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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
오랜 기간 동안 묵히어 버려진 자갈밭을 빌려 농사를 짓습니다. 주위 사람들에게 이 것 저 것 물어보면서 밭을 갈고 돌멩이를 골라내고 밀알을 뿌렸습니다. 친환경 농산물을 생산하자니 제초제는 엄두도 못 내고 그냥 그대로 씨를 뿌렸습니다. 모두가 걱정합니다. 그렇게 해서 어떻게 수확을 할 거냐고 답답하게 여깁니다. 그런 말에 아랑곳없이 천 팔백 평의 밭에 밀 씨앗을 뿌려 놓으니 참 뿌듯하기만 합니다. 가난한 나는 농약을 사용한 농산물을 사먹을 수밖에 없지만 내가 지은 농사만큼은 유기농산물을 수확하여 이웃과 나누고 싶습니다. 전문가의 눈에는 장난하는 것처럼 보일지라도 내겐 진지한 삶의 한 방향입니다.
좀 쓸만하다싶은 논밭은 모두 다 주인들이 있고 산속 깊은 곳의 자갈투성이 논밭들은 버려진 채 다시 산이 되어가고 있는 실정입니다. 산 아닌 산이 되어버린 밭들이나 겨우 내 차지가 되지만 이것도 나에겐 매우 소중합니다. 열심히 갈고 뿌렸더니 나도 모르는 사이에 농사꾼이 되어 버렸습니다. 내년에는 더 많은 생채기 땅을 빌려서 농사를 짓고 싶습니다. 수확도 많이 하고 싶습니다.
한 지인이 찾아 와 경작된 나의 밭을 돌아보더니
“종화가 이젠 함평사람이 다 돼부렀는갑네. 농사까지 짓고 말이여. 어쩌다가 농사꾼이 되어 부럿다냐? 인생이란 것이 참 희한한 것이랑께.”
혼잣말처럼 허공에 대고 내 뱉는 그의 말을 들으며 말없이 그냥 웃을 뿐입니다.
나도 농사를 지으리라곤 상상조차 하지 못한 일입니다. 내가 나를 몰랐으니 그대는 당연히 몰랐겠지요.
농사를 짓기 위해 애면글면 돌고 돌아 여기까지 온 것도 아닙니다. 처해진 조건에서 할 수 있는 일은 하고 살자는 삶의 한 방법일 뿐입니다.
단 한 뼘의 땅이라도 있으면 화초를 심으려는 내 마음은 가야할 길에서 결코 서성이지 않습니다.
탄탄한 길이면 바삐 가고 상처 난 길이면 조심해서 가고
없는 길은 만들어 갑니다. 못 갈 곳은 없습니다.
내가 가는 곳이 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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