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평양시체육축구장 기증식 기념사진(위), 안민석 민주당 의원이 평양 사동체육관 인조잔디구장 완공에 감격해 인조잔디에 키스를 하고 있다(아래). [사진제공-안민석의원실]

자신의 승용차로 개성까지 운전해 간 최초의 국회의원, 평양 사동체육관 인조잔디에 입을 맞춘 국회의원.

민주당 안민석(46. 경기도 오산) 의원은 북녘 땅을 가장 많이 밟은 현직 의원이다. 웬만한 시민사회단체 관계자들보다 북측을 자주 오가는 안 의원의 '주 종목'은 남북 체육교류사업. 남북 체육교류사업의 '전도사'란 말도 과언이 아니다.

"1990년 청소년 축구 단일팀 출전했을 때 국민들의 관심, 다음해 남북 탁구 단일팀이 중국을 이기고 결승전을 3대 2로 우승했을 때의 남북 간에 가졌던 일체감, 동질성 등 극적인 효과는 어느 분야 교류보다 효과가 있다. 그리고 적은 비용으로 최대 효과를 낼 수 있는 부분이 바로 체육 교류다."

최근 펼쳐지고 있는 한.일간 '야구 전쟁'이 입증하듯 스포츠가 갖는 국민적 파급력은 어느 분야 못지 않은 것임에 틀림 없으리라.

중저음의 무게감이 느껴졌던 목소리가 제법 높아졌다. 손 동작도 커졌다. 점잖은 국회의원의 이미지가 온데간데 없다. 남북 체육교류사업에 있어서 안 의원은 열정적이다. 그는 현재 '6.15공동선언실천 남측위원회 체육본부' 상임대표이기도 하다.

그는 국회의원이 되기 전 중앙대학교 교수 재직시절부터 남북 체육교류에 대한 관심이 높았단다. 그런 그가 2004년 국회에 입성한 후 대한올림픽위원회(KOC)의 남북체육교류위원장을 맡게 되면서 북측과 본격적인 체육교류를 시작하게 됐다고.

2006년 토리노 동계올림픽에 출전하는 북측 선수단의 선수용품을 지원하는 활동을 시작으로 각종 남북 체육교류사업을 이끌고 있는 안 의원은 북측 체육 부문에 대해서는 전문가 못지않은 '식견'을 가지고 있다. 북한 체육의 강세 종목을 묻는 즉석 질문에도 막힘없이 대답이 술술 나온다.

무엇보다도 안 의원이 한 체육교류사업 중 가장 큰 성과는 남측 대북지원단체인 '평화3000', 인천시와 함께 평양 사동체육관에 인조잔디를 기증한 일이다. 비용만 해도 총 10억 원이 소요됐다.

"1년 6개월 동안 우여곡절이 있었지만, 북측의 필요성, 남측의 지원 등 모든 아귀들이 다 맞아떨어졌다. 북에다 잔디구장을 깐다는 것은 마치 퍼즐 맞추기처럼 모든 것이 들어맞지 않으면 힘든 사업이었는데, 모든 분들께 참 감사드린다."

안 의원은 지난 2007년 11월, 평양 사동체육관에서 가진 기증식에서 기쁨에 겨워 인조잔디에 입을 맞추기도 했다. 그때의 감격은 말로 표현할 수 없을 정도라고.

이를 계기로 그는 20만 명을 수용할 수 있는 세계 최대 규모의 북한 능라도 5.1경기장에 인조잔디를 지원하는 사업을 구상했다.

피파(FIFA, 국제축구연맹)에 사업을 신청, 20억 원의 지원금을 유치하는 데 큰 기여를 했고, 이 사업과 관련해 북측과 실무협의를 갖기 위해 오는 5월 평양을 방문할 계획도 가지고 있다고 밝혔다.

2008년 북경올림픽 때 남북한 단일팀 구성으로 민족의 관심이 집중됐을 때에도 안 의원은 한 복판에 있었다. '남북 단일팀 구성을 위한 대표단' 단장을 맡았기 때문이다.

그의 표현을 빌리자면, 남북 단일팀 논의는 이미 노무현 정부 말기에 '9부 능선'을 넘었다고. 그러나 새 정권이 들어선 이후 침체된 남북관계로 인해 논의 자체가 사라지게 된 것에 대해 애석함을 감추지 못했다.

안 의원은 "남북이 아직 훈련이 덜 된 관계로, 정권이 바뀌면서 9부 능선까지 넘었던 올림픽 단일팀 구성이 무산됐던 것이 참으로 애석하다"면서 "이 문제는 정치와는 상관없이 스포츠 교류만큼은 동.서독이 했던 것처럼 남북한에 있어서도 스포츠 교류만큼은 정치적인 사안에 영향을 받지 않고 지속되는 것이 필요하다"고 주문하기도 했다.

이명박 정부의 대북정책에 대해서도 "답답하기 그지없고 어리석다"며 "이렇게 10년 동안 어렵게 공들여서 쌓은 탑인데 이 탑이 정권이 바뀌면서 와르르 무너지는 듯한 이 처참함, 그로 인한 여러 가지 폐해들, 우리 남쪽 경제 위기의 돌파도 북쪽 상황을 잘 활용하면 돌파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고 자신의 견해를 피력했다.

그러면서 "북쪽하고 교류하고 협력하기 위해서는 이해와 인내가 필요하다"며 "급하게 하려고 하면 그것은 가능하지도 않고 오히려 불신과 갈등을 야기시키는 것"이라고 했다.

그는 "이 시점에서 북.일, 북.미 관계에 따라 남한이 끌려가는 역할을 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 민족으로서는 참 부끄러운 것"이라면서 "우리가 민족의 자존을 가지고 남북관계를 선도해 나가고 분위기를 조성해 나가고 북.미 관계를 우리의 틀 속으로 가지고 올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호소했다.

그동안 추진했던 남북 체육교류사업은 물론, 향후 계획하고 있는 사업들까지 다양한 얘기를 들을 수 있었던 안민석 의원과의 인터뷰는 17일 오전 10시, 서울 여의도 국회의원회관 506호에서 1시간가량 진행됐다.

다음은 인터뷰 전문이다.

"단일팀 우승했을 때 일체감, 동질성 등은 어느 분야 교류보다 효과가 있다" 

▲ 17일 오전 10시, 서울 여의도 국회의원회관 506호에서 안민석 민주당  의원과 인터뷰를 진행했다.[사진-통일뉴스 조성봉 기자]

□ 통일뉴스 : 북한과의 체육교류 사업을 그 동안 이끌어 왔는데 북측과 처음 인연을 맺기 시작한 계기는?

■ 안민석 의원 : 국회의원 되기 전에 교수를 했었는데, 교수 시절에 남북 체육교류 관련 주제로 논문을 가장 활발하게 썼던 학자였다. 교수 시절에 주장했던 남북 체육교류는 체육이 가지고 있는 대중성 때문에 어느 분야의 교류보다도 효과가 있을 것이다. 예를 들어서 1990년 청소년 축구 단일팀 출전했을 때 국민들의 관심, 그 다음해에 남북 탁구 단일팀 이분희.현정화 조가 중국을 이기고 결승전에서 3대 2로 우승했을 때, 그때 남북이 가졌던 일체감, 동질성 등 극적인 효과는 어느 분야 교류보다 효과가 있다. 그리고 적은 비용으로 최대 효과를 낼 수 있는 부분이 바로 체육교류다. 그런 생각을 가지고 여러 가지 연구를 해 왔다. 그래서 2004년 국회의원 되고 난 다음에 대한올림픽위원회(KOC)의 남북체육교류위원장을 맡았다. 제가 본격적으로 북한하고 체육교류를 할 수 있는 위치가 됐다.

그래서 제일 처음 했던 게 2006년 토리노 동계올림픽에 선수용품 지원을 위한 활동이었다. 동계종목 같은 경우에는 스케이트부터 선수복까지, 국제공인을 받은 선수복장이어야 하기 때문에 북측 요청을 받아 지원해주기로 했다. 문제는
스케이트화는 굉장히 예민하기 때문에 치수 0.1mm라도 틀려서는 안되기 때문에, 북한 선수가 직접 와서 치수를 재서 제작해야 되는데 그러지 못하니까 우리가 제 3루트를 이용했다. 북쪽이 일본쪽에 정확한 치수를 적어 주면 우리가 그것을 받아서 제작을 의뢰하는 과정을 거쳐서 결국에는 2006년 토리노 올림픽에 스케이트날, 스케이트화, 유니폼을 지원하게 되면서 물꼬가 터진 것이다.

□ '6.15남측위 체육본부' 상임대표를 맡고 있는데, 언제부터  일해 왔나?

■ 체육본부 구성이 2005년경이다. 그래서 2006년에는 6.15남측위 대표단이 평양에 갈 때 체육본부에서 저하고 현정화 감독이 같이 갔다. 현정화 감독은 '이분희 언니를 만나고 싶다'. 그러니까 91년에 일본에서 탁구 단일팀 우승한 이후 한 번도 만나지 못했다고 했다. 그래서 얼굴 보고 싶다고 요청해서 사전에 북측에도 의사를 전달했다. 이분희 선수가 지금은 감독을 하고 있다고 들었는데, 이분희 감독을 현정화 감독이랑 만나는 연출을 해보자, 그래서 사전에 북쪽과 이야기를 전달했는데, 그 당시에 이분희 감독의 아들 치료 때문에 중국에 가 있었다고 해서 만나지는 못했다.

"북에다 잔디구장을 깐다는 것은 마치 퍼즐 맞추기처럼 모든 것이 들어맞아야"

▲북에다 잔디구장을 깐다는 것은 마치 퍼즐 맞추기처럼 모든 것이 들어맞아야 한다는 안민석 의원. [사진-통일뉴스 조성봉 기자]

■ 북측과 본격적인 체육교류가 이뤄졌다고 했는데, 구체적인 성과는?

□ 북쪽에 인조잔디 깔아주는 것을 제안했다. 제안하게 된 것은 남쪽에서도 천연잔디를 키우기 쉽지 않은 기후이지만은 북쪽은 날씨가 춥기 때문에 천연잔디가 자라기에는 거의 불가능한 기후다. 그러니까 북측에서 고위층이나 인민들이 축구에 대해서 굉장히 관심이 많고, 월드컵에도 관심 많고 좋은 성적 거두기를 원하는데, 2006년 독일월드컵 때 북한이 예선도 통과하지 못했다. 그래서 북에서 잔디운동장에 관련된 관심을 본격적으로 가지기 시작했다.

'잔디 문제를 해결하지 않고서는 경기력 향상이 없다'는 문제를 느끼기 시작했고, 당시에 남쪽에서는 학교에 인조잔디를 깔아주는 것을 국가사업으로 시작하고 있었다. 그래서 '아, 남측의 인조잔디 사업을 북에도 하나 해줬으면 좋겠다'라고 생각해서 북에다 제안을 했다. 그래서 북에서 검토한 후에 적극적으로 지원 요청을 해서 1년 이상 실무준비 기간이 있었고, 그 다음에 6개월 정도의 사업 기간, 통틀어서 1년 6개월 동안의 인조잔디 지원 사업이 진행돼서 2007년 11월에 준공됐다.

■ 사업 진행상의 어려움이 있었다면?

□ 다른 교류 사업은 많이 해 왔는데 인조잔디를 남측에서 깔아주는 것은 처음이었기 때문에 우리도 처음에 이것을 어떻게 해야 할 지, 물자들을 어떻게 공급해야 할 지, 몰랐다. 그 다음에 인조잔디에 들어가는 고무칩이 반입금지 물품이라며 당국에서 6개월 정도 태클을 걸기도 했다. 실무적인 부분이 다 해결된 이후엔 물자들은 어떻게 올라갈지, 그 다음에 북에서도 인조잔디를 안 깔아봤기 대문에 모르기 때문에 결국에는 남측 기술자가 올라가서 최소한 3,4개월 체류해야 하는데, 기술자들의 신변문제 등이 걸리지 않나. 토목공사는 북에서 했다. 배수시설을 잘 갖춰야 하기 때문에 땅을 뒤집고 거기에 배수시설을 까는 것은 북측에서 알아서 했다. 그 다음 인조잔디 깔고 우레탄 까는데 3,4개월 걸렸다. 우리 기술자 세 분이 올라가서 3,4개월을 거기 있으면서 북한한테도 이 기술을 전수해 줘야 하니까 북한 기술자들과 함께 공동으로 이 작업을 진행한 것이다.

2006년 피파(FIFA)에서 김일성 경기장에 인조잔디를 깔아줬는데 이것이 마무리 공사가 안 돼서 잔디 질이 형편없다. 그래서 작년 월드컵 예선 경기 치른 곳도 국제규격에 맞는 여기(사동경기장)였을 것이다. 지금 현재 모든 A매치 경기는 사동경기장에서 했다고 본다.

많은 분들이 도와줬다. 당시 10억 원이 소요됐는데 인천 안상수 시장도 적극적으로 예산을 지원했고, 정부에서도 지원했다. 1년 6개월 동안 우여곡절이 있었지만, 모든 아귀들이 북한 측의 필요성, 남측의 지원이 다 맞아떨어져서, 북에다 잔디구장을 깐다는 것은 마치 퍼즐 맞추기처럼 모든 것이 들어맞지 않으면 힘든 사업이었는데, 참 감사드린다. 모든 분들께.

"북경올림픽 남북 단일팀, 노무현 정부 말기에 이미 '9부 능선' 넘었다"

▲ 올림픽 단일팀 구성이 무산됐던 것이 참으로 애석하다는 안 의원.[사진-통일뉴스 조성봉 기자]
■ 흔히 체육교류하면 큰 국제대회 공동입장, 단일팀 구성이 떠오르는데 이런 부분이 참여정부 시절 많지 않았던 것 같다.

□ 2008년 북경올림픽 남북한 단일팀 구성을 위한 대표단 단장이었는데, 북경올림픽 단일팀 구성을 위해서 북쪽하고 정식으로 체육회담을 몇 차례 했었다. 제일 인상에 남는 게 처음에는 북쪽에서 아주 무리한 요구를 했었다.

가령, 단일팀의 이름을 고려라고 하자. 선수 구성에 있어서 모든 선수 구성 비율을 1대1로 아주 균형 있게 해야 된다는 주장을 했다. 고려라고 하자는 것은 우리가 이념적으로, 국민 정서상 받아들일 수 없는 것이다. 또 선수들 숫자를 동수로 하자는 것도 남측에서는 받아들일 수 없는 것이다. 전체적인 경기력이 우리가 8대2 정도로 앞서는데, 이것을 동수로 구성을 한다면 실제적으로 경기력이 향상되기는커녕 경기력이 떨어진다.

그러면 어렵게 올림픽 단일팀을 구성했는데, 그 결과 남북이 합치니까, 단결하니까 올림픽 성적이 더 좋아졌다 이런 효과가 나와야 하는데, 단일팀 구성했는데 성적이 더 낮아졌다면 이것은 국민들에게 스포츠를 넘어서 이후에 '남북한이 통일하면은 모든 면에서 우리가 국력이 더 좋아진다'고 생각해야 하는데 남북한이 통일돼도 사람들 먹고 살기가, 국력이 더 떨어졌다라고 하는 것으로 연결되는 인식을 줄 수 있다.

그래서 남북한 단일팀 구성의 전제는 단일팀을 구성하는 것 자체가 중요한 만큼이나 경기력, 성적이 좋아야 한다는 것이 동전의 양면이다. 그러나 북한이 주장하는 대로 동등하게 단일팀 구성하면 보나마나 경기력이 떨어질 뿐만 아니라 남측 체육계에서 그 불만을 우리가 감당할 수 없다.

그래서 1차 회담에서는 서로의 입장 차이만 팽팽하게 확인하고 돌아왔다. 추운 겨울밤이었는데, 회담이 난항을 겪으면서 밤 9시 돼서 들어왔다. 참 무겁고 어두운 마음을 가지고 돌아왔던 기억이 있다. 그 다음에 북한이 많이 양보했다. 역대 국제 경기 성적을 토대로 해서 어떤 종목은 남측이 더 많이 들어가고, 북한이 강한 종목은 북한이 더 많이 들어가고, 나머지 메달 기대하지 않는 종목은 반반씩 하는 등 합당하게 조율이 되다가 결국에는 정치권 흐름과 맞물려 있기 때문에 정권이 바뀌면서 남북관계가 전반적으로 냉기류가 흐르면서 작년에 1년 반 동안 논의되던 단일팀 논의 자체가 없어졌다.

저로서는 아쉬운 것이 북경올림픽 단일팀 구성 문제는 노무현 정부 말기에 9부 능선을 넘었다고 봤다. 이 문제는 정치와는 상관없이 스포츠 교류만큼은 동서독이 했던 것처럼 남북한에 있어서도 스포츠 교류만큼은 정치적인 사안에 영향 받지 않고 지속되는 것이 필요하다고 본다. 아직까지 남북이 훈련이 덜 된 관계로 정권이 바뀌면서 9부 능선까지 넘었던 올림픽 단일팀 구성이 무산됐던 것이 참으로 애석하다.

▲남북단일팀이 구성되면 올림픽 5위권이 가능하다는 안 의원. [사진-통일뉴스 조성봉 기자]
■ 북측이 상대적으로 강세를 유지하는 종목은?

□ 여자 축구, 여자 마라톤, 사격, 복싱이 전통적으로 강세다. 반면 여자 축구, 여자 마라톤 이런 종목은 우리는 좀 열세다. 그래서 북한이 강세인 종목, 우리가 강세인 종목들을 잘 활용하면 저는 올림픽에서 5위권 안에 드는 것도 충분히 가능하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우리는 고지대 훈련하러 갈 때 외국 나가는데, 그럴 필요없다. 남북 체육교류의 효과라는 것은 경기력 자체뿐만 아니라, 가령 마라톤 단일팀을 구성하면 함께 훈련해야 하는데 훈련 장소를 개마고원으로 하면 된다. 그러면 자연스럽게 인적 교류가 되는 것이다.

"능라도 5.1경기장에 인조잔디 완성되면 50년 전 경평전을"

■ 이명박 정부 이후 체육교류의 흐름은?

□ 거의 단절됐다. 그래서 제가 추진하고 있는 것은 2007년 11월 달에 사동경기장 준공식에 갔을 때 남측의 요구로 능라도 5.1경기장을 구경시켜줬으면 좋겠다고 해서 북측에서 우리 일행을 능라도 5.1경기장을 구경시켜 줬다. 능라도 경기장은 20만 규모의 세계 최고의 경기장이다.

80년 남쪽이 능라도 5.1경기장에 자극을 받아서 잠실 경기장을 지은 것이다. 또 거기가 아리랑 축전이 진행되는 곳이다. 11월 달이었는데, 운동장이 카펫으로 덮여있었다. 제가 책임 선생한테 카펫 밑에는 무엇이 있냐고 묻자 맨땅이라고 했다. 맨땅에서 아리랑 축전을 할 수 없으니까, 경기도 할 수 없으니까, 능라도 5.1경기장이 규모는 세계 최고로 지었는데, 다른 용도로 사용하지 못하고 아리랑 축전 할 때 그것도 카펫 위에서 할 수 밖에 없다는 얘기를 하더라.

그래서 제가 즉석에서 제안했다. 저기에다 잔디운동장 사업을 다시 한 번 해 봅시다. 사동경기장은 별로 알려지지 않은, 우리로 치면 공설운동장이다. 그런데 능라도 5.1경기장은 남측에서도 많이 알려진 경기장이니까 능라도 5.1경기장에 잔디를 깔아서 거기서 월드컵 예선도 치르고, 국제경기 A매치도 하고 아리랑 축전도 잔디 위에서 하면 얼마나 좋겠느냐. 즉석 제안을 했더니 책임자가 충격을 받은 듯 '상부에 보고해보고 말씀드리겠다'고 하고 그날 저녁 따로 보자고 했다. '진짜 해 줄 수 있느냐고' , ' 한번 같이 노력해 봅시다' 잔디 깔았던 시공사 사장님도 같이 갔는데 워낙 규모가 크니까, 비용은 얼마 드냐고 물어봤는데 20억 정도가 든다고 했다. 그래서 그날 구두로 '그러면 남측에서 예산문제를 해결하고 연락을 드리겠다' 하고 내려왔다.

그런데 내려와서 12월 달에 국회에서 예산 심의할 때 이것을 추가로 예산 반영하려고 당시 예결위원장이었던 원혜영 의원님께 부탁도 했는데 반영 못했다. 그리고 제가 국회의원 선거 있고 신경 못 쓰다가 지난해 국회의원 선거 끝나고 북과 구두로 약속한 것이니까 꼭 이것은 성사시키고픈 생각에 여기저기 예산문제를 타진했다. 피파 쪽을 건드려봤다. 피파에는 개발도상국에 축구운동장을 건립해주는 프로젝트가 있고, 상당액의 예산이 있다. 그래서 팔레스티인 분쟁지역에 축구장을 지어서 이스라엘, 팔레스타인 아이들 축구경기도 시키고 하는 프로젝트도 했었다. 능라도 5.1경기장에 피파에서 예산을 지원해 줘서 이 경기장이 완성이 되면 과거 50년 전에 경평전을, 평양에도 평양 축구단 소속의 클럽팀이 있고 우리도 서울을 대표하는 팀이 있으니까 경평전(京平戰)이 되는 것이다.

▲ 이명박 정부의 대북정책에 대해 안 의원은 "민족의 자존을 가지고 남북관계를 선도해 나가야 하는 데 그렇지 못하는 게 참 안타깝고 유감스럽다"고 말했다. [사진-통일뉴스 조성봉 기자]

더 나아가서는 국가대표 간에도 준공기념으로 경기하고, 그래서 이 사업을 작년 말에 제안했다. 12월 달 피파회의에서 받아들이는 것으로 됐다. 70만 불(10억)밖에 못준다고 해서 나머지 부분을 오세훈 시장에게 부탁했다. 경평전을 하기 때문에. 오 시장 측도 지원하겠다고 해서 이것을 가지고 지난 12월 달에 평양에 들어간 것이다. 예산 문제가 해결됐으니까 시작하자고 했는데, 그런데 평양의 분위기가 '어떠한 교류사업도 일절 중단시켜라'라는 상부의 지시가 있어서 비공식적으로 얘기는 했는데 공식적 회담은 한 번도 열리지 못했다. 북에서는 예산 문제 해결된다는 것을 알고 있다.

그런데 그 이후에 1월 달에 피파에서 다시 연락 온 것이 20억 전액을 지원해주겠다. 이것은 피파 지원 사업으로 추진될 수 있는 예산이 확보돼 있다. 그래서 5월 정도에 평양 가서 이 문제를 실무적으로 매듭을 짓고, 북에서 피파에다 신청하면 되는 단계까지 와 있다. 5월 달에 평양을 방문할 계획이다.

시점으로는 밑의 토목공사 부터해서 6개월은 걸리는 공사다. 제가 알기로는 능라도 경기장에서 아리랑 축전 예행연습을 해야 되니까 그런 기술적 문제가 있을 것이다. 올해 실무적 합의, 논의, 협약 끝나고 아리랑 축전 끝난 시점부터 내년 상반기 정도에 완료하는 것으로 하면 지장이 없다.

■ 남북관계가 어려운데 힘든 부분이 있지 않을까?

□ 피파에서 20억 전액을 지원함으로써, 남측의 예산은 들어가지 않는다. 북쪽에서도 부담이 없다. 피파하고 북쪽하고 문제니까. 남쪽하고의 지원교류사업이 아니다. 저는 피파와 북쪽의 메신저 역할을 하는 정도역할이다. 북에서 저에 대한 신뢰는 있기 때문에 제가 맡는 메신저 역할을 북에서 인정할 것이라고 본다. 5월에 매듭지어질 것으로 본다.

■ 이명박 대북정책이 남북관계 긴장으로 이어지고 있는데 하고 싶은 말은?

□ 답답하기 그지없고 어리석다고 생각한다. 이렇게 10년 동안 어렵게 공들여서 쌓은 탑인데 이 탑이 정권이 바뀌면서 와르르 무너지는 듯 한 이 처참함, 그로 인한 여러 가지 폐해들, 우리 남쪽 경제 위기의 돌파도 북쪽 상황을 잘 활용하면 돌파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개성공단에 기대했던 것도, 중국에 나가있는 한국의 기업들이 현지에서 언어.문화적 문제가 있는데 북쪽의 값싼 노동력과 언어.문화적 문제가 해결되면, 해외 진출하려는 자본과 공장들을 개성 2천만 평 넓은 땅에 유치하면 남쪽도 좋고 북쪽도 좋은 거 아니냐. 그 외에도 남북이 협력하면 좋은 점이 무척 많다. 특히 경제가 어려운 상황에서 남북경제마저도 얽혀 있으니까 참 답답하다.

결국에는 이명박 정부가 풀어야 하는데, 이명박 정부의 의지로는 별 기대는 안 한다. 워낙 이명박 정부에서 대북정책 관장하는 책임 위치에 있는 분들의 마인드가 '무찌르자 공산당' 아니냐. 북을 제압의 대상으로 보는 거 아니냐. 협력과 상생대상이 아니라. 이런 분들의 이데올로기를 스스로 변화할 것이라는 그런 기대는 안 하고 있다. 단지 북미관계, 북일관계가 앞으로 개선될 것으로 보는데 이명박 정부가 할 수 없이 따라가는 종속변수가 될 수밖에 없다. 그니까 이 시점에서 북미, 북일관계에 따라서 남한이 끌려가는 역할을 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 민족으로서는 참 부끄러운 것이다. 우리가 민족의 자존을 가지고 남북관계를 선도해 나가고 분위기를 조성해 나가고 북미를 우리의 틀 속으로 가지고 올 수 있도록 그런 입장을 가져야 되는데 그렇지 못하는 게 참 안타깝고 유감스럽다.

"북쪽하고 교류, 협력하기 위해서는 이해와 인내가 필요하다"

▲ 북쪽하고 교류하고 협력하기 위해서는 이해와 인내가 필요하다는 안 의원.[사진-통일뉴스 조성봉 기자]

■ 북측과 협상 과정에서 느낀 점, 알게 된 점이 있다면?

□ 북쪽하고 교류하고 협력하기 위해서는 이해와 인내가 필요하다. 이해를 먼저 해야 된다. 저쪽의 체제와 상황이 우리와 아주 다르다는 것을 이해하지 않으면 저쪽이 인정이 되지 않는다. 인정이 바탕 되지 않으면 어떤 대화도 힘들다. 그리고 저쪽이 가지고 있는 특수성을 충분히 이해해야 한다. 그런 이해가 되면 북쪽에서 우리가 예상치 않았던, 우리가 다소 실망스런 태도나 의사를 취했다 하더라도 인내하고 기다릴 수가 있다. 그것은 그들 나름대로의 내부적인 상황이 있을 수밖에 없는 것이다 하면서 인내를 할 수 있는 것이다. 급하게 하려고 하면 그것은 가능하지도 않고 오히려 불신과 갈등만 야기시키는 것이다. 그래서 아주 긴 호흡으로 인내하면서 그들을 이해하다 보면 남북교류가 잘 될 수 있는 문제라고 본다.

저는 짧은 몇 년 동안 북쪽 분들 만나면서 가능하면 그들을 단 한 번도 책망을 하려고 하지 않았다. 저쪽의 요구나 상황도 이해하려고 했다. 그러다보니까 기다릴 수 있는 인내심도 많이 가질 수 있었고, 그런 것이 스스로가 훈련되었다고 생각한다.

■ 오가면서 에피소드 있다면?

□ 개성에 봉동관 식당에 효정이라는 아가씨가 있었다. 이 아가씨의 아버지가 농구선수 출신이다. 체육회담 왔다갔다 하다 그 아가씨를 알게 됐고 가정얘기를 들으면서 아버지가 농구 선수 출신이었다고 해서 보다 더 가까워졌다. 그래서 한동안 그 아가씨 만나면 반갑게 서로 인사 나누고 했는데, 그런데 1년 만에 개성에 갔는데 서빙하는 사람들 중에 효정이가 있는 줄 몰랐다. 그런데 북측의 안내원이 훌쩍훌쩍 운다는 것이다. 안 의원이 몰라본다고 해서, 그래서 굉장히 미안했고, 가슴 찡하게 안아줬던 기억이 있다. 지금 시집간 지 모르겠다.(웃음)

■ 평양 외에도 가보신 지역이 여러 군데 있나?

□ 저는 운이 좋아서 말하자면, 서울서부터 묘향산까지 육로로 가봤다. 2003년에는 정주영 체육관 개관식을 할 때, 우리가 서울에서부터 개성 거쳐서 평양까지 버스로 가지 않았나. 그리고 지난 12월 달에는 평양에서 묘향산까지 육로로 갔으니까. 특히 정치인으로서는 서울부터 묘향산까지 육로로 간 경우가 아마 흔치 않을 것이다. 그런데 육로로 갔다는 사실보다도 육로로 가야만이 북의 보통 사람들의 삶에 대해서 피상적이지만 많이 볼 수 있다.

■ 북측에도 6.15북측위에 체육분과위가 있나?

▲ 안 의원은 "올림픽 종목에서 태권도를 존속시키는데  장웅 총재의 역할이 결정적으로 기여했다"고 밝혔다. [사진-통일뉴스 조성봉 기자]

□ 6.15북측위에는 없다. 자꾸 요청하고 있다.

체육계 관련해서 북한에 장웅 IOC 위원이 있는데, 그분을 민족의 체육 지도자로서 높게 평가한다. 그분이 오스트리아에 계신데 그분하고 필요하면 전화통화도 하고 있다. 특히 2005년 7월 싱가폴 IOC 총회에서 태권도가 퇴출될 것이냐 존속할 것인가 투표하지 않았나. 결국 존속됐는데 이것은 남북체육교류의 성과다.

이것은 알려지지 않은 얘긴데. 투표하기 2~3일 전까지 굉장히 위태로웠다. 두 가지 이유였다. 하나는 태권도가 재미없는 운동이다. 사람들이 잘 보지 않는다. 또 하나는 태권도는 사고 종목이다. 왜냐하면 세계기구가 단일하지 않으면 사고종목이다. 태권도 같은 경우 북측이 중심이 된 ITF, 남측이 중심이 된 WTF가 있다. 이 태권도가 두 개의 국제조직이 있으니까 IOC에서는 사고종목으로 본 것이다.

이 두 가지 여론 때문에 태권도가 퇴출될 것이라는 우려가 팽배했다. 저도 거기 일주일 동안 있으면서 득표활동을 했다. 그래서 저희들이 장웅 총재님한테, 특히 두 번째 문제에 대한 지원 요청을 간곡하게 했다. '우리가 이런 부분 해결하겠다고 하면 안 믿는다. 총재님이 IOC 위원들에게 이것이 2009년까지 가능하다고 말씀해달라', '장웅 총재가 2009년 10월 다음 퇴출 여부 결정할 때까지 꼭 조직을 통합하겠다는 그 말씀을 IOC위원들이 해 주셔야지, 우리가 얘기하면 설득력이 떨어진다' 간곡하게 매달려서 '이것을 민족적인 차원에서 꼭 좀 도와주십시오' 부탁했다. 그렇게 해서 장웅 총재가 움직인 것이다. 그게 결정적으로 태권도를 존속시키는데 결정적으로 기여했다고 본다. 그것은 그동안의 장웅 총재와의 인간적인 신뢰관계가 있었기 때문에 장웅 총재와의 대화 설득이 가능했다고 본다.

그러나 지금 그 두 가지 문제 해결하지 못했다. 룰 재밌게 하겠다는 것 바꾸지 못했고, 조직 양립된 것 해결하지 못했기 때문에 올해는 굉장히 위험할 것이라고 생각한다.

"생활 체육과 소프트한 청소년 체육, 동호인 차원에서의 교류를 다양화하고 싶다"

■ 향후 계획은?

□ 그동안의 메가 이벤트 중심의 체육교류만 신경 썼다. 공동입장, 단일팀 이런 거였다. 이제는 소프트한 프로그램을 상황이 좋아지면 활발하게 할 필요가 있다. 가령, 초등학교 축구 교류전, 서울의 어느 초등학교하고 평양의 어느 초등학교하고 자매 결연을 맺어서 서로의 축구시합을 왔다갔다 하면서 하는 교류전, 그 다음에 지난해 국회의원 선거 하면서 내건 공약 중 하나가 오산 배드민턴 팀을 평양에 데려가서 평양의 구락부와 친선시합을 주선하겠다는 것이었다. 그런 식의 생활 체육과 소프트한 청소년 체육, 프로가 아닌 엘리트가 아닌 생활 체육, 동호인, 학생들 이런 차원에서의 교류를 다양하게 하고 싶다.

그것이 동서독이 50년대부터 해왔던 방식이었다. 국제경기 A매치는 서로가 부담이 있다. 그것도 나름대로의 의미가 있지만, 풀뿌리 체육 차원에서의 남북교류가 활성화되는 것이 '인민 대 인민'들이 만나고 접촉하고 느끼고 성과로 축적될 수 있는 굉장히 중요한 일이라고 생각한다.

■ 한국백혈병소아암협회 회장도 맡는 등 다양한 활동을 하고 있는데?

□ 올해 3월 7일에 맡게 됐다. 이왕 맡은 김에 북측도 백혈병 소아암 아이들이 분명 있을 것이다. 그런 아이들을 도우는 인도적인 지원사업도 남한의 협회와 연계해서 하면 상당히 사랑의 나눔이 커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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