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세기 말 냉전체제 해체 이후 ‘죽의 장막’에 가려있던 중국이 세계적으로 해금되었습니다. 당시 남한 노태우 정부는 강력한 북방정책을 펴면서 1992년 한중수교를 맺습니다. 이때 남한은 새로운 기회의 대륙으로 떠오른 중국진출을 꾀하면서 중국문화를 이해하는 키워드 '꽌시(關係)'의 중요성에 천착하게 됩니다. 18년이 지난 지금 남한의 천안함 사고로 인한 ‘한중관계’와 북한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방중으로 인한 ‘조중(북중)관계’를 보면서 새삼 ‘꽌시’에 대해 다시 생각하게 됩니다.

북중관계는 통상 ‘순치(脣齒)’의 관계로 불립니다. 입술이 없으면 이가 시릴 정도로 서로 밀접한 관계라는 것입니다. 이번에 김 위원장은 조중우의교(압록강철교)를 통해 출ㆍ입국을 했으며 귀국길에 선양에 들러 항미원조열사릉(抗美援朝烈士陵)을 찾아 6.25전쟁에 참전한 중국 인민지원군의 넋을 기렸다고 합니다. 평양에는 조중우의탑(朝中友誼搭)이 있습니다. 양국관계의 ‘탄탄함’은 이번 김 위원장의 방중에서도 여실히 드러났습니다. 중국 측의 극진한 배려와 환대도 그렇지만 무엇보다 권력 1, 2, 3위인 후진타오 주석, 우방궈 전국인민대표대회 상무위원장, 원자바오 총리를 비롯해 정치국 상무위원 9명 전원이 김 위원장과 만났습니다. 말하자면 양국은 중국혁명 때부터 1950년 6.25전쟁을 거쳐 피로 맺어진 혈맹관계라는 것입니다.

이런 탄탄한 북중관계에 남한이 개입하려 했다가 큰 낭패를 봤습니다. 김 위원장이 전격적으로 중국을 방문하자 천안함 사고 원인으로 사실상 북한을 지목했던 남한이 화들짝 놀라 ‘북한을 천안함 사고에서 면죄부를 주는 것이냐’며 현인택 통일부 장관 등 남한 관리들이 일제히 중국을 성토했습니다. 그러자 중국 외교부 장위 대변인이 김 위원장의 방중에 대해 언급하는 것은 내정간섭이라고 강한 불쾌감을 표시했습니다. 아울러 “김 위원장 방중과 천안함 침몰 사건은 별개 문제”라며 한국의 과잉반응에 이의를 제기하기도 했습니다. 이 정도라면 아마도 북중관계는 한미관계 이상일 것입니다.

지난해 북한과 중국은 우호관계 60돌을 맞았습니다. 이번에 양국은 정상회담에서 △고위층 교류 지속 △내정ㆍ외교ㆍ국제 등에 대한 전략적 소통 강화 △경제ㆍ무역 협력 심화 △문화ㆍ교육ㆍ스포츠 등 인문 교류 확대 △동북아 안정 등 국제ㆍ지역문제 협력 강화 등 5가지에 합의를 했습니다. 흡사 새로운 시대를 향한 ‘북중판 6.15선언’과도 같습니다. 남북관계가 단절되니 북중관계가 발전하는 것은 당연합니다. 일천한 한중관계로 관록의 북중관계를 능가할 수는 없습니다. 나아가 북한과 중국은 새로운 60년을 맞아 새로운 ‘꽌시’로의 진화를 예고하고 있습니다. 남한도 중국과의 새로운 ‘꽌시’를 모색할 때입니다. 남한이 중국과 새로운 ‘꽌시’를 모색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은 남북관계를 개선하는 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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