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호석 (재미 통일학연구소 소장)

 

1분 57초 시차를 두고 일어난 두 차례 폭발

2010년 4월 10일, 천안함 침몰사건의 진상을 밝혀줄 고리 하나가 마침내 풀렸다. 민주당 노영민 의원이 한국지질자원연구원에 요청하여 입수한 자료를 보도한 <노컷뉴스> 2010년 4월 10일부에 따르면, 그 연구원 산하 백령도 관측소는 사건 발생 시각에 지진파만이 아니라 음파까지 관측하였고, 침몰해상에서 177km 떨어진 김포 관측소와 220km 떨어진 철원 관측소에서도 음파를 관측하였다고 한다. 음파관측자료는 천안함에서 외부폭발이 일어났음을 과학적으로 입증하는 결정적인 증거다. 천안함이 강력한 외부폭발로 침몰하였음이 밝혀짐으로써, 내부폭발이냐 외부폭발이냐 하는 논란은 막을 내렸다.

천안함에서 강력한 외부폭발이 일어났으므로, 폭발현장에서 멀리 떨어지지 않은 백령도에 폭발음이 들린 것은 당연한 이치다. 그런데 놀랍게도 폭발음은 한 차례가 아니라 두 차례 들렸다. 이에 관해서는, MBC가 2010년 4월 3일에 보도한 ‘천안함 상황일지’를 자세히 읽어볼 필요가 있다. <동아일보> 2010년 4월 10일부는, MBC가 입수하여 보도한 ‘천안함 상황일지’가 한국군 합동지휘통제체계(KJCCS) 전산망에서 누군가 유출한 기밀자료라고 밝혔는데, 이 자료가 사건 진상을 파악하는 데 결정적으로 중요하다는 것은 두말할 나위 없이 명백하다. 그 자료는 3월 26일 오후 9시 20분 백령도 해안초병이 폭발음을 듣고 상부에 보고하였음을 말해주고 있다. ‘천안함 상황일지’에는 그 폭발음이 들린 거리가 해안초병의 청취위치로부터 1.8km 떨어진 곳이었다고 기록되어 있다.

그런데 경기도 평택에 있는 2함대사령부 해군전술지휘통제체계(KNTDS) 전자화면에서 천안함 위치표시가 사라진 시각이나, 한국지질자원연구원 백령도 관측소의 계측기가 폭발음을 관측한 시각은 모두 오후 9시 21분 57초로 나타났다. 따라서 오후 9시 20분에 해안초병이 들은 첫 번째 폭발음은, 오후 9시 21분 57초에 백령도 관측소가 1.1초 단위로 두 차례에 걸쳐 관측한 두 번째 폭발음과 다른 폭발음이라는 사실이 명백하다. 이로써 천안함 폭발이 일어나기 1분 57초 전에 또 다른 폭발이 있었음을 알 수 있다.

만일 해안초병이 또 다른 폭발음을 상부에 보고한 시각이 천안함에서 폭발이 일어난 시각과 10-20초 정도 차이가 난다면, 해안초병이 상부에 보고하는 과정에서 실수나 혼동이 있었다고도 볼 수 있으나, 해안초병의 폭발음 보고시각과 천안함 폭발음 관측시각이 1분 57초나 차이가 나기 때문에 보고과정에서 실수나 혼동이 있었다고 할 수 없다. 국방부와 합동참모본부는 천안함에서 폭발이 일어나기 전에 그 일대에서 또 다른 폭발이 있었다는 사실에 대해 함구하면서, 해안초병이 들은 폭발음과 천안함에서 발생한 폭발음이 같은 것처럼 둘러대고 넘어갔으나, 그것은 사실이 아니다.

오후 9시 21분 57초에 일어난 폭발이 천안함에서 일어난 폭발인 것은 과학적으로 입증되었는데, 그보다 1분 57초 전에 백령도 해안초병이 들은 또 다른 폭발은 무엇인가?

2010년 4월 7일 KBS는 백령도 용트림바위 앞바다에서 천안함 함수도 아니고 함미도 아닌 정체를 알 수 없는 큰 물체가 수중수색작업에 참여한 해군특수전여단(UDT)동지회 회원에 의해 발견되었다고 보도하였다. 국방부와 합참은 KBS가 오보하였다고 강하게 반발하였고, 이튿날 KBS는 UDT동지회 회원이 잠수장소를 착각해 KBS 취재진에게 잘못 진술하였다고 하면서 하루 전 보도를 뒤집은 정정보도를 내놓았다. 그러나 국방부와 합참은 천안함 함수가 발견된 위치도 아니고 함미가 발견된 위치도 아닌 제3 위치에서 해군 준위가 수중수색작업을 하다가 사망하였다는 KBS 보도를 부인하면서 그가 함수 침몰위치에서 수중수색작업을 하다가 사망하였다고 바로잡은 것일 뿐, 제3 위치 자체를 부인한 것은 아니다.

2010년 4월 7일 KBS 보도에 따르면, UDT동지회 회원들이 3월 29일 용트림바위 앞바다에서 수중수색작업을 할 때 바닷속에서 정체를 알 수 없는 큰 물체를 발견하고 해치문을 열고 들어가 보니 소방용 호스 등이 있었다고 진술하였다는 것이며, 4월 6일 바로 그 곳에서 길이가 2m 가량 되는 금속파편처럼 보이는 물체 두 개를 건져올렸는데, 해군 헬기가 그 물체를 싣고 백령도나 인근 바다에 있는 독도함으로 날아가지 않고 남쪽으로 멀리 사라졌다고 한다. 금속파편처럼 보이는 물체 두 개를 인양하였으면서도, 그에 대해 국방부와 합참이 함구한 것은 용트림바위 앞바다에 침몰한 미확인 물체가 천안함 선체의 일부가 아니라는 점을 강하게 암시한다.

위의 사실을 종합해보면, 천안함에서 폭발이 일어나기 1분 57초 전에 백령도 용트림바위 앞바다에서 일어난 또 다른 폭발로 어떤 미확인 물체가 바닷속에 침몰하였음을 알 수 있다. 천안함보다 1분 57초 먼저 일어난 폭발로 침몰한 미확인 물체는 무엇일까?

2010년 4월 7일 KBS가 방영한 사건현장 위치도면을 보면, 미확인 물체가 발견된 위치는 천안함 함수가 발견된 위치에서 서북쪽으로 1.8km 떨어진 해상이다. 미확인 물체가 발견된 위치는 용트림바위에서 손에 잡힐 듯이 보이는 아주 가까운 해상이다. 해안으로부터 그렇게 가까운 해상에는 초계함이 들어갈 수 없고, 그보다 작은 고속정밖에 들어가지 못한다. 그렇다면 그 미확인 물체는 천안함과 함께 작전 중이던 고속정인가?

2함대사령부의 해군전술지휘통제체계 전자화면에는 서해에서 움직이는 한국군 전함들의 현재 위치가 실시간으로 나타나는데, 천안함 위치표시가 사라졌다는 보도는 있었으나 그 부근에 있었던 또 다른 전함이 사라졌다는 보도는 없었다. 또한 만일 승조원 31명을 태운 고속정이 침몰하였다면, 그 가족들도 실종문제를 제기하였을 것이고, 한국군 지휘부는 그 사실을 감출 수 없었을 것이다. 그 미확인 물체가 고속정이 아니었음은 분명해 보인다.

2010년 4월 8일 국회 대정부질문에서 민주당 신학용 의원은 “생존 승조원들은 ‘꽝, 꽝’ 두 번 소리가 들렸다고 하는데, 뭔가에 부딪쳐 앞대가리가 완전히 날아간 것 아니냐”고 의혹을 제기하면서 천안함이 세 동강으로 절단되었을 가능성을 거론했다. 천안함 선체를 인양하면 금방 알 수 있겠지만, 선체가 세 동강으로 절단되었을 가능성은 거의 없는 것으로 생각된다.

2010년 4월 7일 KBS가 보도한 내용, 그리고 <서울신문> 2010년 4월 9일부가 보도한 내용을 종합해보면, 존재 자체가 군사기밀에 속하는 정보탐사선 다도해함이 미확인 물체가 발견된 해상에서 오랜 시간 동안 머물렀다고 한다. 외부에 거의 노출되지 않은 정보탐사선 다도해함이 이번에 언론의 눈길을 끌었는데, 그 정보탐사선에 대해서는 잠수정을 싣고 다닌다는 것 이외에 다른 것이 알려진 바 없다. 다도해함이 싣고 다니는 잠수정은 비밀에 쌓인 돌고래급 잠수정(SX 756)인 것으로 보인다. 잠수정을 싣고 다니는 정보탐사선의 임무는, 2-3명 특수요원을 태운 소형 잠수정이 은밀하게 벌이는 대북수중작전일 것이다.

2함대사령부의 해군전술지휘통제체계 전자화면에 잠수함이나 잠수정의 위치표시는 나타나지 않으며, 특히 잠수정 승조원들은 존재 자체가 외부에 전혀 노출되지 않는다. 고속정과 달리, 잠수정은 수심이 얕은 해안에 접근하거나 특수요원을 해안에 침투시킬 때 쓸 수 있으므로 용트림바위 앞바다에서 저수심 수중기동을 할 수 있다. 그렇다면 침몰한 미확인 물체는 정보탐사선 다도해함이 싣고 다니던 잠수정인가?

그런데 한 가지 이해하기 힘든 것은, 백령도 용트림바위 앞바다에서 첫 번째 외부폭발이 일어났으므로, 한국지질자원연구원 백령도 관측소가 첫 번째 폭발로 발생한 인공지진을 관측하였어야 하는데 그러한 관측 사실이 언론에 전혀 보도되지 않았다는 점이다.

<노컷뉴스> 2010년 4월 10일부는, 천안함에서 폭발이 일어난 때로부터 약 5시간이 지난 3월 27일 새벽 2시 15분에서 20분 사이에 한국지질자원연구원이 인공지진 발생 시각, 규모, 추정위치를 청와대 국가위기상황센터에 통보했고, 새벽 3시 19분에는 지진파 분석결과도 전자우편(email)으로 전송했고, 국가정보원에도 같은 내용을 팩스로 보냈다고 보도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국방부는 한국지질자원연구원으로부터 받은 통보내용을 4월 1일에 발표한 자료 ‘천안함 침몰 관련 국방부 입장’에서 처음 공식확인하였다. 국방부는 한국지질자원연구원이 통보해준 중요한 정보를 5일 동안이나 공식확인하지 않았던 것이다. 왜 그랬을까? 사실은 한국지질자원연구원이 오후 9시 20분과 21분 57초에 각각 한 차례씩 인공지진을 관측하고 그 사실을 통보하였는데, 국방부와 합참이 9시 20분에 인공지진파가 관측되었다는 사실을 은폐하고 9시 21분 57초에 인공지진파가 관측되었다는 사실만 공개한 것은 아닐까? 만일 국방부와 합참이 오후 9시 20분에 일어난 의문의 폭발을 비밀로 묻어두고, 천안함 폭발에 대해서만 진상조사를 한다면, 천안함 함수와 함미를 인양한 뒤에도 의문의 폭발은 영영 은폐될 가능성이 있다.

접적해역 해상경계작전과 대규모 해상북침연습

천안함 침몰사건의 진상을 파악하는 데서 핵심문제는, 어떠한 작전상황에서 그 전함에 폭발이 일어났는가 하는 것이다. 천안함의 작전상황에 대해서는 논하지 않고, 폭발원인만 논하는 것은 실체의 반쪽만 보려는 것과 마찬가지다. 작전상황 파악과 폭발원인 분석을 병행해야 전모를 밝힐 수 있다.

2010년 3월 26일 밤, 천안함은 경기도 평택에 있는 2함대사령부의 명령에 따라 백령도 서남쪽 앞바다에 배치되었다. 천안함을 그 곳에 배치한 것은, 서해 5도 해역에서 전개된 특별한 해상경계작전의 일환이었다. 서해 5도 해역은, 한국군 지휘부가 쓰는 용어를 빌리면, 접적해역(接敵海域)이므로, 날카로운 군사적 긴장이 조성된 곳이어서 그 해역에서 해상작전이 상시적으로 전개되지만, 2010년 3월 26일 밤에는 일상적인 해상작전이 아니라 특별한 해상경계작전이 전개되고 있었다.

그러나 국방부와 합참은 사건 당일 접적해역에서 벌어진 특별한 해상경계작전에 대해 함구하였다. 그 까닭은 국방부와 합참이 군사기밀에 속하는 접적해역 해상경계작전이 언론을 통해 노출되는 것을 꺼렸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그보다 더 결정적인 이유는 천안함 침몰사건 관련정보들 가운데서 군 당국에게 유리한 정보만 선택적으로 공개하였기 때문일 것이다.

그런데 다행히 <국민일보> 2010년 4월 5일부가 사건 당일 있었던 접적해역 해상경계작전에 관한 정보를 알려주었다. 국방부가 국회에 제출한 천안함 침몰사건 관련 답변자료를 인용한 <국민일보> 관련기사를 보면, 사건 당일 속초함은 고속정 5척과 함께 대청도 앞바다에 배치되었고, 성남함은 고속정 4척과 함께 연평도 앞바다에 배치되었고, 천안함은 단독으로 백령도 앞바다에 배치되었고, 호위함 1척은 후방 해상에 배치되었다는 사실이 드러난다. 또한 MBC가 보도한 ‘천안함 상황일지’를 보면, 속초함이 2010년 3월 26일 오후 7시 17분까지 2함대사령부와 10회 교신하였고, 청주함과 성남함은 교신하지 않았음을 알 수 있는데, 이것은 사건 당일 있었던 접적해역 해상경계작전에 청주함도 동원되었음을 말해준다.

위의 내용을 정리하면, 2함대사령부 예하 제21구축함전대 소속 2,000톤급 호위함(frigate)인 전남함(FF 957), 제22초계함전대 소속 1,200톤급 초계함(corvette)들인 천안함(PCC-772), 속초함(PCC-778), 성남함(PCC-775), 청주함(PCC-762), 제23고속정전대 소속 170톤급 고속정(patrol boat) 9척이 서해 접적해역에 배치된 것이다. 그 밖에도 국회 답변자료에서 공개하기 곤란한 비공개 군사장비들도 동원되었을 터이니 대규모 경비함대라고 할 수 있다.

중요한 것은, 2함대사령부 휘하 경비함대가 일상적인 해상경계작전에 동원된 것이 아니라, 접적해역에서 실제 일어날 수 있는 해상교전에 대비해 배치되었다는 점이다. 사건 당일 서해 접적해역의 작전상황이 이처럼 일촉즉발의 교전위험을 지니고 있었음을 지적할 필요가 있다.

사건 당일 서해 접적해역에 배치된 2함대사령부 경비함대가 구체적으로 어떤 해상경계작전을 수행하고 있었는지를 알려주는 중요한 정보도 <국민일보> 관련기사에 들어있다. “군 관계자”가 한 말을 인용한 <국민일보> 관련기사는, 한국군 지휘부가 “3월 말 북한 비파곶 잠수함 기지와 해주 잠수함 기지에서 일부 잠수함과 반잠수정 움직임을 파악했지만 정확한 숫자나 이동경로를 파악하지 못해 곤혹스러워했”으며, “북한 잠수함 활동정보를 얻기 위해 북한 잠수함 기지 전반에 대한 대대적인 탐색활동을 벌인 것으로 보인다”고 보도하였다. 이 기사에 담긴 군사정보를 정확하게 파악하려면, 한미연합군과 인민군이 첨예하게 대치한 서해 접적해역 군사상황에 대한 아래와 같은 기본인식이 요구된다.

지하방호시설로 만들어진 2함대사령부 지휘소에는 큼지막한 전자화면이 걸려있는데, 서해에서 움직이는 한국군 전함들과 인민군 전함들의 현재 위치가 그 화면에 실시간으로 표시된다. 전술지휘통제체계가 미국군 첩보위성과 고공정찰기가 전해주는 정보를 받아 그런 기능을 발휘하는 것이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한국군 잠수함과 인민군 잠수함의 현재 위치는 그 전자화면에 나타나지 않는다는 점이다.

미국 군사전문가들이 인터넷에 공개한 자료에는 인민군 해군기지에 정박되어 있는 잠수함을 고공에서 촬영한 영상정보들이 들어있는데, 한 마디로 그런 영상정보는 정보가치가 없는 것들이다. 미국군 첩보위성과 고공정찰기가 공중촬영한 인민군 잠수함은 전투에 참가하는 잠수함이 아니라, 인민군이 미국군의 공중정찰을 농락하기 위해 가짜로 만들어놓은 위장 잠수함이 아니면 잠항훈련에 쓰는 훈련 잠수함이다. 미국군 첩보위성과 고공정찰기가 집중적으로 감시하는 평안남도 남포, 황해남도 비파곶과 해주에 있는, 공중정찰에 노출된 잠수함기지들에는 위장 잠수함과 훈련 잠수함만 정박되어 있다. 인민군이 작전배치한 잠수함들은 공중정찰을 차단해주는 지하잠수함기지 안에서 잠수하여 바다를 드나들기 때문에 미국군 첩보위성과 고공정찰기가 공중촬영을 하지 못한다.

미국의 국제전략문제연구소(IISS)가 발표한 자료 ‘2006년 세계 군사력 비교’는 2006년 현재 인민군이 잠수함 88척을 작전배치하였다고 밝힌 바 있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추정이다. 인민군이 어떤 급의 잠수함을 어느 기지에 몇 척이나 배치하였는지는 외부에서 알 수 없다.

이런 맥락에서 보면, 위의 <국민일보> 관련기사에서 한국군 지휘부가 “3월 말 북한 비파곶 잠수함 기지와 해주 잠수함 기지에서 일부 잠수함과 반잠수정 움직임을 파악했지만 정확한 숫자나 이동경로를 파악하지 못해 곤혹스러워했”다고 쓴 것은, 훈련 잠수함 몇 척이 기지에서 출항하는 장면을 포착했는데 이내 바닷속으로 들어가버리는 바람에 이동경로를 알 수 없어 곤혹스러웠다는 뜻이다.

주목하는 것은, 한국군 지휘부가 2010년 3월 말에 인민군 잠수함에 대한 감시를 통상 수준 이상으로 집중하였다는 점이다. 그들이 감시를 비상히 집중한 까닭은, 그 시점에 인민군 잠수함의 특이동향이 나타날 것으로 예상하였기 때문이다. 한국군 지휘부가 2010년 3월 말에 인민군 잠수함의 특이동향이 나타날 것으로 예상한 까닭은, 3월 23일부터 27일까지 백령도 인근 해상에서 전개된 한미연합함대의 대규모 해상훈련에 대응하여 인민군 잠수함이 기동할 가능성이 있다고 판단하였기 때문이다.

이러한 작전상황을 다시 정리하면, 한미연합함대가 백령도 인근 해상에서 합동훈련을 실시하고, 한국군 지휘부가 인민군 잠수함의 대응기동 가능성이 있다고 판단하고, 그러한 판단에 따라 2함대사령부가 서해 접적해역에서 고강도 해상경계작전을 전개하였다고 말할 수 있다. 따라서 2함대사령부가 전개한 고강도 해상경계작전은, 백령도 인근 해상에서 전개된 한미연합함대 합동훈련현장에 인민군 잠수함이 접근하는 것을 차단하기 위한 대잠경비작전이었다.

<뉴시스> 특별취재단과 <경기일보> 기자들이 입수한, 2함대사령부 자료 ‘서해상 한미 해군연합훈련’에 따르면, 제7 함대 전함들은 2010년 3월 19일 평택에 있는 한국군 제2함대 기지에 입항하였고, 3월 23일부터 27일까지 백령도 인근 해상에서 훈련하였다고 한다. 이에 관련된 몇 가지 언론보도를 종합해보면, 제7 함대 기함(旗艦)인 19,600톤급 블루릿지호(USS Blue Ridge)의 지휘에 따라 9,600톤급 이지스순양함 샤일로호(USS Shiloh), 9,200톤급 이지스구축함들인 머스틴호(USS Mustin)와 래슨호(USS Lassen), 9,000톤급 미사일구축함 존 맥케인호(USS John S. McCain), 8,300톤급 미사일구축함 커티스 윌버호(USS Curtis Wilbur), 3,300톤급 구난함 샐버(USS Salvor)호 등이 백령도 인근 해상에 집결하여 해상훈련을 벌였음을 알 수 있다. 또한 제7 함대 해상훈련에 동원된 한국군 전함들은 14,000톤급 상륙강습함 독도함, 8,500톤급 이지스구축함 세종대왕함, 4,400톤급 구축함 최영함, 440톤급 미사일고속정 윤영하함 등이었다. 이처럼 방대한 해상무력을 백령도 인근에 집결시킨 것은 단순한 해상훈련이 아니라 북측 서해안 침공을 노린 도발적인 해상북침연습이었다.

해상북침연습에 위협비행으로 대응한 인민군

이전과 달리, 한미연합함대가 백령도 인근까지 북상해서 전례없이 도발적인 해상북침연습을 하는 데도 인민군이 아무런 대응행동을 취하지 않고 가만히 있었다면, 그것이 도리어 이상한 일이다. 한미연합함대의 도발적인 해상북침연습에 인민군이 대응행동을 취한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인민군이 어떠한 대응행동을 취했는지 정확하게 알 길은 없지만, 몇 가지 언론보도를 종합해보면 아래와 같은 내용이 눈길을 사로잡는다.

“정부의 한 소식통”이 한 말을 인용한 <연합뉴스> 2010년 4월 8일부 보도에 따르면, “천안함 침몰사고일 전후로 북한 전투기들은 낮에 훈련기동을 많이 했다. 하지만 침몰사건이 발생한 지난달 26일은 이상하게도 전투기가 한 대도 출격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3월 26일에 인민군 전투기 출격회수가 이전에 비해 줄었다면 이해할 만하지만, 한미연합함대가 도발적인 해상북침연습에 열을 올리는데도, 인민군 전투기가 하루 종일 전혀 출격하지 않은 것은 너무 이상한 일이다. 과연 그 소식통의 말은 사실일까?

인민군 전투기가 3월 26일에 한 대도 출격하지 않았던 것이 아니라, 매우 특별한 전투기가 출격하였던 것으로 보아야 이치에 맞는다. 대공레이더에 전혀 잡히지 않는 인민군 스텔스 전투기가 출격하였다고 보아야 한다는 뜻이다.

“군 고위정보 소식통”이 한 말을 인용한 <조선일보> 1998년 12월 20일부는, 인민군이 “미국과 프랑스 등 일부 선진국만이 갖고 있는 고도의 스텔스 기술”을 갖고 있다고 보도한 바 있다. 인민군이 고도의 스텔스 기술을 갖고 있다는 정보를 한국군 정보당국이 처음 파악한 때가 지금으로부터 12년 전이었으니, 12년 긴 세월 동안 인민군이 스텔스 기술을 전투기 기체나 잠수함 선체에 적용하지 않았을 리 없다. 이란군이 2008년 7월부터 스텔스 전투기를 생산하기 시작하였다는 보도를 보면, 인민군이 스텔스 전투기를 보유한 것은 확실하다. 한국군도 스텔스 기술을 가지고 있지만, 레이더에 전혀 잡히지 않을 만큼 완성된 고도의 기술은 아니다.

2010년 3월 26일 밤, 인민군은 백령도 인근에서 해상북침연습에 열을 올리던 한미연합함대에 맞서 스텔스 전투기를 출격시켜 기습적인 위협비행을 하였다. 인민군 스텔스 전투기가 백령도 상공을 지나가도 한국군 대공레이더에 잡히지 않았으니, 인민군 전투기가 한 대도 출격하지 않은 것처럼 보인 것은 당연한 이치였다. 전술지휘통제체계도 무용지물로 되었다. 백령도 방공진지에 설치된 적외선 촬영장비(infrared radiation camera)는 야간에 20km 밖에 있는 물체를 촬영, 녹화할 수 있다고 하니, 인민군 스텔스 전투기가 엔진방사열을 뿜어내는 적외선 영상이 혹시 거기에 녹화되었을 가능성이 있지만, 방사열 방출영상만 보고 즉석에서 전투기 비행 여부를 식별하지는 못하였을 것이다.

인민군 스텔스 전투기가 서해 접적해역 상공에 기동하였음을 뒷받침해주는 또 다른 정보는, 3월 26일 오후 9시 16분 원인을 알 수 없는 굉음이 백령도 상공을 뒤흔들었다는 백령도 33방공진지의 보고에 들어있다. <한겨레> 2010년 4월 8일부 보도에 따르면, “화약에 의한 폭발음은 포성과 유사한데 (백령도) 방공진지에서 포성이 아닌 소음이라고 보고했다”는 것이다. <연합뉴스> 2010년 4월 7일부는, “백령도 방공진지에서 ‘미상의 큰 소음’을 청취해 위성통신망으로 상급부대에 보고했”고, “해군작전사령부는 방공진지에서 청취한 소음이 천안함과 관련된 것으로 추정, 오후 9시 15분을 사고 발생시간으로 합참에 팩시밀리로 보고했다”고 보도하였다. 2010년 4월 3일 MBC가 보도한 ‘천안함 상황일지’에는 오후 9시 16분 백령도 방공진지에 들린 폭음은 청취위치로부터 7-8km 떨어진 “내륙”에서 울린 것으로 보고되었다고 기록되었다. 33방공진지가 있는 백령도 북쪽 해안에서 7-8km 떨어진 “내륙”이면, 거기는 황해남도가 아닌가.

백령도 상공을 뒤흔든, 원인을 알 수 없는 굉음은 인민군 스텔스 전투기가 음속을 돌파하는 순간에 생겨난 충격음이다. 2009년 4월 1일 오전 8시 10분께 전라북도 전주시 인근 상공에서 발생한 원인을 알 수 없는 굉음으로 건물 유리창이 흔들리고 승용차 경보기가 울리는가 하면 나뭇가지에 앉아있던 새들이 놀라 날아올랐는데, 그로부터 20일 뒤인 4월 21일 미국군 7공군사령부 관계자는 F-16 전투기 1대가 훈련규정속도인 마하 1을 넘어선 초음속으로 전주 인근 상공을 비행하는 바람에 굉음을 냈다고 해명하였다. 2010년 3월 26일 오후 9시 16분, 백령도 상공을 뒤흔든 굉음도 항공기가 음속을 돌파하는 순간에 발생한 충격파가 지상에 전달된 음속폭음이었다. 다시 말해서, 인민군 스텔스 전투기는 한미연합군 대공레이더망을 간단히 뚫어버리고 음속폭음만 허공에 남기며 서해 접적해역의 밤하늘을 초음속으로 날아갔던 것이다. 스텔스 전투기는 황해남도 태탄군에 있는 공군기지에서 이륙한 뒤에 곧 음속을 돌파하고, 백령도 상공을 지나 남서쪽으로 고속비행하여 한미연합함대가 북침전쟁연습에 열을 올리고 있던 해상 상공을 선회하였을 것이다. 인민군이 전격적으로 전개한 실로 대담하고 기상천외한 대응작전에 놀라움을 금치 못하게 된다.

한국군 전투기들은 왜 1시간 18분 동안 늑장을 부렸을까?

만일 2010년 3월 26일 밤 서해에서 실제 전투가 벌어졌다면, 제7 함대 지휘함 블루릿지호와 이지스순양함 및 이지스구축함들은 인민군 스텔스 전투기가 기습적으로 접근하는 것을 모르고 있다가 공대함 미사일 공격을 받고 모조리 바다에 수장되었을지 모른다. 백령도 인근에서 해상북침연습 마지막 일정을 진행하던 그날 밤, 제7 함대 지휘부가 자기들을 겨냥한 인민군 스텔스 전투기의 기습적인 위협비행이 있었음을 알았다면 아연실색하였을 것이다.

스텔스 전투기 기동은 대공레이더에는 잡히지 않으나, 지상에 있는 방공기지에서 육안으로 관측할 수 있다. 그러므로 만일 인민군 스텔스 전투기가 대낮에 백령도 인근 상공을 지나갔더라면 백령도 방공기지에서 육안으로 그 전투기를 발견하고 방공포를 쏘았을 것이다. 그래서 인민군 스텔스 전투기는 육안으로 관측할 수 없는 밤시간을 택해 서해 상공으로 출격하였던 것으로 보인다. 대공레이더에 잡히지 않았고, 야간비행이라서 방공기지에서 육안으로도 관측할 수 없었으니, 인민군 스텔스 전투기가 무슨 기종인지 알 수 없다. 스텔스 전투기는 인민군이 보유한 위력적인 비밀병기다.

백령도 방공기지에서 원인을 알 수 없는 굉음을 들었다는 긴급보고를 받은 주한미국군 작전정보국은 그 굉음이 스텔스 전투기 음속폭음이라는 판단을 내리고, 그러한 정보판단을 한국군 합참에 즉각 알려주었을 것이다. 그리하여 한국 공군은 아래와 같은 흥미로운 행동을 취하게 된다.

천안함에서 폭발이 일어난 뒤로 18분이 지난 오후 9시 40분 2함대사령부가 최고 수준의 경계태세인 ‘서풍-1’을 발령하였는데, ‘서풍-1’을 발령하면 서해 방면에 배치된 해군이 긴급출동하고, 공군 전투기들이 비상출격하고, 백령도와 연평도에 배치된 해병대 자주포가 시동을 거는 등 2함대 작전에 동원되는 육해공군 총전력이 전투배치상태에 돌입한다. 그런데 합참은 천안함에서 폭발이 일어난 뒤로 1시간 18분이 지난 오후 10시 40분에 가서야 전투기 출격명령을 내렸고, 구조헬기 출동은 그보다 더 늦었다. 한국 공군 6전대가 있는 충청북도 청주의 헬기기지에서 이륙한 구조헬기가 천안함 침몰해상에 도착한 시각은 오후 11시 40분께였다.

한국군 전투기들은 왜 즉각 출격하지 않고 1시간 18분 동안 늑장을 부렸을까? 한국군 공군작전사령부는 “새떼는 공군 레이더망에 잡힐 정도로 속도가 빠르지 않았고 속초함이 미상의 물체를 포착할 때까지 기다리느라 출격이 늦었다”고 해명하였지만, 속초함이 백령도 서북쪽 해상에서 미확인 물체를 발견한 시각이 오후 10시 55분께이므로, 그보다 15분 전에 이미 전투기를 출격시켰으면서도 속초함이 미확인 물체를 포착할 때까지 기다렸다는 말은 앞뒤가 맞지 않는 거짓이다. 자기들의 해명이 어설픈 거짓말로 드러나자 당황한 공군작전사령부는 천안함이 침몰한 뒤에도 “북한 공군의 특이동향이 포착되지 않아” 조종사들을 전투기 좌석에 대기시킨 상태로 오후 10시 40분까지 출격을 미뤘다는 또 다른 해명을 내놓았다. 그러나 2009년 10월 백령도 방공기지에서 새떼를 인민군 전투기로 오인해 벌컨포를 쏘았을 때, 공군작전사령부가 즉각 전투기를 출격시킨 사례를 보면, 인민군 공군의 특이동향이 나타나지 않아 전투기를 출격시키지 않았다는 것도 말이 되지 않는 소리다.

합참이 1시간 18분 동안 전투기 출격명령을 내리지 않고 늑장을 부린 이유는, 백령도 인근 상공을 뒤흔든 굉음이 인민군 스텔스 전투기가 음속을 돌파할 때 발생시킨 음속폭음이라는 긴급정보를 주한미국군 작전정보국으로부터 받았기 때문에 즉각적인 출격명령을 내리지 못한 것으로 보인다. 비행 중에 조종사의 육안으로 아무 것도 보이지 않는 야간에 한국군 전투기들이 전투기 레이더에 잡히지 않는 스텔스 전투기를 상대할 수 없기 때문에 출격하지 못하였을 것이다.

인민군 잠수함 출현을 예상한 고강도 대잠경계작전

<국민일보> 2010년 4월 5일부 관련기사는, 2010년 3월 26일 밤 서해 접적해역에서 작전 중이던 2함대사령부 경비함대가 “북한의 서해 잠수함 기지를 모두 감시할 수 있는 위치에 포진”하고 있었다고 하였는데, 그러한 보도는 정확하지 않다. 왜냐하면 인민군 잠수함 기지를 감시하는 것은 미국군 첩보위성이나 고공정찰기이지 한국군 전함이 아니기 때문이다. 한국군 전함에는 인민군 잠수함 기지를 먼 거리에서 감시할 원격탐지장비가 설치되어 있지 않다. 그러므로 사건 당일 2함대사령부 경비함대는 인민군 잠수함기지를 감시한 것이 아니라, 북방한계선(NLL)을 넘어 남하하는 인민군 잠수함을 수색하거나 또는 이미 남하했을지도 모르는 인민군 잠수함을 수색하는 대잠경계작전을 벌이고 있었다고 해야 이치에 맞는다. 2010년 4월 8일 김태영 국방장관은 국회 대정부질문에 대한 답변에서 천안함 침몰 당시 대잠헬기(Super Lynx)와 대잠초계기(P-3C)를 현장에 출동시켰다고 말했는데, 이것은 2함대사령부 경비함대의 대잠경계작전에 대잠헬기와 대잠초계기까지 동원되었음을 말해준다. 2010년 4월 9일 합참 정보작전처장 이기식 준장은 천안함 침몰 당시 대잠헬기 2대가 현장에 출동하였다고 밝혔다.

2010년 3월 26일 밤, 2함대사령부가 서해 접적해역에서 전함 14척, 대잠헬기 2대, 대잠초계기 1대를 동원한 고강도 대잠경계작전을 전개한 까닭은, 인민군 잠수함이 한미연합함대의 해상북침연습 상황을 정찰하기 위해 접근하는 경우 서해 5도 해역을 지나갈 것으로 판단하였기 때문이다. 이전에 2함대사령부는 인민군 경비정의 북방한계선 월선을 차단하기 위해 전함들을 서해 접적해역에 배치하였고, 그러한 전투배치상황에서 실제로 치열한 교전을 벌인 적도 있다. 그런데 이번 작전상황은 달랐다. 2함대사령부는 인민군 경비정의 월선을 차단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인민군 잠수함의 정찰을 차단하기 위해 전함들을 배치한 것이다. 이처럼 고강도 대잠경비작전이 전개되고 있었으므로, 만일 인민군 잠수함이 서해 접적해역에 나타나면 교전은 불가피하였다.

인민군 잠수함이 3월 26일 밤 서해 접적해역에 나타났다는 확실한 물증은 침몰한 천안함 선체를 인양하여 분석해 봐야 나타나겠지만, 인민군 잠수함이 한미연합함대의 해상북침연습 상황을 정찰하였을 것으로 보는 심증은 확실하다. 만일 인민군 잠수함이 백령도 인근에서 전개된 한미연합함대의 해상북침연습 상황을 정찰하였다면, 그 잠수함은 인민군 8전대사령부가 작전배치한 잠수함이 아니라 인민무력부 정찰총국에 소속된 정찰 잠수함이었을 것이다.

미국군 첩보위성과 고공정찰기는 인민군 잠수함이 어느 지하잠수함기지를 들고 나가는지 알지 못한다. 어느 나라에서나 잠수함은 최고 비밀병기이므로 잠수함 전력에 대한 정보는 외부에 거의 유출되지 않지만, 잠수함 전력이 군사력의 중추라는 사실은 명백하다. 인민군 잠수함이 얼마나 위력적인 비밀병기인지를 논하면 글이 길어지므로, 다음 기회로 미룬다.

만일 2010년 3월 26일 밤 서해 접적해역에서 한국군 전함과 인민군 잠수함이 교전을 벌였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교전상황에서는 상대를 먼저 탐지한 쪽이 선제공격을 가하기 때문에, 탐지능력이 공격과 피격을 가르는 결정적인 요인으로 된다. 그런데 해수면에서 항해하는 수상함이 바닷속에서 은밀히 기동하는 잠수함을 발견하는 것은 매우 힘들며, 더욱이 스텔스 잠수함인 경우에는 음파탐지기가 무용지물이 된다. 반면에, 수상함은 디젤엔진과 추진기에서 나는 큰 소음을 바닷속 멀리까지 울리며 자기 위치를 노출하기 때문에, 잠수함이 40-50km 밖에서 수상함을 발견하는 것은 쉬운 일이다. 인민군이 스텔스 전투기를 보유하였으니 당연히 스텔스 잠수함도 보유하였을 것이다.

이런 맥락에서 보면, 한국군 전함과 인민군 스텔스 잠수함이 서해에서 조우하는 경우 한국군 전함이 매우 위험한 피격상황에 빠지는 것은 불가피하다. 정찰 잠수함은 전투 잠수함에 비해 무장이 약하겠지만, 그렇다고 해도 정찰 잠수함이 수상함을 어뢰로 공격할 능력은 충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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