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의 이번 중국 방문(5.3-7)을 어떻게 봐야 할까? 북한의 대외 메시지는 무엇일까? 언론플레이를 잘 하지 않는 편인 북한의 의지를 헤아리자면 통상 북한이 취한 행동과 표현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김 위원장은 이번 방중에서 4박5일간 총 2천400㎞의 거리를 이동했다. 김 위원장이 어디를 들렀으며 무어라 말했는지, 그 동선과 표현을 살펴보는 게 중요하다. 김 위원장은 이번 중국방문 기간 후진타오 주석의 동행 하에 베이징시 교외에 있는 보아오 생물유한공사를 참관했으며, 요녕성의 선양과 다롄 그리고 4대 직할시의 하나인 톈진을 돌아보았다. 여기서 북한은 특히 김 위원장 일행이 북한을 나서 베이징에 입성하기 전에 들렀던 다롄과 톈진에 주목했다.

김 위원장은 5일, 후 주석이 차린 연회에서 연설을 통해 “특히 우리는 이번에 지난 19세기 제국주의열강들의 조계지로, 세력권 쟁탈전의 난무장으로 무참히 뜯기우고 짓밟혔던 대련(다롄)과 천진(톈진)이 오늘은 세기적 낙후성을 완전히 털어버리고 천지개벽을 이룩한 참신한 모습에서 깊은 감명을 받았다”고 경의를 표했다. 아울러 김 위원장의 다롄과 톈진 방문을 두고 <조선중앙통신>은 “(김 위원장이) 인민의 사상감정과 경제, 문화 등 모든 부문을 깊이있게 요해하시였다”고 설명했으며, <조선신보>는 북중경제협력에 초점을 맞췄다. 이를 기본으로 하면서 <노동신문>은 9일자 사설에서 김 위원장의 방중 의미에 대해 ‘조중(북중)친선의 역사에 길이 빛날 획기적인 사변’이라고 평했다. 대부분의 언론매체들도 “두 나라의 전통적인 우호친선관계는 새로운 발전국면에 진입하였다”고 평했다. 이렇게 보면 이번 방중의 방점은 북중관계로 한정해 있다고 봐도 무방하다.

그런데 김 위원장의 방중 소식이 알려지자 대부분의 언론들은 양국의 주요 의제로 6자회담과 천안함을 점쳤다. 두 사안이 한반도문제와 남북문제에서 현안인 것은 틀림없다. 그런데 북중정상회담에서 남북관계 문제는 아예 거론도 되지 않았고, 6자회담 문제도 원칙적인 수준을 조금 넘는 정도였다. 북측은 “6자회담의 재개에 유리한 조건을 마련할 용의”, 중국측은 “6자회담 과정이 계속 전진하도록 추동할 용의”를 각각 표명한 정도였다. 왜 이런 일이 일어났을까? 여기엔 이유가 있다. 회담 주체인 북-중의 시각에서 본 것이 아니라 제 3자가 자기의 시각으로 봤기 때문이다. 이번 김 위원장의 방중은 오랜 전통을 갖는 양국의 비공식적 방문이기에 외부에서 왈가왈부할 처지는 못 됐다. 북중 간에는 6자회담이나 천안함 문제보다 더 긴요한 현안이 있었던 것이다. 다름 아닌 양국의 관계강화와 경제협력, 그리고 새로운 관계로의 발전문제였다.

그렇다면 김 위원장은 이번 방중에서 외부가 그토록 궁금해 하는 6자회담과 남북관계(천안함)에 대해 왜 별다른 의사 표시를 하지 않았을까? 북한은 지난해 8월부터 펼쳐온 대외 화해 제스처를 일단 거둔 것으로 판단된다. 6자회담과 관련해 미국측이 진전된 언질을 주지 않고 또한 남측도 금강산 관광 재개 등에서 일체 무대책으로 나오자 북한 역시 무응답으로 대응한 것이다. 6자회담을 기다린 미국과 천안함을 기다린 남한으로서는 서운하겠지만, 오히려 서운한 건 북한이었다. 김 위원장의 이번 방중은 미국과 남한에 대한 일종의 반격인 셈이다. 그 결과가 한미동맹에 대한 조중(북중)동맹의 강화이자, 남북경협에 대한 조중(북중)경협의 대체로 나타난 것이다. 북한은 2012년 강성대국건설을 내걸었다. 그때까지 ‘인민생활향상’을 위해 미국과는 평화 분위기 속에서 남한과는 교류협력을 하면서 각각 북미관계와 남북관계를 진행하면 좋지만 그게 안 된다면, 늘 그래왔듯이 무소의 뿔처럼 혼자 가겠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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