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중가수로 유명한 박종화(46) 시인의 서예산문 '나의 삶은 커라'를 연재한다. 전남 함평의 한 산골마을에서 올라오는 박 시인의 산문과 서예작품은 매주 토요일 게재된다. / 편집자주

첫 마음

오늘은 화장실의 똥을 푸는 날입니다.
시골에서 재래식 화장실은 자연농사를 짓는 거름원으로 최고입니다. 톱밥을 켜켜이 뿌려가며 똥을 거름으로 변환시키는 거구요. 오줌도 마찬가지로 자연거름으로 변환시켜 사용하는 거지요.

마당에 나와 일을 할 때면 방 안에 있는 수세식 화장실보다 바깥 재래식 화장실을 자연스레 더 많이 사용하게 됩니다. 아무도 없는 관계로 화장실 문을 열어놓은 채 앞산의 풍경을 바라보며 볼 일을 보게 되는데 가끔씩 나는 똥 푸는 일을 직업으로 가진 한 친구를 생각하곤 하죠. 어릴 적부터 바보라는 별명을 가진 그는 새벽에 일을 나가지요. 사람들의 혐오감을 없애기 위해 사람들이 없는 새벽 시간을 활용하나 봐요. 집집마다 다니면서 정화조 똥을 푸러 다니는 새벽이 그에게 있어서는 일과의 시작이요 또한 아침의 시작입니다. 그런 그가 예전에 내게 해 주었던 말을 지금도 잊지 않고 있지요.
무슨 말이냐구요?
아르바이트 삼아 택시운전을 하던 때가 있었어요. 택시운전도 처음에는 할 만 하더니 나중에는 문을 열면 보이는 그 놈의 운전대가 너무나 커 보이더군요.
그러던 어느 날
똥 푸던 바보 친구와 술 한 잔 걸치던 날이었어요.
택시운전 힘들어서 못 해먹겠다고 투덜대면서 운전대만 봐도 지긋지긋 하다고 말했었지요. 한참을 말없이 내 이야기를 듣더니 말을 이어 갑니다. 자신은 똥 푸는 일을 10여 년간 해 오면서 단 한 번도 똥냄새가 역겹다는 생각을 해 본 적이 없답니다. 아침에 첫 대면하는 새벽 똥냄새가 그렇게 향기로울 수가 없다고까지 말을 합니다. 그 순간 나는 아무 말도 하지 못하고 말았어요. 내 친구 바보는 이미 바보가 아니었습니다. 꿈은 비록 멀리 있어도 늘 웃으며 가자던 첫 마음도 무색하게 지금 하고 있는 일조차 기쁨과 보람을 갖지 못하고 운전대에 끌려 다니는 신세라니 참으로 초라한 내가 진짜 바보가 되고 말았습니다. 똥냄새마저 향기롭다고 말하며 자신이 하는 일에 변함도 없이 최선을 다하는 친구를 보며 힘들어도 웃으며 갈 줄 아는 삶이 무엇인지 첫 마음이 어떻게 퇴색하는지를 다시 한 번 새기게 된 것이지요.

아직도 똥은 잘 푸고 있는지.
나를 한없이 작게 만들었던 그 친구가 절실히 그리워지는 똥간에서의 사색입니다.

▲ 박종화 作 '첫 마음'(800*300) "새해 첫 날 먹은 마음 세모 끝에 사라져도 저녁에 먹은 마음 아침에 사라져도 잃지 마라 첫 마음을"

내게 주어진 모든 것에 대하여
부족한 듯 미련한 듯 손해 보면서
바보 같을지라도 만인과 어우러져
변함없이 기쁘게 부서져 가는 것도 하나의 해탈이다
해탈이 꼭 면벽에만 있는 것은 아니다


작품설명 : 첫 마음의 형상을 살리기 위해
[첫]자를 강조하고 전체적인 분위기는 경쾌하게 하였습니다



저작권자 © 통일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