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쿄=안영민 민족21 편집국장


 

 <민족21>과의 기사교류 합의에 따라 <민족21> 2009년 8월호 중 정대세 인터뷰 기사 전문을 그대로 싣는다. /편집자 주


정대세. 44년 만에 월드컵 본선 진출을 이룬 북 대표팀의 간판 스트라이커다. 이제 북에서는 그를 모르는 인민들이 없을 만큼 최고의 스타가 됐다. 또한 재일동포 출신의 그는 남쪽에서도 대단한 인기를 누리는 조선의 청년이다. 그를 직접 만나기 위해 찾은 일본에서도 정대세는 J리그 특급 공격수로 스포트라이트를 한 몸에 받고 있었다.

“정대세가 가와사키요, 가와사키 하면 정대세다.”

 

▲ 일본에서 연습중인 북한 축구 대표팀 공격수 정대세 선수를 만났다. [사진-민족21]

7월 8일 신주쿠(新宿)역에서 오다와라(小田原)선 전철을 타고 신유리가오카(新百合ヶ丘)역에 도착한 것은 오전 11시. 정대세의 소속팀인 J리그 가와사키 프론타레(Kawasaki Frontale) 연습구장까지 가는 택시 안에서 “정대세 취재를 위해 서울에서 왔다”고 하자 운전기사는 이렇게 정대세 선수 칭찬에 열을 올렸다. “한때 2부 리그로 강등 당한 적이 있을 만큼 약체였던 가와사키 프론타레가 정대세가 오면서 J리그의 강팀으로 거듭났다”는 것이다.

정대세 선수의 높은 인기는 연습구장에서도 확인됐다. 부슬비가 흩뿌리는 날씨 속에서도 20여 명의 팬들이 우산을 받쳐 든 채 선수들의 연습 광경을 지켜보고 있었다. 그중 한 남자에게 “정대세가 어디 있냐”고 묻자 ‘오렌지색 축구화’를 신은 선수를 가리켰다. 멀리서도 한눈에 알 수 있는 나이키 상표의 오렌지색 축구화는 바로 정대세의 상징이었다.

전술훈련을 마친 선수들은 곧바로 공격수와 수비수로 나눠 포지션별 훈련에 돌입했다. 다양한 위치에서 슈팅 훈련에 여념이 없는 정대세의 몸은 가벼워 보였다. 왼발, 오른발 가리지 않고 대포알 같은 슈팅이 이어졌다.

“조선은 하루가 다르게 성장하는 팀”

12시. 오전 훈련이 다 끝난 뒤 정대세는 가장 먼저 클럽하우스로 향했다. 옆에 있던 한 축구팬은 다른 선수들보다 먼저 마사지를 받기 위해서라고 설명해주었다. 지난 시즌까지 등번호 16번을 달고 뛰었던 정대세는 올 시즌부터 스트라이커의 상징인 9번을 달고 뛰고 있다. 그만큼 가와사키 프론타레의 핵심선수인 것이다. 클럽하우스로 가는 도중에도 팬들의 기념촬영 요청에 친근하게 응하던 정대세와 간단한 수인사를 나눴다. 181cm의 큰 키와 당당한 체격이 44년 만에 월드컵 본선 진출을 이룬 북측 축구대표팀의 스트라이커다웠다.

오후 1시 평상복 차림으로 클럽하우스 회의실로 들어선 정대세는 평범한 청년의 모습이었다. 인터뷰는 정대세의 복장처럼 자연스런 분위기 속에서 진행됐다.

▶ 먼저 북측 대표팀의 일원으로 44년 만에 월드컵 본선 진출이란 쾌거를 이룬 것을 축하드립니다. 예선 마지막 경기였던 사우디아라비아 원정경기를 무승부로 마치고 본선 진출을 확정했을 때, 그라운드에 엎드려 펑펑 울던 정대세 선수의 모습이 아직도 기억에 생생합니다. 당시 어떤 심정이었나요.

“꿈이 이루어졌구나…. 축구선수라면 누구나 갖게 되는 꿈이 월드컵 무대에 서는 것입니다. 정말로 꿈만 같은 그 일이 마침내 이루어졌다는 생각에 저도 모르게 눈물이 났습니다. 그때의 감격을 아직도 잊을 수 없습니다.”

▶ 월드컵 본선에 나갈 수 있다는 확신은 처음부터 있었나요.

“솔직히 처음에는 과연 우리 팀이 가능할까 싶었습니다. 하지만 예선리그 경기를 치르면서 자신감이 생겼습니다. 1승, 1승을 올리면서 우리 팀도 실력이 늘고, 점차 토대가 갖춰지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마지막 최종예선 때는 같은 조에 강팀들도 많았지만 우리 팀도 충분히 할 수 있다는 확신을 가졌습니다.”

▶ 정대세 선수는 북측 국가대표 선수에다 J리그 소속선수이고, 또 남측 선수들과도 교류가 많다고 들었습니다. 이번에 월드컵 동반진출을 이뤄낸 남북과 일본 팀의 축구에 대해 나름대로 평가한다면 어떻게 이야기하겠습니까.

“한국팀은 체격과 체력이 가장 뛰어납니다. 공격수들의 실력도 대단히 우수합니다. 그런데 축구를 즐기는 분위기랄까 그런 토대가 좀 부족해 보입니다. K리그 팀들의 경영방법을 봐도 너무 세세한 부분까지 일일이 처리해 간섭이 지나치다는 느낌이 듭니다. 그래서인지 선수들 속에서 자율적인 분위기가 약해 보입니다. 일본은 이와 정반대입니다. 전술이 세밀하고, 기술이 뛰어나지만 파워가 한국보다 약합니다. 또 성격들도 얌전합니다. 정신력과 투지를 더욱 키울 필요가 있습니다. 조선의 선수들은 기술이나 전술이 아직 부족합니다. 이를 극복해야 합니다. 하지만 조선은 성장가능성이 높은 팀입니다. 월드컵 본선 때까지 더욱 많은 발전을 이뤄낼 것입니다.”

▶ 2010년 월드컵에 대비해 개인적으로는 어떤 점을 좀더 보강할 생각입니까?

“제게는 아직 세계적인 선수와 맞대결해서 이길 능력이 없습니다. 1년 동안 더 성장하고 발전해야 합니다. 개인적으로는 우선 슈팅의 질을 높여야 합니다. 한 번의 기회가 왔을 때 바로 골로 연결시킬 수 있어야 하는데 여전히 미스가 많습니다. 미스를 줄이는 게 과제입니다. 그리고 90분간 지치지 않고 뛸 수 있는 체력을 갖추는 것도 중요한 과제입니다.”

‘정대세’를 연호한 평양의 인민들

 

▲ 정대세는 남과 북, 일본 모두에서 유명한 축구 선수다. [사진-민족21]

정대세는 특히 남측 공격수와 비교했을 때 아직 자신의 실력이 많이 모자란다고 겸손해했다. 남측 공격수들은 실력 있는 선수들이 많다 보니 자연 경쟁의식도 크고, 그 때문인지 경기장에서 최선을 다하는 모습이 인상적이라고 했다. 수비수를 따돌리는 움직임이 좋고, 슈팅 능력도 뛰어나다는 것이다. 그래서 남측과 경기를 할 때는 항상 배우는 자세로 임한다고 했다.

그중에서도 가장 경계하는 선수를 꼽아보라고 하자 제일 먼저 이청용을 꼽았다. 그밖에도 이근호, 박주영, 박지성 등 모든 공격수가 경계해야 할 뛰어난 기량의 선수들이라고 했다. 일본은 해볼만한 상대인데 한국은 여전히 무서운 팀이라는 정대세는 그 이유를 ‘공격수들의 실력 차이’라고 평가했다. 일본의 공격수들은 투지와 실력, 체력에서 모두 한국 선수들보다 한 수 아래라는 것이다.

남북대결 때 서로 몸을 부딪치면서 한 치의 양보도 없는 ‘전투’를 벌이지만 경기가 끝날 때면 모두 ‘수고했다’며 인사를 나누다 보니 어느새 정도 들었다는 정대세는 특히 J리그에서 뛰고 있는 이근호, 조원희 선수와 친하다고 한다. 그중에서도 한 살 아래인 이근호와는 자주 연락을 주고받는다고. “얼마 전에도 근호하고 동물원에 같이 놀러 갔습니다”며 밝게 웃었다.

1984년 나고야(名古屋)에서 태어나 아이치(愛知)현 조선초급학교에서 축구를 시작한 정대세는 아이치현 조선중고급학교와 조선대학교를 거쳐 2006년 가와사키 프론타레에 입단했다. J리그 2008년 시즌에는 모두 14골을 넣어 리그 우수선수상을 수상했던 그는 올해도 7골로 득점랭킹 6위에 올라 있다.

정대세가 북측 국가대표팀에 선발된 것은 2007년 6월 동아시아선수권대회 예선전부터. 이때 3경기에서 8골을 몰아넣으며 일약 스트라이커로 떠오른 그는 이후 동아시아대회와 월드컵 예선을 거치며 한국과 일본의 주목을 단번에 받게 됐다. 처음 북의 국가대표로 선발됐을 때의 느낌은 어땠을까.

“조선학교 시절부터 축구선수로서의 목표는 국가대표였습니다. 도중에 법률적인 문제(아버지가 한국 국적)도 제기됐지만 대표팀에 선발돼서 너무 기뻤습니다.”

▶ 월드컵 최종예선 평양 경기에서 관중들이 ‘정대세’를 연호할 만큼 북에서도 인기가 아주 높다고 들었습니다. 평양의 경기장에서 자신의 이름이 불려질 때, 어떤 느낌이 들던가요.

“그때 제 이름과 영학이 형(안영학 선수) 이름이 함께 불려졌습니다. 재일동포인 제가 대표팀에 선발된 것만 해도 큰 영광인데 인민들이 제 이름을 불러줘서 정말 힘이 났습니다. 경기 후에 감독님(김광호 감독)이 경기장에서 개인의 이름을 부른 것은 역사상 처음 있는 일이라고 말해주셨는데 그래서도 더욱 기뻤습니다.”

▶ 숙소에서 훈련장으로 갈 때에도 평양 시민들이 정대세 선수를 알아봅니까?

“예. 이름도 불러주고, 손도 흔들어줍니다.”
44년 만의 월드컵 본선 진출로 남자축구에 대한 관심이 엄청나게 높아진 북에서 정대세는 어느덧 인민들의 ‘영웅’이 되어 있었다.

▶ 2010년 남아공 월드컵에서 개인적인 목표가 있습니까?

“44년 전 8강 진출을 이뤄낸 조선팀의 실력을 다시 한번 세계에 과시하고 싶습니다. 그래서 세계적인 선수들과 겨뤄 멋진 경기를 하고 싶습니다.”

▶ 월드컵에서 강팀과 맞서 골을 기록한다면 유럽 리그에서도 스카우트 제의가 있을 텐데 유럽 진출도 목표로 삼고 있습니까?

“예. 기회가 된다면 유럽 리그에 반드시 진출해 조선 축구의 우수성을 보여주고 싶습니다. 그래서 조선학교 후배 선수들에게도 또 하나의 목표를 심어주고 싶습니다.”

▶ 유럽 리그 선수들 중에서 닮고 싶은 선수가 있다면 누구입니까?

“첼시팀의 드로그바 선수입니다. 파워와 스피드, 기량과 골 결정력을 모두 갖춘 최고의 스트라이커라고 생각합니다.”

“축구를 통해 북남의 다리가 되겠다”

▶ 남북 월드컵 동반진출로 남측에서도 정대세 선수의 인기가 아주 높습니다. 남측 팬들에게도 소감을 전해주시죠.

“이번에 북남이 동시에 월드컵에 나가게 된 것은 우리 민족의 우수성을 세계에 과시하는 큰 성과라고 생각합니다. 제가 축구를 하면서 의식하는 것은 조선과 한국, 일본의 다리 역할을 하겠다는 것입니다. 저는 축구를 통해 우의를 다지는 데에 역할을 할 것입니다. 다른 분야에서도 다리 역할을 할 수 있는 분들이 많이 나오길 기대합니다.”

불고기를 좋아하고, DJ클럽 활동이 취미이며 이상형 여자는 우리 민족 특유의 외모를 지닌 조선여성이라는 스물 다섯 청년 정대세. 인터뷰를 마치고 사진촬영을 위해 정대세와 나란히 섰다. 두 손을 가지런히 모은 예의바른 정대세의 곁에 서니 문득 언젠가 <한겨레>에 실린 그의 글이 생각났다. 처음 조선의 대표팀에 선발돼 원정경기에 나갔을 때, 온갖 과일과 음료수, 간식거리로 가득 찬 부유한 일본 프로팀의 라커룸과 달리 조선팀의 초라한 라커룸에 대해 쓴 글이었다. 하지만 그는 조선팀의 강인한 정신력은 물질적으로 풍요로운 상대팀을 압도하고도 남았다는 점을 강조하며, 조선의 투지와 정신력으로 최고의 선수가 되겠다는 결심을 밝힌 적이 있었다.

앞으로 1년, 정대세에게는 새로운 도전이 시작됐다. 월드컵에서 조선 축구의 우수성을 알리겠다는 그의 도전에 북의 인민들은 물론 남과 해외동포, 8000만 겨레의 관심도 쏠려 있다. 남아공 월드컵 무대를 종횡무진 뛰어다닐 그의 두 다리를 통해 우리 민족의 자부심도 함께 펼쳐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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