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중가수로 유명한 박종화(46) 시인의 서예산문 '나의 삶은 커라'를 연재한다. 전남 함평의 한 산골마을에서 올라오는 박 시인의 산문과 서예작품은 매주 토요일 게재된다. / 편집자주

홍시

장날 선술집 풍경입니다.
막걸리 한 사발 하려고 들어갔지요. 사람들이 왁자하니 모여 대화를 나누며 허기진 배도 채우고 막걸리도 한 잔씩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들어 온 사람마다 한 마디씩 내 뱉습니다. 이 좁은 장터 골목에 누가 차를 이렇게 바짝 대 놓았냐며 투덜거립니다. 들락거리기가 너무나 불편하게 주차되어 있는 차로 인해 드디어 터질 것이 터졌습니다.
어느 한 젊은이가 들어오더니 차 주인이 누구냐며 주인을 찾습니다. 알고 보니 차 주인은 나이 지긋하신 할아버지였습니다. 할아버지는 내 차라며 신경 쓰지 말라는 듯이 말을 했지요. 젊은이는 이 좁은 통로에다 이렇게 차를 받쳐 놓으면 어떻게 하냐며 할아버지께 빼주기를 요구합니다. 할아버지는 어린놈이 버릇없이 누가 누구에게 이래라 저래라 하냐며 버럭 화를 내며 법대로 하라고 목소리를 높입니다. 젊은이는 다시 말합니다. 자동차 열쇠를 주면 자기가 바로 밑 천변에 주차해 놓겠다고 합니다. 그런 도중에 순식간에 일이 벌어졌습니다. “너는 에비 에미도 없냐? 이놈아!”하시며 마구 젊은이를 밀쳐냅니다. “이런 버르장머리 없는 놈이 어디다 대고 큰소리 치냐!”며 삿대질 하고 젊은이를 밀어붙이는 동안에 선술집은 아수라장이 되어 버렸습니다.
참 더럽게도 술맛이 없네요. 갑자기 나이 먹기 싫어졌습니다. 가끔씩 먹어보는 장터에서 말아주는 국밥에 막걸리 한 사발이 얼마나 맛있는데 오늘은 전혀 그 맛을 느끼지 못하고 말았습니다.

집에 돌아오니 정원에 서 있는 감나무엔 먹음직스런 홍시가 탐스럽게 열렸습니다. 떨어지기 전에 따서 먹고 싶은 충동이 이는군요. 시리게도 푸른 가을 하늘아래 선명한 빛깔로 반짝이는 몸을 내 보이는 홍시를 보며 방금 빠져나온 장터의 선술집을 생각했습니다.

▲ 박종화 作 '홍시'(340*560) "늙을수록 고운 빛깔로 자신의 몸을 내 주는 가을 홍시처럼 곱게 늙기"

곱게 늙는다는 것
어쩌면 인생 최고의 목표일지도 모를 일입니다


작품설명 : 홍자는 두개의 [ㅇ]이 곶감을 연상케하고 전체적인 글씨는 과일의 반쪽을 연상케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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