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영재 (평화와통일을여는사람들 미군문제팀장)


천여 년 전 궁예가 썼던 관심법(觀心法)이 이명박 정부에서 부활하나보다.

이명박 정부가 천안함 침몰사건에 대하여 어뢰에 의한 공격으로 단정하고 공격의 주체는 ‘북한 일 수 밖에 없다’는 결과를 발표할 모양이다.

이명박 정부가 천안함 침몰사건의 원인을 북한의 어뢰 공격으로 규정하려면 이를 입증하는 객관적이고 과학적인 증거가 있어야 할 것이다. 그러나 현재까지 보도된 바에 따르면 군은 천안함 선체와 해저에서 발견되었다는 극소량의 화약성분(RDX, TNT 등)과 금속 파편 등을 ‘증거’로 내세울 듯하다. 이들의 증거능력에 대해서는 군 주변에서도 신중하고 회의적인 시각이 많았다.

이와 관련하여 천안함 조사 결과 발표를 앞둔 14일, 리처드 하스 미국 외교협회(CFR) 회장은 이명박 정부에 의미심장한 충고를 했다. 그는 “대응의 성격은 발견된 증거에 비례해야 한다”면서 “한국 정부가 스스로 방어해야 하는 상황, 한국 정부가 근거 없는 주장을 했다는 것에 대해 스스로 변호해야 하는 상황은 방지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명박 정부가 이런 상황을 당하지 않으려면 최소한 아래와 같은 사항들이 우선 입증되어야 할 것이다.

첫째, 군이 확보했다는 ‘증거’가 어뢰 성분이라는 것을 입증해야 한다.

군이 확보했다는 화약성분과 금속파편이 정확히 어뢰 성분인지 우선 확인되어야 한다. 만약 확보된 ‘증거’가 어뢰뿐만 아니라 다른 곳에도 쓰이는 것이라면 어뢰라는 단정은 신뢰성을 얻기 어려울 것이다.

둘째, 군이 확보했다는 ‘증거’가 한국군이나 미군이 훈련하고 남은 흔적이 아님을 입증해야 한다.

천안함 침몰 해역이 해병대의 포사격 훈련구역이라는 사실이 보도를 통해 드러났다. 해군 관계자에 따르면 “(이 구역에) 여러 종류의 포사격을 했고, 한국산뿐 아니라 미국산도 있다”고 한다. 사고해역이 사격훈련구역이라는 지적이 나오자 국방부는 “침몰 해역이 해안 2km 거리인 반면, 포사격은 10~20km 원거리를 설정해 이뤄진다”고 해명했다. 그러나 국립해양조사원의 항행경보상황판 중 사격훈련구역도를 보면 군이 발표한 사고해역이 정확히 사격훈련구역에 포함된다.

▲검은별이 사고발생지점(인접한 흰점과 183m 거리), 흰점이 천안함 발견 위치로, 왼쪽이 함미 발견 위치(백령도 해안에서 2.4km 거리), 오른쪽이 함수 발견 위치(백령도 해안에서 1.4km 거리). 이 그래픽은 국립해양조사원(www.khoa.go.kr) 항행경보구역 상황경보판 중 사격훈련구역도에 천안함 발견 위치를 표시한 것이다. [그래픽 - 국립해양조사원]

그렇다면 사고해역이 비록 주된 탄착지점은 아니라 할지라도 오발 등에 의해서라도 포탄이 떨어질 수 있는 구역이라는 것은 분명하다고 할 것이다. 그렇지 않다면 사격훈련구역으로 지정될 이유가 없다. 또한 주된 탄착지점이 아니라도 조류의 흐름에 따라 화약이나 파편 등이 얼마든지 사고해역으로 흘러들어올 수 있고 선체에도 달라붙을 수 있는 것이다. 따라서 천안함 선체와 해저에서 발견되었다는 화약성분과 금속파편이 한국군과 미군이 훈련 때 쓰던 것이 아니라는 것을 군은 입증해야 한다. 여기에는 천안함 자체의 포사격 훈련 흔적이 아니라는 것을 입증하는 것도 포함된다.

셋째, 군이 확보했다는 ‘증거’가 북한군이 연습용으로 쓰던 것이 아니라는 것을 입증해야 한다.

한반도의 남북을 휴전선이 가로 막고 있지만 공중을 나는 새는 남북을 자유로이 넘나든다. 이와 마찬가지로 바다의 조류와 물고기들에게 북방한계선(NLL)이란 없다. 그렇다면 남과 북에서 사격연습을 한 흔적들도 NLL을 넘나들 수 있는 것이다. 조류에 휩쓸린 북한의 훈련용 경어뢰가 서해와 남해가 만나는 지점에서 수거된 것은 이를 입증한다. 이에 따르면 북한이 포사격을 하면서 바다에 남긴 화약성분과 금속 파편이 얼마든지 사고해역으로 흘러들 수 있는 것이다. 따라서 군은 천안함에서 확보했다는 화약성분과 금속파편이 북한이 훈련하다 남긴 흔적이 아니라는 점을 입증해야 한다.

넷째, 군이 확보했다는 ‘증거’가 한국전쟁 때 한국군이나 미군, 북한군이 쓰던 것이 아니라는 것을 입증해야 한다.

인터넷 뉴스 <민중의 소리>에 따르면 1989년 노르웨이 항공기가 덴마크 앞 바다에 추락하자 언론들은 이 사건을 폭탄 테러로 몰아갔다. 이런 의혹은 사고기 잔해에서 미량의 군용 고폭약 성분이 발견되면서 정점에 달했다. 그렇지 않아도 폭탄 테러설을 연일 보도하던 노르웨이 언론들은 “드디어 진실이 밝혀졌다”며 호들갑을 떨었다. 그러나 과학적인 조사 결과 밝혀진 진실은 항공사의 경영악화에 따른 불량부품 사용에 있었던 것으로 밝혀졌다. 그리고 발견된 화약성분은 놀랍게도 17~18세기 해전에 쓰였던 것임이 밝혀졌다.

이 사고는 이번 천안함 사건에도 주는 교훈이 여러가지이지만 내가 주목하는 것은 천안함 선체와 해저에서 발견되었다는 화약성분이나 금속파편도 한국전쟁 때 한국군이나 미군 또는 북한군이 사용하던 것이었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는 점이다. 따라서 군은 천안함에서 발견했다는 화약성분과 금속파편이 한국전쟁 때 쓰던 것이 아니라는 것을 과학적으로 입증해야 한다.

다섯째, 군이 확보했다는 ‘증거’가 실제로 천안함 선체와 그에 접한 해저에서 발견한 것이라는 것을 입증해야 한다.

군은 사고 직후부터 기본적인 자료인 사건발생 시간과 장소에 대해 여러 차례 말을 바꿨고, 사건의 원인을 밝힐 핵심적인 자료인 한국전술자료체계(KNTDS) 레이더 영상과 열상관측장비(TOD) 동영상과 교신기록을 한사코 공개하지 않고 있다. 심지어는 선체에 대한 증거 인멸 의혹까지 제기되고 있는 실정이다. 이 때문에 군의 조사에 대해 국민 다수는 믿지 않고 있다. 지금은 군이 국민과 국제사회에 “우리가 발표하는 것을 의심하지 말고 그대로 믿으라”고 강요할 상황이 아니다. 이런 결과는 이 사건을 투명하고 객관적으로 조사하지 않은 군이 자초한 것이다.

따라서 군은 확보했다는 증거가 다른 엉뚱한 곳에서 확보한 것이 아니라 정말로 천안함 선체와 그에 접한 해저에서 발견한 것이라는 것을 국민과 국제사회가 믿을 수 있게 객관적이고 과학적으로 입증해야 한다.

물론 이런 사실들이 입증되었다고 해도 북한의 어뢰공격이 확증되는 것은 아니다. 더 많은 증거와 정황들이 부합하고 반론들을 과학적이고 논리적으로 극복해야 북한의 어뢰 공격을 특정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최소한 군은 위에서 제시한 사항들에 대해서 모두 입증해야만 북한의 어뢰공격이라는 주장을 해 볼 수 있을 것이다.

만약 이런 사항들에 대해 입증할 수 없는 상태에서 군과 이명박 정부가 무리하게 ‘어뢰 공격’으로 발표를 강행한다면 그것은 입증할 수 없는 주장이 될 것이다. 이는 국민과 국제사회로부터 신뢰성을 인정받기 어려울 것이다. 그 때부터 그들은 국내외로부터 스스로를 방어해야 하는 곤경에 처하게 될 것이다. 그렇지만 그로 인한 남북관계의 파탄과 북미대화·6자회담의 장애는 아주 심각할 것이다.

따라서 천안함 침몰사건 조사결과가 관심법 수준이라면 이명박 정부는 결과 발표를 중단하는 것이 모두를 위해 좋을 것이다. 관심법으로 공포정치를 휘두르던 궁예가 어떤 최후를 맞게 되었는지 이명박 정부는 역사책을 뒤적여봐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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