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중가수로 유명한 박종화(46) 시인의 서예산문 '나의 삶은 커라'를 연재한다. 전남 함평의 한 산골마을에서 올라오는 박 시인의 산문과 서예작품은 매주 토요일 게재된다. / 편집자주

답답해서 강가에 나왔어요.
지겹기까지 한 억새풀들이 강변에서는 장관을 이루고 있습니다. 자신의 모습을 수채화로 그려줄 누군가를 기다리고 있다는 듯이 당당한 모습으로 바람을 따라 출렁이고 있네요. 억새가 이렇게 예뻐 보일 줄은 차마 몰랐습니다. 하기야 애정 어린 시선으로 쳐다 본 적이 단 한 번도 없는 나로서는 모르는 것이 당연하겠지요.

초겨울 찬바람이 쌉싸래하게 살결을 밀지만 따스운 햇살은 마치 봄볕 같습니다. 나그네들의 쉼터쯤 되는 강변 정자에는 잠시 쉬었다 가는 객들이 앉아서 먹을거리를 풀어놓고 이야기꽃을 피우고 있네요. 강변엔 강태공이 점점으로 보이구요. 바지를 걷어 올린 아저씨가 물속에서 투망을 부채처럼 펼쳐 보입니다. 재첩을 잡아 담는 아낙들의 허리도 바쁘게 움직입니다. 초겨울 강변이 생각보다는 꽤 바쁜 풍경을 연출하고 있네요.

마음이 답답할 때면 강변을 찾습니다. 그저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마음속의 정화를 느끼기 때문입니다. 말없이 강가를 쳐다보고 있노라면 갖가지 상념들이 몰려옵니다. 그 상념들 하나씩 정리해 가는 일을 즐기고 있노라면 어느덧 나도 강물 따라 흘러갑니다. 흐르는 것이 나 뿐만은 아닙니다. 썩어가는 낙엽들도 유유히 강물을 따라 흐르고 있습니다. 부러진 나뭇가지들도 흘러갑니다. 가만히 보노라면 그 모든 것들이 소중해 보입니다. 나름대로 이유가 있어서 흐르는 것은 아닌지 조심스러워 지기도 합니다. 심지어 덤으로 떠내려 오는 라면봉지와 같은 쓰레기들도 나름대로 이유가 있어 흐른다는 생각마저 지워버릴 수가 없습니다.

▲ 박종화 作 '강'(1100*330) "흐르는 것은 모두다 저마다 꿈들이 있다. 썩어버린 나뭇잎 하나조차 바다를 향해 흘러가야 할 꿈은 있다"

썩어가는 나무토막 보다 못하게 보일지라도
찢겨지고 부서져 버린 삶일지라도
흐를 수만 있다면 꿈은 있습니다
포기할 것은 아무 것도 없습니다


작품설명 : 유유히 흐르는 강줄기를 표현합니다. 작은 글씨는 강 줄기를 따라 흐르는 모든 것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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