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명박 정부 출범 1년만에 남북관계가 18년 전인 남북기본합의서 이전으로 돌아가게 되었는가? 북한 조국평화통일위원회(조평통)는 30일 성명을 통해 “북남사이의 정치군사적 대결상태 해소와 관련한 모든 합의사항들을 무효화한다”면서 특히 “‘북남사이의 화해와 불가침 및 협력, 교류에 관한 합의서’(남북기본합의서, 1991)와 그 부속합의서에 있는 서해해상 군사경계선에 관한 조항들을 폐기한다”고 천명했다. 이는 북한이 사실상 남북기본합의서 무효 및 서해 북방한계선(NLL) 폐기를 선언한 것으로 판단된다. 지난 17일 북한이 조선인민군 총참모부 대변인 성명을 통해 △남측에 대한 전면 대결태세 진입 △남측의 대북 선제타격에 맞선 대남 군사적 대응조치 △서해해상 군사분계선(MDL) 고수 등 세 가지를 선언한지 보름도 안 돼 발생한 일이다.

이번 조평통의 성명은 이제까지 대남 공세 중 가장 높은 수준의 정치 공세로 풀이된다. 우선, 형식에 있어 지난해 말 남북간 육로통행 제한.차단 등을 담은 ‘12.1조치’가 남북 교류협력 위기의 산물이었다면, 북방한계선(NLL) 무력화 내용을 담은 지난 인민군 총참모부 대변인 성명에 이은 이번 조평통 성명은 군사적 위기를 극대화하고 있기 때문이다. 조평통 성명은 내용에 있어서도 “이제 북남관계는 더 이상 수습할 방법도, 바로잡을 희망도 없게 되었다”고 남측에 대한 기대를 접으면서 “북남사이의 정치군사적 대결은 극단에 이르러 불과 불, 철과 철이 맞부딪치게 될 전쟁접경으로까지 왔다”고 극단적인 표현을 사용했다.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최근 방북한 중국 공산당 왕자루이 대외연락부장과의 면담에서 “한반도 정세에 긴장이 조성되는 것을 보고 싶지 않다”고 한 말이 무색할 정도다. 결국 이 말은 남북관계 긴장 조성의 책임이 남측에 있음을 지적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이번에 북한이 폐기를 선언한 남북기본합의서란 무엇인가? 지난 시기 7.4남북공동성명, 6.15공동선언, 10.4선언 등이 주로 통일문제와 관련된 합의라면 기본합의서는 ‘남북 사이의 화해와 불가침 및 교류, 협력에 관한 합의서’라는 긴 제목에서도 보여지듯 남북간 화해와 군사문제, 경제협력 등을 포괄하고 있다. 그렇다면 기본합의서는 ‘남북판’ 정전협정이라 할 수 있다. 다시 말해 1953년 정전협정이 북미간 협정문이라면 기본합의서는 정전협정에서 빗나가 있는 남북관계를 위해 정전협정을 대신한 합의문인 것이다. 따라서 기본합의서 폐기는 남북이 정전협정의 시기, 즉 냉전시대로 완벽하게 되돌아가는 것을 의미한다. 그런데 정전협정상에는 남측이 끼어들 공간이 없다. 아다시피 정전협정은 북한과 미국과의 협정문이기 때문이다. 게다가 정전협정에는 NLL이 없다. 따라서 서해상에서 NLL과 관련한 사건이 일어나도 책임규명이 안 된다. 남측은 법적으로든 실질적으로 어디에든 낄 수가 없다. 회귀된 냉전시대에서 남측은 국제적 미아가 될 수도 있는 것이다.

세상에서 가장 우둔한 짓은 일어날 일을 뻔히 알면서도 대처하지 않는 것이다. 남북의 서해상 충돌이 불가피해지고 있다. 북측 조평통 성명이 남북충돌을 기정사실화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 참사를 미연에 방지해야 한다. 이제 서해에서 충돌이 일어난다면 이는 우발적 충돌이 아닌 예상된 충돌일 뿐이다. 6.25 한국전쟁도 그 당시 숱한 크고 작은 충돌이 일어나다가 국지전이 전면전으로 비화한 것이다. 이 악순환의 고리를 끊어야 한다. 방법은 오직 하나, 이명박 정부가 북측에 메시지를 보내야 한다. 마침 남북간 약한 고리인 NLL의 해법이 있다. 10.4선언에서 남북은 서해상 일대에 ‘서해평화협력특별지대’를 설치하기로 합의했다. 이는 공동어로수역과 평화수역을 설정하는 것으로서 NLL 문제를 슬기롭게 풀자는 것이다. 이명박 정부가 10.4선언을 존중하면 그 뿌리가 되는 6.15공동선언도 살리고 또한 NLL 문제가 규정돼 있는 기본합의서도 살리는 일이 된다. 10.4선언의 존중과 이행 의사를 밝혀라. 남북관계가 냉전시대로 회귀할 수는 없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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