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대중 대통령이 통일에 기여하고 싶어하는데, (남북관계는) 아무도 뚫을 수 없고 노동자만이 뚫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 노동자 이외에 (북측과)접촉할 수 있는 곳이 어디라고 생각하냐?"

분단 이래 남북 노동자들이 첫 상봉을 가진지 10년이 되는 3일. 서울 영등포 민주노동조합총연맹(민주노총) 회의실에서 열린 '6.15공동선언 밑거름 남북노동자 첫 상봉 10돌 기념식'에서 당시 금속노조 통일위원장이었던 조준호 전 위원장은 민주노총과 조선직업총동맹(조선직총)이 만나는 것에 '바짝 긴장'해 있던 청와대측을 이같이 설득했다고 회고했다.

▲ 남북 노동자간 교류.협력의 물꼬를 튼 10년 전 민주노총-조선직총 회담의 대표단이었던 이규재 전 민주노총 부위원장 겸 통일위원장(좌)과 조준호 전 위원장(우)이 3일 민주노총 회의실에서 열린 기념식에서 당시를 회고하며 발언하고 있다.[사진-노동과 세계]
10년 전 이날, 민주노총 대표단은 중국 베이징에서 조선직총을 만나 '통일염원남북노동자축구대회'를 개최키로 합의했다. 이후 후속 협의를 위해 민주노총이 4월 평양을 방문했고, 당초 3박 4일로 예정됐던 일정이었지만 7박 8일간 체류해 북측의 5.1절 행사까지 지켜보고 왔다. 당연히 국가보안법상 '잠입.탈출' 혐의로 구속을 각오해야 했다.

조 전 위원장은 당시를 떠올리며 "난리가 났죠. (평양) 갈 때 통일위원장님 하고 그런 결의를 했다. 통일의 길에서 이번에 안 가면 언제 가냐, 구속이 되도 영광스럽지 않겠냐 했다"고 말했다.

남측으로 내려온 뒤 국정원으로 불려가 조사를 받을 당시 "구속을 시켜도 좋고 다 좋은데. 합의문을 발표했는데 이것이 안 되면, 노동자끼리 합의 본 것이 파기되면서 무슨 국가 간에 합의를 볼 수 있겠냐고 말했다. 구속은 안 됐고, 축구대회는 성사됐다" 조 전 위원장은 전했다.

조 전 위원장과 함께 구속까지 결의했던 당시 민주노총 통일위원장은 현재 조국통일범민족연합(범민련) 남측본부의 의장을 맡고 있는 이규재 전 민주노총 부위원장이다.

이 의장은 당시 민주노총 부위원장 겸 통일위원장으로 베이징에서 조선직총과 첫 상봉을 하고 남북노동자축구대회를 성사시킨 장본인이다. 남북 노동자간 첫 합의문이 나온 10년 전 이날, 민주노총과 조선직총은 '남북노동자축구대회' 개최를 비롯한 3개항에 합의한다.

"쌍방은 '7.4공동성명'에서 천명된 자주, 평화통일, 민족대단결의 조국통일 3대원칙을 남북 노동자들의 통일운동에서 기둥으로 삼아야한다고 인정..."으로 시작하는 이 합의문에는 당시 이규재 부위원장과 리진수 조선직총 중앙위 부위원장의 서명이 들어있다.

이 의장은 "지나온 10년의 경험을 토대로 뿌리로 해서 민주노총이 조국통일 운동에서 무엇을 어떻게 할 것이냐에 대해 좀 더 구체적이고 진지하게 토론하고 우리 민족이 나아갈 길은 이것이라고 하는 그런 확고부동한 움직일 수 없는 그런 방향을 제시해야 될 때가 되지 않았냐?"고 주문했다.

민주노총의 부위원장까지 지냈던 이 의장이 노동운동이 아닌 범민련 남측본부에서 통일운동을 하는 것을 의아해 하는 이들도 많았다고 한다.

"범민련은 노동자들의 것, 농민의 것이지 않나? 내가 범민련 운동을 한다고 하니까, 어떤 동지들이 '노동운동 열심히 하지 왜 범민련으로 가냐'고 했다. 그래서 '글쎄 나는 생각이 다르다. 범민련은 우리들의 것인데, 우리들이 미처 깨닫지 못했을 때 먼저 깨우친 선배, 선각자들에게 잠깐 맡겨놨던 것이다. 이제 되찾으러 간다'고 했다."

이 의장은 "범민련도 뜻 있는 노동자들이 책임 있게 걸머져야 할 일이고, 길이 이것이라고 하는 소신과, 확신성 있고, 토론하고 결정하고 내놓고 하는 그런 민주노총이 됐으면 하는 욕심이다"고 말했다.

1999년 '통일염원남북노동자축구대회'는 임성규 민주노총 비상대책위원장에게도 각별하다. 임 위원장은 "1996년부터 민주노총 서울본부 사무처장을 맡았다. 사무처장 하면서부터 서울본부의 가장 중요한 사업 중 하나가 통일축구를 성사시키는 것이었다. 서울본부가 준비해 온 것을 중앙이 빼앗아서 결국 성공이 됐다"며 웃음을 지었다.

1999년 '통일염원남북노동자축구대회'를 시작으로 남북 노동자 단체들은 총 세 차례의 '축구경기'를 비롯해 활발한 교류.협력사업을 이어왔다. 특히 2007년 창원에서 열린 '6.15공동선언 실천을 위한 5.1절 남북노동자통일대회'는 '축구경기'가 처음으로 남측에서 치러졌다는 것 말고도 남녘에서 열린 첫 부문별 공동행사라는 특별한 의미를 갖고 있다.

때문에 남북 노동자간 교류와 연대.협력의 물꼬를 텄던 1999년 남북노동자간 첫 상봉의 의미는 민주노총에게 각별하다. 무엇보다 '남북노동자축구대회'가 있은 이듬해 역사적 6.15공동선언문이 발표됐다는 점은 통일운동에서 노동자들의 역할이 중요하다는 점을 새삼 되새기게 한다.

"1999년 상반기 발생한 서해교전의 긴장을 완화하며 6.15공동선언 발표의 대중적 토대가 된 통일염원남북노동자축구대회의 성사를 비롯해 남북관계의 고비마다 민족의 화해와 단합의 밑거름으로 때로는 견인차로 역할해왔다."(6.15공동선언의 밑거름, 남북노동자 첫 상봉 10돌 민주노총 특별성명 중)

조 전 위원장은 "현재 남북관계가 굉장히 어렵고 냉랭한데, 노동자들끼리 또 만나보자"면서 "이 모범을 가지고 새로운 길을 열면 좋겠다. 저희들이 그 때 다녀오고, 축구대회를 하면서 분위기를 타고, 6.15의 토대가 됐다는 것이 성과라고 생각한다. 통일부도 저한테 이렇게 얘기를 했었다"고 말했다.

민주노총은 이날 특별성명을 발표해 "이명박 정권의 등장아래 하루도 거르지 않고 남북갈등 남남갈등을 부추기는 반민족적이며 반민중적 반노동자적인 정책들이 쏟아 부어지고 있다"고 비판하면서 "남녘 노동자들의 자주적이며 민주적인 노동조합운동의 구심체인 민주노총은 8천만 온 겨레의 한결같은 염원인 나라의 평화와 통일, 6.15자주통일시대의 완성을 위해 앞으로도 더욱 힘차게 헌신투쟁해 나갈 것"이라고 다짐했다.

조선직총도 "돌이켜보면 북과 남의 노동자들의 뜨겁게 손잡고 연대 단합의 첫발걸음을 뗀 그날부터 지난 10년간 북남노동자통일운동은 6.15공동선언의 기치밑에 민족적 화해와 단합을 도모하고 나라의 평화를 수호하며 겨레의 통일진군을 추동하는 애국운동으로 강화 발전해 왔다"고 축사를 보내왔다.

특히 "귀 노총은 반통일세력의 가혹한 탄압과 모진 박해에도 굴함없이 남녘 노동자들의 참다운 존엄과 권리, 사회의 민주화를 위한 정의로운 투쟁과 6.15자주통일시대를 빛내어 나가기 위한 성스러운 애국활동에서 언제나 기수가 되어왔다"고 평했다.

▲ 민주노총과 조선직총이 공동행사, 실무접촉 등을 위해 주고받았던 팩시밀리 송.수신 문건을 묶은 '남북노동자연대협력 10년 백서① - 남북노동자연대협력 송수신 전송문 모음(1999년~2009년)'[사진-통일뉴스 박현범 기자]
민주노총은 '남북 노동자 첫 상봉' 10주년인 올해, 남북 노동자들의 연대와 교류.협력의 발자취를 담은 '남북노동자연대협력 10년 백서'를 총 5권에 걸쳐 발간할 예정이다.

이날 기념식에선 민주노총과 조선직총이 공동행사, 실무접촉 등을 위해 주고받았던 팩시밀리 송.수신 문건을 묶은 1권이 소개됐다.

6.15공동선언문을 기념하듯 총 615 페이지로 구성된 이 백서에는 1999년 3월 3일 첫 상봉 자리에서 만들어진 합의문에서 2007년 창원에서 발표된 '남북노동자선언문'까지, 남북 노동자들의 만들어 낸 공동문건들도 수록돼 있다.

저작권자 © 통일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