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성공단이 존폐의 기로에 섰다. 15일 개성공단 북측 관리기관인 중앙특구개발지도총국이 남측 개성공업지구관리위원회를 통해 그간 개성공단에 적용해온 관련법규와 계약들의 무효를 선포하고 “집행할 의사가 없다면 개성공업지구에서 나가도 무방할 것”이라고 통지문을 발표했다. 이로써 지난달 21일 이명박 정부 들어와 사실상 첫 남북 당국간 회동인 개성접촉에서 마련된 남북대화의 모멘텀이 현저히 활력을 잃고 있다. 당시 4.21개성접촉에서 북측은 개성공단의 제도적인 특혜조치들을 전면적으로 재검토, 재협상하기 위한 실무접촉을 제안한 바 있다. 그런데 이번 북측의 5.15통지문은 재검토나 재협상 차원이 아닌 일방적인 무효선언인 동시에 역시 일방적으로 새로운 ‘법과 규정, 기준’을 만들 테니 그리 알라는 것이다. 남측 정부는 즉시 유감을 표명하고 “결코 받아들일 수 없다”는 입장을 밝혔다.

그렇다면 4.21개성접촉부터 5.15통지문까지 이 사이에 무슨 일이 일어난 것일까? 요지는 북측이 개성공단 특혜조치 재협상 입장에서 왜 일방적인 개정으로 돌변했느냐는 점이다. 이 사이에 이른바 ‘물밑 대화’가 아닌 ‘물밑 기싸움’이 일어난 것은 분명한 것 같다. 북측은 지난 4일 통지문을 보내 6일 개성공단 내 남북경제협력협의사무소에서 남북 당국간 후속접촉을 갖자고 협상의지를 내비쳤다. 그러나 남측은 북측의 이같은 제의를 물리치고 8일, 북측에 의해 40여일 째 조사를 받고 있는 현대아산 직원 ‘유씨 문제’를 포함한 실무회담을 15일에 갖자고 8일 역제의했다. 이에 북측은 ‘유씨 문제’를 제외하고 일정을 앞당겨 12일 접촉을 갖자고 다시 적극적인 자세로 나왔다. 그러나 남측 당국은 11일 ‘유씨 문제’를 포함한 실무회담을 이전에 제안한 대로 15일에 개최하자고 재확인했다. 이같은 남북간 핑퐁식 제안이 엇박자를 빚자 12일 남측 당국자가 개성공단으로 가서 일정과 의제를 조절하려고 했지만 양측의 입장차만 확인했다. 북측은 ‘유씨 문제’를 빼고 조속히 만나자는 것이고, 남측은 ‘유씨 문제’를 포함해 천천히 만나자는 것이다.

남과 북 양측의 전술에 대해 낱낱이 따지고 싶지는 않다. 분명한 건 이 과정에서 남측이 소탐대실 했다는 것이다. ‘유씨 문제’를 ‘개성공단 특혜조치 재협상 문제’와 연결시킨 것은 두 개 문제 모두를 잃게 할 공산이 크다. 물론 ‘유씨 문제’는 국민의 안전과 직결되는 문제이므로 매우 중요하다. 국민의 생명과 재산은 국가가 보호해야 하므로 ‘유씨 문제’를 적극 해결하고자 하는 것은 맞다. 그러나 모든 건 때가 있고 경우가 있는 법이다. 결론적으로 말해 두 개 문제를 연결시키는 것은 사리에 맞지 않다. 양자는 ‘개성’이라는 지역적 차원에서만 공통점이 있지, 본질에 있어서는 별개의 사안이다. ‘유씨 문제’는 북측이 ‘현행범’이라며 체포했으니 일단 조사결과 발표 후 대처해도 늦지 않는 문제이고, ‘개성공단 특혜조치 재협상 문제’는 북측과 남측 사이의 시급한 협상의 문제인 것이다. 시간적으로나 내용적으로나 분리해서 풀어야 할 문제라는 것이다. 아니나 다를까, 북측은 남측이 ‘유씨 문제’를 실무접촉의 전제조건으로 삼는 것에 극도의 불신을 나타냈다. 북측은 유씨를 ‘개성공업지구에 현대아산 직원의 모자를 쓰고 들어온 자’로 표현했다.

남측은 ‘유씨 문제’와 관계없이 북측과 빠른 시간에 ‘개성공단 특혜조치 재협상 문제’를 논의했어야 했다. 두 개 문제를 각각 풀어야 했다. 그리하여 재협상을 통해 북을 설득하거나 그 과정에서 남북대화의 진정성을 알려야 했다. 그러나 남측은 그 기회를 스스로 차 버렸다. 이제 남북화해의 마지막 상징인 개성공단이 존폐의 기로에 섰다. 개성공단이 문을 닫는다면 이는 6.15공동선언의 마지막 파국을 의미한다. 북측도 이 점을 명확히 했다. 북측은 5.15통지문을 통해 “개성공업지구의 특혜조치들은 역사적인 북남선언들의 근본정신인 ‘우리 민족끼리’의 이념에 기초하여 우리가 남측에 부여한 것”이라고 주장하고는 그러기에 “6.15를 부정하는 자들에게 6.15의 혜택을 줄 수 없다는 것은 너무도 자명한 이치”라고 못박았다. 그러나 분명한 건 어느 누구도 개성공단의 파국을 원치 않으며, 그 해법은 6.15공동선언의 긍정에 있다는 점이다. 아직 남측 당국이 존폐 기로에 선 개성공단을 향해 적극 나서야 할 이유가 여기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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