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등대복지회의 지원으로 평양 보통강구역에 설립된 '보통강 종합편의' 봉제실 작업 모습.
직원의 40% 정도가 장애인으로 구성돼 있다. [사진제공 - 등대복지회]
평양에는 장애인이 없다는 것이 암묵적으로 ‘상식’처럼 여겨져왔다. 북한 노동당 비서였던 황장엽 같은 이도 “원래 김정일은 ‘혁명의 수도’ 평양에 장애인이 있는 것은 수치라고 하면서 모든 장애인들을 다 산간오지로 추방하였다”고 증언했기 때문이다.(『북한의 인권문제』, 1999)

그러나 평양 보통강구역에 장애인자립자활센터인 ‘보통강 종합편의’가 2007년 5월 개원해 수십 명의 장애인들이 일하고 있고, 장애인 종합복지관인 ‘장애인종합회복센터’가 평양에서 착공을 서두르고 있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이 같은 ‘상식’이 설 자리를 잃고 있다.

평양에서 태어난 남편 권오덕 목사와 장애인 딸

지난해 12월 방북 취재차 머문 평양 보통강려관은 손님이 많지 않아 한산했다. 아침 식사가 제공되는 식당에도 드문드문 외국인들의 모습만 비칠 뿐이었다. 그 가운데 낯선 중년 여성들이 눈에 띄었는데 알고 보니 남측 손님이었다. 반가운 마음에 인사를 교환하고 보니 북에서 장애인 지원사업을 하고 있다는 등대복지회의 신영순(63) 상임이사와 조일 사무국장이었다.

대북 지원단체들을 웬만큼은 알고 있던 터지만 장애인 지원사업을 주로 하는 단체가 있다는 사실에 관심이 갔고, 신영순 상임이사의 여장부다운 스타일과 특별한 가족사에 호기심이 발동했다. 며칠 후 취재를 마치고 조 사무국장과 함께 평양을 떠나올 때도 신 이사는 해외동포들에게만 공개되는 지방 시설들을 둘러본다며 남아있었다.

▲ 29일 등대복지회에서 만난 신영순 상임이사와 남편 권오덕 목사. [사진 - 통일뉴스 조성봉 기자]
29일 오후 2시 서울 종로5가 기독교연합회관에 자리한 등대복지회 사무실을 찾았을 때, 신 이사는 남편인 권오덕(아더 킨슬러, 75) 대표와 함께 기자들을 반가이 맞았다. 벽안의 권오덕 목사는 그의 부친 권세열(프랜시스 킨슬러) 목사가 1928-1941년 평양에서 선교사로 활동할 당시 평양에서 태어난 것이 인연이 돼 한국에서 30여년간 선교활동을 펼치고 있다. 신 이사와 권 대표는 12살 나이차가 나는 띠동갑으로 68년 결혼했다.

신 이사가 북한 장애인 문제에 관심을 기울이게 된 사연에도 남다른 아픔이 있다. 2남 1녀 중 막내인 딸이 뇌막염을 앓아 정신지체아가 돼 미국 요양시설에서 생활하고 있기 때문. 신 이사는 91년부터 서울 강북구 번동에서 장애인들을 모아 장애인복지관을 건립하고 7년간 원장을 맡았다.

1998년 유진벨재단을 따라 첫 북행길에 올랐던 신 이사는 2003년 사리원시 ‘황해북도육아원분원’ 지원을 시작으로 본격 대북 지원사업에 나섰고, 2004년 통일부 소속 비영리 사단법인으로 등대복지회를 창립해 평양 대동강구역 ‘평화빵우유공장’ 설립 등 어린이 지원사업에 몰두했다. 그러나 그가 평소 관심을 둬온 북한 장애인 지원에 나서기까지는 쉽지 않은 우여곡절이 있었다.

“북 고위관료들도 장애인에 관심 없었다”

신 이사는 “처음에는 북쪽에서 굉장히 꺼렸다. 학교를 돕든지 하라는 권고도 받았다”고 당시를 회고했다. 북한에서 1998년 조선장애자지원협회가 비정부 단체로 발족됐지만 조선장애자보호련맹(KFPD)이 공식 출범한 것은 2005년부터다. “2005년만 해도 고위관료들도 장애인에 관심 없었다”는 것.

그는 “사회주의에서는 정부 관료나 군인이 장애를 입었다면 몰라도 자연 장애인은 소리 없이 부모님의 짐으로 살아온 것이 사실”이라며 “농아학교, 맹아학교 정도는 있었는데 정신지체, 자폐, 소아마비는 그냥 부모들이 돌보고 가정에서 돌봤던 것 같다”고 전했다. 2003년 6월 장애자보호법이 채택돼 76만여 장애인들에 대한 법적 보호 장치가 비로소 공식적으로 마련됐다.

▲ 북한 농아학교의 수화연습 모습. [사진제공 - 등대복지회]
‘평양에는 장애자가 없다’는 통념도 “보장구가 없으니까 못 돌아다닌 것”에서 연유했고, 남측 인사들을 만나는 북측 안내원들 역시 “북한은 자기 일 외에는 잘 몰라서 장애인은 관심 밖이니까 ‘모른다’, ‘없다’고 답했을 것”이라고 추정했다.

그는 “요즘은 평양에서도 드문드문 휠체어도 보고, 소아마비 장애인이 손으로 돌리는 것을 자가용 같이 타고 다니는 것도 보고, 양은 클러치를 짚고 다니는 것도 본다”며 “휴일에 모란봉에 가면 장애인 가족이 휠체어를 밀고 올라와 노는 모습을 여러 번 목격했다”고 전했다.

▲ 민족의 미래까지 고민하는 안목을 갖춘 신영순 상임이사. [사진 - 통일뉴스 조성봉 기자]
북측 관계자를 설득하기 위해 그는 “우리 모두가 예비 장애자고 국제사회로부터 인권에 관한 많은 비난을 벗어날 수 있기 위해서라도 꼭 필요하다”는 점과 “통일을 준비하기 위해서는 장애인 복지를 정착시키는 것이 남과 북의 통일 기초를 세우는 것”이라는 점을 꾸준히 제기해 가까스로 장애인 지원사업의 첫발을 뗄 수 있었다.

“2005년 미주 샬롬 장애인선교회에서 전신마비 장애인을 위해 해마다 ‘사랑의 휠체어 음악회’을 열어 한국, 중국, 필리핀, 동남아에 휠체어를 보내주는데, 북한도 보내고 싶은데 길이 없다고 해서 내가 전해주겠다고 했다. 2005년 9월에 휠체어 220대를 가져가서 처음으로 조선장애자보호련맹 중앙위 김영철 부위원장을 만나게 되고 전달식을 하게 됐다”는 것.

이후 2006년 2월 조선장애자보호련맹과 장애인 지원사업에 대한 공식합의를 체결했고, 2007년 2월에는 북한 전역의 11곳 특수학교 지원사업 합의를 체결했다. 2007년 5월에는 북한 최초의 ‘보통강 종합편의’를 개원할 수 있었고, 2007년 11월 ‘장애인종합회복센터’ 건립에 합의했다. 올해 5월경 장애인종합회복센터 착공식을 여는 것이 현재의 목표다.

“남북간 점자, 수화 다르다”

그간 진행해온 장애인 지원사업들 중 벌써 결실을 보고 있는 사업들도 있다.

2007년 5월 10일 장향숙 전 의원 등 남측 인사들이 참석한 가운데 개원식을 가진 ‘보통강 종합편의’에서 일하는 100여명의 직원 중 40% 정도가 장애인이다. 낡은 상가아파트 1층을 개조해 미용, 이발, 양장, 한복, 시계수선, 신발수선, 도장, 사진현상 등의 일터를 운영해 1년 반 만에 모범업소 표창을 받을 정도로 성장시켰다. 지금은 이곳에서 일하고 싶어하는 장애인 대기자들이 몰릴 정도란다.

▲등대복지회의 악기 지원을 계기로 결성된 대동맹아학교 맹아예술단.  [사진제공 - 등대복지회]
북한 전역에 산재한 농아학교 8곳과 맹아학교 3곳 등 11개 특수학교에 대한 지원도 2년 전부터 이루어져 농기계와 특수교육 교재 등을 지원했다. 대동맹아학교의 경우 지난해 8월 처음으로 악기들을 지원했는데 12월 방북 당시 11-17살 학생들이 “완벽한 연주단”의 공연을 보여줘 감격하기도 했다고.

그는 “남북 간에 점자와 수화가 다르다”며 “남과 북이 통일이 오기 전에 해야 할 일은 통용될 수 있는 교재를 만드는 것”이라고 의욕을 보였다.

또한 장애인 체육용품을 지원하고 국제적인 장애인체육대회에 북한의 참가를 지원하는 사업도 추진중이다. 2006년 11월 쿠알라룸프르에서 열린 아시아장애인체육대회에 조선장애자보호련맹 관계자들이 참석하도록 지원한 바가 있는가 하면, 지난 연말에는 평양 대동강구역에 ‘장애인체육예술훈련장’을 건립하기도 했다.

“정상회담 밖에 없다.. 중국을 조심해야”

▲ 등대복지회가 구상중인 장애인종합회복센터 조감도. [사진제공 - 등대복지회]
그의 의욕에도 불구하고 어려움은 한두 가지가 아니다. 그는 “2007년 11월 합의된 장애인종합회복센터가 남북상황 악화로 해를 넘기고 있다”며 “정치적 이념을 떠나 남북 통일의 미래를 준비하는 마음으로 이해되어야 할 것”이라고 호소했다. “종합회복센터는 어린이부터 노인까지 북한 전역의 장애인 실태를 알 수 있는 센터가 될 수 있고, 남과 북이 머리 맞대고 배우고 가르쳐서 통일 미래에 장애인이 함께 살아가는 현장이 될 것”이라는 희망이다.

50억 정도의 자금이 소요될 것으로 예상되지만 손에 쥔 돈이라곤 그가 부친으로부터 물려받은 유산을 합쳐 겨우 1억 정도 밖에 안 되면서도 착공식을 서두르는 이유이다. 교회들의 후원은 물론 통일부의 남북협력기금 지원도 기대하고 있다.

그는 “북한도 빨리 남한과 손잡고 싶은 것을 알고 있고 느끼고 있다”며 “지금도 늦지 않았다”고 진단하고 “1년 동안 너무 험악한 말들이 오고가 밑에 사람들이 서로 이야기 못한다. 이제는 정상회담을 하는 수 밖에 없다”는 의견을 내놓았다.

재미동포라는 신분 때문에 북한 지방 곳곳을 돌아볼 수 있는 그는 “중국이라는 큰 힘이 한반도에는 굉장히 부담이다”며 중국이 회령과의 국경지대에 4차선 도로를 건설하고 대규모의 세관을 세운 모습을 보고 놀랐다고 전했다.

“중국을 조심해야 한다”며 “남북이 힘을 합치면 똑똑한 후대들이 이 민족의 역사를 이어가리라 생각한다”는 그는 장애인을 품어안은 따뜻한 가슴뿐만 아니라 민족의 미래를 고민하는 냉철한 안목까지 두루 갖춘 보기 드문 통일의 전령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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