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미국)은 북한으로 하여금 작지만 근본적인 조치를 취하도록 노력하고 있다."

지난 21일(현지시간) 한.미 외교장관 회담 결과를 설명하는 자리에서, 커트 캠벨 미 국무부 동아태 차관보가 이명박 대통령의 '그랜드바겐'에 대한 논평을 요구받고 이같이 말했다. 그는 '작지만 근본적인 조치'가 무엇인지는 언급하지 않았다.

이와 관련, 23일 정통한 대북소식통은 "검증과 관련한 조치일 것"이라고 짚었다. 이날 캠벨 차관보가 9.19 공동성명 외에 '2007년 합의들' 이행을 여러 번 강조한 사실이 이를 뒷받침한다는 지적이다.

오바마 행정부는 기존 단계적 접근방식의 대안으로 '포괄적 패키지'를 제안해둔 상황이다. "한.미를 포함한 5자 간에는 북핵문제를 여러 단계로 나눠서 핵 프로그램의 일부분에 대해서 부분적으로 협상하는 과거의 접근방식으로는 북핵 문제의 본연적 해결이 어렵다는 인식이 쭉 있어 왔다(문태영 외교부 대변인)"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날 캠벨 차관보가 굳이 한국 정부의 '그랜드 바겐'에 선을 그으면서 '작지만 근본적인 조치'를 거론한 것은 단계적 협상으로 돌아가자는 뜻이라기 보다는 교착상태에 빠진 현 상황의 돌파구와 관련된 것이라는 분석이다. 새로운 비핵화 협상의 출발점을 어떻게 잡을 것인가는 문제인 셈이다.

앞서 대북 소식통에 따르면, 스티븐 보즈워스 미 대북정책 특별대표의 방북 등 북.미 대화 재개를 둘러싼 북한과의 물밑대화에서 미국은 '검증을 끝내고 3단계(핵폐기)로 가자'는 주장을 펼치고 있다는 것이다. 검증의 범위는 2007년 합의들에 포함된 수준이라는 분석이다.

반면, 북한은 3단계(핵폐기) 협상의 큰 그림을 먼저 확정하자는 입장이라고 이 소식통은 전했다. "북한의 협상 스타일은 큰 그림을 먼저 정하고 그 다음에 작은 그림을 확정하자는 것"이라며, 3단계 비핵화와 북.미관계 정상화 조치의 순서, 수준 등을 어떻게 할지 답이 나와야 2단계 마무리 문제도 진전이 있을 것이라고 봤다.

올해초 북한을 방문했던 셀릭 해리슨 국제정책센터 선임연구원에 따르면, 북한 당국자들은 ▲비핵화 달성 이전 단계에서 북.미관계 정상화 ▲북한에 대한 핵보유국 인정 ▲비핵화 범위에 한반도 전체 포함 ▲미군기지 포함한 남한에 대한 검증.사찰 병행 등으로 이어지는 '큰 그림'을 제시한 바 있다.

보즈워스 방북 등 북.미 대화를 둘러싼 또 하나의 쟁점은 '면담자(interlocutors)'가 누구냐는 것이다. 미국은 지난 8.4 김정일-클린턴 면담 시 북한측 배석자였던 강석주 외무성 제1부상을 원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미국측은 또 핵문제에 있어 강경파로 평가되는 북 군부 인사들과의 면담을 희망하는 것으로 전해졌다. 과거 힐 차관보도 군부 인사 면담을 요청하곤 했다. 대북 소식통에 따르면, 이는 '주고받기' 협상 결과에 따른 미국 내 정치적 파장을 고려한 것으로 보인다. 북 군부 인사들을 설득했다는 명분이 필요할 것이라는 설명이다.

이밖에 '동맹관리' 차원에서 미국은 6자회담 복귀와 관련된 북한측의 명시적 답변도 원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저작권자 © 통일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