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 고향

가끔 사람들에게 생각이 삐딱하다는 핀잔을 듣는다. 선명한 사람에게는 좀 흐려 보이고, 흐린 사람에게는 너무 선명하다는 뜻으로 이해하고 있다. 사실 나도 그런 흐리멍텅한 것이 싫다. 단순하고 선명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늘 하고 있다.

나의 삶에 있어 큰 전환기는 군대제대 이후 학창시절이다. 알고 있는 모든 것에 대한 의문과 새로운 질서를 찾기 위해 청춘을 보냈다. 즐겁고 보람찬 일이었다. 나에게 그런 청춘이 있었다는, 아니 그런 청춘을 보낼 수 있는 기회가 왔다는 것에 감사한다. 그런데 10년 이상이 지나니 그것만으로 부족했다.

정치와 사회, 민주, 통일, 자주, 인권, 여성, 생태, 예술, 생계, 결혼, 관계, 희망과 꿈, 욕망, 게으름, 권위 따위의 숱한 문제들이 머리를 어지럽힌다. 정리를 하고 원칙을 세워야지 하면서도 허우적거리기 일쑤다. 새로운 변화를 창출하고, 내적 질서를 만들어내는 시기가 온 것이다. 새로운 배움이 필요하다. 삶의 질적 업그레이드를 할 필요가 있다.

그래서 지금 나는 약간 흐리멍텅하다.

나는 오랫동안 내 곁에 있어준 미술이란 놈에게 많은 것을 배운다. 미술도 사람살이의 반영이고 그 자양분을 먹고 자라왔다. 거칠게, 때론 부드럽게... 가끔 뒤집히는 경우도 있었지만 용하게 자리를 굳건히 지키고 있다.

나는 미술의 정화작업을 사랑한다. 보잘것없는 사물과 풍경이 미술적 가공을 통해 아름다운 작품으로 태어나듯, 쓰레기를 걸러서 자원을 만들고, 구차한 민중들의 삶을 걸러서 희망을 만드는 일은 커다란 삶의 교훈이 아닐 수 없다.

또한 나는 미술의 `창조성`을 사랑한다. 하루라도 만들고 창조하지 않으면 입에 가시가 돋았으면 좋겠다. 무기를 녹여 생산도구를 만들고, 고통과 슬픔을 가지고 희망을 창조할 수 있다. 창조와 연대는 미술의 본성이다. 아니 사람의 본성일지도 모른다. 미술은 아름다움을 추구하는 학문이다. 보기 싫은 것과 좋은 것을 끊임없이 선별하는 작업을 해야 한다. 사람과 사회에 유익하고 가치 있는 것은 보기 좋다. 사람의 자유와 권리, 존엄성을 해치는 것은 보기 싫다.

무엇보다도 내가 배운 가장 큰 교훈은 쓰레기를 자원으로 정화하고, 새로운 사회를 창조하며, 아름다움을 찾는 모든 일을 사람이 직접 해야 한다는 것이다.
 
힘들거나 고통스러울 때 미술은 내게 무한한 창조의 영감과 희망과 존엄성을 주었다. 뭔가를 만들어내고 그것을 위해 밤을 새우는 일 자체로 나는 구차하지 않았다. 그리고 내가 사회에 필요한 존재라는 존엄성과 자신감을 얻었다. 어쩌면 미술은 내 삶에 있어 소중한 고향인지도 모른다.


▶내고향
박효성/유채/102*64.1/1987

내고향

이번에는 유화작품을 소개한다. 북한화가 박효성이 그린 <내고향>이란 작품이다. 1987년에 그려졌으며 크기는 40호 정도이다.

작품의 내용을 살펴보면 반백의 신사가 고향을 찾아 회한에 잠긴 눈빛으로 앉아있다. 손에 인공기를 들고 있는 걸로 봐서 외국에서 살다가 고향을 방문한 듯하다. 옆에 있는 남자는 아마도 가족이나 친척이 아닌가 싶은데 여유 있고 부드러운 표정을 하고 있다.

어떤 사람은 노신사의 손에 들려있는 인공기를 두고 북한체제의 우월성을 뜻하거나 정치색을 띤다고 생각할지 모르겠다. 하지만 이 그림은 1987년 북한에서 창작되어 이후 1993년 일본 동경의 <코리아 통일미술전>에 출품된 작품이다.

따라서 남한이나 외국 사람에게 보일 목적으로 창작하지 않았기에 인공기는 `고향방문단`이라는 신분을 드러내기 위한 미술적 장치로 보는 게 타당하다.

이 작품의 분위기는 매우 목가적이다. 동네가 한눈에 보이는 언덕에 색채도 따뜻한 갈색계열과 낮은 채도의 녹색을 사용해 안정감 있는 분위기를 연출하고 있다. 제비가 하늘을 날고, 양을 치는 아낙이 멀리 보이며, 맑은 개울이 흐르는 정겨운 고향의 풍경이 펼쳐진다. 그렇지만 결코 누추하고 못사는 동네는 아니다.  마치 유럽풍의 풍경화를 보는 듯하다.

고향을 방문한 노신사가 어느 나라에 살았는지는 알 수 없다. 일본이거나 미국일 수도 있다. 하지만 우리처럼 유학을 갔다왔거나 이민을 간 사람은 아닐 것이다. 아마도 일제 식민지 시절 일본에 징용이나 징병으로 끌려갔거나, 미국의 하와이 같은 곳에 노예로 팔려간 사람일 것이다.

청춘을 이국 땅에서 고생스럽게 보내고 고향을 찾은 사람의 심정은 어떨까? 나는 아직 어려서 그 마음을 헤아리지 못한다. 하지만 이산가족의 상봉에서 노모가 흘리던 그 눈물의 의미와 다르지 않을 것이다. 고향을 찾는 마음은 이데올로기도 아니고, 정치도 아니다. 그것은 사람이 가지고 있는 본성이고 자신 존재에 대한 진지함의 다른 표현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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