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명박 정부 들어와 사실상 첫 남북 당국간 회동인 지난 21일 개성접촉을 어떻게 볼 것인가? 북측은 개성접촉에서 두 가지를 던졌다. 하나는 “개성공단 사업을 위해 남측에 주었던 모든 제도적인 특혜조치들을 전면적으로 재검토한다”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개성공단 관련 기존 계약을 재검토하기 위한 협상을 시작하자”고 제안한 것이다. 여기에서 ‘특혜조치들의 재검토’란 개성공단 북측 노동자 임금 재조정과 토지사용료 조기 지불 등을 말한다. 통틀어 보면 임금인상안을 비롯한 단체협약을 하자는 것이다. 북측의 의도는 무엇일까? 그리고 남측은 어떻게 대처해야 할까? 앞으로 전개될 단협에서 개성공단의 운명이 결정될 것이다. 개성공단의 운명은 남북관계의 운명과 직결된다. 이제 남북관계가 마지막 기로에 서 있게 되었다. 단협을 통해, 한편 개성공단 폐쇄 수순으로 갈 수도 있지만 다른 한편 남북대화 단초 마련의 전기가 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아직 북측의 통지문 전체가 온전히 밝혀지지 않아 북측의 진의를 파악하기가 쉽지 않다. 하지만 21일 남북 개성접촉 과정을 통해 남북의 진의를 각각 유추해 볼 수 있다. 고무적인 일은 이번 개성접촉이 북측의 일방적인 통보만으로 되지 않았다는 것이다. 즉, 남측이 선방했다는 것이다. 원래대로라면 남측은 북측의 통보를 일방적으로 듣고 바로 끝났어야 했다. 그러나 남측은 오전 9시 30분부터 오후 6시 30분까지 장장 9시간을 끌며 북측과 총 7차례 예비접촉을 갖는 놀라운 수완을 보여줬다. 남측은 북측에 접촉장소, 의제, 참석자 명단을 요구하며 시간을 끌었다. 우여곡절 끝에 오후 8시 35분에 북측이 고집한 중앙특구개발지도총국 사무실에서 남북접촉을 갖고 22분만에 끝났지만 남측의 지공작전은 성공했다. 물론 이같은 일은 북측의 방조가 있었기에 가능했다. 단번에 끝날 일이 하루종일 갔다는 것은 긍정적으로 보아 무방하다.

남측은 왜 지공작전을 폈고 북측은 왜 이를 눈감아 줬을까? 이번 개성접촉은 북한으로서는 북미대화가 예상된 가운데 남북대화를 병행 발전시켜야 할 순간에 이루어졌으며, 남측으로서는 북미대화가 이뤄질 경우 한반도 정세에서 소외되는 것을 막아야 하는 순간에 이루어졌다. 타이밍이 절묘했다는 것이다. 따라서 이번 개성접촉에서 기나긴 예비접촉의 성사 배경에는 남북이 모두 공범인 셈이다. 이 기나긴 예비접촉 과정에서 남북은 뭔가를 느끼고 확인했을 수 있다. 이런 참에 남측 당국이 적극적인 대화 모드로 나서는 것은 바람직한 일이다. 남측 당국은 개성접촉 이후 대화의 모멘텀을 이어가는 쪽으로 기조를 잡고 대응방안에 나선 것으로 알려졌다. 이명박 대통령도 최근 북한의 ‘인공위성’ 발사를 전후해 남북관계를 직접 챙기는 열성을 보이고 있다. 모두가 고무적인 일이다.

단, 남측이 대북 대화 시도에 앞서 할 일이 있다. 지난 일은 저절로 없어지거나 해결되는 게 아니다. 이명박 정부 들어와 남북관계는 악화일로를 걸어왔다. ‘전쟁접경’으로까지 왔다. 여기서 그 시시비비를 다시 들추고 싶지는 않지만, 사태가 여기까지 온데에는 남측의 책임이 큰 것도 사실이다. 게다가 대통령은 대통령대로, 참모나 관료는 그들대로 북측에 너무나도 많은 혼선을 주었다. 이제 남측이 북측에 대해 대화의 진정성을 보여야 한다. 대화에 앞서 대화를 할 수 있는 분위기를 조성하라는 것이다. 먼저, 대북 대결정책을 버려야 한다. 지금 대결정책의 현안인 PSI(대량살상무기 확산방지구상) 전면 참여를 중지해야 한다. 다음으로, 6.15공동선언과 10.4선언을 존중하고 이행하겠다는 적극적인 의사표명을 해야 한다. 그것만이 남북화해의 상징인 개성공단을 유지하고, 남북대화의 가능성을 여는 길이다. 천재일우(千載一遇)의 기회를 놓쳐서는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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