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의 취임을 전후해 한반도 정세 주역들의 움직임이 부산하다. 지난 21일 미국은 오바마 대통령의 취임에 이어 외교정책을 총괄하는 힐러리 국무장관도 취임함으로서 대외정책에 본격 시동을 걸었다. 23일 후진타오 중국 국가주석은 왕자루이 중국공산당 대외연락부장에게 친서와 함께 그를 북한으로 보냈으며,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그와 만나 면담을 했다. 특히 김 위원장의 오랜만의 ‘등장’은 예사롭게 볼 일이 아니다. 이렇듯 오바마 새 행정부 출범과 함께 미국은 미국대로 그리고 북한과 중국도 북중공조를 통해 새롭게 펼쳐질 한반도 정세에 대처하기 위해 새로운 전열을 가다듬고 있는데 비해 한국만은 별다른 움직임이 없다. 즉, 한반도 정세의 실력자인 북한과 미국, 중국이 새로운 지형 형성을 위해 스타트 라인에서 채비를 갖췄는데 한국만이 채비는커녕 어딘가에 놀러가 있는 형국이다. 정책 전환기에 한국은 한반도 정세 개입력이 현저히 떨어지고 있음을 자인하고 있다.

오바마 새 행정부의 한반도 정책과 대북정책이 서서히 그 모습을 드러나고 있다. 오바마 행정부는 출범과 함께 그전부터 강조하던 ‘터프하고 직접적인 외교’를 재확인하면서 이를 통해 북한의 핵무기 프로그램을 제거하겠다는 북한 비핵화정책을 공식 천명했다. 이에 앞서 힐러리 국무장관은 외교에서 ‘스마트 파워’ 정책을 쓰겠다고 밝혔다. 이는 전임 부시 행정부의 외교정책을 전면 바꾸겠다는 의지의 표현이다. 전반적으로 오바마 행정부는 외교정책에 있어 힘이나 압력보다는 대화와 협상을 중시하면서, 특히 북핵문제와 관련 6자회담의 기본적인 틀을 유지하면서 북미 양자회담을 적극 활용할 것으로 보인다. 중국의 움직임도 발빠르다. 중국은 왕자루이 대외연락부장의 방북을 통해 김정일 위원장과의 면담을 성사시킴으로서 한반도 정세의 한 축임을 각인시켰다. 특히 중국은 이번 면담에 이어 김 위원장으로부터 방중 요청을 수락받았다. 올해 북중수교 60주년을 맞아 양국우호관계가 더욱 깊어질 전망이다.

북한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23일 방북한 왕자루이 대외연락부장과 만나 북한은 한반도의 비핵화를 위해 노력하고 있다면서 “한반도 정세의 긴장상태를 원치 않는다”고 말해 일거에 한반도 정세의 키를 잡았다. 또한 김 위원장은 “(6자회담) 각 당사국들과 평화적으로 함께 지내기를 희망한다”고도 말했다. 그런데 김 위원장의 이같은 발언은 남측보다는 오바마 새 행정부를 향한 화해 메시지 성격이 강하다. 그러기에 북한이 지난 17일 인민군 총참모부 대변인 성명을 통해 밝힌 대남 ‘전면적 대결 국면’으로의 진입 상황을 말끔히 가셔주고 있지는 못하다. 그런데도 유독 한국 정부만이 세상물정을 모르고 있다. 이명박 정부의 대북정책은 지난해 ‘기다리는 전략’에서 올해 남북협력 불가론이라는 ‘무시하는 전략’으로 퇴행할 정도다. 한국은 이번에 김정일 위원장의 건재가 확인된 만큼 더 이상 ‘건강이상설’이나 그에 이은 ‘급변사태설’이니 하는 풍문이나 ‘요설’에 현혹되지 말고 현실에 적응해야 한다.

우리는 한반도 정세 지형이 새롭게 축성되는 것과 관련해 특히 오바마 새 행정부에 부탁하고자 한다. 오바마 행정부는 출범 초부터 △미국의 경제위기 △이라크문제, 이스라엘-팔레스타인문제, 이란핵문제 등 중동문제, 그리고 △북핵문제 등 여러 문제에 직면해 있다. 우리는 오바마 행정부가 외교문제에 있어 우선순위에서 북핵문제를 첫 자리에 놓고 그 해결에 적극 나설 것을 촉구한다. 북한 입장을 일정 대변해온 총련 기관지 <조선신보>는 지난 22일 새로 출범한 오바마 행정부 앞에 경제위기와 이라크문제 등 현안이 산적했지만 “조선반도 핵문제 또한 외면할 수 없는 과제”라고 하면서 북핵문제에 ‘현실적이며 신속한 대응책’을 강구할 것을 주문했다. 일에는 순서가 있다. 쉬운 문제부터 풀고 어려운 곳으로 가야 한다. 누가 봐도 중동문제보다는 북핵문제가 해결하기가 쉽다. 김대중 전 대통령의 지적대로 “북한문제가 해결되면 그 모멘텀을 타고 이란 등에서의 비핵화 문제도 해결이 쉬워질 것”이다. 오바마 행정부가 출범 초부터 북핵문제 해결에 달라붙어야 할 이유가 여기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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