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름만 들어도 가슴이 울컥거리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재독 음악가 윤이상(尹伊桑 1917∼1995) 선생도 그중의 한 사람이 아닐까 합니다. 그가 세계적인 음악가인 때문이기도 하지만 그보다는 전 생애에 걸쳐 분단의 아픔을 고스란히 간직했기에 그렇습니다. 사실 그는 남북이 함께 기릴 수 있는 보기 드문 인물입니다.

그의 음악의 바탕에는 고향인 통영의 바다가 있습니다. 그는 살아생전에 고향에 와 보는 게 꿈이었습니다. 1967년 중앙정보부가 조작한 동베를린 간첩단 사건에 연루돼 구속되었고, 국제사회와 독일정부의 도움으로 석방된 뒤 언제고 고향앞 바다를 보는 게 소원이었으나 역대 정권은 그에게 사죄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남측 정부와 타협하지 않았기에 고향에 올 수가 없었습니다. 오죽했으면 그가 한때 부러 배를 타고 일본을 거쳐 통영 앞바다를 지나치면서 고향땅을 바라봤을까요.

그는 루이제 린저와의 대담에서, 어린 시절 부친과 함께 밤중에 통영 앞바다로 고기를 낚으러 배를 탔다가는 고기가 뛰는 소리와 다른 어부들의 노랫소리에 귀를 기울이다가 이윽고 그 노랫소리가 사위로 울려 퍼지자 “바다는 공명판 같았고 하늘에는 별이 가득 차 있었지요”라고 회상합니다. 그의 음악의 모태가 이때 싹텄음을 짐작할 수 있습니다. 그에겐 고향인 통영과 그 앞바다가 한(恨)이자 음악이자 아버지이자 조국이었던 셈입니다.

결국 그는 살아서는 물론 죽어서도 고향땅을 밟지 못했습니다. 그런데 최근 그의 흉상(胸像)조차 고향행이 허락되지 않고 있습니다. 이유인즉, 통영시가 윤이상기념사업의 일환으로 지난해 통일부의 허가를 받아 추진해온 북한에서 제작한 윤이상 흉상 반입이 국가정보원의 반대로 사실상 무산될 위기에 처해있다는 것입니다. 북한에서 온 흉상은 지금 7개월째 인천세관 보세창고에 유치돼 있다고 합니다. 윤이상 선생은 살아서 중앙정보부의 조작으로 간첩 누명을 썼는데, 죽어서도 그 후신인 국정원의 만행으로 흉상조차 통영땅을 밟지 못하는 비극에 비극을 겪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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