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호석 (통일학연구소 소장)

 

미국 국무장관이 방문한 극비군사시설

2005년 3월 21일 오후, UH-60 블랙 호크(Black Hawk)라고 부르는 미국군 전투헬기 한 대가 경기도 성남에 있는 서울공항에서 이륙하였다. 그 전투헬기를 탄 사람은 당시 미국 국무장관 콘돌리자 라이스(Condoleezza Rice)였다. 원래 그가 탄 전용기는 일본 도쿄를 떠나 서울공항에 그 날 오후 5시 35분께 도착하였는데, 그는 공항에서 간단한 환영행사를 마치자마자 전투헬기로 갈아타고 이륙했던 것이다.

미국 국무장관이 남측을 방문하는 경우, 공항에서 영접을 받은 뒤에 남측 정부가 제공하는 의전차량을 타고 숙소로 가서 여장을 풀고 공식일정을 시작하는 것이 관례인데, 라이스 당시 국무장관은 그러한 외교관례를 무시하고 전투헬기에 올랐다. 국방장관이나 합참의장 같은 군부인사가 아닌 국무장관이 외국방문 중에 의전차량이 아니라 전투헬기를 타고 이동한 것도 외교관례를 벗어난 일이었다. 미국 정부 고위관리들은 다른 나라를 방문할 때는 외교관례를 따르는 편이지만, 남측을 방문할 때는 직급이 높을수록 외교관례 따위는 생각하지도 않고 제멋대로 행동하는 경우가 흔하다. 이것만 봐도, 한미관계의 현주소가 어떠한지 금방 알 수 있다.

그 날 오후 6시 10분께, 라이스 당시 국무장관이 탄 전투헬기가 주한미국군 전구지휘소(Theater Command Post) 헬기장에 내려앉았다. 서울공항과 전구지휘소는 모두 성남에 있어서 거리가 가깝고, 따라서 얼마든지 의전차량을 타고 갈 수도 있는데, 라이스 당시 국무장관은 일부러 전투헬기를 타고 갔다.

2005년 1월 18일 부쉬 정부 2기가 출범하면서 라이스는 국무장관에 지명되었는데, 국무장관 지명을 받자마자 한 일은 북측을 ‘폭정의 전초기지’라고 비난하는 것이었다. 비난행위에 대응하여 북측은 2005년 2월 10일 핵무기 보유 및 증산을 공식선언함으로써 백악관 국가안보회의를 강하게 압박하였다.

그러한 대결 분위기 속에서 국무장관에 취임한 라이스는 서울공항에 도착하자마자 외교관례를 무시한 채 전투헬기로 갈아타고 청계산에 있는 주한미국군 전구지휘소로 직행하였던 것이다. 미국군은 당시 ‘작전계획 8044(OPLAN 8044)’에 따라 북침전쟁연습을 벌이는 중이었는데, 라이스 당시 국무장관은 북침전쟁연습을 총지휘하는 현장에 모습을 드러냄으로써 제 딴에는 북측에 위협적인 행동을 취하려고 타산하였던 것으로 보인다.

그가 주한미국군 고위지휘관들의 영접을 받으며 들어간 주한미국군 전구지휘소의 이름은 ‘탱고(TANGO)’다. 주한미국군이 말하는 전구(戰區)란 자기들이 군사작전을 벌이는 한반도를 뜻하는데, 미국군 지휘부는 태평양을 전구(theater)로 분류해놓고 있는 것처럼 한반도도 자기들의 전구로 분류해 놓았다. 미국군 지휘부는 남측과 일본에 각각 군대를 주둔시키고 있지만, 한반도를 전구로 분류해놓은 반면에 일본열도는 전구로 분류해 놓지 않았다. 그들은 일본열도를 자기들의 작전지역으로 규정하지 않고 한반도만 자기들의 작전지역으로 규정해놓은 것이다. 이것이 한미관계의 현주소다.

또한 ‘탱고’라는 말은 전술공중해상지상작전센터(Tactical Air Naval Ground Operations Center)의 머리글자를 따서 만든 말이다. 원래 ‘탱고’는 미국이 6.25 전쟁 직후 핵공격에도 견딜 수 있게 청계산 화강암층을 깊이 파서 만든, 당시로서는 극비군사시설이었다. 지상면적이 972,000㎡나 되고, 지하면적이 790,000㎡나 되는 이 초대형 전구지휘소는 그 안에서 전기축전지로 구동하는 소형차량을 타고 이동한다. 지휘소 안에는 수도시설, 발전시설, 공기정화시설, 야전병원, 연료창고, 부식창고, 통신시설, 정보시설, 취침시설, 한꺼번에 2,000명이 들어가는 식당 등이 있어서 두 달 이상 외부에 나가지 않고 생활할 수 있다고 한다. ‘탱고’에서 24시간 가동되는 ‘안보협력정보통로(Security Cooperation Information Portal, SCIP)’는 북측을 감시하는 정찰위성과 고공정찰기에서 보내오는 정보를 실시간으로 파악하고, 워싱턴의 합동참모본부, 국방정보국, 중앙정보국과 직통하는 첨단 군사정보통신망이다.

<뉴욕 타임스> 2005년 3월 20일부 보도에 따르면, 전쟁상황실(war room)에 들어간 라이스 당시 국무장관은 100명이 넘는 미국군 병사들 앞에서 “자유의 전선에서 일하는 여러분들에게 감사의 뜻을 표하기 위해 여기에 오고 싶었습니다. 근접한 위협에 맞서고 있는 여러분의 모습을 보았습니다”고 말했다고 한다.

그로부터 3년이 지난 2008년 8월 21일 이명박 대통령도 ‘탱고’를 방문하였다. 제1차 ‘을지 프리덤 가디언(Ulchi Freedom Guardian)’이 진행 중인 민감한 때에 남측 대통령이 북침전쟁연습을 총지휘하는 현장에 모습을 드러낸 것이다. 이명박 대통령은 남측 역대 대통령 가운데 처음으로 ‘탱고’를 방문하였다.

‘탱고’의 존재이유 상실과 미국군의 전력구조개편

주한미국군사령부가 2005년 3월에 미국 국무장관을 ‘탱고’로 초청하고, 2008년 8월에 남측 대통령을 초청한 것은, 지난 시기 존재 자체를 비밀에 묻어두었던 극비군사시설을 언론에 공개한 행동이다. 왜 50년 동안 존재 자체를 감추었던 전구지휘소를 언론에 공개하였을까? 그 까닭은, 미국군의 한반도 전쟁계획이 바뀌어서 ‘탱고’가 더 이상 필요하지 않게 되었기 때문이다. ‘탱고’가 자기의 존재이유를 잃어버리게 된 사연을 살펴보면 아래와 같다.

미국군 수뇌부는 2004년 가을에 기존 작전계획을 수정, 보충하기 시작하여, 2008년 2월 1일부터는 새로운 전쟁계획인 작전계획 8010-08의 효력을 발생시켰다. ‘탱고’는 이전에 미국군이 작전계획 8044에 의거하여 한반도 전쟁을 수행할 때 필요하였던 전구지휘소이므로, 작전계획 8010-08이 나온 2008년 2월 이후 ‘탱고’의 전략적 가치는 사실상 사라졌던 것이다.

새로운 전쟁계획인 작전계획 8010-08에 대해서는, 2010년 5월 10일 <통일뉴스>에 발표한 나의 글 ‘미국의 핵감축과 작전계획 8010-08’에서 자세히 논한 바 있으므로 재론하지 않는다. 다만 미국 전략사령부 주도로 창설된 ‘지구적 타격과 통합을 위한 합동기능 구성사령부(Joint Functional Component Command for Global Strike and Integration)’라는 매우 긴 이름을 가진 새로운 사령부가 작전계획 8010-08의 핵심부분인 즉속 지구적 타격(Prompt Global Strike)을 지휘하게 되었다는 점을 상기할 필요가 있다. 미국 네브라스카주 오마하에 있는 ‘지구적 타격과 통합을 위한 합동기능 구성사령부’가 작전계획 8010-08에 따라 한반도 전쟁을 지휘하게 되므로, 성남 청계산에 있는 ‘탱고’는 존재이유를 잃어버리게 된 것이다.

이처럼 ‘탱고’가 자기의 존재이유를 잃어버리게 된 군사상황 변화는 어느 날 갑자기 일어난 것이 아니라 약 20년에 걸쳐 점진적으로 일어난 것이다. 그러한 군사상황 변화는 1987년 5월 미국 국방부가 주한미국군사령부를 지구적 지휘통제체계(Global Command Control System)에 연결시키기로 결정한 것에서 시작되었다. 그 결정에 따라 주한미국군사령부는 1996년에 지구적 지휘통제체계에 직접 연결되었고, 그 연결된 단위를 ‘지구적 지휘통제체계-한국(GCCS-Korea)’이라고 부르게 되었다. 지구적 지휘통제체계에 연결되기 이전에, 대규모 지상군을 한반도 전쟁에 시차별로 투입하는 일차원적인 지휘통제만 할 수 있었던 주한미국군사령부는 1996년부터 지상군, 해군, 공군의 지휘-통제-통신-컴퓨터-정보체계를 통합하여 실시간으로 정보를 수집, 처리, 생성, 전시, 배포하는 삼차원적인 정보관리체계를 가동하기 시작하였다. 이 정보관리체계를 통하여 한미연합군과 인민군이 한반도의 지상, 해상, 공중에서 각각 기동하는 위치를 알려주는 작전상황도가 전구지휘소 벽에 걸린 대형화면에 실시간으로 전시되고, 한미연합군과 인민군의 현황정보, 첩보, 타격표적 등이 실시간으로 전달된다. 또한 미국군은 2003년 봄에 태평양사령부, 중부사령부, 남부사령부, 유럽사령부를 연결하는 세계연합정보교환체계(CENTRIXS)를 세워놓았는데, 그 체계에 ‘지구적 지휘통제체계-한국’이 연결되었다. 이로써 주한미국군사령부는 세계적 범위에서 전개되는 미국군의 작전상황 속에서 한반도 작전상황을 바라볼 수 있는 정보관리체계를 가동하기 시작하였다.

이러한 군사정보관리체계의 변화는, 주한미국군이 한국군 작전통제권을 한국군에게 반환하고 한미연합사령부를 해체하도록 이끌어 갔으며, 한국전투사령부(KORCOM)를 창설하게 만들었다. 한 마디로 말해서, 미국군의 전력구조가 개편되고 있는 것이다. 이 개편과정에서 가장 심각한 문제는, 군사정보관리체계를 크게 변화시킨 2003년에 미국 전략사령부(STRATCOM)가 작성한 ‘핵전쟁계획서’에 핵공격 대상국가들과 그 국가에 있는 타격목표시설들이 명시되었다는 점이다. ‘핵전쟁계획서’가 일차적으로 노리는 핵공격 대상국가가 북측이라는 사실에 대해서는 길게 설명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

그 무렵 한국군은 미국군의 전력구조 개편을 추종하는 수밖에 없었다. 2005년 한국 국방부가 ‘국방개혁 2020’을 발표한 것은, 미국군의 전력구조 개편이 한국군에게 개편을 요구하였음을 말해주는 것이다. ‘국방개혁 2020’에 따르면, 한국군의 전력구조 개편은 세 단계로 추진된다. 1단계는 2010년까지 합동참모본부를 개편하는 것이고, 2단계는 2015년까지 기동력과 타격력을 보강하고 작전사령부를 개편하는 것이고, 3단계는 2020년까지 한국군 하부구조를 개편하는 것이다. ‘국방개혁 2020’ 추진과정에서 합동참모본부를 전구사령부로 개편하고, 1군사령부와 3군사령부를 통합하여 지상작전사령부를 창설하고, 2군사령부를 후방작전사령부로 개편하고, 군단을 10개에서 6개로 줄이고, 병력도 681,000명에서 500,000명으로 줄인다는 것이다.

그런데 주목하는 것은, 한국군 합동참모본부 의장에게 작전통제권이 없다는 사실이다. 그는 합동참모회의를 주재하는 의장(chairman)일 뿐이지 한국군을 지휘하는 사령관(commander)이 아니다. 한국군 작전통제권은 주한미국군사령관이 한미연합사령관이라는 직책을 통해 장악하고 있다. 따라서 한국군은 합동사령부를 갖지 못한 군대다. 작전통제권을 행사하는 합동사령부를 갖지 못한 변태적 군대는 한국군이 전 세계에서 유일하다.

그렇다면 주한미국군이 한미연합사령부를 해체하는 경우, 한국군은 변태성에서 벗어나 합동사령부를 창설할 수 있을까?

논리적으로 따져보면, 한미연합사령부가 해체되는 과정에서 주한미국군이 한국전투사령부를 창설할 것이므로, 그에 상응해서 한국군도 당연히 합동사령부를 창설해야 할 것이다. 그런데 놀랍게도, ‘국방개혁 2020’은 합동사령부 창설문제에 대해 한 마디도 언급하지 않고 있다. 이것은 한미연합사령부가 해체되어도 한국군이 합동사령부를 갖지 못하게 될 것임을 예고한다. 다시 말해서, 한국군 작전통제권은 형식적인 반환행사를 치룬 뒤에도 여전히 주한미국군사령관이 실질적으로 장악하게 될 것이고, 한국군은 한국군 합동참모본부의 지휘를 받는 것이 아니라 미국군 한국전투사령부의 지휘를 받게 될 것임을 예고하는 것이다.

지금 한국군의 전력구조 개편은 한국군의 요구에 따라 진행되는 것이 아니라 미국군의 요구에 따라 진행되기 때문에, 한국군이 합동사령부를 창설하여 작전통제권을 실질적으로 행사하는 가장 중요한 개편문제는 배제되고 있는 것이다. 한국군 개편과정에서 바뀌는 것과 바뀌지 않는 것을 가려볼 필요가 있다.

‘탱고’ 팔고 ‘오스카’로 가려나?

<코리아타임스> 2010년 3월 21일부 보도에 따르면, 2010년 3월 8일부터 시작된 키 리졸브(Key Resolve) 북침전쟁연습 기간에 월터 샤프(Walter L. Sharp) 주한미국군사령관이 한국군 당국자들에게 ‘탱고’를 사라고 제의하였다고 한다. 소식통이 <코리아타임스> 기자에게 말한 바에 따르면, “지난 2007년 한미 간 전작권 합의가 이루어진 후 주한미군은 지속적으로 한국이 탱고 벙커를 유상인수하거나 사용료를 지불할 것을 요구”해왔다는 것이다.

‘탱고’를 한국군에게 팔아넘기려는 주한미국군사령관의 행동은, 용산기지를 평택기지로 옮긴 뒤에 ‘탱고’가 자기들에게 더 이상 필요하지 않게 되므로 한국군에게 팔아넘기려는 것이다. 50억 달러를 들여 건설한 첨단군사시설을 내버리기에는 너무 아깝다는 생각에서, 주한미국군사령관은 그 시설을 한국군에게 팔아넘기려는 것이다.

주한미국군사령관은 2007년부터 틈만 나면 ‘탱고’를 사가라고 한국군 지휘부에 제의해 오고 있지만, 한국군이 그 지휘소를 사거나 사용료를 주고 빌려쓸 필요는 전혀 없다. 왜냐하면 한국군은 전쟁지휘소를 두 개나 운영하고 있기 때문이다. B-1은 서울 관악산에 있는 전쟁지휘소이고, B-2는 국방부 청사 지하에 있는 전쟁지휘소다. 전쟁지휘소 두 개를 운영하는 한국군이 무엇 때문에 막대한 비용을 들여 전쟁지휘소를 하나 더 사려고 하겠는가. <코리아타임스> 2010년 3월 21일부 보도에 따르면, “한국 측은 서울지역에 있는 B-1 벙커를 전쟁수행지휘부로 사용할 수 있음을 강조하며” 주한미국군사령관의 ‘탱고’ 판매제의에 “부정적인 반응을 보여왔다”고 한다.

더욱이 한국군 지휘부는 위에서 지적한 것처럼 한미연합사령부가 해체된 뒤에도 여전히 작전통제권을 행사하지 못하게 될 것인데, 주한미국군사령관의 강매를 이기지 못해 하는 수 없이 ‘탱고’를 비싼 값을 주고 산들 그것을 무엇에 쓸 것인가. 주한미국군사령관은 ‘탱고’를 처분해야 하는데, 한국군 지휘부가 외면하고 있으니 골치를 썩고 있다. 이제 그에게는 강매 이외에 다른 선택의 여지가 없는 것으로 보인다.

주한미국군이 운영하는 전구지휘소는 ‘탱고’ 이외에도 ‘CC 서울’과 ‘오스카’가 있다. ‘CC 서울’은 용산기지에 있는 전구지휘소인데, 2012년 이후에 한미연합사령부를 해체하면, 용산기지를 평택기지로 옮겨야 하므로 ‘CC 서울’도 폐쇄될 것이다.

‘탱고’를 한국군에게 팔아넘기고 ‘CC 서울’을 폐쇄하면, 마지막으로 남는 전구지휘소는 ‘오스카(OSCAR)’다. 오스카라는 말은, 작전지원센터 및 후방지휘소(Operations Support Center and Rear Command Post)의 첫 글자를 따서 만든 말이다. ‘탱고’는 전술공중해상지상작전센터라는 이름에서 알 수 있듯이 지상군-해군-공군 작전을 전술적 차원에서 지휘통제하는 3군작전 지휘통제시설인데, 그에 비해 ‘오스카’는 작전지원센터 및 후방지휘소라는 이름에서 알 수 있듯이 3군 작전을 후방에서 지원해주는 작전지원시설이다. 따라서 ‘오스카’가 ‘탱고’나 ‘CC 서울’의 작전지휘통제기능을 대신하지는 못한다.

그래서 주한미국군은 현재 건설 중인 평택기지에 한국전투사령부의 새로운 전구지휘소를 건설하는 중이다. <경향신문> 2008년 11월 1일부 보도에 따르면, 주한미국군사령부는 2008년 미국 국방부에 제출한 ‘건설소요 제기문건(DD 1391)’에서 환경 및 대테러 기준을 변경하면서, 한국전투사령부 전구지휘소 건설에 핵 및 화생방 방호시설을 추가하였다고 한다. 평택기지에 들어설 한국전투사령부 전구지휘소는 지하 3층으로 건설되며 외부와 격리된 상태에서 미국군 1,000여 명이 한 달 이상 생활할 수 있도록 설계되었다고 한다.

평택기지 건설과정에서 주한미국군이 이처럼 설계를 마음대로 변경함으로써 한국군은 특수시설 공사비 20%를 더 떠안게 되었다. 주한미국군이 용산기지 이전협상에서 합의한 용산기지 건설기술합의서(EMOU)를 일방적으로 변경하고 공사비를 떠넘겨도, 한국군은 항변 한 마디 하지 못하고 막대한 건설비만 대주어야 하는 것이 한미관계의 현주소다.

평택기지에는 주한미국군이 가족과 함께 생활하는 주거시설이 들어설 것이다. 현재 주한미국군 37,500명 가운데 3분의 2가 기혼자들인데, 기혼자가 자기 가족과 함께 생활할 수 있는 주거시설은 10분의 1밖에 되지 않는다. 주한미국군 주거시설을 증설하는 것이 그들에게 시급한 과제로 되었다. 그래서 월터 샤프 주한미국군사령관은 2010년 4월 12일 한국국방연구원과 미국 육군분석연구소가 서울에서 공동주최한 제15차 한미 국방분석세미나에 참석해 기조연설을 하면서, “현재 110개의 군사기지 및 시설을 48개로 간소화할 것”이라는 점과 “2010년 여름까지 5,000명의 주한미국군 가족들이 한국에 와서 생활하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런데 평택기지가 완공되면 주한미국군 주거시설과 함께 한국전투사령부 전구지휘소가 들어서게 될 것이다. 대규모 병력과 지휘부가 평택기지 한 군데로 몰리는 형국이다. 중요한 것은, 미국군 지휘부가 주한미국군 제2사단 병력을 평택기지로 집결시키는 과정에서 해외차출 형식으로 병력을 감축할 것이라는 점이다. 김태영 국방장관은 2010년 2월 9일 한국국방연구원 주최 토론회 기조연설에서 주한미국군 해외차출문제를 미국과 논의하는 중이라고 밝혔고, 남측 정부 소식통이 한 말을 인용한 <연합뉴스> 2010년 2월 21일부 보도에서도 2010년 10월 워싱턴에서 한미안보협의회(SCM)를 열기 전까지 주한미국군 병력을 해외차출 형식으로 감축하는 문제를 합의한다는 목표로 양측이 협의하는 중이라는 사실이 알려진 바 있다.

군사작전 측면에서 이러한 평택기지 건설계획을 바라보면, 만일 평택기지가 인민군의 집중공격을 받고 파괴당하는 경우 미국은 한반도 전쟁에서 패할 수밖에 없다는 계산이 나온다. 미국군으로서는 매우 위험한 전쟁시나리오를 스스로 작성하고 있는 듯이 보인다. 그러나 만일 한국전투사령부가 인민군의 집중공격으로 궤멸된다 해도, 한반도 전쟁을 계속 수행할 수 있는 다른 선택권을 갖지 못한다면, 평택기지에 모든 병력과 지휘부를 몰아넣는 어리석은 짓은 하지 않을 것이다. 미국군 지휘부가 생각하는 다른 선택권이란 즉속 지구적 타격으로 한반도 전쟁을 수행하려는 것이다.

즉속 지구적 타격에 대해서는 2010년 5월 10일 <통일뉴스>에 발표한 나의 글 ‘미국의 핵감축과 작전계획 8010-08’에서 자세히 논한 바 있으므로 재론하지 않는다. 다만 즉속 지구적 타격이 지상군이 아니라 해군과 공군에 의해서 수행되는 작전이라는 점을 상기할 필요가 있다. 2010년 2월 4일 미국 연방하원 군사위원회 청문회에서 제기된, 인민군이 선제기습타격을 개시하는 전쟁시나리오에 대해 미국군이 어떻게 대처할 것인가 하는 질문을 받고, 미셸 플러노이(Michele Flournoy) 국방부 정책담당 차관은 “이 곳에서 기밀사항을 자세하게 얘기할 수 없으나, 그런 종류의 사태에서 미국은 해군과 공군에 집중해 지원하게 될 것”이라고 답변하였다. 이 답변은, 한반도에서 전쟁이 일어나는 경우 미국은 한국군이 그토록 기다리는 증원군을 파병하지 않을 것임을 암시한 것이며, 증원군 파병계획 대신에 북측에 대한 핵공격계획을 가지고 있음을 암시한 것이다.

이제 한반도 군사상황은 미국군의 즉속 지구적 타격 계획과 그에 대응하는 인민군의 선제기습타격 계획이 정면으로 맞선 양상으로 전개되기 시작하였다. 그런 가운데, 천안함 사건을 대북압박수단으로 이용할 수 있다고 본 백악관 국가안보회의의 오판은, 인민군과 미국군의 대결태세에 군사적 긴장을 더욱 가중시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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