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8일, 방북 중인 왕자루이 중국 공산당 대외연락부장이 함경남도 함흥까지 찾아가 김정일 국방위원장과 면담을 했습니다. 이때 김 위원장은 2.8비날린연합기업소를 이틀간 요량으로 현지지도 중이었습니다. 대개의 언론들은 왕 부장의 이번 방북을 6자회담 재개 유무에만 초점을 맞췄습니다. 과거 왕 부장이 방북시에도 김 위원장을 만나 6자회담과 관련한 의미 있는 멘트를 받아온지라, 이런 판단이 지나친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이번에는 그것만이 아닌 듯합니다. 김정일-왕자루이 면담을 보면 몇 가지 북측의 대외 메시지를 읽을 수 있습니다.

먼저, 6자회담입니다. 그런데 이번 면담 자리에 북핵문제와 대미외교를 총괄하는 강석주 외무성 제1부상이 참가하지 않았습니다. 이번 면담이 6자회담에만 제한되지 않는다는 메시지입니다. 김 위원장도 “한반도의 비핵화를 실현하겠다”면서 “북핵 6자회담을 재개하려는 유관 당사국들의 성의 있는 노력이 매우 중요하다”며 당사국들의 진정성을 강조했습니다. 여기서 ‘성의 있는 노력’이란 유엔의 대북 제재 해제를 의미합니다. 미국측이 해제를 안했으니 6자회담 개최가 당분간 무망하다는 메시지입니다. 하지만 6자회담 수석대표인 김계관 부상이 9일 왕 부장의 귀국에 맞춰 같은 비행기를 이용해 방중한 것은 6자회담의 불씨가 살아있다는 메시지이기도 합니다.

이번 면담에는 김정일 위원장의 중국방문 문제도 들어 있습니다. 왕 부장은 김 위원장에게 후진타오 주석의 구두친서를 전달했습니다. 후 주석은 친서에서 “한반도의 핵 문제를 적절하게 처리해 한반도와 동북아시아의 평화와 안정을 수호해야 한다”면서 아울러 “편리한 시기에 중국을 방문해 달라”고 김 위원장의 방중을 재차 초청했습니다. 신년 초부터 강력하게 나돌던 김 위원장의 방중 문제가 다시 탄력을 받게 되었습니다.

다소 의외이지만 이번 면담에는 북한의 경제와 관련한 내용이 들어있습니다. 김 위원장은 왕 부장에게 “북한의 국내 경제는 전체적으로 좋은 방향으로 발전하고 있다”고 밝혔습니다. 이어 “몇 년 간의 노력을 통해 철강, 기계, 광업 등 분야의 생산이 활발하게 이뤄지고 있다”고 소개하고는 “북한 주민은 신년사설의 요구에 따라 각종 조치를 통해 경공업과 농업에서의 획기적 발전을 도모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고 말했습니다. 이때 김 위원장이 현지지도 중인 2.8비날린연합기업소는 올해 신년공동사설의 핵심인 ‘인민생활 향상’과 불가분의 관계에 있습니다. 김정일 위원장은 왕자루이 부장을 비날린공장이 있는 함흥에까지 불러 대외적으로 6자회담과 방중 문제 못지않게 북한의 ‘발전하고 있는’ 경제현실을 알리고자 했을지도 모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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