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중가수로 유명한 박종화(46) 시인의 서예산문 '나의 삶은 커라'를 연재한다. 전남 함평의 한 산골마을에서 올라오는 박 시인의 산문과 서예작품은 매주 토요일 게재된다. / 편집자주



창작 이십 년을 함평에서 맞습니다.
노래와 함께해 온 지 이십 년이란 세월이 훌쩍 가버렸네요. 의미 있는 해를 그냥 그렇게 넘겨 버릴 수도 없고 해서 서울과 광주 공연을 준비하기 위해 이곳 작업실 산장에서 기획회의를 하는 날입니다. 관계자들과 얼굴 대하고 앉았는데 가장 큰 논의사항은 역시 재정문제이군요. 책임주체를 맡은 준구도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닙니다. 이십 년 창작생활의 총화 중심이 돈이 되어야만 하는가 하는 회의감마저 드는 시간입니다. 아무도 지라고 하지 않은 무거운 등짐을 등에 지고 쉼 없이 달려오다가 돌아보니 따라오는 이 하나 없는 그런 무상감이 한없이 몰아쳐 오는 것 같아서요. 하지만, 어쩌겠어요. 자본주의라는 커다란 올가미 안에서 살아가는 한 자본은 전쟁터의 총알과 같은 존재인 걸요. 인정해야만 하는 가슴이 짠한 오후 한나절입니다.
회의가 다 끝나가도록 기획안에 상정된 근본적인 문제는 논의가 되지 않네요. 어떻게 공연을 치르고 그 의미는 무엇으로 하고 이십 년을 결산하는 우리의 슬로건으로는 무엇을 내걸 것인가 하는 진짜 중요한 문제들은 여전히 오리무중이구요. 마지막까지 재정문제 해결을 위한 논의만 더해가고 급기야 재정문제 해결 전담팀을 꾸리자는 의견으로 모입니다.

회의가 끝나고 내가 살아 온 창작 인생이 값으로 따지면 얼마나 될까를 생각해 봤습니다. 이것 빼고 저것 빼고 하다 보니 남은 게 없어져 버렸어요. 이름도 명예도 없이 전부를 걸고 달려온 이십 년이 당나귀 귀 빼고 뭐 빼고 나면 허망하고 말 듯 그렇게 쓸쓸해 보이고 마네요. 한 시대를 휘돌며 살던 시절 무수히도 많은 슬로건을 내 던졌건만 오늘 나는 이십 년을 갈무리할 슬로건 하나 걸 게 없어 고민하고 있군요. 그래도 걸어야지요. 높은 장대 위에 내가 사랑했던 모든 것들과 함께 포기할 수 없는 삶으로 걸어야지요.
어거지로라도 걸어야지요. 피눈물로라도 걸어야지요.

▲ 박종화 作 '값'(640*300) "한 순간을 살아도 값있게 살자"

매일을 값있게 산다는 것
마음먹기는 쉬워도 실천하기란 어려운 일입니다
눈을 뜨면 제일 먼저 보이는 벽에 걸린 [값]이라는 글자가
나를 가르치고 있습니다


작품설명 : 긴 인생의 노정을 표현하려 [ㄱ]을 길게 늘여 보았습니다. 변함없이 쭉 값있는 인생을 살자는 표현이기도 하구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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