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눈은 오리도리, 두 귀는 쫑긋, 허리는 늘씬, 꽁지는 몽똑, 앞다리는 짤막, 뒷다리는 길쭉. 왼쪽은 청산이요 오른쪽은 녹수라, 녹수청산 깊은 골에 나무숲 우거지니 계수나무 그늘 속 들락날락 오락가락 엉거주춤 뛰는 양이 이태백이 말마따나 달 보던 토끼가 네로구나.”(『토끼전』에서)
“샛별 같은 눈을 감고 치마폭을 뒤집어쓴 다음, 이리저리 저리이리 뱃머리로 와락 나가 풍덩 뛰어드니, 물은 임당수요, 사람은 심봉사 딸 심청이다. 임당수 깊은 물에 떨어진 한 송이 아름다운 꽃, 과연 헛되이 물고기 밥이 된단 말인가.” (『심청전』에서)
맛깔스런 우리 옛말에 웃다, 눈굽을 찍다 보면 나도 몰래 구수한 옛이야기 향취에 흠뻑 젖어든다. 긴 세월을 뛰어넘어도 변치 않는 감동을 선사하는 고전의 힘이란 이런 것일까.
그러나 매번 배달돼 오는 두툼한 북녘판 고전문학 책을 받아보는 호사를 누릴 때마다 ‘이 책을 만드는 이는 과연 무슨 생각으로 쉽지 않은 일을 이처럼 꾸준히 할 수 있을까’ 늘 궁금했다.
“이 책을 읽으면서 우리 겨레가 같은 공간에서 같은 말을 쓰고 같은 공기를 호흡하며 같은 하늘아래 살았던 것을 느꼈으면 좋겠고, 지금 못 만나더라도 서로 그리워했으면 좋겠네요.”
자고 일어나면 새로이 변해가는 세태 속에서 누구하나 뒤적여 봄 직하지도 않을 케케묵은 고전문학을, 그것도 북한에서 번역했다는 ‘겨레고전문학선집’을 수십 권 씩이나 묵묵히 펴내고 있는 이유를 보리출판사 남우희(43) 부장의 이 한마디로 충분히 이해할 수 있었다.
보리출판사, “남북이 같은 겨레로 살아가는 것을 원칙으로 삼아”
13일 경기도 파주 출판단지로 향하는 길은 때마침 비바람이 뿌렸지만 보리출판사 직원들과 남우희 부장의 환대는 손님의 마음을 금방 녹여냈다. 출판사를 세웠던 윤구병 선생이 일구고 있는 ‘변산공동체’에서 가져왔다는 유기농 농산물로 지은 점심을 함께 나누는 ‘통과의례’도 독특했다.
97년부터 보리출판사에 몸담아 왔다는 남우희 ‘겨레고전문학선집’ 편집부장은 “북에서 살아가는 사람에 대한 그리움, 이런 것들은 누구에게 배우지 않아도 이 출판사를 다니면서 배워왔다”면서 “보리는 자연에 순응하는 삶을 살자, 우리 옛것을 오늘날 사람에게 전하는 것, 장애인과 비장애인이 서로 만나면서 함께 사는 세상을 만드는데 기여하는 것, 남과 북이 같은 정서로 같은 문화로 같은 겨레로 살아가는 것을 처음부터 원칙으로 삼아왔다”고 말했다.
실제로 세밀화라는 독특한 양식을 개발해 어린이 식물도감과 동물도감 등을 펴내온 보리출판사는 이미 2002년부터 북한 『식물원색도감』과 『조선식물원색도감1,2』를 원본삼아 ‘도토리 주머니도감’ 3권을 펴낸 바 있다.
그러나 2002년 막상 100권에 달하는 북측 ‘조선고전문학선집’ 목록을 받아들고 주변에 자문을 구해봤지만 “출판을 말리는 소리를 많이 들었다”고. 누가 보더라도 아닌 말로 ‘돈이 안 되는’ 아니, ‘밑빠진 독에 물붓기나 다름없는’ 무모한 도전임에 틀림없기 때문이다.
“많이 줄여놓고, 소화시키기 좋게 어느 정도 씹어놓은, 가공을 많이 해놓은 책”에 익숙해진 독자들이 “정통한 고전책을 잘 보지 않는다”는 점이나 “현재 우리 출판시장 안에서 ‘고전이 고전을 면치 못하는’ 그런 현실”을 그 역시 잘 알고 있었다. 더구나 북한 고전의 경우 “저작자에 대한 정보가 없으면 홍보가 어렵다”는 출판계의 불문율까지 딱 들어맞는 실정이었다.
“그래도 내겠다”는 출판사의 과감한 결단은 나름의 원칙이 서 있었던 보리출판사이기 때문에 가능했는지 모른다. 결국 2년여의 준비 기간을 거쳐 2004년 박지원의 『열하일기』 상.중.하 3권과 박지원 문집 『나는 껄껄 선생이라오』가 첫선을 보였다.
“오랫동안 공부하고 있는 셈”
첫 번째 책을 연암 박지원의 『열하일기』로 선보이게 된 속사정도 간단치 않았다. 사실 북측은 문학예술출판사가 발간한 ‘조선고전문학선집’ 100권의 목록을 제시했지만 1983년 『가요집(1)』을 1권으로 낸 뒤 선집 순번대로가 아니라 들쭉날쭉하게 발간하고 있고, 2008년 『력대여류시가선』(79권)까지 60권 정도를 펴냈지만 언제 마무리지을지조차 알 수 없는 상황이다.
남우희 부장은 “북에서도 권차 순서대로 못 내고 있는 책을 도대체 어떤 순서로 내야 되는지 여기저기 많이 물어봤”고, 결국 “박지원과 리규보는 조선과 고려 양조에서 각각을 대표하는 문학자산을 많이 가진, 자기가 사는 시대보다 더 앞서 갈 수 있는 혜안이 있었던 굉장히 중요한 문인들”이란 판단에 박지원 문집 4권과 리규보 문집 2권이 첫 머리를 장식하게 됐다.
그는 “국문과를 졸업하고서 다시 우리 고전문학을 진지하게 공부하리라 생각 안 했”지만 대학 시절 스승이었던 김흥규 고려대 민족문제연구소 소장과 윤구병 선생, 권정생 선생, 그리고 지금은 고인이 된 이오덕 선생 등으로부터 배워가며 한 권, 한 권 책을 내, 올 1월에 가사집 『홍진에 묻힌 분네 이내 생애 어떠한고』를 39번째 권으로 펴낼 수 있었다.
40권 발간을 눈앞에 둔 시점에서의 생각을 묻자 “이 선집이, 겨레가 하나 되는 밑거름이 되고, 우리 후손들이 민족 문화 유산의 알맹이인 고전 문학이 지니고 있는 아름다움을 제대로 맛보고 이어받는 징검다리가 되기 바랍니다. 아울러 남과 북의 학자들이 자유롭게 오고 가면서 남북 학문 공동체가 이루어지는 날이 하루라도 앞당겨지기 바랍니다”라는 출간사를 인용하는 것으로 답을 대신했다.
“다행히도 공부를 안 싫어하는 편이고, 80년대에도 공부 못하는 것이 속상했던” 그가 “오랫동안 공부하고 있는 셈”이라는 자평처럼 전집을 엮어내는 과정은 그에게도 또 다른 배움의 길이었다. (상자기사 참조)
이 과정에서 북측의 저작권 사업을 대행하고 있는 남북경제문화협력재단과 2005년에 저작권 소송을 거치기도 했다. 2002년 중국에서 북측과 이미 저작권 계약을 맺고 통일부의 승인까지 거쳤지만 결국 법원의 조정을 받아들여 경문협과 재개약을 맺게 된 것. 그러나 “지금은 서로 많이 의지하고 편안하게 물어보고, 정말 신뢰하는 사이”가 됐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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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북 어린이가 함께 보는 『보리국어사전』
남우희 부장이 출판계에 발을 디딘 계기는 ‘국어사전’과 밀접한 연관이 있다. 91년부터 박용수 선생과 함께 남북을 다 아우르는 ‘겨레말용례사전’을 서울대학교출판부에서 펴냈고, 98년 보리출판사에 입사해서는 『보리국어사전』 기획에 참여했다.
“남북이 함께 볼 수 있는 국어사전이 없다”는 문제의식에서 시작된 『보리국어사전』은 남북의 교과서를 분석해 남북 어린이들이 함께 볼 수 있도록 배려했다. 특히 북녘 말을 그저 연관어로 보여주는 정도를 넘어서서 표제어로만 800여개를 실었고, 연관어나 참고어로 2,000여개를 수록해 7년간 공을 들여 지난해 5월 세상에 내놓았다.
남쪽에서 흔히 ‘책상물림’이라 부르는 ‘글뒤주’(공부는 많이 했지만 아는 것을 실천하지 못하는 사람을 낮추어 이르는 말)라는 북측 말이 표제어로 수록됐고, ‘돌연변이’를 북측에서는 ‘갑작변이’라 한다는 식으로 관련어가 표기돼 있다. 또한 ‘검열’과 같은 단어의 예문에 소위 ‘반공적인 문장’이 들어있는 경우도 철저히 “남과 북의 이념 색채를 더 부추기지 말자”는 입장에서 가치중립적 표현으로 바로잡았다.
4만 단어가 넘는 표제어를 수록해 1,500여쪽에 달하는 이 사전은 보리출판사 만의 장기라 할 수 있는 2,400점이 넘는 세밀화가 사전 가운데 단을 차지하고 있는 독특한 편집양식으로도 획기적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남우희 부장은 “중간 면을 확 비우고 가면서, 시각적으로 넉넉하고 세련된 걸 좋아하는 요즘 아이들이 기존 사전은 고리타분하고 답답할 텐데 이건 볼만한 것이라고 여길 것”이라며 “특히 종이사전은 어린 아이들이 사전을 종횡무진 가로지르면서 볼 수 있는 장점이 있다”고 평했다.
그러나 남북간 자모 표기 순서가 다른 현실을 고려해 그는 “종이사전 자체를 남북이 함께 보기는 어렵다”며 최근 남북간 합의에 의해 추진하고 있는 ‘겨레말큰사전’에 대해서도 “검색하면 자모순서가 필요 없으니까 사전은 전자적인 디지털 매체가 더 좋을 것”이라고 말했다.
“문화인프라 북이 더 잘 보존.. 남쪽 출판부에 가공 재량권 줘야”
남우희 부장은 “우리가 내는 책 같은 소위 우리 문학.철학.역사.예술의 인프라라고 할 수 있는, 모두에게 다 필요한 자료를 북이 더 잘 보존하고 있다”며 “북에서 가지고 있는 소위 양질의 컨텐츠를 어떤 식으로든 남에서라도 잘 분류하고 뭔가 가공해서 좋은 학술출판으로 이어져야 한다”고 말했다. 이것이 바로 “문화 인프라를 두텁게 하는 것”이라는 생각이다.
또한 “북의 자료를 그대로 줘서는 안 본다는 것이 너무 자명하다”며 ‘자본주의 시장질서’에서 살아남기 위해서는 “북측에서도 남쪽 출판부에서 가공할 여지를 많이 줘야 한다”고 조심스럽게 제안했다.
그는 ‘겨레고전문학선집’에 대한 시장의 평가에 대해서도 “평가는 좋고 판매는 극히 부진하다”며 “최근에는 공공도서관에서도 많이 대출해가는 책을 중심으로 더 많이 갖추려고 하는데 공공도서관과 대학도서관이 그 사회에서 생산된 양서를 구입하는 길로 가지 않으면 출판이 살아날 수 없다”고 말했다.
‘겨레고전문학선집’의 경우도 문화예술위원회로부터 문예진흥기금을 연간 단위로 8-9백만원 정도 보조받는 것이 외부 지원의 전부이고 공공도서관에서의 구입도 저조한 실정이라는 것.
이같은 사정을 반영하듯 남북교류를 통해 북녘 출판물을 발행하는 출판사가 점차 줄고 있는 추세에 대해 그는 “잠깐이라도 책을 떠들쳐 보거나 책을 읽는 동안이라도 우리 반쪽을 그리워 할” 기회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따라서 ‘잘못된 책읽기 교육’으로 꼽히는 ‘독후감 대회’를 반대한다는 그가 “유일하게 좋아하는 독후감 대회”가 '통일독서대회'다. 남쪽에서 펴낸 북녘 책을 읽고 독후감을 쓰는 ‘통일독서대회’가 2007년 1회에 이어 올해부터 다시 매년 개최된다는 소식에 그는 기뻐하고 있다.
“할아버지들이 금강산관광을 다녀오면 달라지 듯”, 어린이들이 “북에서 온 책을 읽는다는 것만으로도 근사한 일”이라는 것.
남우희 부장과의 인터뷰를 마치고 나서는 길에도 여전히 비바람이 몰아쳤지만, 파주 출판단지에서도 가장 북단에서 임진강을 마주한 채 오늘도 북녘 형제들에 대한 ‘그리움’을 펼쳐내고 있는 보리출판사를 떠나는 기자의 마음은 훈훈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