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서해상 백령도 앞바다에서는 46명의 실종자를 머금고 침몰한 천안함을 인양하는 비통한 일이 진행되고 있습니다. 50년 전에도 마산 앞바다에서는 천안함 침몰만큼 비극적이고 비통한 일이 있었습니다. 1960년 4월 11일 한 시신이 오른쪽 눈에 최루탄이 박힌 처참한 모습으로 마산 앞바다에 떠오른 것입니다. 이승만 독재의 3.15부정선거에 항의하는 시위에 나섰던 김주열 열사가 27일 만에 시신으로 나타난 것입니다.

그때 시신으로 나타난 것도 놀라운 일인데 장례식조차 치르질 못했습니다. 당시 경찰이 마산도립병원에 안치되어있던 열사의 시신을 빼돌려 고향 땅 남원으로 이동해 가족 동의 없이 묻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다 50년이 지난 이날 여러 추모사업회 등 시민사회단체들이 장례위원회를 발족해 그때 시신이 떠올랐던 마산 신포동 중앙부두 현장에서 ‘김주열 열사 범국민장’을 거행한 것입니다. 정부가 지난달 마산의 3.15의거를 국가기념일로 지정했으나 이번 장례식은 지원하지 않아 순수하게 시민들의 성금으로 치러졌습니다.

이날 마산시내 중앙부두 입구에 설치된 아치와 사거리 선전탑에는 50년만의 장례식을 알리는 홍보물이 걸렸고, 거리에는 현수막과 휘장 등이 나붙었습니다. 행사장에는 각계 인사들이 운집했고 특히 열사가 합격했던 마산상고의 후신인 용마고 학생들이 자리를 지켰습니다. 장례식 때 열사의 누님은 연단에 올라 “슬픈 일도 때로는 기쁘게 말할 때가 있는가 봅니다”며 50년 세월을 달관(達觀)한 감사의 말을 전했습니다.

아시다시피 김주열 열사의 죽음은 4.19혁명의 도화선이 되었습니다. 마침 올해가 4.19혁명 50돌입니다. 4.19혁명은 통상 ‘미완의 혁명’으로 불리면서 반독재운동, 민주주의운동, 반외세운동 그리고 통일운동 등 다양하게 해석되어 왔습니다. 지금 4.19혁명과 관련 있는 단체들이 기념행사를 비롯해 여러 학술행사들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50년만의 장례식’으로 김주열 열사가 해원(解寃)할 수 있을까요? 이를 계기로 4.19혁명도 새롭게 조명되기를 기대해봅니다.
저작권자 © 통일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