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운찬 신임 국무총리가 임명되면서 문제 해결을 위해 '용산참사' 현장을 찾아 유가족들을 만나게 될지 관심이 쏠리고 있다.

정 총리는 지난 22일 인사청문회에서 "국무총리로 임명이 되면 우선 무엇보다도 용산참사 유족들과 한 번 만나서 현실을 파악하도록 하겠다"고 구두메시지를 통해 문제 해결 의지를 내비쳤다.

'서민 행보'를 내세운 이명박 정부가 '용산참사'라는 정치적 부담을 벗어버리고자 문제 해결을 위해 나설 것(박래군 범대위 공동집행위원장)이라는 관측이 가시화되는 양상이다.

한승수 전 국무총리가 민주당과 서울시, 유가족들의 4자 협의 틀을 제안하는 등 문제 해결 가능성이 공식 라인에서 처음으로 수면 위로 떠오른 데다, '유가족과 만나겠다'는 정 총리의 발언은 정부 기류의 연장선이라는 점에서 의미는 작지 않아 보인다.

정 총리는 임명 후, 서울시에 용산참사와 관련한 현황들을 파악, 조사할 것을 지시한 것으로 알려져 빠른 시일 내에 가시적인 행보를 할 것이라는 예측이다.

추석을 앞둔 30일 오전 10시, 용산 현장에서 기자회견을 연 유가족들도 "정운찬 총리님, 용산에 오십시오. 조문 오시면 저희 유가족이 따뜻이 맞이하겠습니다"며 방문을 거듭 촉구했다.

인사청문회에서 정 총리와 만나 잠깐 얘기를 나눈 유가족 권명숙 씨는 "총리 후보자가 당시 눈물을 글썽이며 말했다. 그 눈물이 정치쇼가 아니기를 믿고 싶다"면서 "눈물까지 보였으니까 한 번 믿어봐야지"라고 말했다.

범대위의 한 관계자도 "추석이 지난 후에는 입장 발표나, 어떤 구체적인 조치들을 취하지 않겠냐"며 정 총리의 용산 방문 가능성을 높게 점쳤다. "개인적인 입장이나, 또는 정부의 입장이든 어떻게든 한 번은 오지 않겠냐"는 것이다.

정운찬 총리가 내각 수장으로서 전체적인 시스템을 조율하고, 정리하는 데 시간이 길어진다면 용산 방문 시기도 다소 늦춰질 수도 있겠지만, 그럴 가능성은 낮아 보인다.

청문회를 통해서 자신의 입장을 밝힌데다가, 올해를 넘긴다면 용산참사 문제가 더욱 큰 부담으로 작용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일단 정 총리가 용산 현장에 방문한다면, 고인들에 대한 추모 또는 유가족들에 대한 위로 등이 뒤따를 것으로 보인다. 즉, 유가족과 범대위가 장례를 치를 수 있는 최소한의 모양새는 갖출 수 있다.

그러나 정 총리의 방문 자체만으로 용산참사 문제가 해결될 지는 미지수다. 우선적으로 장례를 치르면서 '먼저 간 이'들에 대한 문제는 일단락될 수는 있겠지만, '남아있는 자'들에 대한 대책이 마련되지 않을 경우 사태 해결은 일시적 '봉합'에 그칠 가능성도 크다.   

정 총리가 용산을 방문하게 될 경우, 들고 갈 '보따리'가 주목되는 이유다. "형식상으로 오는 것이 아니라 진정한 문제해결 방안을 갖고 오라(권명숙 씨)"는 것이다. 

즉, 현재 진행되고 있는 철거민들의 재판과 관련한 검찰의 수사기록 공개 또는 임시상가 등 앞으로의 장기적 생계에 대한 방안 모색에 무게가 실리는 분위기다.

범대위 관계자도 "오지 말라는 것이 아니라 올 때 빈손으로 오지 말라는 것"이라며 "총리의 방문은 상징적 사건으로 의미를 가질 것이고, 더 중요한 것은 그가 가져온 해결방안에서 정부가 문제를 해결하려는 의지가 그대로 나타나게 될 것"이라고 말해, 단순한 현장 방문이 아닌 근본적인 해결 방안을 제시할 수 있어야 한다는 뜻을 내비쳤다.

▲ 30일 오전 10시, 서울 용산 남일당 건물 앞에서 용산참사 유가족들은 기자회견을 열고 정운찬 총리에 현장 방문을 촉구했다. [사진-통일뉴스 고성진 기자]
이날 유가족들도 정 총리에게 기존의 강경한 목소리에서 다소 누그러졌지만, 분명하게 입장을 밝혔다.

대통령의 사과 대신에 "정부의 책임을 시인하고 진심으로 고인을 추모해 주십시오"라고, '책임자처벌, 진상규명'에서 "고인들이 테러리스트가 아니라 자상한 아버지, 선량한 국민이었다는 한 말씀 남겨주십시오"로, 임대상가 등 생계대책 마련에서 "고인들의 생전에 바라셨던 대로 집 없고 돈 없는 철거민들이 살아갈 방안을 마련해 주십시오"라고 호소했다.

이전과는 다른 완곡한 표현에서 정 총리에 대한 기대감과 함께 대화의 의지도 읽힌다. 그러나 정 총리가 가져 갈 '보따리' 속에 유가족들과 함께 나눌 얘기가 있을 지는 여전히 불투명하다.  

"정 후보자가 임명장을 받고부터 깊은 절망에 들어간 듯한 기분이 든다. 현장을 중심으로 일하겠다고 했으면 달려오면 된다. 직접 와서 유가족들 얘기를 들으면 되는데, 서울시 등을 통해 문제를 파악하려 하면 그게 되겠나"며 다그치는 목소리도 나왔다.

류주형 범대위 대변인은 "정 총리가 화장실 들어갈 때와 나올 때 마음 달라지는 야비한 사람이 아니라고 믿겠다"며 "추석 연휴가 끝나는 날까지, 앞으로 나흘 후에 입장을 분명히 밝혀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정운찬 총리가 "장례를 치르고 싶다"며 상복을 벗지 못하고 추석을 맞는 유가족들의 숙원을 풀 수 있을지 주목되는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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