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8일 오후, 경기 파주 시내에서 무건리훈련장 확장 중단을 염원하는 삼보일배가 진행됐다.
[사진-통일뉴스 고성진 기자]
"천 번의 절을 해서, 만 번의 절을 해서라도 고향 땅을 지킬 수 있다면 그렇게 하겠습니다."

'무건리훈련장' 확장 계획으로 고향 땅을 잃게 될 위기에 놓인 오현리 주민들과 시민사회단체들의 삼보일배가 8일 오후, 경기 파주 시내에서 진행됐다.

한 낮의 수은주가 30도에 육박한 이날, 뜨거운 아스팔트 열기도 고향 땅을 지키겠다는 이들의 발걸음을 묶지는 못했다.

오후 4시 50분쯤, 파주시청 앞에서 시작된 삼보일배는 국방부가 협의매수에 응하지 않은 주민들의 땅 대부분에 대해 한국토지공사 중앙토지수용위원회(중토위)에 재결을 신청, 오는 28일 그 결정을 앞두고 있는 긴박한 상황 속에서 평화로운 문제해결을 요구하는 주민들의 염원을 알리기 위해 준비됐다.

▲ 이날 삼보일배에는 오현리 주민들을 비롯해 정당.시민사회.대학생 등 각계 150여 명이 참가했다. [사진-통일뉴스 고성진 기자]
이 때문에 오현리 주민들을 비롯해 '무건리훈련장확장저지시민사회단체공동대책위원회'(공대위) 소속 회원들과 대학생 등 150여 명이 대거 참가해 파주시청과 시청 앞 사거리를 거쳐 금촌역까지 약 1km의 거리를 줄을 맞춰 이동했다.

주병준 무건리훈련장확장저지 주민대책위원장이 펼침막을 들고 최선두에 섰고 배종렬 평화와통일을여는사람들 공동대표, 송영주 민주노동당 경기도의원, 황수영 민주노총 통일위원장, 김종일 공대위 집행위원장이 뒤를 따랐다.

통일선봉대 등 대학생 50여 명도 '고향에서 살고 싶다'는 손팻말을 몸자보에 부착하고 행렬 중간에 자리했다. 몸이 불편한 사회원로와 고령의 주민들은 뒤편에 있거나 차량을 통해 이동했다.

아스팔트의 열기로 참가자들의 얼굴은 삼보일배를 시작한지 얼마 되지 않아 땀으로 범벅이 됐다. 양 손에 낀 흰색 장갑과 무릎 주변은 금세 까맣게 변했다.

삼보일배를 처음해 보는 오현리 마을 주민들도 고향 땅을 지키겠다는 염원을 담아 구슬땀을 흘렸다.

12대째 오현리에 살고 있는 이형우 씨는 삼보일배를 마치고 "국방부와 대화와 타협으로 문제를 풀어갈 수 있는데 이렇게까지 해야 되나. 주민들의 요구는 고향에서 살겠다는 것밖에 없는데 억울하고 분하다"며 답답한 속내를 드러냈다.

국방부, 주민 의사 배제한 채 중토위에 재결 신청.. 중토위 결정만 남아

▲ 통일선봉대 30여 명도 삼보일배에 나서 구슬땀을 흘렸다. [사진-통일뉴스 고성진 기자]
실제로 주민들은 줄곧 '마을 내에서의 이주'를 포함한 중재 방안을 제안하며 문제 해결의 의지를 보였지만, 국방부는 주민들의 의사를 배제한 채 중토위에 재결을 신청, 강제토지수용 절차를 밟고 있는 상황이다. 2년여에 걸친 양측 간의 갈등이 최고조에 이르고 있는 것이다.

국방부는 전체 확장 예정 면적의 90% 이상 확장을 마쳤다고 밝혔다. 따라서, 확장 예정 면적의 3%인 약 30만 평을 양보하면 이 문제가 원만하게 풀릴 수 있다는 것이 주민들과 시민사회단체들의 입장이다.

주병준 주민대책위원장은 "공토법(공익사업을 위한 토지 등의 취득 및 보상에 관한 법률) 자체가 악법이다. 농민들에게만 법을 강조하면서 자기들은 주민들과 어떤 문제해결 노력도 하지 않고 있다"며 국방부의 태도를 비판했다.

오는 28일 또는 내달 11일 열릴 것으로 보이는 중토위에서 '강제토지수용' 방침이 결정되면, 국방부는 이 지역의 토지를 공탁을 거쳐 강제적으로 확보할 수 있는 법적 근거를 마련할 수 있게 된다.

이의신청과 행정소송이라는 법적 분쟁 절차가 남아 있기는 하지만, 2006년 평택 대추리에서 처럼 결국엔 공권력이 투입되는 등 토지 강제수용이 이뤄질 것이라는 분석이 대다수다.

주민대책위.공대위 "중토위원 찾아가 중재안 권고토록 설득할 것"

▲ 버스에 탄 시민들이 삼보일배를 관심있게 지켜보고 있다. [사진-통일뉴스 고성진 기자]

따라서, 오현리 주민들과 시민사회단체들 사이에 중토위의 수용재결을 막기 위한 방법들도 논의되고 있다. "회의를 무산시키는 강력한 투쟁을 전개하겠다"는 얘기다.

이와 동시에 중토위원장을 제외한 중토위원 9명을 일일이 찾아가 주민들의 입장을 알리겠다는 계획도 갖고 있다. 중토위원은 2명의 공무원(상석)과 7명의 민간 전문가들로 구성돼 있다.

김종일 공대위 집행위원장은 "중토위원들을 찾아가 주민들이 모여서 살 수 있도록 공간을 확보할 수 있는 방안을 국방부와 주민대책위에서 조정하라고 권고하는 안을 위원들이 내도록 직접 설득할 것"이라고 밝혔다.

<삼보일배 참가자들의 '말말말'>

삼보일배 행렬에는 정당.대학생.시민사회단체 등 다양한 부문의 참가자들이 눈에 띠었다. 이들 역시 국방부의 일방적인 '무건리훈련장' 확장 계획 추진에 대해 비판의 목소리를 쏟아냈다.

특히 주민들과 대화와 조정을 통한 문제해결을 피하고 있는 국방부의 '불통'이 현 정부와 닮아있다는 지적이 잇따랐다. 이날 한 낮의 뜨거운 열기에 1시간 동안 온 몸을 내던진 각계 참가자들의 목소리를 모아봤다.

○ 송영주 민주노동당 경기도의원

이명박 대통령은 파주시가 남북교류 협력의 중심지라고 했고, 파주시 역시 이곳을 평화의 도시라고 말하고 있는데 전쟁을 준비하고 있는 훈련장을 확장하는데 굉장히 배신감을 느꼈다. 파주시 땅에 손을 대고 머리를 조아리면서 이렇게 생각했다. 떠나면 안 되겠다고. 주민들이 반드시 승리하는 모습을 보기 위해 떠나면 안 되겠다고. 30만 파주시민이 힘을 모아준다면 파주시가 아름답고 평화로운 도시가 될 것이라고 생각한다.

○ 배종렬 평화와통일을여는사람들 공동대표

군사훈련장 확장을 반드시 막아내야 한다. 주민들의 소원이기도 하고, 동북아의 평화를 가져오기 위해서는 그렇게 해야 한다. 미국은 세계적 패권을 유지시키기 위해 훈련장을 확장하려고 시도하고 있다. 국방부는 미국에 고용된 개에 불과하다. 우리가 훈련해야 되는 것처럼 국민들을 속이고 있으며, 주민들의 생존권을 말살하려 하고 있다.

○ 조민혁 대학생 통일선봉대 총대장

삼보일배를 처음 해봤다. 삼보일배를 하면서 머리가 맑아지는 느낌이었다. 제가 딛고 있는 이 땅이 너무나도 소중하다는 것을 알았다. 우리의 소중한 땅을 전쟁기지로 다시는 내줄 수 없다. 2006년 평택에도 있었다. 전쟁의 먹구름이 뒤덮여오는 것을 보면서 마음이 아팠다. 더 아팠던 것은 농민들의 생존권이 깡그리 무시됐던 것을 보고 너무나도 안타까웠고 화가 났다.

○ 마을주민 이형우 씨

힘들다. 농번기에 일손도 부족하고 이 삼복더위에 고향에서 살겠다는 것밖에 없는데 우리가 왜 이렇게 해야 하나. 억울하고 분하다. 국방부는 대화와 타협으로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데 그렇지 않고 있다. 안보상 필요하다면서 그 책임을 왜 오현리 주민들에게만 떠맡기냐. 약자는 무조건 죽어야 하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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