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 2007년 3월 29일 처음으로 ‘우리학교’ 영화가 상영된 날을 기념해 29일 ‘우리학교’ 영화 2주년 상영회가 열렸다. 상연회 후 뒷풀이에 모인 참가자들. [사진-통일뉴스 김효수 통신원]

“지난 3월 15일 경 일본의 조선대학교 졸업식이 있었습니다. 영화에서 조선대학교 입학을 준비하던 조성래, 리성대 학생은 조선대학교를 졸업하고 우리학교 교원으로 온다고 합니다. 영화에서 조대에 입학하기 가장 어려울 것이라고 꼽혔던 오화인 학생은 무사히 조대를 졸업하고 한국에 취직이 돼 곧 온다고 합니다. 영화에서 센치가 우리말로 무엇이냐 묻던 센치 소년은 벌써 중급생이 되었고 기숙사의 막내 윤택이가 벌써 고등학생이 되었습니다. 학교를 졸업한 아이들은 벌써 일본 지역 곳곳에서 활동하고 아직 남아있는 아이들은 우리가 운동회 때 가면 맞아줄 것입니다. 지난해에는 7명의 조선학교 교원이 결혼을 비롯, 여러 가지 이유로 사직을 했습니다. 영화에서 나오듯 교원들에 대한 급여가 낮아 결혼을 하면 생활이 어렵습니다. 또 영화에서 여름날 졸던 박귀영 학생은 일본에서 대학을 마치고 이번에 연세대학교 어학당에 들어가 공부를 하기로 했습니다. 조금 후 뒷풀이 장소에 온다고 하니 뒷풀이 장소에 많은 분들 가셔서 격려해주시 바랍니다. 영화가 개봉한지 2년이 지났고 찍기 시작한 것은 벌써 5년 전이니 시간이 많이 흘렀습니다. 그러나 이들이 자라도 계속 만날 수 있는 사이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조금 특별한 영화 상영회

3월 29일 대학로에 위치한 ‘하이퍼텍나다’에서는 조금 특별한 영화 상영회가 있었다.

지난 2007년 3월 29일 처음 ‘우리학교’ 영화를 상영한 날을 기념해 ‘우리학교’ 영화 2주년 상영회가 열린 것이다. 영화를 상영한지 2년이 흘렀지만 팬들의 요청으로 배급을 맡았던 ‘진진’이 나서 상영회 자리를 마련한 것이다. 팬들의 힘으로 열린 영화 상영회 직후 김명준 감독은 소감을 묻는 질문에 영화 찍은 이후의 ‘우리학교’ 소식들을 전한다.

이날 행사는 진진이 팬까페(http://cafe.naver.com/docuourschool) 회원들에게 영화 초대권을 제공하고 대신 회원들은 영화 관람비를 내 수익금은 모두 ‘우리학교’인 홋카이도 조선학교 후원금으로 전달하는 방식으로 진행됐다. 흔치 않은 결정을 내린 영화사 진진 김난숙 대표는 “이런 영화를 극장에 소개할 수 있어 좋았다”며 “다시 봐도 못 봤던 장면이 나와 새롭고 정말 잘 찍은 영화라고 또 느꼈다”고 밝혔다.

얼마 전 독립영화 ‘워낭소리’가 300만에 가까운 관객수를 모으며 언제 깨질지 모르는 기록을 세웠지만 그 전에 가장 많은 관객을 동원한 한국 독립영화는 일본 내의 재일동포 학교 이야기를 다룬 ‘우리학교’였다.

극장이 아니어도 관객들의 요청이 있으면 찾아가서 상영을 해주는 등 독특한 상영방식을 도입하며 입소문이 입소문을 낳고 독립영화도 10만명 이상의 관객수를 동원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줬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우리학교’ 영화는 우리 사회에 재일동포들이 조선인임을 잊지 않고 산다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지를 알려줬다. 또한 우리는 얼마나 이들을 외면하고 오히려 통일과 민족문제에 관심이 없었는지에 대해 자각하게 만들었다.

이런 것들에 대한 반성의 의미인지, 영화는 팬까페까지 결성될 정도로 주목을 받았고 이날 행사에는 일제고사 반대로 해직이 된 선생님부터 고등학교 때 영화를 처음보고 팬카페에 가입해 이제 대학생이 되었다는 학생, 직장인, 자영업자, 주부, 재일동포 유학생들까지 각계각층의 회원 80여명이 모였다.

재일동포 유학생들 “‘우리학교’ 영화 덕분에 힘을 많이 얻었다”

 

▲ 까페운영자(맨 왼쪽)와 재일동포 유학생들. 오른쪽부터 오사카조선학교, 히로시마조선고급학교 출신인 김경섭, 심미령, 송미지, 송미령 학생. [사진-통일뉴스 김효수 통신원]

영화관람 직후 행사에 참가한 재일동포 유학생들이 인사를 전한다.

이들은 영화에 나온 홋카이도 조선학교는 아니지만 오사카조선고급학교, 히로시마조선고급학교를 졸업하고 각각 한국예술종합학교, 경희대학교, 한양대학교, 성균관대학교로 유학을 온 송미령, 송미지, 심미령, 김경섭 학생으로 모두 한국 국적이며 한국에 온 지 3~4년 됐다고 한다.

조선 국적을 가지고 있어도 한국에 올 수 있긴 하지만 이 경우 임시 허가증명서 같은 것이 있어야 하기 때문에 한국에 들어오는 것이 쉽지 않다. 그러나 이들이 한국 국적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북한에 가는 것은 어렵지 않아 모두들 수학여행으로 평양에 가보았고 ‘조국방문’이 정말 좋았다고 했다.

북한과 일본의 관계가 나빠지면서 자기들까지는 만경봉호를 타고 바로 북한에 들어갔지만 그 뒷기수들은 비행기를 타고 북경을 경유해서 평양으로 들어간다는 이야기도 해준다.

이들이 영화를 보고 느낀 점은 공통적으로 “영화 덕분에 힘을 많이 얻었다”는 점이다.

한국예술종합학교에 다니는 송미령 양은 “한국에서 3년 살다보니 내가 조선 사람이라는 의식이 떨어졌으나 영화를 보고 다시 마음을 다잡는 계기가 됐다”고 한다.

송 양의 친동생이기도 한 경희대학교의 송미지 양은 “국적이 한국이었지만 일본에서도 일본사람도 아니고 조선사람도 아니라는 것에 혼란스럽기도 하고 또 힘들기도 했지만 까페 분들 덕분에 힘이 많이 됐다”고 말했다.

한양대 관광학과에 다니는 심미령 양은 “영화를 보다보니 옛날 학교 다니던 생각이 나서 기분이 좋았다”고 밝혔다.

이들이 다닌 오사카의 조선학교는 교포들이 많아 영화에 나온 홋카이도 학교보다 학생수도 많았고 분위기도 틀렸다고 전한다.

그러나 이곳 역시 학생수가 줄어드는 추세로 예전에는 한 학급당 평균 50여명 정도 됐으나 이제는 30~40여명 순이라고 한다. 재미있는 것은 재일동포들 하면 철저히 우리 전통을 고집할 것 같지만 꼭 그렇지만은 않다는 사실이다.

송미령 양은 한국예술종합학교에서 가야금을 전공하고 있는데 방학을 맞아 오사카에서 공연을 할 기회가 생겼다고 한다, 공연을 마친 뒤 정작 일본인들은 ‘전통음악’을 존경하는 마음을 갖고 있어 다른 나라의 음악이지만 반응이 좋았는데 우리 동포들, 특히 1세대 분들은 “예전 기생이나 하던 음악”이라며 민요와 산조 공연을 반가이 맞지 않으셨다고 했다.

지금이야 한국에서도 의식이 많이 개방화 됐지만 일본에 처음 가서 정착을 하기 시작한 1세대들은 당시의 사고로 아이들을 교육했고 그들 부모의 영향으로 아직도 많이 보수적이라고 했다. 다행히 교포 2세, 3세들은 민족음악에 대한 관심이 높아 송 양은 “일본에서는 가야금을 가르치는 곳이 없는데 내가 한국에서 공부를 하고 다시 일본에 돌아가서 아이들에게 가야금을 가르치겠다”고 했다. “앞으로 기회가 되면 학국에서 대학원 공부까지 하고 싶다”고도 했다.

재일동포, “한국대학생들이 너무 우리 역사 모르는 것에 당황해”

그러나 조선학교에서 민족교육을 받다가 한국에 처음 왔을 때 아이들은 어떤 생각이 들었을까? 이들은 처음엔 너무 힘들어 울기도 많이 했단다.

성균관대 국문과에 재학중인 김경섭 군은 여기 와서 가장 충격적인 것은 ‘욕’이었다고 한다.

“아이들이 ‘씨발’을 아무렇지 않게 쓰는 것을 보고 충격을 받았습니다. 특히 여학생들도 일상 언어로 욕을 사용하는 것도 놀랐구요. 저희는 욕할 때 ‘바보’ 정도를 하거든요.”

옷차림도 어색함의 극치로 그는 “교복 등을 엄청 줄여 입고, 또 양말이 아주 작은 것이 어색합니다. 오사카에도 요즘 학생들은 예뻐 보이려고 일부 저고리와 치마를 줄여 입는 학생들도 있긴 하지만 홋카이도 학교는 전혀 그렇지 않네요”라고 말했다.

송미령 양도 “처음에 왔을 때 음대에 다니는 아이들이긴 했지만 우리 역사에 대한 교육이 전혀 되어 있지 않은지 아이들이 너무 우리 역사를 모르는 것에 당황했다”고 지적했다.

친구들은 왜 한국 사람인데 일본에서 사는지, 또 말투는 왜 그리 이상한지 등을 물었고 심지어는 교수들까지 일본에서 왔는데 한국 이름을 갖고 있다는 것에 대해 일일이 답해줘야 했다고 한다.

그러면서 재일동포들은 한국도 북한도 아닌 또 다른 세계를 형성하고 있다고 한다.

송미령 양은 “민족교육을 받고 조국방문을 가서 분명 감동을 하고 좋았지만 막상 나고 자란 일본을 떠나서 한국이나 북한에서 살 생각은 별로 없습니다. 일본이 가장 편해요. 또 조선국적을 갖고 있는 아이들 중에 김일성대학 등에 유학하는 친구들도 거의 없구요, 재일동포들은 또 다른 그룹을 형성하며 열심히 살고 있다고 할까요.”

영화는 끝났지만 역사가 계속 쓰여지고 있는 ‘우리학교’

 

▲ 홋카이도 조선학교 출신 재일동포 유학생. 김기순(사진 왼쪽)과 박귀영 학생. [사진-통일뉴스 김효수 통신원]

시간이 어느 정도 흐르고 영화에서 여름날 졸던 박귀영 군과 어머니가 뒷풀이 장소에 도착했다.

귀영 군 어머니 변화순 씨는 “김명준 감독과의 인연으로 이런 환영을 받아 고맙다”며 “귀영이가 이곳에서 1년여간 공부를 할 계획으로 이곳 분들에게 어려울 때 많은 도움 받으며 많이 배우고 돌아오길 바란다”고 말했다.

박귀영 군은 “우리학교 영화에 나와서 덕분에 알게 된 분들도 많고, 많은 이들이 관심 가져 줘 김명준 감독에게 정말 감사한다”며 “앞으로도 많은 분들이 영화를 보고 ‘우리학교’에 더욱 높은 관심 가져주시면 좋겠다”고 말했다.

홋카이도 조선학교에서는 후배였지만 유학을 먼저 온 한양대 무용과의 장지성 양은 “홋카이도 출신이 많아져서 좋다”며 “팬까페 회원들의 도움으로 많이 배웠는데 다른 유학생들에게도 높은 관심 가져주길 바란다”고 말했다.

까페 운영자는 “우리가 모이는 줄 알고 홋카이도 조선학교의 신경화 교장선생님이 축하전화를 걸어오셨다”고 소식을 전한다.

영화는 끝났지만 ‘우리학교’의 역사가 계속 쓰여지고 있다는 것을 느끼는 대목이다.

 

▲ 팬들에게 싸인해주는 김명준 감독. [사진-통일뉴스 김효수 통신원]

분명 그도 그럴 것이 김명준 감독은 얼마 전 우리학교 영화의 박소현 조감독과 홋카이도 조선학교에서 결혼식을 올렸다고 한다.

까페 운영자는 김 감독이 아이를 낳으면 조선학교에 보내겠다고 했다고 농담반진담반이 섞인 이야기도 전한다. 해마다 학교 운동회 즈음이 되면 까페 회원들과 함께 학교에 방문을 한다고도 말했다. 까페는 한 달에 한 번 이상 회원들과 재일동포 유학생들과의 만남을 통해 친목을 도모하고 홋카이도 조선학교를 돕는 방안을 모색하기도 한다고. 때문에 회원들은 온라인에서 주로 활동하지만 오프라인에서도 서로 잦은 만남으로 친해지고 벌써 홋카이도 조선학교에 수차례 오고 간 이들은 조선학교 학생들과도 서로 친하다고 한다.

또 4월 1일에는 남북축구대회에서 남과 북을 동시에 응원하는 응원석에서 단체로 응원전을 갖는다고 한다. 11일에는 재일조선학교에 책보내기 운동을 벌이고 있는 다음카페 ‘뜨겁습니다’(http://cafe.daum.net/feelsohot) 회원과 재일동포 유학생들과 함께 한강에서 운동회도 벌인다고 한다. 아직도 ‘우리학교’ 이야기는 계속되는 것이다.

“영화 만들며 이렇게 행복한 사람 드뭅니다. ‘우리학교’는 제게 행복감을 준 영화입니다.”

김 감독의 말처럼 영화 ‘우리학교’는 이후의 역사를 계속 쓰며 우리학교를 사랑하는 이들에게 끝없는 행복을 전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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