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가 내리는 가운데 광주 국립 5.18 민주묘지에서 열린 ‘5.18 민주화운동 제30주년 기념식’이 볼썽사납게 진행됐습니다. 현직 대통령이 2년 연속 5.18 기념식에 불참한 것도 그렇지만, 무엇보다 2004년 5.18 기념식 때부터 불린 ‘임을 위한 행진곡’ 배제에 반발한 5월단체 회원들이 대거 불참했기 때문입니다. 결국 알맹이는 빠지고 껍데기만 참여한 셈이 되었습니다.

점입가경이라, ‘임을 위한 행진곡’ 배제를 두고 웃지 못 할 일이 일어났습니다. 이 곡을 배제했기에 대통령 대신 나온 정운찬 국무총리 입장 때는 가곡 ‘금강산’이 연주됐으며, 퇴장 시 연주하려던 경기민요 ‘방아타령’이 민중가요인 ‘마른 잎 다시 살아나’로 긴급 대체됐다고 합니다. 금강산 관광이 완전 두절된 상태에서 뭐가 좋다고 가곡 ‘금강산’을 연주하는 것은 무엇이고, 다행히도 바꿔지기는 했지만 추모행사에서 “노자 좋구나…”로 시작되는 잔칫집에나 어울리는 ‘방아타령’을 연주하려고 했던 것은 또 무엇입니까?

5월단체 회원들은 ‘임을 위한 행진곡’을 부르지 못하게 하는 이유가 뭐냐고 묻습니다. 정부 측은 이 곡에는 5.18이란 단어도 없고 또 새로운 노래 제정이 필요하기에 식순에서 제외했다고 합니다. 참 듣기가 민망합니다. 이 곡은 광주민중항쟁을 직접적으로 기린 것으로 30년 동안 불린 5월의 노래이자, 그간 시민ㆍ사회ㆍ노동단체 등의 집회 시작에 민중의례로 불려온 노래입니다. 이보다 더 5.18 광주를 기리고 또 민주주의 정신을 대표하는 노래가 있을까요?

결국 5.18 유족회 및 부상자회, 구속부상자회 등 5월단체 회원들은 정부가 주관한 기념식장에 참석하지 않고 ‘민주의 문’에 모여 ‘임을 위한 행진곡’을 불렀고, 기념식은 파행으로 끝났습니다. 게다가 5월단체 회원들은 시민단체 등으로 구성된 5.18민중항쟁기념행사위원회와 함께 망월동 구 묘역에서 별도로 기념식을 치렀습니다. 5.18 행사가 파행을 넘어 두 쪽으로 갈라 진행된 것입니다. 정부가 ‘임을 위한 행진곡’을 배제한 죄값이 너무 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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