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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기수 2차 송환과 ‘국군포로’ 문제는 별개" 장기수 송환 9주년, 권오헌 민가협양심수후원회 명예회장
김치관.고성진 기자  |  tongil@tongil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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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09.09.02  15:29: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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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비전향장기수 송환 9주년을 맞아 권오헌 민가협양심수후원회 명예회장과 인터뷰를 가졌다.
[사진 - 통일뉴스 조성봉 기자]
9년 전 오늘, 2000년 9월 2일에 63명의 비전향장기수들이 북녘으로 송환됐다. 6.15공동선언 3항에 명시된 ‘비전향장기수 문제를 해결’한다는 합의에 따른 것이다.

민가협양심수후원회 회장으로서 송환에 앞장섰던 권오헌(73) 명예회장은 1일 <통일뉴스>와의 인터뷰에서 “1차 송환은 그때 감옥에서 바로 나온 분들 위주로 했다. 우선 그분들이 마지막까지 고통을 당하면서 비전향으로 계셨고, 그러니까 우선대상이 됐던 것”이라고 회고하고 “지금 통일부 차관으로 있던 분이 그 당시 인도지원국장이었는데 고생 많이 했다. 나는 지금도 변함없이 1차 송환에 대해 적극적으로 해 준 것에 대해 감사하게 생각한다”고 말했다.

권오헌 명예회장은 “불행하게도 10년이라는 세월동안 많은 선생들이 돌아가셨다”며 리종환(2001.4.30), 윤용기(2001.6.13), 신인영(2002.1.7), 김종호(2003.11.21), 강동근(2004.2.12), 김석형(2006.8.14), 오형식(2006.9.2), 김영태(2008.1.14), 김일진(2008.7.8), 김인서(2008.8.17), 류운형(2008.11.22), 한백렬(2009.5.2) 선생과 먼저 송환됐던 리인모(2007.6.16) 선생을 차례로 꼽았다.

그는 “어쩔 수 없이 연세가 많았고, 또 오랫동안 감옥 후유증들이 겹쳐서 돌아가셨다”며 “통일세상을 보고 가셔야 하는데 안타깝게 돌아가셨다”고 애석해했다.

또한 “마지막으로 뵌 것은 2007년까지였다”며 “최근에도 지난 6월 19일 안영기 선생이 팔순 생일상을 받았다”고 전하고 “그분들이 오랜 고난 속에서도 자기 신념을 지켰고, 그래서 그런 영광을 차지하는 것이 아닌가 생각한다”고 말했다.

그는 위암의 고통을 끝까지 혼자 감내하며 송환됐던 리종환 선생이나 김종호 선생의 병수발을 자청했던 김창원 선생 등을 회고하기도 했다.

2차 송환을 기다리고 있는 비전향장기수들의 근황에 대해서도 “김태수 선생을 시작으로 김경선, 장광명, 정순덕, 정순택, 맹기남, 김원철, 서순정 선생님 등 여러분이 돌아가셨고, 올해 6월 4일에 김종하 선생까지 모두 9분이 돌아가셨다”며 “27명이다. 평균 나이가 다 75세 이상, 많게는 94세까지 계시다. 80세 이상이 대부분이다”고 전했다.

우리 사회 일각에서 비전향장기수 문제를 ‘전쟁 시기와 그 이후 소식을 알 수 없게 된 사람들’, 이른바 ‘국군포로.납북자’ 문제와 연동시키는 기류에 대해 “그것과 비전향장기수 2차 송환을 결부시키는 것은 우리는 반대한다”며 “이것은 남북공동선언 합의사항이고, 일부 가셨고, 남은 분들이 수없이 많은 것도 아니고 한정돼 있다... 수십 년 동안 감옥에서 자기 신념과 양심을 지켰던 사람들, 이런 특수한 사람들이기 때문에 그래서 온 세계가 송환을 요구했고 남북에서 합의를 했기 때문에 보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현 정부들어 양심수가 대폭 증가했다며 “국가보안법 22명, 노동자 102명, 용산참사 12명, 언론소비자주권찾기 2명, 한미FTA 관련 2명, 촛불시위 5명, 양심적 병역거부 및 대체복무 관련 6명, 기타 1명 등 총 152명”이라고 확인했다.

특히 “질적으로도 안타까운 일은 남북이 화해협력으로 개성공단이니 금강산관광이니 남북을 오가고 하다가 정부가 바뀌니까 국가보안법이 강화돼 적용된 것”이라며 “실천연대나 범민련 사례만 본다 하더라도, 참여정부 내내 정부의 허가를 받고, 국정원이나 통일부, 경찰청 등에 허가받고 북을 다녀온 사람들을 이제 새삼스럽게 몇 년 뒤에 잠입.탈출이나 지령수수 명목을 달아서 처벌하려고 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국가보안법이 강화되고 통일운동단체에 대한 탄압, 통일운동 자체를 막아 나서려고 하는 것이 굉장한 문제가 되고”있으며, “앞으로 국가보안법이 어떤 형식으로 더 통일운동을 탄압할지 정말 우려된다”는 것이다.

그는 쌍용자동차가 노사간 합의가 타결됐음에도 불구하고 노동3권에 속하는 단체행동권을 보장받지 못하고 70명이 구속된 점과, 용산참사 사망자 아들을 비롯한 12명이 구속된 점 등을 들며 “이건 민주주의 국가라고 할 수 없는 것”이라고 안타까운 심경을 토로했다.

권오헌 명예회장은 지난 4월 26일 20년간 활동해온 민가협양심수후원회 회장직을 후배들에게 물려주고 한발 물러났지만 “인권운동이나 통일운동에서 임기는 있지만 정년은 없다”며 수면시간이 부족할 정도로 정력적인 활동을 펼치고 있다.

그는 “양심수들 찾아뵙고, 출소한 장기수 선생들 찾아뵙고, 또 우리 사회에 불의와 모순에 대해 표현하는 길이 있으면 거기에 나가서 참여하고, 또 남북관계라든가, 북미관계라든가 이 땅의 평화와 통일과 관련된 일이 있을 때 하나의 민족구성원으로서 나가서 참여할 생각을 가지고 있다”며 “내가 이렇게 활동하는 것이 건강비결이다”고 말했다.

다음은 11일 오전 11시 <통일뉴스> 사무실에서 진행한 인터뷰 전문이다.

송환 장기수 13명 사망.. 김 위원장 생일상 차려줘

   
▲ 인터뷰는 11일 오전 11시 통일뉴스 사무실에서 진행됐다. [사진 - 통일뉴스 조성봉 기자]
□ 통일뉴스 : 지난 4월 26일 민가협양심수후원회 회장직을 물러난 이후 최근 근황은?

■ 권오헌 : 일단 회장이 할 수 있는 일은 회장이 하고, 이제 나는 후원회 회원으로서 역할을 다 하는 것이다. 하다 보니까 역시 후원회가 했던 역할들이 있어서 그냥 이어서 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 9월 2일이 비전향 장기수 송환 9주년 기념일이다. 북송된 비전향 장기수들의 최근 근황은?

■ 9주년이 됐다. 엊그제 같은데 벌써 10년이 다 되어가고 있다. 선생들이 평생을 바랐던 세상이었던 북에 갔고 가족들을 만나게 됐다.

그런데 불행하게도 10년이라는 세월동안 많은 선생들이 돌아가셨다. 리종환 선생님이 바로 송환 그 다음 해에 돌아가셨고, 윤용기, 신인영, 김종호, 강동근, 김석형, 오형식, 김영태, 김일진, 김인서, 류운형, 한백렬, 리인모 선생이 순차로 계속 돌아가셨다. 어쩔 수 없이 연세가 많았고, 또 오랫동안 감옥 후유증들이 겹쳐서 돌아가셨다.

안타깝다. 통일세상을 보고 가셔야 하는데 안타깝게 돌아가셨다.

□ 송환된 비전향장기수들의 근황은?

■ 최근에도 지난 6월 19일 안영기 선생이 팔순 생일상을 받았다. 안 선생뿐만 아니라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모든 선생들의 생일상을 차려주는 것 같다. 그만큼 그분들이 오랜 고난 속에서도 자기 신념을 지켰고, 그래서 그런 영광을 차지하는 것이 아닌가 생각한다.

그분들의 이념적인 성향만 가지고 보는 것이 아니라, 자기들이 가졌던 원래의 마음을 변치 않고 일관되게 지켰다는 것이 사람들로부터 크게 존경을 받게 되는 것이 아닌가 생각한다.

□ 북송 비전향장기수 중 각별한 사연을 가진 분들도 많을텐데.

■ 제일 먼저 돌아가신 분이 리종환 선생이셨는데, 그분은 특히 양심수후원회 회원들과 유별한 관계를 가지고 있었다. 양딸로서 이정규 씨가 있었는데 참 애통해했다.

그분은 따님이 하나 있었는데 마지막까지 따님을 찾지 못하고 올라갔다. 따님을 찾기 위해 백방으로 우리 회원들도 같이 가서 찾고 그랬는데 끝내 이루지 못했다. 그분과 친척 되는 분이 있는데도 불구하고 모른다고 해서 마지막까지 안타까웠다.

그분은 그때 위암을 안고 갔다. 그러면서도 그 고통을 혼자 참아내고 회원들에게도, 가까운 사람에게도 알리지 않으면서 갔는데, 그래도 끝내 이제까지 한평생을 바랐던 신념을 가지고 고향으로 가서 돌아가시게 됐다.

리종환, 위암 알리지 않고 북송.. 김창원, 김종호 선생 병수발 자청

   
▲ 양심수 문제에 관한한 '걸어다니는 백과사전'이라 할 수 있는 권오헌 명예회장. 
[사진 - 통일뉴스 조성봉 기자]
한 분만 더 얘기하자면, 윤용기 선생 같은 분은 원래 강화도 출신인데, 거기서 전쟁 시기에 남북으로 오가면서 활동을 했고 그것 때문에 고생하게 됐다.

그런데 가족들이 감옥 이상 가는 고통을 당했다. 적어도 거주지를 20번 이상 옮겼다고 한다. 한 번 옮기면 간첩 가족, 빨갱이 가족이라고 해서 견디지 못하고 옮기고, 또 옮기고 했다.

94, 95년경에 감옥에 같이 계신 분들 얘기를 통해서 가족들을 찾아냈다. 인천 학익동이었다. 처음에 우리가 찾아가니까 누가 또 감시하고 수사기관에서 오지 않았는가 염려해서 굉장히 겁을 먹었다.

그래서 쭉 얘기를 해 드리고 우리 소식지도 보여 드리고, “이제 선생님의 과거는 그 당시의 어쩔 수 없는 조건에서 활동이었을 뿐이고, 지금은 온 세계로부터도 양심수로 규정을 받고 석방운동과 후원회 활동들을 하고 있다. 그러니까 지금 대전에 계시니까 면화를 꼭 가달라”고 하루종일 설복을 했다.

처음에 부인이 이해하고, 특히 큰 며느리가 아주 훌륭했다. 그렇게 해서 10년 만에 그때 면회를 갔다. 그 뒤로 면회를 쭉 다니고, 편지도 오가고 그 뒤 출소를 했다.

이분들을 생각하면 이것이 분단 속에서 전쟁을 겪었던 우리 사회의 비극의 한 단면이라고 본다. 이런 분들이 한두 명이 아니다. 그때 가족을 만나서 면회를 가게 한 것은 내가 일했던 가운데 하나의 보람이라고 생각한다.

그런데 역시 그분도, 때마침 우리가 6.15공동선언 1주년을 맞아서 금강산에 갔을 때였는데, 소식을 들었다. 6월 13일 날 돌아가셨다.

누구누구 할 것 없이 올라가신 분들 다 저희하고는 남달랐다. 특히 인간적으로 인품이 뛰어나셨다. 지금도 어떤 사람들은 이념적 편향성을 갖지 않느냐 비판하기도 하지만, 그것을 떠나서 인품이 존경받을 만하게 좋으셨다.

양심수후원회 회원뿐 아니라 많은 분들이 그때 낙성대 만남의 집을 찾아갔다. 외국에서 찾아올 정도로 그분들이 뿔난 빨갱이라든가 하는 인식은 말끔히 해소했다고 볼 수 있다.

□ 그분들의 인품이 뛰어났다고 하는데 사례가 있나?

■ 가신 분 중에 김종호 선생이라고 있다. 그분은 경상북도 김천이 고향이시고 그분도 역시 해방 전부터 독립운동도 했고 해방 후에는 요즘 말로 자주통일운동을 했다. 감옥을 오래 산 분이다.

그분은 최초로 비전향으로 나온 분이다. 나이가 많고, 노약자.병약자를 내보낼 때 처음으로 비전향으로 나왔던 분이다. 그런데 갈 데가 없어서 가야산 자락 요양소에 계셨다.

거기로 찾아가 선생께 큰절을 올리고 주변 사람들에게 “우리 선생님한테 잘해 드려야 된다”고 했다. 그분은 어려서부터 한학을 공부해서 한시도 잘 지어 가족과 동지를 생각하는 시를 지어서 보내주기도 했다.

그런데 그분이 워낙 건강이 나빠서 1999년에 나온 김창원 선생이 스스로 자청해서 대구 양심수후원회에서 마련한 민들레 집에서 간병.간호를 다 해드렸다. 송환될 때까지 같이 있으면서 심할 때는 대소변을 받아내고 식사라든가 모든 것을 다 했다. 그것은 동지애를 뛰어넘는, 우리 사회가 본받아야 할 어른에 대한 공경심이 아니었나 생각한다. 젊은 사람들에게 큰 귀감이 됐다고 볼 수 있다.

□ 최근에는 북쪽에 가서 직접 비전향장기수들을 만날 상황이 안 되지 않나?

■ 마지막으로 뵌 것은 2007년까지였다. 선생들이 찾아오셔서 뵌 거고, 그전에 우리가 공식적으로 요청해서 언론에 공개적으로 보도됐던 것은 2005년이 마지막이었던 것 같다.

대체적으로 건강들은 다 좋았다. 그리고 남쪽에 있을 때 도와주고 송환하는 데 힘써준 남쪽 지인들에게 감사하다는 말을 하고, 안부를 대신 전해달라는 말을 했다.

2005년 정순택 선생 유해송환으로 2차 송환 분위기 최고조

   
▲ 비전향장기수 2차 송환 노력이 기울여지고 있지만 최근에는 실현가능성이 높지 않은 상황이다. [자료사진 - 통일뉴스]
□ 2차 송환 대상 비전향장기수들의 최근 상황은 어떻고, 송환 전망을 있는지?

■ 비전향장기수 송환은 알다시피 6.15공동선언 제3항에 비전향 장기수 문제를 비롯한 인도주의 문제를 해결한다는 것이 나와 있다. 그 당시 통일부와 우리들은 수시로 만나서 송환을 어떤 형식으로 하느냐, 내용에 있어서 어떻게 포함시키느냐 하는 것들을 많이 얘기했었다.

사실 지금 통일부 차관으로 있던 분이 그 당시 인도지원국장이었는데 고생 많이 했다. 나는 지금도 변함없이 1차 송환에 대해 적극적으로 해 준 것에 대해 감사하게 생각한다.

그런데 1차 송환은 그때 감옥에서 바로 나온 분들 위주로 했다. 우선 그분들이 마지막까지 고통을 당하면서 비전향으로 계셨고, 그러니까 우선대상이 됐던 것이었다.

그러나 비전향 장기수라고 할 때 그 개념이 2차 송환을 신청하면서 많은 토론이 있게 된다. 가령 강제전향도 전향이냐? 이것이 많은 토론회와 여러 간담회를 통해서 통일부까지도 그것을 인정하게끔 됐다. 그것은 참 아주 획기적인 현상이라고 봤다. 통일부에서도 전향 장기수라는 얘기를 안 쓴다. 비전향 장기수라고 했다. 그리고 비전향 장기수이기 때문에 송환되어야 한다는 것까지도 인식을 같이 했다.

다만, 그 당시에 이른바 국군포로.납북자 문제가 있어서 이것과 상호주의를 내세워서 여기서 보내고, 그 사람들도 와야 될 것 아니냐는 얘기가 한나라당과 보수진영에서 나오게 됐다. 그래서 그게 사실 걸림돌이 되고 있었다.

처음에 발족할 때는 감히 보수 쪽에서 그런 얘기를 하지도 않았다. 당연히 가는 것으로 알고 있었다. 33명이 ‘강제전향은 전향이 아니다, 우리도 우리 고향을 찾아 가야 된다’고 2차 송환을 신청했고 희망했었다. 2001년 2월 6일이었다.

지금 8년이 됐다. 그동안에 많은 분들이 돌아가셨다. 많은 사람들이 잘 기억 못 할 텐데 김태수 선생을 시작으로 김경선, 장광명, 정순덕, 정순택, 맹기남, 김원철, 서순정 선생님 등 여러분이 돌아가셨고, 올해 6월 4일에 김종하 선생까지 모두 9분이 돌아가셨다.

이 중에 정순택 선생님은 돌아가시고 이틀 만에 유해 송환이 이루어졌고, 정부에서도 송환이라는 말을 썼다. 그전에는 1차 송환 때만 해도 고향방문이라는 형식으로 보냈다. 그런데 정순택 선생님 유해 송환 때에는 유해 ‘송환’이라고 통일부에서도 정식으로 이름을 달았다.

그래서 남은 분들의 송환문제의 당위성이 크게 부각되고, 언론들도 많은 관심을 갖고 보도했었다.

그러다가 2005년 하반기쯤에 ‘맥아더 동상’ 문제 등을 계기로 보수세력들이 막 나서서 목소리를 높이게 되면서 상호주의론의 발언권이 아주 세지게 되었다. 그니까 통일부에서도 어쩔 수 없이 이렇게 나오게 됐다.

그전에 상호주의가 나오긴 했지만 정동영 통일부 장관이 한번 특사로 갔다 온 적이 있었고, 그 다음에 남북통일행사장에서 직접 내가 한 번 만나서 자세한 얘기를 했는데 “당연히 보내드려야 한다, 조건이 있을 수 없다”고 했다. 국회에서도 국회의원들이 한나라당까지 포함해서 질의했는데 국회 속기록에 나와 있을 것이다.

그래서 “2차 송환은 아무 조건 없이 보내야 한다, 시기만 남아 있다” 그렇게 다 생각하고 있었고, 그러다 정순택 선생 유해 송환으로 그같은 분위기가 아주 확산됐다. 그때가 2005년 9월 30일이었다. 그러니까 2005년 말 무렵이 2차 송환 분위기가 최고조에 달했을 것이다.

그 해를 넘기지 않고 송환되는 것 아니냐, 그때 아마 나하고 인터뷰 안 한 신문사가 없을 정도로, 보수 쪽까지도 그랬다.

비전향장기수 2차 송환과 ‘국군포로.납북자’ 문제는 별개

   
▲ 비전향장기수 송환에 대한 '상호주의'는 부당하다고 선을 긋는 권오헌 명예회장.
[사진 - 통일뉴스 조성봉 기자]
그 다음부터 상호주의가 나왔다. 이종석 통일부 장관도 몇 번 만나서 “아, 보내드린다. 그런데 여러 가지 고려할 점이 있다. 북쪽에서도 뭔가를 해야 우리도 보낼 명분이 되는데”, 그런 얘기를 쭉 했었다. 여기서 얘기되는 것은 ‘전쟁 시기와 그 이후 소식을 알 수 없게 된 사람들’의 문제라고 본다.

이번 금강산 적십자회담에서도 언론들은 구태여 ‘국군포로와 납북자’라고 하지만 정확한 용어는 남북이 함께 쓰기로 한 ‘전쟁 시기와 그 이후 소식을 알 수 없게 된 사람들’의 문제였다.

그 문제는 이미 시작이 됐고, 북쪽만 있는 것이 아니라 남쪽에도 있기 때문에 서로 협의해 합리적으로 남쪽이나 북쪽에 상처가 되지 않는 형식이 있다면 우선 면회를 할 수 있고, 그다음에 방문도 할 수 있고, 최종적으로 남과 북이 신뢰가 아주 두터워지고 체제경쟁이라든가 체제비방이 완전히 사라졌을 때에는 가족이 완전히 합치는 것도 가능할 수 있다고 본다.

그것은 이미 시작이 됐으니까 진전시키면 되는 것이고, 그것과 비전향장기수 2차 송환을 결부시키는 것은 우리는 반대한다고 내가 분명히 얘기했었다.

이것은 남북공동선언 합의사항이고, 일부 가셨고, 남은 분들이 수없이 많은 것도 아니고 한정돼 있다. 이분들은 오직 한 가지 일편단심이랄까, 통일되는 세상을 바라고서 수십 년 동안 감옥에서 자기 신념과 양심을 지켰던 사람들, 이런 특수한 사람들이기 때문에 그래서 온 세계가 송환을 요구했고 남북에서 합의를 했기 때문에 보내야 한다.

□ 현재 2차 송환 대상자 현황은?

양심수후원회 총회 보고서에 나왔던 것이 28명이었는데, 올해 김종하 선생님이 돌아가시면서 27명이다. 평균 나이가 다 75세 이상, 많게는 94세까지 계시다. 80세 이상이 대부분이다.

□ 2차 송환 대상자 중에 특별히 소개할 만한 분이 있나?

■ 제일 가까운 분은 낙성대 만남의 집에 문상봉 선생이 있다. 그 분은 용천참사가 있었던 용천이 고향이고, 지금 85세다. 정말 고령이다. 지금 건강이 아주 안 좋다. 입만 열면 “언제 고향 갈 수 있느냐”고 묻는데, 정말 조마조마하다. 빨리 남북관계가 좋아져서 이런 분들이 고향을 찾을 수 있었으면 하는 바람이 간절하다.

이렇게 건강이 나쁜 분들이 많다. 박종린 선생도 건강이 안 좋다. 박 선생은 만경대혁명유자녀학원 나온 분이다. 감옥에서 그렇게 오랫동안 살았던 분들이 지금 고향 가기만을 기다리면서 혼자 살고 있다. 낙성대에도 세 분이 있다.

최고령으로서 제주도에 계신 고성화 선생이 있다. 고성화 선생은 1차에 가실 수 있었는데도 가족관계도 있지만, 고향에서 할 일도 좀 있다고 해서 다음 기회에 또 갈 수 있지 않느냐 해서 안 갔다. 그런 분들도 지금 너무 고령이니까 정말 안타깝다.

특별히 누구누구 얘기보다는 2차 송환 대상자 중 이번에 돌아가신 김종하 선생과 이학천 선생, 두 분 모두 대구다. 그리고 대전에 이찬근 선생, 이런 분들이 다 인민군 출신이다. 이런 인민군 출신들은 전쟁포로였다. 이것은 제네바 협정을 안 따진다고 해도 그 당시에 포로수용소까지 갔다가 다르게 분류되는 바람에 오랫동안 감옥을 살았고, 감옥에서 나와서도 북으로 못 가고 있다.

전쟁포로는 전향대상조차도 안 된다. 상당히 많은 분들이 전쟁포로로 있다. 이런 분들이 하루속히 가셨으면 하는 바람이 있다.

이런 얘기할 때마다 “북쪽에서 아무 대응이 없는데 어떻게 이쪽만 보내느냐” 이런 얘기를 하는데, 여기서 하나 짚고 갈 얘기가 있다. 전쟁포로라고 할 때 여기서는 국군포로를 얘기하는데 거기에 준하는 것이 휴전협정되던 1953년 6월 8일에 이승만 대통령 특명으로 석방된 인민군 포로가 있다. 공식적으로 각 수용소에 있던 2만 7천여 명이 석방됐다. 사실은 거제도에서 나온 사람도 있고 해서 그 수는 더 많다.

그러면 이 사람들은 어떻게 봐야 되느냐, 지금 남쪽에서 주장하는 국군포로와 이 인민군 포로는 어떻게 봐야 되느냐. 이들은 이미 이쪽을 선택했기 때문에 원래 처음부터 대상에 넣지 않는다. 굳이 전쟁포로를 다 따진다면 포함되는 것이지만, 이미 여기서 가정을 이루고 2세, 3세까지 나오는데 이 사람들이 다시 고향을 찾아가는 것은 인도주의라고 볼 수 없는 것이다.

그런 측면에서 우리들이 얘기하는 것은 전쟁포로로 잡혀갔고, 포로수용소에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다시 불려가서 감옥에 가고, 감옥에서도 끝내 자기 고향을 찾겠다고 주장했던 사람들, 수십 년 감옥에 있으면서도 주장했던 사람들, 이 사람들은 지금도 똑같이 전쟁포로 범주에 넣어서 빨리 송환을 해야 한다는 얘기를 하고 싶다.

현재 양심수 152명, 국가보안법 수감자 22명

   
▲ 현 정부 들어 양심수와 국가보안법 관련 수감자가 대폭 증가했다. 권오헌 명예회장은 양심수 관련 투쟁현장을 빠지지 않고 참석하고 있다. [자료사진 - 통일뉴스]
□ 이명박 정부 들어서 구속자.양심수 현황은 어떤가?

■ 양심수가 아주 없는 세상은 북구 3국은 있을지 몰라도 참 많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1984년 계엄령이 해제되기 전 아주 극우국가로 지명되고 있었던 대만 같은 데서도 사례가 있다. 그때 84년에, 여기로 치면 국가보안법을 해제하고 양심수로 한 사람 남아있던 사람을 석방했다. 그 사람은 여기도 와서 우리하고도 만난 적이 있다.

그 사람들 주장은 대륙에서 주장하는 것과 똑같다. 폭력을 사용하지 않는 한 사상적으로 표현의 자유에 속하는 주장에 대해서는 구속하지 않는다는 것이 대만에서도 지켜지고 있었던 것이다. 그래서 그때 대만에서는 양심수가 한 명도 없다고 했다. 그렇다면 양심수 없는 세상이 그렇게 어려운 것은 아니지 않나.

예를 들어서 참여 정부 내내 대체적으로 양심수가 70명 정도였다. 포항 포스코 노동자들이 무더기로 들어왔을 때 한 때는 많았을 때가 있었다. 그러나 대부분은 빨리 나가고 해서 대략 70, 80명 선이었는데, 오늘 현재 150명을 훨씬 넘어섰다.

구체적으로 분류해보면 국가보안법 22명, 노동자 102명, 용산참사 12명, 언론소비자주권찾기 2명, 한미FTA 관련 2명, 촛불시위 5명, 양심적 병역거부 및 대체복무 관련 6명, 기타 1명 등 총 152명이다.

이것은 수만 많은 게 아니다. 질적으로도 안타까운 일은 남북이 화해협력으로 개성공단이니 금강산관광이니 남북을 오가고 하다가 정부가 바뀌니까 국가보안법이 강화돼 적용된 것이다.

예를 들어서 실천연대나 범민련 사례만 본다 하더라도, 참여정부 내내 정부의 허가를 받고, 국정원이나 통일부, 경찰청 등에 허가받고 북을 다녀온 사람들을 이제 새삼스럽게 몇 년 뒤에 잠입.탈출이나 지령수수 명목을 달아서 처벌하려고 하고 있다. 이게 질적으로 굉장히 달라지는 것이다.

김영삼 정권 때인 1995년 무더기 구속 뒤로는 그런 일이 없었다. 그런데 이명박 정부 들어서서 국가보안법이 이렇게 강화되고 있다. 과거 한총련 활동했던 사람들이 속속 구속되고 있고 실천연대, 범민련뿐만 아니라 노동운동을 했던 사람들도 과거 한총련 활동이라든가 이런 것 때문에 지금 추적을 당하고 구속당하고 있다.

지금 현재 국가보안법으로 구속된 사람이 22명이나 된다. 이렇게 국가보안법이 강화되고 통일운동단체에 대한 탄압, 통일운동 자체를 막아 나서려고 하는 것이 굉장한 문제가 되고 있다.

이것이 바로 이명박 정부의 그동안에 있었던 ‘비핵.개방.3000’이라든가 ‘자유민주주의 체제로의 통일’이라든가 반북대결정책의 반영으로 나타나는 것 아닌가 매우 우려하는 상황이다. 앞으로 국가보안법이 어떤 형식으로 더 통일운동을 탄압할지 정말 우려된다.

또 하나가 노동자들에 대한 무더기 구속이다. 지금 얼마 전 노사간 합의로 쌍용차 문제가 해결됐다고 하지만, 그날로 바로 다 연행돼서, 전체적으로 지금 쌍용자동차만 하더라도 70명이 넘게 구속됐다. 노사 간 합의를 했다면, 그것은 노동쟁의에 속하는 일이다. 노동쟁의는 노동삼권에 속하는 단체행동권에 해당하는데 그것 때문에 70명을 구속한다는 것은, 이건 민주주의 국가라고 할 수 없는 것이다. 너무나 안타까운 일이다.

더욱 비참한 일이 하나 있다. 바로 올해 1월 20일에 있었던 용산참사다. 정말 살려고 올라갔던 사람들, 거기서 최소한의 주거권이나 조그만 가게라도 하나 보장해주면 해서 주장하다가 안 돼서 거기에 올라갔던 사람들이 살인진압으로 해서 5명이 비참하게 죽음을 당했다.

이분들이 지금 7개월이 넘도록 장례를 치르지도 못하고 있고, 더욱 잔인한 것은 돌아가신 분의 아들을 살인혐의로 구속하고 있는 현상이다. 바로 이충연씨다. 이렇게 용산참사와 관련해서 구속된 사람이 12명이다.

너무나 안타깝고 우리 사회가 언제부터 이렇게 비정하고 잔인해졌는지, 또 민주주의와 인권이 상당히 발전됐다고 하는 나라에서 이런 현상이 벌어졌다는 것은 정말 안타깝기 짝이 없다.

사람이 경찰관까지 6명이나 죽었는데, 그렇다면 그 도의적 책임으로 행정장관이 물러나게 되고 대통령은 사과를 하고 그랬었다. 예를 들어, 여의도에서 농민시위에서 농민들 두 사람이 죽었을 적에 대통령은 사과했고 경찰청장이 물러나지 않았나. 이것은 그렇게 어려운 일도 아니고, 지금이라도 정부에서 사과하고 장례 치를 수 있는 조건을 제시하고 억울하게 구속돼 있는 분들도 빨리 석방할 수 있었으면 참 좋겠다고 생각한다.

장기수 송환과 국가보안법 폐지 소망

   
▲ 지난 5월 6일 경찰의 촛불집회 1주년 기자회견 과잉탄압을 국가인권위원회에 진정하고 있는 권오헌 명예회장. [자료사진 - 통일뉴스]
□ 양심수후원회가 영치금. 편지 등 양심수 후원을 직접 담당하고 있는데, 최근 감옥 안의 상황이나 소식이 들려오는 것 있나?

■ 우리는 이전부터 감옥 안은 재소자 인권문제라고 보고 있었다. 옛날에 비하면 많이 개선됐다고 볼 수 있다. 이것은 지난 민주정부 시절에 이룩했던 일이라고 하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직도 개선의 여지는 많이 있다고 본다.

옛날에 비해선 집필 허가도 나 있고, 여러 가지 신문이라든지, 독서 이런 것을 제한받지 않고 있지만 지금도 분명하게 금지도서라는 것이 있어서 여기서 넣어준 것이 본인에게 보내지지 않는다거나, 특별한 경우 편지 쓴 것이 제대로 나오지 않은 경우가 있다.

이것이 특히 국가보안법 관련 사건에서 과거의 나쁜 관행이 이어지고 것인데, 이런 것은 개선돼야 한다고 생각한다.

기타 실생활 면에서는 그렇게 아주 나쁜 상태는 아니라고 보인다. 그러나 최근 들어서 조금 더 어려운 일이 있지 않은가 생각한다.

과거 정부에서는 양심수, 그 사람들이 볼 때는 시국사범에 대해서 특별 배려가 있었다. 그렇다고 형식적으로 그런 것은 아니다. 왜냐하면, 그것은 폭력이라든가, 사람을 죽였다든가, 대형 비리사범이라든가 이런 파렴치범이 아니기 때문에, 만나보면 인격적으로 괜찮은 사람들이고 그러니까 그런 게 있었다.

그런데 최근에 특히 경찰 쪽에서 시위나 집회, 이런 것에 대해서 아주 적대감을 가지고 탄압하는 장면을 보게 되는데, 그런 분위기가 검찰과 법무부의 지휘를 받고 있는 교도소에까지 미치지 않는가 생각한다.

□ 양심수가 속출하고 있는데 이같은 상황을 벗어나기 위해서 어떤 노력이 필요한지?

■ 양심수 범주 속에 비전향장기수 송환 문제가 들어 있다. 우리들이 했던 일이고 우리 사회가 요구했던 일이기 때문에 빨리 송환됐으면 좋겠다. 또 감옥에 양심수가 없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한다. 특히 국가보안법도 없었으면 좋겠다. 노동관계법, 교육법이라든가 이런 법들이 민주적으로 개정돼서 우리 사회가 자기 양심에 따라 활동한 사람들이 구속된 사람들이 없었으면 좋겠다.

그러기 위해서는 우리 사회가 너무 경직돼 있다. 일단 남북 간 경직돼 있고, 진보와 보수 간 약간의 갈등도 있다. 그런데 이것을 푸는 방식이 우리 민족의 화해협력이라고 본다. 우리 민족의 화해협력은 바로 남쪽 사회에서의 모든 계급계층 간의 화해협력도 된다고 본다.

지난 10년 동안 화해협력 정책으로 여러 가지 많은 자주통일의 토대를 닦았다고 볼 수 있었는데, 이것이 빨리 복원되기를 바라고 최근에 그런 조짐이 있다는 것에 대해서 매우 고무적이다.

이명박 정부가 정권 초기니까, 또 잘 몰라서, 일부 층에서 제동이 걸려서 그랬는지 모르지만 6.15, 10.4선언 이행의지가 지금까지는 보이지 않았다. 그러나 최근에 김대중 대통령 특사조문단이 와서 대통령을 면담하고, 남북 간에 서로 잘해보자는 두 정상 간의 간접대화까지 있었다.

그래서 이제야말로 민족 간에 자존심이 무슨 필요가 있겠나. 누가 먼저 손을 내밀더라도 오히려 국민으로부터 더 칭송을 받고, 우리 민족으로부터 박수를 받지 않을까 생각한다. 그래서 쉬운 일로 빨리 지난 정부시대에 이어오던 것이 이어지기를 바란다.

한 걸음 더 나가서 이명박 정부가 생각하고 있는 상생공영이라는 개념이 어떻게 해석될지는 모르지만, 이것이 남북 간에 잘 지낸다는 것이라면 정상회담도 하고, 어떻게 해서든지 대결과 불신, 이런 데서는 벗어나야 되지 않을까 한다.

남북화해에 제약을 가하고 있는 법적 제도나 장치도 풀고, 국가보안법도 풀고, 이렇게 해서 비전향장기수 송환, 또 남북으로 흩어져 있는 사람들이 자주 만나게 할 수 있고, 이산가족 상봉뿐만 아니라 서로 방문해서도 만날 수 있고, 이것이 더 쌓이고 쌓여진다면 남북 간에 서로 불신대결 상태가 완전히 가셔졌을 때 가족 간에 서로 합치는 때도 오지 않을까 생각한다. 하루빨리 남북화해협력정책으로 되돌렸으면 하는 생각 간절하다.

현대경제연구소 통일경제센터에서 금강산 관광 중단 1주년 여론조사를 한 것에 따르면, 대북정책을 변화해야 한다는 것이 84.3%였고 그대로 둬야 한다는 것이 15.3%로 나와있다. 대북압박을 하면 북쪽에서 손을 들고 나올 것이다는 '그렇다'가 10%밖에 안 되고, '아니다'가 90%였다. 핵 문제를 해결한 다음에 남북대화를 해야 한다는 것이 21.4%고, '그렇지 않다. 핵 문제와는 별도로 남북관계는 대화하고 화해.협력정책으로 가야 한다'는 것이 78.4%였다.

진보단체에서 한 것도 아니고 경제단체에서 한 것인데, 이런 것을 본다 하더라도 우리 국민의 절대다수가 남북 간의 대화협력, 화해협력 정책으로 가는 것을 바라고 있다.

오늘 날짜로 12.1조치가 해제돼서 모든 공단 내에 인원들이 체류일정이라든가 출입 횟수라든가 다 풀렸다. 이것이 하나하나 풀리고 금강산에서 적십자 회담도 했고, ‘800연안호’ 선원들과 선박도 왔고, 개성공단 근로자도 나왔고, 이렇게 됐다면 이제 남쪽에서도 대답이 있어야 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머뭇거릴 때가 아니라고 본다. 적어도 남북관계에 있어서는 미국을 쳐다볼 게 아니라 우리 민족의 속마음을 보고 정말 화해협력으로 가면 남도 좋고, 북도 좋고 우리 민족 전체가 좋지 않을까. 해외에 있는 우리 민족들도 자기 민족이라는 자긍심을 가지고 자기 조국이 이렇게 잘 간다는 것에 대한 행복감이 있을 것이다.

하루라도 빨리 이명박 정부가 이제까지의 자세에서 벗어나서 화해.협력 정책으로 나가기를 간절히 기대하고 있다.

“인권.통일운동에 임기는 있지만 정년은 없다”

   
▲ 지난 4월 26일 민가협양심수후원회 회장직을 물러나며 최고령 2차 송환 대상자인 고성화 선생으로부터 공로패를받고 있는 권오헌 명예회장. [자료사진 - 통일뉴스]
□ 앞으로의 활동계획은?

■ 총회 때 그런 얘기를 한 번 했다. 인권운동이나 통일운동에서 임기는 있지만 정년은 없다고 했다. 회원들이 붙여준 명예회장은 명예회장일 뿐이고 나는 대표성을 가지지는 않는다. 회원으로서 고통받는 사람들 편에서 할 수 있는 일은 많이 있다고 생각한다. 오히려 손이 모자를 정도다.

그래서 내 건강이 허락하는 한은 옛날과 같이 변함없이 일을 할 것이다. 다른 일이 아니라 양심수들 찾아뵙고, 출소한 장기수 선생들 찾아뵙고, 또 우리 사회에 불의와 모순에 대해 표현하는 길이 있으면 거기에 나가서 참여하고, 또 남북관계라든가, 북미관계라든가 이 땅의 평화와 통일과 관련된 일이 있을 때 하나의 민족구성원으로서 나가서 참여할 생각을 가지고 있다.

□ 민가협양심수후원회를 비롯해 한국진보연대 등 진보단체 세대교체 이뤄지고 있는데 어떻게 보나?

■ 오히려 나는 내가 회장직을 이제까지 붙들고 있었던 것이 너무 늦었다고 본다. 빨리 새로운 사람이 왔다면 더 기발한 발상을 가지고 더 효과적이고 합리적인 여러 가지 방법이 있을 텐데, 사실 나만 하더라도 나이가 많고, 생각도 고루할 수 있기 때문에 빨리 세대 교체하는 것이 좋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세대교차가 운동의 연속성을 단절시킨다거나 해서는 안 된다고 본다. 시대정신, 우리가 갖고 있는 시대정신이라는 것은 분단된 조국을 하나로 하겠다는 자주통일이고, 이 땅의 민주주의를 확립하는 것이고, 또 인권침해가 없는 사회, 그 인권 개념 속에 노동자들의 노동삼권이랄까, 또 도시빈민들, 사회 소외계층에 대해 인간답게 살 수 있는 이런 것 때문에 일해왔던 것, 이런 것은 그 연속성을 유지해야 된다. 다만 그것을 연속하는 데 새로운 세대가 더 기발한 정신을 가지고 하는 것이 좋지 않겠나 생각한다.

□ 양심수후원회의 경우에는 세대교체가 잘 이뤄지고 있나?

■ 아무래도 대번에 그전 것을 이어가기는 힘들다고 한다. 일정한 기간이 필요하다고 본다. 새로운 임무를 맡았던 분들이 지난 15년 이상을 간부로 활동했던 분들이다. 그런 면에서 하나도 뒤처지지 않고, 지금 현재 총회 끝나고 5개월 됐지만, 아무 일 없이 잘 되고 있다. 오히려 더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다.

□ 건강상태는 어떤가?

■ 내가 이렇게 활동하는 것이 건강비결이다. 다만 내 나이에 비해서 현재도 마찬가진데, 무리하는 것은 잠을 충분히 못 자는 것이다. 또 머리로 하는 작업들이 있다. 예를 들어 글쓰기라든가, 이런 것이 있는데 이런 것을 좀 줄인다면 이렇게 활동하는 것은 건강에 더 좋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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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보기(6)
통일시대 () 2009-09-04 17:38:38
홍익인간만만세 (124.XXX.XXX.146)/ 이왕 변장하실거면 아이피 주소라도 달라 하실거지. 너무 들통 날 상황이로군요. 제가 알기엔 님은 30대 후반이라는데, 밤낮을 가리지않고 PC앞에만 있으면 생활은 어떻게 하시는지요? 쓸데없이 궁금해했습니다. 신경쓰지 마시오.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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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익인간만만세 () 2009-09-03 12:34:37
이산가족들도 자신들이 살고 싶은 지역에서 살게 하도록 하고 남북한 장기수들도 자신들이 살고 싶은 지역에서 살도록 해야 한다. 남북한은 인도주의적인 문제를 정치적으로 이용하지 말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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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제요망 () 2009-09-03 01:28:08
순수한 인도적 문제이니 쉽게 풀자.

어떻게? 그냥 던져보고 자는거야? 순수한 인도적 문제를 어떻게 하자고?

그냥 국군포로고 뭐고 전향장기수만 덜컹 보내자고? 확실하게 말혀!!!

안될일은 뭘까? 국군은 버리자고? 전향장기수만 보내는게 '순수 인도적 문제'야?

되도 안한 헛소리 고마혀~~~ 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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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제요망 () 2009-09-02 23:53:34
그냥 국군포로 이런 문제와 상관없이 무조건 전향 장기수들 보내라고 말하는게 솔직하다. 그게 더 인간적이고 명명백백하다. 사람은 어떤 경우든 복선을 깔지않고 자신의 주장을 설파하는 게 솔직하고 칭찬받는다. 자기가 북한 지지하면 지지한다 그러고 남한 싫어한다 그러면 솔직하게 주장하라. 국가보안법 땜에 그런다고 핑계되는 건 사실 솔직하지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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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찰 () 2009-09-03 00:28:34
인도적 문제들을 순서대로 풀어 나가야 함에도 현 정부는 안될 일을 결부시켜서 될일을 막고 있다. 합리적 대화로 남북간의 모순을 하나 둘 극복하여 우리의 자주능력을 확인하자.

순수한 인도적 문제이니 쉽게 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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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일철학 () 2009-09-02 16:58:51
본인들 자유의사에 맡깁시다. 제3자가 누군되고, 안되고 따지는 건 웃깁니다. 오익제는 남의 가족들 버리고 옛 북 가족들과 삽니다. 권氏주장과는 상반됩니다. 국군포로등, 장기수 출신이든, 일본인 납치 피해자든, 북송재일동포등, 일단 본인들 자유의사에 맡깁시다. 그후 이들의 자유래왕을 보장하면 됩니다. 북이 억류하는 사람은 제외하고 남쪽 장기수만 보내자는 편벽한 주장으론 절대 문제해결이 안됩니다. 그 반대주장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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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료사진제공 - 범민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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