곽동기 (한국민권연구소 상임연구원)

북한경제에 대한 각종 소식들이 줄을 잇는 가운데 북한화학공업에서 또 하나의 새로운 소식이 들리고 있다. 북한의 “2.8 비날론 연합기업소”가 개건현대화를 마치고 생산에 들어갔다는 것이다.

<노동신문>은 2월 11일자 사설에서 북한의 2.8 비날론 연합기업소 현대화를 두고 “강성대국건설에서 이룩된 또 하나의 위대한 승리, 온 나라의 대경사”라고 격찬하였다. 3월 6일, 이 기업소가 위치한 함경남도 함흥시에서는 기업소 준공 경축 10만 군중대회가 열렸으며 이 자리에는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직접 참석하였다고 한다.

비날론은 무엇이며 또 2.8 비날론 연합기업소는 무엇인가? 보수언론조차도 북한의 비날론 산업에 지대한 관심을 보이는 현 시점에서 북한경제의 오늘을 이해하려면 비날론 공업에 대한 이해가 필요하다고 할 것이다.

북한화학공업의 중추 2.8 비날론 연합기업소

북한이 비날론 연합기업소에 역량을 상당히 집중하고 있는 이유를 알기 위해서는 석유가 아니라 석탄에 기초하고 있는 북한산업 특성에 대한 이해가 먼저 있어야 한다. 북한은 외부로부터 수입에만 의존해야 하는 석유보다 자체 매장량이 풍부한 석탄에 기초한 공업을 중시해왔으며 이는 화학공업에서도 예외가 아니다.

일반적으로 석유를 원료로 하는 합성섬유와 달리 비날론은 석탄과 석회석을 그 원료로 섬유를 뽑아낸다. 석탄과 석회석은 한반도 지층에 무진장하게 널려있는 자원이다. 석회암 지대인 한반도는 석회석이 풍부하기로 유명한데 북한에는 약 1000억 톤에 달하는 석회석이 매장되어 있으며 석탄도 200억 톤에 달해 그야말로 대를 이어 캐고 또 캐어도 끝이 없을 지경이다. 비날론은 원료와 더불어 기타 제조공법에서 외부에 의존할 필요가 전혀 없기 때문에 김일성 주석은 비날론 공업을 두고 완전한 우리의 주체적 공업이라 하였다.

비날론 연합기업소는 석탄으로부터 각종 화학공업의 원료물질을 뽑아내는 단계를 포함하고 있다. 이는 곧 석유산업에서 정유화학공장이 차지하는 역할과 유사한 것이다. 정유공장은 석유를 기반으로 하는 각종 고분자 물질 합성원료를 정제하는 것을 포함하므로 모든 석유화학공업의 기초가 된다. 그러하기에 정유공장의 설비는 곧 화학공업 능력을 나타내는 척도와 같다.

북한도 물론 각종 차량을 움직이기 위해서는 석유가 필요한 바 정유시설을 운용하고 있다. 그렇다고 해서 북한은 화학공업 일반을 석유화학에 의존한 것이 아니다. 즉 북한의 정유시설만 가지고 북한의 화학공업 수준을 판단하는 것은 앞뒤가 맞지 않는다. 북한은 석유가 아니라 석탄을 중심으로 한 화학공업 체계를 구축하였다. 2.8 비날론 연합기업소는 석탄에서 각종 화학공업 원료물질을 뽑아내는 중추와 같아 이는 마치도 석유공업의 정유공장과 그 역할이 같다고 할 수 있다.

2.8 비날론 연합기업소의 규모

2.8 비날론 연합기업소는 규모 면에서 국내 굴지의 정유공장들과 어깨를 견줄 만하다. <노동신문>은 2.8 비날론 연합기업소의 모든 공정 배관을 다 이으면 지구를 두 바퀴 돌 정도로 거대한 규모라고 강조하였다. 이 경우 총 배관 길이는 약 8만 km가 된다. 물론 석탄산업과 석유산업을 단순 비교할 수는 없지만 울산현대정유공장의 총 배관설비가 약 30만km 규모라는 것과 비교한다면 2.8 비날론 연합기업소의 규모를 짐작할 수 있다.

울산현대정유공장의 공장부지는 250여만 평으로 여의도 면적의 3배에 달하며 하루 원유 처리능력이 83만 배럴이라고 한다. 이를 통해 산출하면 2.8 비날론 연합기업소는 그 크기가 여의도만한 면적을 아우르는 대규모이며 공정설비 역시 하루 27만 배럴의 원유를 처리하는 것과 맞먹는 대규모 산업공단이라고 할 수 있다.

북한은 이번 2.8 비날론 연합기업소의 복구를 단순 복구가 아니라 CNC 기술에 의한 현대화라고 강조한다. 방대한 생산설비가 중앙통제실의 컴퓨터 제어에 따라 정확히 조종되고 이를 통해 생산의 자동화를 구현하였다는 것이다. 독성이 많은 화학제품의 생산공정이 자동화되었다면 해당 기업소 노동자들은 유해노동으로부터 완전히 벗어났다고 볼 수 있다.

북한 비날론 공업의 역사

2.8 비날론 연합기업소는 1961년 5월에 준공된 북한의 화학공업기지이다. 여기서는 합성섬유인 비날론을 생산한다. 비날론은 일반적인 합성섬유와 달리 석유로부터 원료를 얻는 것이 아니라 석탄과 석회석으로부터 원료를 얻는다. 또한 목화섬유인 면과 성능이 가장 비슷하다는 것이 장점으로 거론된다.

김일성 주석은 비날론의 이름도 기존의 “폴리비닐알콜계 섬유”라고 어렵게 부를 것이 아니라 우리 조상들이 베짜기를 할 때 날실, 들실이라고 말하던 것을 유래로 하여 우리 맛이 나게 비날론이라고 부르자고 제안하였다고 한다. 북한은 비날론 섬유를 두고 주체섬유라 부르고 있다.

비날론은 북한의 국보급 과학자인 이승기 박사가 1939년에 개발한 합성섬유이다. 이승기 박사는 우리 민족으로는 일본에서 최초로 공학박사 학위를 받은 과학자이며 교토 제국대학 교수까지 역임하였다. 해방 후 이승기 박사는 서울대학교 교수로, 1949년에는 공대 학장을 지내기도 하였지만 한국전쟁을 계기로 월북하여 북한의 화학공업을 발전시키는데 평생을 바쳤다.

2.8 비날론 연합기업소는 이승기 박사의 비날론 연구결과에 의거해 건축한 비날론 합성섬유 생산공장이다. 당시 이 기업소는 연간 2만 톤의 생산능력을 갖추었다고 한다. 당시 남측은 아직 봉제, 가발 수준의 노동집약산업도 자리 잡지 못하던 절대빈곤의 상황이었음을 감안한다면 당시 북한의 대규모 화학공장 건설은 놀랍다. 북한당국은 당시부터 비날론 공장 건설에 국가적 역량을 투입하였음을 집작할 수 있다. 2월 11일 <노동신문>은 당시 김일성 주석은 “모든 것을 비날론 공장 건설에로!”라는 구호를 제시하며 비날론 생산설비 건설을 독려할 정도였다고 한다.

2.8 비날론 연합기업소는 향후 생산능력을 연간 5만 톤 수준까지 확장하였으나 1990년대 중반 경제난이 중첩되던 시기 공장가동이 중단되고 말았다. 재일 <조선신보>는 1990년대 후반 “고난의 행군” 시기에 원료와 자재, 전력난으로 기업소의 모든 공정이 숨을 죽이고 말았다고 한다. 그러나 이후 기업소 일꾼들은 공장재개를 위해 노력하였고 이는 2003년 8월, 소다직장을 현대화하였으며 이후 염화비닐직장도 현대화하는 성과를 내게 되었다.

그리하여 2007년 8월 6일,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2.8 비날론 연합기업소를 현지지도하였다. 이 시기는 북한이 내세웠던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삼복철 강행군” 기간이었다. 2년 6개월 후인 2010년 2월, 북한은 비날론의 원료물질인 초산공정을 정상화함으로써 핵심원료인 카바이드 생산을 정상화, 비날론의 전체 생산체계를 완전복구할 수 있게 되었다.

비날론, 돌에서 뽑아낸 '주체섬유'

그럼 비날론은 어떻게 만들어지는가.

비날론의 초기 원료는 한반도 석회암 지층의 기본광물인 석회석(CaCO3)이다. 이 석회석을 공기가 차단된 상태에서 석탄으로 가열하면 이산화탄소(CO2)가 제거되면서 생석회(CaO)가 만들어진다. 그 반응식은 다음과 같다.

CaCO3 → CaO + CO2

이렇게 얻어진 생석회(CaO)는 석탄(C)과 만나 카바이드(Calcium carbide : CaC2)를 만드는데 이 카바이드는 화학공업의 귀중한 원료물질인 아세틸렌(Acetylene : HC≡CH)을 합성하는 귀중한 원료이다. 카바이드를 물(H2O)과 함께 반응시키면 아세틸렌 가스와 더불어 수산화칼슘(Ca(OH)2)이 얻어지는 것이다.

CaO +3C → CaC2 +CO
CaC2 + 2H2O → HC≡CH + Ca(OH)2

이렇게 얻어진 아세틸렌 가스는 황산(H2SO4), 황산수은(HgSO4) 등을 촉매로 다시 한 번 물과 반응시키면 물과 합쳐지면서 비닐알콜(vinyl alcohol : H2C=CHOH)을 만들게 된다. 이 비닐알콜을 고분자 형태로 중합반응을 시키게 되면 폴리비닐알콜(poly vinyl alcohol : -(H2C-CHOH)n-), 즉 비날론이 얻어지는 것이다. 결과적으로 석회석과 석탄, 물만 있으면 비날론을 얼마든지 만들 수 있게 된다.

면과 가장 가까운 합성섬유, 비날론

비날론(-(H2C-CHOH)n-)은 물(H2O)과 비슷한 (-OH)를 많이 보유하고 있기 때문에 물을 잘 빨아들여 면과 가장 가깝다. 또한 합성수지 성형 시 매우 가늘게 사출할 수 있으면서 동시에 강도가 강해 솜의 형태로도 기능이 우수하여 각종 천과 겨울용 의복을 대체할 우수한 직물원료로 평가받는다.

비날론에 단점이 있다면 그것은 제조공정에서 상대적으로 많은 에너지를 필요로 한다는 점이다. 석회석에서 생석회를 얻는 과정은 매우 높은 열을 요구하며 이후 카바이드 생산 공정 역시 상당량의 에너지를 요구한다. 또한 화학적 특성이 너무나 안정하여 색깔을 가진 착색염료와 반응하지 않아 염색이 힘들다는 단점이 꼽히고 소재가 채 마르지 않은 상황에서 다리미질을 하게 되면 누렇게 변색될 가능성도 있는데, 이 정도가 제품물질 상 비날론의 단점이라 할 수 있다.

그 결과 비날론은 오래 전 합성되었으며 우수한 성질을 가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의복체계에서는 가격 면에서는 폴리에스테르계열 섬유에, 품질 면에서는 목화섬유와 양모섬유에 밀려나 최근에는 높은 물리화학적 특성을 활용한 특수기능성 소재로 널리 이용되어왔다.

다만 비날론 산업은 석유공급이 아직 원활하지 못한 북한에서는 천연섬유의 생산한계를 풀어줄 결정적 고리로 인식되고 있다. 더욱이 비날론 산업은 섬유뿐만 아니라 각종 다양한 중간생성물도 석탄으로부터 뽑아낼 수 있어 북한 화학공업의 기초를 이루고 있다. 즉 2.8 비날론 연합기업소의 생산시작은 북한의 의류산업을 뛰어넘어 북한 화학공업 전반을 크게 뒤바꿔 놓을 거대한 사변이라 칭할 수 있다.

비날론 산업의 중간생성물

비날론 산업은 화학공업의 기초물질인 아세틸렌 가스로부터 합성을 시작하기 때문에 이 아세틸렌 가스를 적절하게 이용함에 따라서 여러 가지 합성수지와 기타 화학물질들을 자유자재로 만들어낼 수 있다.

일례로 아세틸렌 가스를 염산(HCl)과 반응시키게 되면 염화비닐(vinyl chloride : HC=CHCl)이 얻어지고 이것을 중합반응시키면 플라스틱의 대표적 물질인 폴리염화비닐(PVC : poly vinyl chloride)을 얻을 수 있다. 그리고 아세틸렌을 물과 반응시켜 만든 비닐알콜, 즉 아세트 알데히드(acetaldehyde : CH3CHO)를 중합반응을 거치지 않고 그 단계에서 산화시키면 아세트산(acetic acid : CH3COOH)이 얻어지는데 이 역시 경공업의 중요원료가 되는 초산이다. 이 아세트산(CH3COOH)을 다시 아세틸렌(HC≡CH)과 반응시키면 초산비닐(vinyl acetate : CH3COOCH=CH2)이 얻어지고 이를 다시 중합반응시키면 아세트산 비닐 수지(poly vinyl acetate)를 얻을 수 있다. 이 아세트산 비닐 수지는 도료나 접착제 등으로 사용할 수 있다.

또한 이들 중간생성물들과 부산물들은 비료의 훌륭한 원료가 된다. 생석회나 수산화칼슘은 산성토양을 중화하고 비료성분흡수력을 증가시키는 역할을 하는 석회질 비료의 원료로 사용될 수 있다. 그리고 중간생성물인 아세트알데히드를 요소와 반응시키면 비료효과가 서서히 발휘되는 완효성질소비료인 CDU를 만들 수 있다. 2.8 비날론 연합기업소가 흥남비료공장 인근에 위치하고 있는 것이 우연이 아닌 것이다.

여기에 추가적인 화학반응을 진행하면 여러 가지 비슷한 계통의 유사물질의 합성도 가능하다. 일례로 수산화칼슘(Ca(OH)2)을 탄산나트륨(Na2CO3)과 반응시키면 비누, 표백제의 주요성분인 수산화나트륨(NaOH)을 얻을 수 있다.

그야말로 합성섬유, 합성수지, 비료, 농약, 페인트 등 화학공업 전반을 아우를 수 있는 생산물들이 만들어지게 되는 것이다. 북한 <노동신문>은 2.8 비날론 연합기업소를 두고 “비날론, 카바이드, 가성소다, 염화비닐, 물감, 농약, 염산, 역체염소, 표백분, 증조, 염화바륨, 염화칼슘, 초산, 알콜, 가소제, 초산비닐” 등 420여종의 화학물질을 생산한다고 보도하였다. 북한화학공업 전반이 생산증대를 이룰 수 있는 고리를 해결한 것이다.

의식주 변화를 가져올 비날론 생산 정상화

북한화학공업의 중추인 비날론 연합기업소가 정상화되었다는 것은 석탄을 중심으로 하는 북한 화학공업이 정상화의 궤도에 진입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화학공업은 합성섬유뿐만 아니라 비료와 농약 등 농업원료를 생산하고 합성수지(플라스틱), 페인트 등 주민생활에 직결되는 각종 경공업 제품원료를 생산한다.

비날론 연합기업소가 정상화되고 그 생산량을 계속 늘려나간다면 북한 주민생활은 경제경공업 제품을 공급받는 측면에서 크게 향상될 것으로 전망된다.

먼저, 의복 공급량이 크게 늘어난다. 연간 비날론 생산량이 5만 톤이라면 이는 북한 주민 1인당 약 2kg의 비날론을 공급할 수 있다는 것으로 된다. 이는 북한 주민 모두에게 두툼한 겨울철 외투를 지급할 수 있는 양이며 아니면 10수벌의 얇은 옷을 공급할 수 있는 양이다. 의식주(衣食住) 가운데 옷 의(衣)가 해결되는 것이다.

또한, 비료와 농약 생산이 크게 늘어나서 북한농업 생산량이 증대되어 쌀을 비롯한 주식곡물 생산량이 크게 늘어나게 된다. 또한 수많은 생산물 가운데 하나인 가성소다, 초산 등은 정제할 경우 식료품을 생산하는 경공업 원료로 전환이 가능하다. 의식주에서 의(衣)에 그치지 않고 먹을 식(食)까지 해결될 수 있는 것이다.

북한은 부수적인 생산물로 비날론 연합기업소에 물감공장을 설립하였다고 한다. 이는 두 가지 의미를 가지는데 하나는 염색이 잘 안 된다는 비날론 섬유의 염색 가능성을 연다는 것과 더불어 건물외장에 채색할 페인트를 대량생산할 수 있는 단계로 접어든다는 것을 생각할 수 있다. 건축용 도료를 대규모로 생산한다면 북한주민들이 거주하는 집의 모습이 크게 달라질 수 있다. 의식주(衣食住) 가운데 옷 주(住)마저도 해결되는 것이다.

인구 100만 명 내외인 함흥시에서 10만 군중대회가 열렸다는 것은 비날론 생산체계 정상화가 북한주민들의 생활을 뒤바꿀 전환적 의의가 있기에 가능한 것이다.

북한의 비날론 생산체계 정상화는 전력과 석탄, 금속, 철도 등 북한당국이 강조하는 “인민경제 4대 선행부문”이 일정한 자기역할을 하고 있기 때문에 가능하다고 볼 수 있다.

북한은 올해 공동사설 첫 머리에 “인민생활의 결정적 전환”을 적시하였고 연초부터 각종 경제성과를 발표함과 동시에 함흥에서 10만 군중대회를 개최하였다.

북한경제는 올해 어떠한 궤적을 그려나갈 것인가. 보다 전면적이고 광범위한 북한경제연구가 절실한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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