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일 오후 '용산참사'와 관련해 수배를 받고 있던 박래군, 이종희 용산범대위 공동집행위원장, 남경남 의장이 경찰에 자진출두했다. [사진-통일뉴스 조성봉 기자]

"형..래군이 형, 조심히 다녀오세요. 사랑해요."
"의장님, 힘내세요. 건강 조심하시구요."
"종회 동지, 나와서 봅시다. 고마웠어요"

11일 오후, 서울 명동성당 앞에서 짧은 '작별식'이 열렸다. 9개월여 동안 순천향병원과 명동성당에서 수배생활을 했던 박래군.이종회 용산범대위 공동집행위원장, 남경남 의장이 경찰에 자진출두를 약속한 바로 그날, 이들을 배웅하기 위해 100여 명이 모였다.

한결 표정이 밝아진 용산참사 유가족들을 비롯해 조희주.이수호 등 용산범대위 관계자들, 야4당 위원회의 김희철.이정희.유원일 의원 등 각계 인사들이 수배자들과 함께 명동성당 들머리에 섰다.

폭설에 내린 흰 눈이 들머리 양 쪽에 녹지 않고 쌓여 있었다. 지난해 겨울, 용산참사가 일어나고 용산범대위 활동을 주도하며 '용산 정국'을 이끌었던 주역들이 또다시 겨울의 한가운데 선 것이다.

대체로 여유로운 표정의 수배자들은 성당 앞에서 대기하고 있던 3~4대의 경찰 호송차에 타면서도 웃음을 지어 보였다. 배웅하러 나온 이들과 손을 잡으며 안부를 걱정했다. 박래군 공동집행위원장은 손을 들어보이며 배웅하는 이들에게 고마움을 표했다.

배웅하러 나온 이들은 수배자들이 각각 나눠탄 호송차를 에워싸고 유리창을 손바닥으로 두드리며 '마지막 인사'를 전했다. "건강하세요." "사랑해요." "고마웠습니다." "고생 많이 했습니다." "나와서 봐요."

눈시울을 붉히는 이들에게는 웃음으로 대신 인사를 건넸다. 9개월간의 오랜 수배생활이었지만, 작별식은 불과 30여 분이었다.

남경남 의장은 지난해 1월, 용산참사 이전부터 전철연 의장이라는 이유로 수배됐고, 이종회.박래군 공동집행위원장은 미신고 불법집회를 주도하고 일반교통방해 혐의 등을 이유로 그해 2월과 3월부터 경찰에 수배됐다.

'남겨진' 이들은 수배자들을 실은 차들을 향해 "열사의 염원이다. 반드시 승리하자", "구속자들을 석방시키고 책임자를 처벌하라"고 구호를 외치며, 오는 19일 용산참사 1주기를 기점으로 진상규명과 책임자 처벌을 위한 활동에 주력할 것이라고 뜻을 모았다.

박래군 "나올 때까지 용산을 지켜달라...
용산 4구역 가보지 못하고, 장례 참석 못해 아쉽다"

▲ "건강히 잘 다녀오겠습니다" 경찰 호송차량에 탑승한 박래군 집행위원장이 마지막으로 인사를 하고 있다.[사진-통일뉴스 조성봉 기자]

박래군 공동집행위원장은 기자회견에서 많은 이들에 대해 고마움을 전했다. 용산 범대위 식구들, 유가족들, 명동성당 관계자, 야4당 의원, 그리고 "가난하지만 아름다운 사람들"에게.

"1년 동안 고인들의 장례와 진상규명, 책임자 처벌을 위해 싸웠다. 아직 손에 쥔 것이 없다. 그러나 우리는 보았다. 국가의 야만적 폭력에 맞서 사람답게 살려고 했던 이들의 연대를. 용산의 마음을 잊지 않겠다. 가난하지만 아름다운 사람들의 연대로 여기까지 왔고 앞으로도 갈 것이다. 갇혀 있으면서도 따뜻한 정, 착한 사람들의 마음 느낄 수 있었다."

박 공동집행위원장은 "진상규명을 하고 살인적인 재개발 정책을 바꿔나가야 하는 짐을 여러분께 짊어지게 해서 죄송하다"며 "조사받으면서 더욱 단단해져서 돌아오겠다"고 말했다.

그는 "하나 아쉬운 것은 용산4구역에 열사들이 돌아가신 장소를 못 가본 것이 한스럽다. 또 호상인데 장례를 참석하지 못하고 인터넷 생중계를 보면 눈물을 흘렸던 것이 야속하다"며 "이 서럽고 야속한 것을 잊지 않겠다. 그때까지 용산을 지켜주시기 바란다"고 부탁했다. 수배자들은 용산범대위의 요구에도 불구하고, 지난 9일 장례식에 참석하지 못했다.

남경남 의장은 "아무런 잘못이 없는데도 죄인으로 둔갑시키고 조작수사하려는 검찰에 끌려간다. 그러나 10번, 100번 끌려가도 멈출 수 없는 것은 왜 용산참사가 일어났는지에 대한 진상규명"이라며 "나와서 진상규명을 밝히기 위한 투쟁의 대오에 설 것"이라고 밝혔다.

이종회 공동집행위원장은 "한 줌도 안 되는 가진 자들을 위한 재개발 정책에 저항한다는 것이 죄가 되고, 살려고 망루에 올라갔다는 것이 죄가 되고, 죽어서도 죄가 되는, 돌아가신 분들의 장례를 치르게 해달라고 거리에서 외치도 죄가 되는 나라가 이 나라"라고 지적하고는, "갇힌다고 해서 저희에게 죄를 계속 뒤집어씌울 수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며 "우리는 끝까지 싸울 것이기 때문"이라고 결의를 다졌다.

수배자들의 '마지막 인사'에 박수가 터져 나왔다. "자신들이 이 자리에서 할 수 있는 것은 손뼉이라도 치는 것 밖에 없다"는 안타까움이 명동성당 들머리 곳곳에 가득했다.

용산범대위는 기자회견문을 통해 "열사 장례식과 삼우제까지 장례와 관련된 공식 일정이 마무리된 만큼 그 과정에서 발생한 문제들을 일단락 짓고자 수배자 3인의 경찰 출두 약속을 지키게 되었다"며 "검찰과 경찰은 장례식을 마치고 출두하는 수배자 3인에 대해 신속하고 공정하게 수사해야 할 것"이라고 밝혔다.

이들은 "용산의 비극은 하루빨리 끝내야 할 과제"라며 "다음 주로 다가온 용산 철거민 열사 1주기를 다시금 용산의 비극을 끝내는 투쟁의 전기로 삼아 지속적으로 싸워갈 것"이라고 주장했다.

▲ 손을 흔들며 자진출두하는 용산참사 관련 수배자들을 격려하는 시민단체 회원들. [사진-통일뉴스 조성봉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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