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중가수로 유명한 박종화(46) 시인의 서예산문 '나의 삶은 커라'를 연재한다. 전남 함평의 한 산골마을에서 올라오는 박 시인의 산문과 서예작품은 매주 토요일 게재된다. / 편집자주




평소에 아버지처럼 따르며 15년을 함께 했던 류락진 선생님의 추모제에 다녀온 날입니다. 피곤한 몸으로 술 한잔 걸치고 집에 들어와 시계를 보니 벌써 새벽입니다. 내일은 농민집회가 있어 나가봐야 하기에 오자마자 씻지도 않은 채 자리에 누웠지만 잠이 오질 않습니다. 벌컥거리며 마셔 댄 술도 다 깨버렸나 봐요.

조국사랑이란 신념 하나로 평생을 바쳐 살다가 고난의 길 어느 한 켠에서 세상을 떠나신 선생님의 마지막 순간들이 엊그제 일처럼 떠오릅니다.
돌아가실 날이 얼마 남지 않았음을 스스로 인식했을 땐 이미 당신의 생명은 바람 앞에 등불 같았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당신의 한생을 정리하고자 집필 작업을 준비하던 선생님이셨습니다. 범인은 결코 범접할 수 없는 의지와 열정의 소유자였지요. 만신창이 몸이 되어 병원에 누워 계시면서도 병문안이라는 조건을 활용해 사람들을 만나고 대화하며 마지막까지 자신이 해야 할 일을 놓지 않으셨습니다. 하지만 몸은 당신의 의지와 열정을 안받침하지 못했지요.

당신의 한생을 글로 정리하고 싶어 하시기에 옆에서 도우려고 작정했지만 선생님 스스로가 움직이지를 못하시니 아무것도 할 수 없게 되고 말았습니다. 그러던 중에 병세는 급격하게 악화되고 나는 중환자실에서 마지막 운명의 순간을 지켜봐야 했지요.
산소호흡기가 너무나 불편하고 더 이상은 숨쉬기조차 힘드셨는지 빼 달라고 눈빛으로 내게 말합니다. 이제는 저승에 가야겠다고 생각하신 모양입니다. “빼 드려요?”라고 말하니 눈을 깜박거리셨습니다. 하지만 의사는 책임질 수 없다며 허락하질 않네요. “모든 시름 놓고 편히 가세요.”라고 했더니 마지막 남은 힘을 다해 한 점 눈물을 떨구고 눈을 감으셨습니다.
그 순간 선생님의 삶에 대한 애착이 두렵기까지 했습니다. 마지막 해야 할 일을 결코 두고 갈 수는 없다는 듯이 고스란히 눈으로 이야기를 하고 있었습니다. 눈을 감는 순간까지도 이야기를 하고 있었습니다.

이토록 모질고도 무서운 것이 생명이던가요?
선생님은 눈을 감는 그 순간에 분명하고도 확실하게 내게 말하셨습니다. 그 것은 꿈에 대한 것입니다. 꿈은 죽을 때도 가지고 가는 것이라는 마지막 눈빛의 가르침이 그 것입니다.

선생님께서 주고 가신 붓을 들고 있는 손이 너무나 초라한 밤입니다. 반 푼 어치도 안 되는 글 실력으로 선생님의 뜻을 새겨보는 참말로 아픈 밤입니다.
잘 계시나요?

▲ 박종화 作 '꿈'(310*550)
"죽을 때도 가지고 가는 것"

죽기 전에 나라의 통일을 보지 못했다면
죽은 후에라도 봐야 한다고
그 꿈 꼭 가지고 가겠다고


작품설명:
아랫부분을 구름처럼 몽롱하게 흘림으로 인해
저승길과 꿈의 연관을 추상화 시켜보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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