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중가수로 유명한 박종화(46) 시인의 서예산문 '나의 삶은 커라'를 연재한다. 전남 함평의 한 산골마을에서 올라오는 박 시인의 산문과 서예작품은 매주 토요일 게재된다. / 편집자주

기러기

해질 녘이면 문 밖에서 변함없이 들려오는 소리 하나 있습니다. ‘까르륵’하는 소리입니다. 기러기가 날아가면서 내는 소리입니다. 높은 하늘을 나는 것임에도 산속에서는 그 울음소리가 바로 옆에서 들리는 듯이 선명하게 들려옵니다. 고즈넉한 산 위를 부드러운 날갯짓으로 날아가는 기러기 떼를 바라보노라면 질서정연한 모습 자체가 가히 일품이지요. 어디서 누구한테 배워서 저리도 삼각형 줄을 잘 맞춘 채 날아가는지 모를 일입니다. 먼 길을 떠나가는 기러기 무리들은 결코 서두르지 않습니다. 참새처럼 요란하게 날지도 않구요. 부드러운 날갯짓만으로 귀향길을 따라 날아갑니다. 맨 앞에 선 대장 기러기는 전체 무리들을 잊지 않고 샛길로 새는 법이 없습니다. 자신의 길을 따라 오는 무리들이 편안하게 날 수 있게 방향을 그르치지 않습니다. 나머지 무리들도 선두의 방향을 거스르지 않고 따라갑니다. 행여 지친 친구가 있으면 서로 자리를 바꾸면서 금방 다시 삼각형 대오를 정비합니다.

전통혼례에서 목안을 주고받을 만큼 금슬이 좋다는 기러기.
한 번 맺은 언약을 지키기 위해 사랑하는 이가 죽은 뒤에도 다른 새끼를 배지 않고 마지막까지 가족을 살핀다는 기러기.
가족애 하나만을 위해 온갖 외로움을 이겨내며 홀로 일하는 아빠를 기러기 아빠라 부를 정도로 기러기는 사람과 가까이 있습니다.
기러기가 살아가는 방식은 나로 하여금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합니다.
그 중에서 가장 으뜸인 생각은 오늘처럼 수많은 무리들이 일심단결로 힘을 합쳐 나아가는 공동체에 대한 경외심입니다.

▲ 박종화 作 '기러기'(1120*400) "구만리 장천을 날아가는 기러기처럼 멀리 가려거든 더불어 가라"

배우지 않아도 해야 할 일
자손 번식이 아니라
더불어 가기

작품설명 : 떼 지어 날아가는 기러기 때를 형상화 하였습니다. 먼 길을 연상케 하기 위해 글자 전체를 길게 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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