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북측의 일련의 대남 공세를 두고 ‘통민봉관’(通民封官:민간과는 대화하고 당국과는 대화하지 않는 것)이라는 단어가 자주 등장하고 있다. 북측이 현정은 현대그룹 회장 방북과 김대중 전 대통령 조문단 파견 추진 과정에서 남측 당국을 통하지 않고 곧바로 해당 민간에 통보한 것을 일러 표현한 것이다. 얼핏 ‘통미봉남’(通美封南:미국과는 대화하고 남한과는 대화하지 않는 것)을 상기시키는 이 단어는 북측이 남측 당국을 의도적으로 외톨이로 만든다는 뜻을 담고 있다. 하지만 오히려 그 반대다. 이 말의 폐해는 심각하다. 남과 북을 의도적으로 분리시키고 있기 때문이다. 통민봉관이라는 말은 남북화해를 달갑지 않게 여기는 세력이 만든 조어(造語)일 뿐이다. 남북관계가 한때 ‘전쟁접경’으로까지 간 경색국면에서 북측이 남북관계 개선을 위해 쓸 수 있는 방법으로 무엇이 있을까?

과연 통민봉관이 북측의 전술일까? 알다시피 한반도에서 남북관계와 관련 북측과 관계를 설정하고 있는 세력은 미국과 남측 당국 그리고 남측 민간 등 세 축이다. 한반도 정세가 냉각되었을 때 통상 북측은 경색국면을 타파하고 향후 정세에서 주도권을 잡고자 세 축을 향해 선공(先攻)을 취하는 경우가 많다. 최근 북미관계의 경우, 북측은 두 여기자를 지렛대로 해서 클린턴 특사를 평양으로 불러 오바마 행정부와의 대화 의지를 표명했다. 일의 순서상 남측이 아니라 미국측을 먼저 선택한 것으로 보면 된다. 통미봉남이 아니라는 것이다. 남북관계의 경우도 북측은 억류하고 있던 현대아산 직원 유성진 씨를 지렛대로 해서 현정은 현대그룹 회장을 역시 평양으로 불러 금강산관광사업 재개와 이상가족상봉 등 큼직한 선물을 안겼다. 이어 북측은 김대중 전 대통령이 서거하자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조전을 유가족들에게 보냄과 동시에 김대중평화센터에 20일-21일간 ‘특사 조의방문단’을 파견하겠다는 의사를 전해왔다.

이 과정에서 통민봉관이라는 단어가 등장했다. 북측이 현정은 회장을 초청한 것도 조선아시아태평양평화위원회(아태위)이고 조문단 파견을 제의한 것도 아태위이기 때문이다. 즉, 남북간의 큼직한 일이 북측의 선공에 의해 아태위-현대그룹, 아태위-김대중평화센터라는 민간 차원에서 진행된 것이다. 그러나 북측의 관행에서 볼 때 남측 당국이 이를 우려할 필요는 없다. 북은 원칙과 격식을 중요시한다. 남북 당국간 통로가 막혀있는 상태에서 남측 당국에 메시지를 직접 전달할 수는 없다. 민간 차원을 통해 간접 전달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이번에 현대그룹과 김대중평화센터가 당국의 역할을 충분히 했다고 볼 수 있다. 남북 당국간 관계가 막혀있을 때 이같이 민간의 역할이 빛을 발할 때가 왕왕 있다. 지난 2005년 민간 차원의 6.15민족통일대축전 평양행사에 참가한 정동영 통일부 장관이 대북 특사 역할을 통해 남북관계의 밀월시대를 연 것이다. 이명박 정부한테도 민간을 통해 남북관계를 개선할 수 있는 기회가 온 것이다.

이제 남측 당국이 화답할 차례다. 민간이 대북접촉을 통해 받아온 메시지를 남측 당국이 일축하면 통민봉관을 자초하는 게 되며, 단순히 메시지를 승인만 하면 통민봉관을 인정하는 모양이 된다. 북측 조문사절단이 오면 남측 당국이 나서서 만나야 하는 이유다. 특히 북측은 통지문에서 ‘특사 조의방문단’이라고 명시했다. 임동원 전 통일부장관의 해석대로 ‘특사 조의방문단’을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직접 보냈고, 남측 당국과 만날 수 있는 권한도 부여한 것”으로 보면 된다. 게다가 이번 ‘특사 조의방문단’에는 김기남 조선노동당 중앙위원회 비서를 단장으로 김양건 조선 노동당 중앙위원회 통일전선부 부장이 오며, 기간도 1박2일이나 된다. 사실상 대남 특사들이고 시간도 넉넉하다. 이명박 대통령이 북측 인사들을 청와대로 초청한다면 당장 남북관계 개선의 새 출발이 열릴 것이다. ‘통미통남’(通美通南)만이 아니라 ‘통민통관’(通民通官)도 되는 것이다. 통미봉남도 그렇지만 통민봉관 역시 남측 당국이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달려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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