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이탈주민 교육시설인 하나원 원장을 끝으로 지난 6월 통일부를 명예퇴직한 고경빈(52) 전 원장이 20여 년 간의 통일부 재직시절을 돌아보며 단상들을 매주 금요일에 연재한다.
그는 경수로사업지원기획단에 참여했는가 하면, 사회문화교류국장과 개성공단 지원단장 등을 맡아 남북교류의 현장에서 활약했으며, 2007년 2차 남북정상회담 당시에는 통일부 정책홍보본부장으로서 중책을 맡기도 했다. /편집자 주
 


▲ 통일부 정책홍보본부장 시절인 2007년 5월, 서울에서 열린 제21차 남북장관급회담 남측 대변인을 맡았던 필자. [자료사진 - 통일뉴스]

분주한 세상에 또 하나의 소음을 추가하는 마음으로 <통일뉴스> 독자 여러분께 인사드립니다.

지난 6월 공직생활을 마감하고 인생의 하프타임을 어찌 보낼 것인가 궁리하고 있는 중 그간의 경험과 소회를 담은 글을 써보지 않겠냐는 통일뉴스의 제의를 받았습니다. 스스로의 분수와 주제를 아주 모르는 바는 아니지만 못말리는 허영과 욕심으로 인해 그 제의를 덜렁 받아들이고 나섰습니다.

남북관계의 비화를 소개한다거나 무슨 회고록을 쓸 처지도 아니고 그럴만한 소재도 별로 없습니다. 통일부에 근무하며 주로 남북관계 현장을 뛰어다닌 지난 20년의 경험을 반추하면서 그때 마주친 남북관계의 쟁점들에 대한 나름의 소회를 정리해 보겠습니다.

당시 정부의 입장을 홍보하거나 변명하려는 것은 아닙니다. 그동안 격동의 남북관계를 거치면서 사건의 흐름에 밀려나는 바람에, 남북한 사이에서나 또는 우리 사회 안에서나, 채 정리되는 못한 쟁점들을 개인적 관점에서 다시 돌아보고자 합니다. 답을 내자는 것도 아니며 내지도 못하겠지만 하나의 관점으로 받아주시면 고맙겠습니다.

비록 평범한 공무원이었지만 이 시대가 요구하는 가장 중요한 민족적 과제를 다루는 통일부에서 욕심껏 일해 보았다는 보람과 자부심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이런 만용을 부릴 수 있는지 모르겠습니다.

루소가 사회계약론을 쓰면서 “군주도 입법가도 아닌 사람이 왜 이런 글을 쓰는가?”라는 독자의 (예상)질문에 대해 “만일 내(루소)가 군주나 입법자였다면 해야 할 일을 지껄이기 위해서 시간을 낭비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해야 할 일을 실행하거나 아니면 침묵을 지켰을 것이다”라고 밝힌 적이 있습니다.

스스로를 루소와 견주자는 것은 절대 아니며 단지 이제 공직을 떠난 입장에서 낭비할 수 있는 시간도 있고, 더구나 생각과 표현의 자유가 있는 자유대한민국에서 살고 있는 만큼, 필자의 만용이 독자들의 관용과 만나기를 기대한다는 것입니다.

오늘 우리는 분단시대의 끝자락에 살고 있다고 확신합니다. 비록 북한의 움직임도, 남북한 관계도 모두 심상치 않은 오늘이지만, 어제 하루 자고 일어난 만큼 통일의 그 날도 하루 당겨있다고 생각합니다.

일제시대가 독립운동시대였듯이, 분단시대는 뒤집어 말하면 통일을 준비하는 시대입니다.

그 옛날 만해 한용운 님은 “조선의 청년들아 식민지에서 태어난 것을 기뻐하라. 당신들의 세대는 독립운동을 할 수 있는 특권을 가진 세대다”라고 말씀하신 적이 있습니다.

일제 때도 근대화니 하는 과제가 있었지만 가장 중요한 민족적 과제는 해방이었습니다. 독립의 문제를 도외시한 근대화는 큰 의미가 없었습니다. 우리 시대도 경제성장이니 선진화니 하는 과제가 있지만 통일과 남북문제만큼 중요한 민족적 과제는 없습니다. 이러한 시대적 사명을 가지고 통일부에서 일하는 것은 보람이고 자랑이었습니다.

이런 자부심이나 긍지 때문에 이런 종류의 글들이 폼나게 써져야 한다는 생각을 경계하면서 빈수레 끌고 편하게 집을 나서는 기분으로 어깨에 힘빼고 써보겠습니다. 통일은 미래의 일도 아니고 전문가들의 어려운 이론 문제도 아니라 그저 우리 생활속에 성큼 와있는 주변문제라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시끄러운 고가도로 아래에서 빈수레를 끌고 다닌다면 그 지나가는 소리가 주위에 들리지 않을지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여전히 빈수레처럼 내용도 없이 소리만 요란할까 마음이 쓰입니다. 수레에 무언가 정리된 것이 채워지면 수레끄는 소리도 달라질 것을 바랄 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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