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술국치 100년인 2010년 새해를 맞아 한.일 '진보진영'이 일본 과거사 청산과 동북아 평화, 반(反)신자유주의를 과제로 머리를 맞댔다.

11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 의원회관의 한 회의실에는 '한일 진보진영 공동정책토론회'라고 적힌 현수막 아래 20여명의 한.일 진보단체, 정당인사들이 원탁테이블에 둘러앉아 4시간에 걸쳐 열띤 토론을 벌였다.

'싸우는 제3극을 만드는 긴키회의'(이하 긴키회의) 소속으로 전국항만노동조합 등 일본 내 진보적 단체에서 활동하는 있는 인사들과 한국진보연대, 한국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 전국농민회총연맹 등 한국 진보단체 소속 인사들이다. 정당에선 긴키회의가 배출한 일본 사민당 핫토리 료오이치 중의원 의원, 기카가미 아키히토 가와니시 시의원, 민주노동당 강기갑 대표, 이영순 최고위원 등이 참석했다.

▲ '한.일 진보진영 공동정책토론회' 가 11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 의원회관 128호실에서 열렸다. [사진-통일뉴스 조성봉 기자]

일본 대표단의 이번 방한(10-13일)은 일본 진보단체 인사들이 한국의 경험을 통해 자국의 진보 정당운동을 발전시키고자 방문을 요청한 데 따른 것이다. 대표단의 중심축인 긴키회의는 오키나와 등 긴키지역을 중심으로 "2대 보수정당 체제에 대응할 수 있는 세력(제3극)을 만드는 목표"로 구성된 시민사회단체로 신자유주의와 미국의 군사패권, 일본의 군국주의에 반대하고 생명.인권, 평화.민주주의 등을 정치적 지향점으로 삼은 개인들이 모인 조직이다.

◇ 경술국치 100년, 한일 연대 한목소리 = 이날 토론회에 모인 한.일 진보진영 인사들은 일본 과거사 청산과 동북아 평화, 반(反)신자유주의를 위해 적극 연대해 나가야 한다는데 한목소리를 냈다.

이강실 한국진보연대 상임대표는 "정치, 경제, 군사, 문화 등 모든 분야에서 미국의 정책에 한.일이 함께 반대해야 한다. 모든 형태의 침략전쟁과 패권주의에 반대하고 국제 평화세력과 연대해서 동북아 세계평화를 실현해야 한다"며 "노동자, 농민, 서민 등 민중의 삶을 양극화로 내몰으는 신자유주의도 반대해야 한다. 한일 뿐 아닐 세계 진보세력과 연대도 강화하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영순 민주노동당 최고위원은 하토야마 유키오 총리가 밝힌 '동아시아 공동체 구상'과 관련해 "가장 중요한 것은 한반도 평화가 전제되지 않으면 동아시아 공동체는 현실화 되기 어렵다"면서, 이 구상이 실현되기 위한 전제조건은 △탈미 △일본 과거사 청산 △한반도 평화 등을 꼽았다. 아울러 "시민사회단체 등 민간의 역할이 중요하다"며 "동아시아 공동체 구상이 선언에 그치지 않고 실질적 조치가 이뤄져 나가기 위한 시민사회 각계의 노력이 확산되지 않으면 안 된다"고 강조했다.

이날 토론회에선 올해가 경술국치 100주년이 된 해인만큼 일본 과거사 청산의 중요성이 특히 강조됐다. 한국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 윤미향 상임대표는 "일제 강점 100년을 맞이하는 올해 과거사 청산을 위한 활동에 어떻게 연대할 지 적극적으로 토론돼야 한다"며 "동아시아 공동체 형성을 위해서 일본의 과거사 청산이 꼭 이뤄야 할 전제라고 생각한다면 모두가 참여하는 네크워크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한국 진보진영 인사들의 이같은 목소리에 일본 측 인사들도 적극 공감했다.

야마모토 가주히데 전국항만노동조합 오사카지부 서기장은 "일본의 대중운동도 각각 투쟁하고 있지만, 한국처럼 10만, 20만 군중이 나와 집회를 하는 역동적인, 정치를 움직은 수준까지는 대중운동이 성장하고 있지 않다"며 "노동자들의 생활을 좋게 하고 사회상황을 변화시키는 운동을 이어내 통일전선을 구축해 한국진보연대와 같은 역할을 수행해 일본에서 변화가 생기길 바란다"고 말했다.

기계공장 노동조합 위원장을 지내고 시민운동에도 몸 담는 등 사회운동을 하다 지난 8월 중의원 선거에서 당선된 핫토리 료오이치 사민당 중의원 의원은 "일본이 제국주의 전쟁을 가한 것을 청산하지 않고는 동아시아 공동체는 꿈에 지나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역사문제, 평화문제를 둘러싼 한.일 공동행동이 대단히 중요하다"고 말했다.

하토야마 정권 출범 후 미.일관계 최대의 갈등 사안인 주일미군 후텐마 비행장 기지이전 문제와 관련한 일본 내각 내 '오키나와 기지 검토 위원회' 위원 6명 중 1인인 핫토리 의원은 "올해 5월까지 후텐마 기지 이전 문제를 매듭짓는 목표로 논의를 진행 중에 있다"며 "이 문제는 연립정권을 유지할 수 있는가, 일본이 대미 관계에서 자립적 태도를 견지할 수 있는가, 아시아 중시 외교정책을 전개할 수 있는가를 가늠짓는 문제로 생각하고 있다"고 중요성을 강조했다.

또한 "일본의 보수세력은 북의 위기를 얘기하고 납치문제를 주장하고, 이를 통해 군사력을 강화하는 방향으로 기조를 잡아왔다"면서 "사민당은 미국의 이라크, 아프간 침략 과정을 볼 때 군사적 수단을 가지고는 평화가 올 수 없다는 것을 확신했다. 일본이 재군비를 하는 방향을 통해서가 아니라 헌법 9조를 통해 평화국가로 거듭나게 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선 새로 탄생한 정권을 리드 할 수 있는가가 갈림길이 될 것"이라고 밝혔다.

일본 '아이 여성회의 오사카' 나가히사 무쭈코 대표는 "1991년부터 아시아의 평화와 여성의 역할을 주제로 일본과 남북한의 여성들이 모이는 국제심포지엄을 개최했다"며 "남과 북, 일본으로 각각 찢기듯 흩어져 살았던 여성들이 처음 한자리에서 껴안고 눈물을 흘리는 모습을 보고 일본이 가했던 책임이 얼마나 무서운지 통감했다"고 일본 과거사 문제에 대한 공감을 표했다. 한국의 노동운동과 민주화 운동을 일본 내에 전파하는 활동을 하기도 한 나가히사는 "일본과 한국 모두에게 국치 100년, 중요한 매듭을 만들어야 하는 2010년에 공동행동을 만들어 나가야 한다는 제기가 있다. 현재까지 전개돼 왔던 다양한 운동들이 하나가 될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하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 경술국치 100년을 맞은 2010년 한.일 진보진영의 연대가 어떻게 이뤄질 지 주목된다. [사진-통일뉴스 조성봉 기자]

◇ 한.일 진보진영 연대 본격화 움직임 = 한국진보연대는 앞선 1월 7일부터 9일까지 일본을 방문해 일본 내 진보적 단체들과 연대를 위한 토대를 쌓고 왔다. 이번 일본 대표단의 방문은 일본 측의 요청에 따른 것으로, 이같은 한.일 진보진영의 연대를 본격화 하는 것의 일환으로 볼 수 있다. 

경술국치 100년을 맞아, 한.일 양국 내 진보진영은 네트워크를 구축해 연대를 본격화 할 계획이다. 한충목 한국진보연대 공동대표는 "도쿄와 오사카에 있는 진보진영에서 제기한 여러가지 내용들에 대해 이달 23일부터 1박 2일간 진행되는 진보연대 전국 활동가 포럼에서 논의하겠다"며 "한.일 진보진영 네트워크를 어떻게 이뤄나갈 지 나름의 제안을 하겠다"고 일본 대표단에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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