우리나라는 삼면이 바다로 둘러 쌓여있는 반도국가이다. 위로는 대륙과 닿아있다. 우리의 역사를 중국대륙으로부터 새로운 문물과 문명을 받아들이고, 또 나름대로 소화하여 발전시키는 과정으로 이해하는 학자도 있다.

하지만 지금은 상황이 많이 달라졌다. 위로는 철책선이 가로막고, 밑으로는 바다가 막고 있다. 더 정확히는 북으로는 철책, 서쪽은 중국, 남쪽은 일본, 동쪽은 미국이 막고있는 실정이다. 우리가 내부에서 전라도와 경상도, 혹은 서울과 지방, 서울대와 지방대 따위로 나뉘어 서로 싸우는 이유를 바로 여기에서 찾는 사람도 있다. 동물실험에서도 좁은 공간에 많은 개체를 풀어놓으면 서로 물어뜯고 싸우면서 일정한 수가 될 때까지 죽인다는 이야기처럼 말이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매우 잔인하다. 근 100년의 역사는 동족을 서로 죽인 역사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사람들은 토론을 할 줄 모르고, 남의 말은 듣지 않는다. `내가 하면 로맨스고 남이 하면 불륜이다`라는 우스개처럼 자신에게 불리하면 무조건 우긴다. 논리와 상식은 사라진지 오래다. 나는 우리 사람들이 말로 타인의 자존심과 공격성을 가장 잘 부추긴다고 생각한다.

나는 사람들이 외국을 많이 나다닐 것을 권장한다. 그것이 관광이든 여행이든, 혹은 배움이든 일단은 많은 경험이 필요하다. 사실 일반사람들이 외국을 쉽게 나간지는 10년 밖에 되지 않는다. 해외여행에서 생기는 약간의 잡음은 적응하기 위한 과정일 뿐이다.

어쨌든 문화는 교류해야 한다. 생각도 고이면 썩는다. 가끔 명절이나 연휴에 해외여행을 간다고 언론에서 꾸짖는데 그것이 돈 문제라면 이의가 있다. 우리의 좁은 생각 때문에 내부에서 치러야하는 비용은 그야말로 상상을 초월한다. 긴 안목이 필요하다. 

학생들도 좁고 폐쇄된 공간에서 자라면 공격적이고 이기적이 된다. 넓은 트인 환경에서 자란 아이는 아무래도 관대하고 시야가 넓다.

북한과의 통일도 이런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다. 대륙으로 막혀있는 철책을 걷어내고 경의선이 복원된다는 것은 그야말로 대륙적인 기질과 호연지기를 기를 수 있는 좋은 기회이다. 프랑스 파리에서 택시운전을 했다는 분도 유럽과 중국, 북한과 한국을 연결하는 시베리아 횡단열차를 타고 귀국을 하고 싶다고 했다.

우리에게 통일은 단지 정치적 문제뿐만 아니라 환경을 좋게 만드는 일이고 삶의 질을 높이며 인격을 완성해 가는 과정이다.

대륙적인 기상

최창호/외금강 집선봉/조선화/120*66/2000

이번 작품은 북한화가 최창호가 그린 <외금강 집선봉>이란 조선화이다. 가로 크기가 세로에 비해 두 배 정도인 이 작품은 작년, 그러니까 2000년에 그려졌다.

북한의 풍경화 작품은 우리에게 많이 소개되었다. 특히 백두산이나 금강산, 묘향산 같은 산을 소재로 한 작품이 많다. 같은 소재를 그린 작품은 작가와 관계없이 엇비슷한 구도로 그려진 것도 많은데, 아마도 좋은 위치는 고정되어 있나보다.

이 작품은 금강산에서도 외금강에 있는 집선봉의 겨울 풍경을 그린 것이다. 웅장하고 날카롭게 솟아있는 봉우리 위로 구름이 요동치고 있다. 그 위를 독수리나 매처럼 보이는 새가 날고 있다. 새의 표현은 작품의 역동성이나 공간감을 표현하기 위한 장치로 보인다.

이 작품에서 표현한 집선봉은 대단히 웅장하고 힘이 있다. 시원시원하게 붓 처리된 눈, 하늘을 찌를 듯 날카롭게 표현된 바위산, 강한 명암의 대비를 사용한 눈과 봉우리의 조화, 역동성 있는 구름의 표현은 감상자로 하여금 심장을 고동치게 만든다. 한라산, 지리산, 오대산, 설악산을 표현한 그 어느 작품에도 이런 산의 역동성을 느끼지 못한다.

1960년 생의 중견작가, 공훈예술가인 최창호는 평양미대 시절부터 출중한 소묘력과 묘사력을 인정받았다고 한다. 최창호 작품의 특징은 밝음과 어둠의 강한 대비를 중심으로 힘있는 표현이라고 하는데 이 작품에 그의 필력이 그대로 살아있다.

나는 다른 어떤 그림보다도 이 작품에서 대륙적인 힘을 느낀다. 막막한 사막, 끝없이 펼쳐진 초원을 바라보면서 느껴지는 가벼운 존재의 고독을 좋아한다. 또한 눈보라가 휘몰아치고 엄청난 위용과 힘을 자랑하는 산을 보면서 그 산을 닮아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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