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일인명사전에서 박정희 전 대통령과 언론인 장지연의 이름을 제외해야 한다며 유족들이 제기한 가처분 신청이 기각됐다. 이에 따라, 오는 8일 국민보고대회를 통해 이들을 포함한 4천 3백여 명의 친일인사들의 명단이 공개된다.

서울북부지법 민사합의13부(부장판사 서창원)는 6일 박 전 대통령의 아들 지만 씨가 "박 전 대통령을 친일인명사전에 게재해서는 안 된다"며 민족문제연구소를 상대로 낸 게재금지가처분 신청을 기각했다.

재판부는 결정문에서 "친일인명사전 수록은 이를 학문적 의견 개진 내지 표명에 가까운 것으로 볼 여지가 있고, 이러한 견해가 학문적 의견 표명으로서의 한계를 일탈한 것으로 단정하기는 어렵"고 "친일인명사전을 발간하는 주요 목적이나 동기가 공공의 이해에 관한 사항으로 볼 여지가 있는 점을 종합하여 보면, 친일인명사전에 수록하는 것이 표현의 자유의 한계를 넘어 박정희 또는 그 유족들의 명예 등 인격권을 침해하는 것으로서 표현행위의 사전금지가 허용되어야 할 요건을 충족하는 경우에 해당하는 것으로 인정하기에 부족하다"고 판시했다.

재판부는 "친일인명사전에 게재할 것으로 보이는 박정희에 관한 부분은 그 주된 내용이 출생에서부터 사망에 이르기까지의 시간 순서에 따라 구체적인 사실로 개념 지을 수 있는 주요 경력에 대한 서술로 보인다"며 "이에 대한 참고문헌도 상세히 명시함으로써 그 진위에 대해서는 본안소송을 통하여 충분한 확인이 가능하다"고 설명했다.

또 "그 내용 중 이른바 '혈서'와 관련된 부분은 11월 5일 언론매체에 공개된 것으로 보여 배포금지의 실익이 크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며 이같이 판결했다.

서울북부지법 민사합의12부(부장판사 배준현)도 6일 장지연 매일신보 주필이 게재된 데 대해 "친일인명사전에 게재하는 것이 표현의 자유의 한계를 넘어 명예 등 인격권을 침해하는 것으로 보기 부족"하다며, 앞서 유족들과 위암장지연선생기념사업회가 낸 발행금지등가처분 신청을 기각했다. 

이로써, 지난해 8월 출간될 예정이었으나 수록 대상 인사들 유족이 제기한 이의신청 처리, 발행금지가처분 소송 대응, 막바지 교열작업 등 실무적인 문제로 발간이 지체돼 온 친일인명사전 명단이 변동 없이 공개된다.

민족문제연구소(소장 임헌영)와 친일인명사전편찬위원회(위원장 윤경로)는 오는 8일 오후 2시, 각계 인사와 회원과 시민 1천여 명이 참석한 가운데 서울 숙명여대 숙명아트센터에서 보고대회를 연다.

연구소에 따르면, 친일인명사전은 본책(인명편 3권)과 별책(편찬약사 1권)으로 구성됐고 총 3천여 페이지에 이른다. 2015년 완간 목표로 추진 중인 '친일문제연구총서' 중 인명편에 해당하며, 강제병합 과정에 관여했거나 독립운동을 탄압한 '반민족행위자', 식민통치와 침략전쟁 수행에 가담한 '부일협력자' 4천 3백여 명의 친일 행적과 해방 이후 경력 등을 담았다.

이 사전에는 지난해 4월 수록대상자로 발표돼 논란이 됐던 박정희 전 대통령, 김성수 전 부통령, 장면 전 국무총리, 현상윤 고려대 초대 총장, 무용가 최승희, 음악가 안익태, 홍난파, 언론인 장지연 등 사회 지도층 인사들이 그대로 수록됐다.

다만, 신현확 전 국무총리와 최근우 전 사회당 창당준비위원장의 경우 이의신청이 받아들여져 수록대상에서 제외되었으며, 400여명은 추가조사차 수록이 보류됐다고 연구소는 전했다. 보류자는 정밀조사를 거쳐 지방과 해외의 친일인물들과 함께 보유편(補遺篇)에 수록될 예정이다.

▲ 1939년 3월 31일자 만주신문에 실린 박정희 전 대통령의 혈서 지원 관련 기사. [자료-민족문제연구소 제공]

한편, 민족문제연구소는 5일 최근 일본에서 입수한 혈서지원 기사가 실린 1939년 3월 31일 자 '만주신문' 사본을 공개했다.

만주지역에서 발행되던 일본어 신문인 '만주신문' 기사에 따르면, 박 전 대통령은 문경에서 교사로 재직 중 만주국의 군관으로 지원했으나 연령 초과로 탈락했지만, 포기하지 않고 지원 서류와 함께 '한 번 죽음으로써 충성함 박정희'라는 혈서와 발탁을 간곡히 호소하는 내용의 편지를 동봉하여 1939년 재차 응모한 것으로 나타났다.

편지 내용 또한 '일사봉공(一死奉公)', '멸사봉공(滅私奉公)', '견마(犬馬)의 충성' 등 확고한 신념을 담고 있어 그간 박 전 대통령에게 꼬리표처럼 붙어다녔던 '친일 행적 논란'이 한층 설득력을 얻게 됐다.

연구소는 "박 전 대통령의 아들 박지만 씨가 지난 10월 28일 게재금지 가처분 신청을 낸 후 '친일인명사전' 발간의 본지가 흐려지고 정치쟁점화하고 있다는 판단이 작용했다"며 "관련 보도가 나간 뒤 연구소에는 욕설 전화가 끊이지 않아 업무에 지장을 받을 정도였다"고 밝혔다.

연구소는 "해방 이후 60년이 넘도록 미결 상태로 끌어왔던 친일문제에 대한 최소한의 역사적 학문적 정리를 마치 정치적 의도를 가지고 진행하고 있는 듯이 왜곡하는 일부 의견에는 적극적인 대응이 필요하다는 데 의견이 모아졌다"며 "근거 없는 비난을 방치할 때 민족사 정립이라는 대의의 진정성이 훼손될 수 있다고 보았기 때문"이라고 공개 배경을 설명했다.

<만주신문 게재 기사 번역문>

혈서(血書) 군관지원
반도의 젊은 훈도(訓導)로부터

29일 치안부(治安部) 군정사(軍政司) 징모과(徵募課)로 조선 경상북도 문경 서부 공립소학교 훈도(訓導) 박정희군(23)의 열렬한 군관지원 편지가 호적등본, 이력서, 교련검정합격 증명서와 함께 ‘한 번 죽음으로써 충성함 박정희(一死以テ御奉公 朴正熙)’라는 혈서를 넣은 서류로 송부되어 계원(係員)을 감격시켰다. 동봉된 편지에는

(전략) 일계(日系) 군관모집요강을 받들어 읽은 소생은 일반적인 조건에 부적합한 것 같습니다. 심히 분수에 넘치고 송구하지만 무리가 있더라도 반드시 국군(만주국군-편집자 주)에 채용시켜 주실 수 없겠습니까. (중략) 일본인으로서 수치스럽지 않을 만큼의 정신과 기백으로써 일사봉공(一死奉公)의 굳건한 결심입니다. 확실히 하겠습니다. 목숨을 다해 충성을 다할 각오입니다. (중략) 한 명의 만주국군으로서 만주국을 위해, 나아가 조국(일본 : 편집자 주)을 위해 어떠한 일신의 영달을 바라지 않겠습니다. 멸사봉공(滅私奉公), 견마(犬馬)의 충성을 다할 결심입니다.(후략)

라고 펜으로 쓴 달필로 보이는 동군(同君)의 군관지원 편지는 이것으로 두 번째이지만 군관이 되기에는 군적에 있는 자로 한정되어 있고 군관학교에 들어가기에는 자격 연령 16세 이상 19세이기 때문에 23세로는 나이가 너무 많아 동군에게는 안타까운 일이지만 정중히 사절하게 되었다.

(『만주신문』 1939.3.31. 7면)

자료 출처 - 민족문제연구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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