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중가수로 유명한 박종화(46) 시인의 서예산문 '나의 삶은 커라'를 연재한다. 전남 함평의 한 산골마을에서 올라오는 박 시인의 산문과 서예작품은 매주 토요일 게재된다. / 편집자주

무조건

산속을 벗어나 신작로로 나오면 빈 집이 하나 있지요. 참 개가 두 마리 살고 있으니 빈 집이라고 하기엔 좀 미안스럽군요. 이 집에는 일주일마다 흰색 승용차와 함께 몇 사람들이 들렀다 갑니다. 아마 이 집 주인들인가 봅니다. 와서 개밥도 주고 마당에 있는 감도 따가고 여기 저기 심어놓은 반찬거리들도 수확해 가고 그러나 봐요. 결국 개들에게 주인이 주는 밥은 일주일에 한 번 뿐이죠. 오늘은 산책 삼아 가 보았습니다. 집으로 들어가는 길이 아주 좁아서 차가 한 대 들어가면 딱 맞을 길을 300여 미터 따라 들어가니 집이 있네요. 물론 개들도 있구요. 밥그릇을 보니 아직 사료가 남아 있습니다. 주인이 매일 밥을 주지 않으니까 일주일에 한 번 주고 가는 밥을 일주일 동안 나누어서 먹는 거지요. 비록 개라 할지라도 자신들이 살아가는 방식만은 터득하게 마련입니다.

내가 여기에 와봐야겠다는 생각을 한 이유는 사실 다른 데에 있습니다. 이 집 개는 일주일에 한 번 오는 주인을 마중하러 나가고 배웅까지 합니다. 그게 너무나 신기해서 얼굴이나 한 번 보려고 왔지요. 어떻게 주인이 오는 날을 아는지 기가 막힐 노릇이에요. 주인이 하얀 승용차를 몰고 오는 주말이면 삼백여 미터가 넘는 문 밖 길을 아침 일찍부터 나와서 주인이 올 때까지 기다립니다. 그리고는 주인의 흰색 승용차를 발견하면 기쁨으로 짖어대고 차보다 앞장에 서서 집까지 인도하여 주인을 정중히 모셔 갑니다. 이런 일이 한 두 번이 아니라 주말이면 어김없이 벌어지는 하나의 풍경이지요. 구부러진 길목에서 꼼짝도 않고 서서 큰길을 바라보는 개를 가끔씩 볼 때 처음에는 개가 왜 그러는 줄 몰랐지요. 그러던 어느 날 흰색 승용차가 들어가는 걸 보면서 개의 행동이 무슨 행동인지를 알게 되었답니다.

일주일에 한 번 밖에 오지 않는 무정한 주인일지라도 그 주인을 그리워하는 개 한 마리.
기다리다 지쳐버릴지라도 주인 오는 날엔 반드시 마중을 나와서 기다리는 개 한 마리.
주인이 오는 날을 스스로 터득해 버린 사람도 아닌 개 한 마리.
이 무조건적인 개의 복종이 사람을 부끄럽게 합니다.
개 한 마리가 사람을 가르치고 있습니다.

평생 동안 자식을 위해
머리에 인 짐을 내려놓지 않는
어머니의 무조건적인 사랑을 떠 올리게 합니다.

▲ 박종화 作 '무조건'(650*340) "무소유로 사는 것보다 더 어려운 것은 아무 조건 없이 행하는 것입니다"

진리에 둔감한 자가 조건 없이 행하는 일에 주저하는 모습
살면서 본 적이 많습니다
사리사욕에 민감한 자가 무조건적인 사랑을 실천하는 모습
아직까지 본 적이 없습니다
더 살아봐야 할까요


작품설명 : [무]는 머리에 짐을 이고 있는 모습을 형상화 하였습니다. 자식을 위해 평생 동안 머리에 이고 있을 어머니의 무조건적인 사랑을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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