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대중 전 대통령의 국장이 23일 엄수됐다. 이제 그는 국립 현충원에 안장돼 영면(永眠)에 들어갔다. 인간 김대중을 어떻게 평가해야 할까? 한 인간의 삶을 평가하기란 쉽지 않다. 하물며 그의 일기의 한 구절처럼 파란만장한 삶을 산 사람의 인생을 한 마디로 정의를 내릴 수 있을까? 세속적 가치로만 보면 그는 이 나라의 15대 대통령이었다. 아울러 세계적 권위의 노벨평화상을 수상했다. 이 과정에서 그는 수평적 정권교체를 이뤘고 국난(國難)이라 불린 IMF를 조기에 극복했으며 또한 2000년에 최초로 남북정상회담을 성사시켰다. 근본적으로는 부박한 이 땅에 민주화의 씨앗을 뿌려 어느 정도 과실을 맺는데 큰 역할을 했으며 또한 민족화해 입장에서 남북관계를 획기적으로 개선시켰다. 그는 한때 ‘권력의 화신’, ‘대통령병 환자’로 비쳐지기도 했지만 민주주의와 민족화해에 관한 확고한 신념이 더 우월해지면서 단순한 권력자의 이미지를 뛰어 넘는데 성공했다.

그래도 어쨌든 그는 정치인이 맞다. 그런데 그를 단순히 정치인으로만 한정지을 수는 없다. 일개 정치인이라면 정치생명이 끝나는 순간 모든 걸 잃는다. 숱한 정치인이 정치무대에서 부침과 명멸을 거듭했다. 한 시대를 풍미하고 이름을 날렸다가 나중에 흔적도 없이 사라진 정치인 군상(群像)이 수두룩하다. 이 나라의 굴절된 정치사가 그것을 증거하고 있다. 김대중은 일개 정치인은 아니었다. 살아생전에 이토록 많은 사람들의 입에 오르고 또 세상을 뜨면서도 일반 대중들의 심금을 울리고 있는 사실이 반증한다. 그렇다면 그를 어떻게 한 마디로 평가할 수 있을까? 당대가 그랬듯이 젊은 날의 그는 사회주의자일 수 있고 또 혁명가일 수도 있다. 이같은 이념적 표현을 굳이 회피한다면 그는 풍운아였다. 1970년대 유신시대, 1980년 서울의 봄과 광주민중항쟁, 1987년 6월항쟁, 2000년 남북정상회담 등 한국 현대사의 굵직한 고비마다 그는 꼭 나타났다. 그는 한국 현대사의 증인이다. 아울러 그는 분단된 현실에서 남한 실정에 충실했다.

그는 한 나라의 대통령이자 국제적 노벨상 수상자라는 차원을 뛰어 넘는다. 분단된 나라의 한 인간이었기 때문이다. 단순히 일국의 대통령이라면 한 정객일 수 있다. 노벨상을 받았다면 한 국제적인 인물일 뿐이다. 물론 대통령과 노벨상 수상자라는 가치는 더할 나위 없이 영예롭다. 그러나 그에게는 그 이상의 무엇이 있다. 무엇일까? 대통령이 되고 노벨상을 수상했다는 세속적 대업이 그의 정체성을 대변해 주지 않는다. 게다가 그 두 가지 세속적 영예가 그의 삶의 끝도 아니다. 다름 아닌 그가 땅을 디딘 곳이 세계적으로 특이한 분단상태이며, 아울러 거기에서 나오는 민족문제 때문이다. 그는 대통령직을 통해 남북정상회담을 성공시켜 역사적인 6.15공동선언에 합의했다. 아울러 노벨평화상은 남북정상회담 등 한반도 평화에 기여한 공로의 결과물일 뿐이다. 그렇다면 그의 평생의 업은 민족문제가 아니었을까? 그런데 민족문제를 본격화하기 이전에 그는 남쪽의 비민주적 현실과 부단히 싸울 수밖에 없었다. 그리하여 그에게는 남한 현실에서 민주주의문제와 민족문제가 동일한 차원 아니었을까?

그는 일관되게 민족문제와 한반도 평화문제에 관심을 가졌다. 그는 1971년 대통령 후보 시절부터 이미 ‘한반도의 평화를 위한 4대국 보장론’과 ‘3단계 통일방안’을 내세웠다. 정계 은퇴 후 1993년 영국에서 귀국한 그는 아태평화재단을 설립해 장차 정계 복귀의 발판을 마련했다. 무엇보다도 권력을 쥔 상태에서 그는 6.15공동선언을 내왔다. 대통령직에 물러나면서 그가 택한 길은 한반도 평화와 민족통일을 다루는 김대중평화센터였다. 그는 대통령직을 수행하고 86세까지 살면서 민족문제에 몰두했다. 이토록 민족문제에 천착해 왔다면 그는 민족주의자임에 틀림없다. 분단된 현실에서는 어느 한쪽에서만 인정된다고 민족주의자가 되는 건 아니다. 그는 보기 드물게 북측으로부터도 인정을 받았다. 북측 관련 신문은 평양시민들이 그의 부음을 듣고 애도를 표했다고 보도했다.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즉각 유족에게 조전을 보내고 또한 ‘특사 조의방문단’을 남측에 보냈다. 특히, 인생에서는 전성기 못지않게 말년이 더 중요하다고도 한다. 숨을 거두기 직전까지 그는 한반도 평화와 남북관계 개선 등 민족문제에 대해 쓴 소리를 마다하지 않았다. 이렇게 보면 그는 민족주의자로서 말년까지 천직(天職)인 민족문제에 골몰하다가 순직(殉職)했다. ‘민족주의자 김대중’의 유지를 받드는 것은 곧 민족문제와 통일운동에 나서는 것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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