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8일 치러진 북한 제12기 최고인민회의 대의원 선거는 687명의 대의원 중 45% 내외가 새로 선출된 것으로 확인됐지만 대체로 특이 동향은 없는 것으로 보인다. 특히 후계구도를 염두에 두기보다는 김정일 국방위원장 직할체제를 강화하고 원로그룹을 유지한 것이 특징으로 꼽힌다.

10일 통일부는 김호년 대변인을 통해 “어제 북한 매체를 통해 발표된 대의원 명단만으로 보면, 주목할 만한 변화가 나타나지 않았다”며 “12기 대의원에는 전체 687명 중 약 45% 내외의 인원이 신규로 진입하여 제11기 대의원 교체 비율보다는 다소 낮은 수준”이라고 밝혔다.

98년 치러진 10기 대의원 선거는 약 64%, 2003년에 치러진 11기 대의원 선거는 약 50%에 비해 교체폭은 다소 적은 45% 선 310명 내외지만 동명이인 등이 많아 정확한 숫자는 파악하기 어려운 것으로 알려졌다.

실제로 대부분의 당.정.군의 주요 인물들은 재선출됐고, 신규 교체된 인사들은 주로 하위직 비권력층 대의원들인 것으로 평가된다.

관심을 모았던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3남 김정운의 선출 여부 등 후계체제와 연관된 움직임은 눈에 띄지 않았다.

정성장 세종연구소 남북한관계연구실장은 “김정운이 포함될 가능성을 낮게 봤고, 큰 의미를 부여할 필요가 없다”며 “김정일 위원장의 경우도 74년 후계자로 결정된 뒤 8년 후에야 대의원 선출 전례도 있고, 북한에서는 당 조직지도부만 장악하면 당.군대.정부를 장악할 수 있다”고 말했다.

양무진 북한대학원대학교 교수는 오히려 “안정적인 후계구도를 준비하는 차원이 아니고 김정일 체제의 안정화에 초점을 둔 대의원 선출이라 평가한다”며 “김정일 측근들이 대다수 들어갔고, 혁명 1세대부터 50대까지 세대균형을 추구한 것이 돋보인다”고 평했다.

일부 언론에서 장성택 당 행정부장의 영향력이 확대된 것으로 평가했지만 양무진 교수는 장성택 부장의 형인 장성우 민방위사령관이 탈락했고, 최룡수 전 인민보안상, 리광근 전 무역상 등도 대의원 명단에서 빠진 점을 지적하고 “장성택이 세력이 약화된 것”으로 평가했다. 장성택 부장이 좌천될 즈음 함께 퇴장한 최춘황 당 선전선동부 제1부부장, 지재룡 당 국제부 부부장 등도 명단에서 빠졌다.

정창현 국민대 겸임교수는 “전반적 느낌은 내각이나 군부가 젊어지면서 세대교체 흐름이 나타나긴 했지만 원로그룹을 우대해서 새로운 후견체제를 만들었다”며 “김정일 정권 3기를 맞이해서 후계체제나 노선을 내놓는데 후견그룹 역할을 할 수 있는 사람들을 대부분 유지한 것 같다”고 분석했다.

실제로 고 김일성 주석의 동생 김영주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회 명예부위원장과 리을설 차수를 비롯해 당과 군의 주요 원로들이 대부분 재선됐다.

당에서는 최태복, 김국태, 김기남, 김중린, 전병호 비서 등이 재선됐고, 정하철 선전비서와 한성룡 경제비서의 이름이 빠졌다. 또한 김정일 위원장을 지근거리에서 수행하는 장성택 노동당 행정부장을 비롯해 리제강 조직지도부 제1부부장 등이 재선됐고, 리재일 선전선동부 제1부부장, 김성규 부장이 새로이 이름을 올렸다.

군에서는 현철해 대장을 비롯해 조명록, 리을설 차수 등 군 원로들과 오극렬 국방위원회 부위원장과 김영춘 인민무력부장, 리영호 총참모장, 김일철 전 인민무력부장 등이 재선됐다. 김명국 인민무력부 작전국장과 주상성 인민보안상, 김영철 국방위 정책실장이 새로 대의원에 선출됐다.

그러나 지난해 현철해 대장에 이어 두 번째로 김 위원장 수행횟수가 많았던 리명수 대장이 탈락했다. 정창현 교수는 “리명수 대장은 국방위원회 행정국장을 맡아 대의원 직책을 맡지 않은 것 같다”고 해석했다. 김격식 전 총참모장은 11대에 이어 12대에도 이름을 올리지 않았다.

차두현 한국국방연구원 안보전략연구센터 연구실장은 군 인사들의 진퇴와 관련 "5년마다 하는 선거라 세대교체는 당연하지만 특별하게 의미를 부여할 만한 것은 없다"며 "일련의 과정이 김정일 위원장이 상대적으로 건재하다는 것 외에 특별한 의미 부여는 무리일 것"이라고 보았다.

정부에서는 김영일 총리를 비롯해 로두철, 곽범기 부총리, 박의춘 외무상 등이 재선출됐고, 최근 내각상에 임명되었던 전길수 철도상, 김광영 임업상, 허택 전력공업상, 김창식 농업상 등 경제 분야 장관급 인물 다수 진입했다. 우리에게 알려진 대미 외교라인인 강석주 외무성 1부상과 김계관 부상 등도 재선됐으며, 신선호 유엔주재 대사가 새로 이름을 올렸다.

대남관련 인사 중에는 통전부의 김양건 부장과 리종혁 안경호 김령성 부부장이 재선됐고, 6.15언론분과위는 최칠남 위원장이 재선됨과 함께 조충한 박진식 부위원장이 새로 이름을 올려 눈길을 끌었다. 그러나 최승철 통전부 부부장과, 정운업 전 민경협 위원장이 탈락했다.

권호웅 내각 책임참사는 11대에 이어 12대에도 이름을 올리지 않았으며, 새로 통전부 부부장을 맡은 것으로 알려진 류영선과 김인삼 해외동포원호위원장은 대의원 명단에 포함되지 않았다.

정창현 교수는 대남 라인의 진퇴와 관련 “그동안 강습에 들어가 있는 사람들이 빠지고, 그 사람들 자리에 다른 사람들이 온 것 같지는 않다”며 “김인삼, 류영선 통전부 부부장은 아직은 부임한 뒤 성과가 있지 않은 상황이다”고 해석했다.

그러나 정성장 실장은 “최승철 부부장 해임이 보다 확실하게 이번에 확인되었고, 정운업 민경협 위원장도 이번에 탈락했다”며 “남북관계 경색으로 대남 협상파의 입지가 위축되거나 몰락을 가져온 것 아니냐”고 분석했다.

문화계에서는 김병훈 문예총 위원장과 뉴욕필과 협연한 국립교향악단의 수석지휘자 김병화, 장웅 국제올림픽위원회 위원, 아리랑 총연출자 김수조 등이 재선됐으며, 북한 여자 마라톤 영웅으로 11기 대의원이었던 정성옥은 탈락했다.

이외에도 남측에 알려진 김영대 사회민주당 위원장, 류미영 천도교청우당 위원장 등이 다선의 관록을 이어갔으며, 성자립 김일성종합대 총장도 새로 이름을 올렸다.

김정일 위원장은 군부대 선거구인 333호 선거구에서 당선돼 5선을 기록했으며, 최다선은 10선을 돌파한 양형섭 최고인민회의 상임위부위원장이 차지했다.

한 대북 소식통은 “우리와 달리 북한의 최고인민회의 대의원의 위치는 다르다”며 “대체로 중요인물은 들어갔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도 있다”고 해석하고 “너무 큰 의미를 부여해선 안 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번 북한의 대의원 선거 결과는 통상 1개월 정도 지난 뒤 소집되는 제12기 최고인민회의 1차 회의를 통해 더 분명하게 드러날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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