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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수의 의미 가진 '국수'<김양희 기자의 민족음식이야기 206>
김양희 기자  |  tongil@tongil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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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0.05.20  19:51: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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싱글들에겐 잔인한 계절인 5월이 왔습니다. 계절의 여왕인 5월은 주말마다 결혼식이 넘쳐납니다. 결혼식 음식들이 물릴 정도로 결혼식장을 찾게 되는데요, 이제는 결혼식에서 갈비탕이나 뷔페 음식을 대접하곤 하지만 예로부터 결혼식을 비롯, 각종 잔치상에는 국수를 대접하곤 했습니다. 우리 흔히 ‘언제 결혼 할 거냐’를 물을 때 ‘국수 언제 먹여줄 거냐’고 묻곤 하는데 이는 신랑 신부의 결연이 오래도록 이어지기를 기원하는 뜻에서입니다. 국수는 음식가운데 길이가 가장 길기 때문에 생일, 회갑연 등에는 오래 살기를 기원하는 장수의 의미로 먹곤 했습니다.

고려 때 문신 이규보의 ‘동국이상국전집 제6권’에 보면 “(전략) 너의 탕병의 손님이 되었다(作爾湯餠客)”는 싯귀가 있는데 탕병은 밀가루로 만든 국수를 말하는 것으로 고려 때 이미 잔칫날 국수를 먹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러나 송나라 사신인 서긍이 지은 고려도경에 “고려에는 밀이 적어 화북에서 들여와 밀가루 값이 매우 비싸서 성례(成禮) 때가 아니면 먹지 못한다. 10여 가지 식미(食味) 중에 면식(麵食)을 으뜸으로 삼는다”는 이야기가 나옵니다. 이는 국수류가 인기가 있는 음식이기는 하지만 값이 비싸 평상시에 일상식으로는 먹기 어려워 혼인이나 생일, 회갑연 등 잔치 때의 손님 접대음식으로 대접을 했다는 것으로 추정할 수 있습니다.

국수에 대한 기록은 통일신라시대까지 찾아볼 수 없고 고려사에는 “제례(祭禮)에는 면(麵)을 쓰는데 사원에서 만들어 판다”고 했습니다.

조선시대에 국수에 대한 기록이 처음으로 문헌에 등장하는 것은 ‘세종실록’인데요, 수륙재 때 공양음식으로 정면(淨麵)을 올리는 내용이 있습니다. 국수 조리법에 대한 기록이 처음으로 나타나는 것은 음식디미방인데 여기에는 다양한 국수가 소개되고 있습니다. 메밀가루로 만든 면, 녹말로 만든 사면(絲麵), 밀가루로 만든 난면(卵麵)이 그것인데 조선시대에는 국수의 재료로 메밀가루․ 녹말․ 밀가루가 사용되고 있었습니다. 메밀국수․녹말국수․밀국수 중에서 가장 귀한 것은 밀국수였으며 왕에서 서민에 이르기까지 가장 보편적인 것은 메밀국수였습니다. 우리나라는 지형적으로 밀농사가 잘 되지 않아서 주식 곡물은 되지 못했고 국수 외에 가루붙이 음식도 메밀이나 녹말가루를 이용한 것이 훨씬 많습니다.

국수의 유래는 먼 고대로 올라가 중앙아시아를 중심으로 동쪽인 한국 중국 일본에서는 국수로, 서쪽인 유럽은 빵으로 전파되었다는 설이 유력합니다.

우리나라에서는 일반적으로 면보다는 국수라는 표현을 쓰는데, ‘바로 뽑아낸 면을 물에 담갔다가 손으로 건진다’해 국수라고 하기도 하고 ‘밀가루인 면을 국물에 담궈서 먹는다’고 국수라 부른다는 말도 있습니다.

국수는 고려시대에 중국과 교역하면서 우리나라에 들어왔다고 하는데요, 중국에서는 ‘국수를 늘인다’고 하는 반면 우리나라에서는 ‘국수를 빼거나 뽑는다’고 합니다.

이는 만드는 과정이 달랐기 때문으로 중국에서는 주로 반죽을 해서 잡아 늘이는 납면법으로 국수가락을 빼며, 우리나라에서는 눌러하는 착면법으로 바가지에 구멍을 송송 뚫고 뜨겁게 반죽한 밀가루나 메밀가루를 그 구멍으로 빼거나 뽑아서 찬물에 받아 굳혔습니다.

고려시대에는 잔치에서나 볼 수 있었던 국수가 조선시대 이후의 문헌에 등장한 한국의 전통적인 국수 요리에는 온면(국수장국)·냉면·비빔국수·칼국수·콩국수 등 약 60여종에 이를 정도로 발달을 합니다.

이런 국수는 지역적으로도 기후나 토양에 따라 잘 자라는 농작물과 만나면서 특색 있는 음식문화를 만듭니다. 추운 북쪽지방에선 이냉치냉(以冷治冷)으로 냉면을, 더운 남쪽지방에서는 이열치열(以熱治熱)로 밀가루로 만든 온면과 국수장국을 발전시켜 추운 북쪽지역에는 메밀이나 감자전분으로 만든 냉면이, 따뜻한 남쪽지역에는 밀가루로 만든 온면이나 국수장국 등이 많습니다.

북녘의 국수류의 대표 격인 평양냉면뿐 아니라 막국수를 먹을 때 면이 콧등을 친다고 해서 이름 붙여진 정선의 콧등치기국수나 함경도의 감자국수가 유명합니다.

산과 계곡이 많아 민물고기가 흔한 경상북도 옥천에는 생선국수를 해먹고 산간지역에서는 칡뿌리를 가루로 내 칡국수나 칡냉면을 만들어 먹었으며 제주도에는 돼지고기로 국물을 내 돼지고기 고명을 얹은 고기국수도 있습니다.

대북지원 사업으로 여러 단체들이 북녘에 국수공장 등을 건립하고 원료 지원을 했으나 최근 남북관계 경색으로 인해 이들 공장들이 순차적으로 가동을 중단하고 있다고 합니다.

예전에 평양에 갔을 때 한 북녘 인사의 말이 떠오릅니다.

“당신들은 먹을 것을 가지고 협상을 하냐”고, “먹을 것을 준다, 안준다 하는 것은 사람 목숨을 담보로 하는 가장 치사한 일이다”고.

천안함 사태로 인해 인도적인 지원 등도 중단될 위기에 처해있는데요, 어찌되었건 간에 남의 목숨가지고 협상을 하는 그런 치사한 일은 없었으면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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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체기사의견(2)
옥천 () 2010-05-21 00:37:38
충청북도 옥천이 언제 경북으로 편입되었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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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nseksrmrqhr () 2010-05-21 16:45:32
남의 목숨가지고 협상하는 치사한 일은 없었으면 합니다...........20세기에도 협상의 전략적 개발은 못하고 원시시대에 쓰던 먹는 것 가지고 좌지우지 하려 하다니 지식이 발전을 하니 마음은 퇴보를 하나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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