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차피 선택은 파국 아니면 새로운 거버넌스(나라 다스리기)다."

백낙청 서울대 명예교수가 30일자 <창비주간논평>에 게재한 '거버넌스에 관하여'라는 글에서 밝힌 지금 한국 사회에 대한 진단입니다. 가능한 논점을 충분히 고려하고 여지를 두었던 그의 기존 글과는 많이 다릅니다. '지금 이 곳의 현실'에 대한 분노가 느껴집니다.

그가 "유일한 해답"이라고 단언한 "이 나라의 거버넌스 체계를 다시 짜는 일"이란 "4년 동안 대통령으로서 꼭 해야 하는 일과 잘할 수 있는 일을 대통령에게 남겨주면서 나머지는 내각과 입법부, 사법부, 언론, 시민사회의 몫으로 배분하는 정교한 사회적 장치를 만들어내는 것"입니다.

이 구상을 추진할 주체는 '정당.사회단체.노동조합.종교계 등' 입니다. 지금해야 하는 이유는 "지금 나라 다스리기의 새로운 체계를 만들지 못하면 국가 전체가 일대 혼란에 빠지고 민주화 20년의 성취, 아니 대한민국 60년의 성취마저 물거품이 될 위험에 처해 있기 때문"입니다.

백 교수는 지금은 '거국내각'도 '거당내각'도 불가능한 상황이며, "보수세력에도 분화가 일어날 수밖에 없을 것 같다"고 봤습니다. "자신들의 단기적 잇속 챙기기에만 급급한 세력으로서의 정체가 만천하에 드러난 무리들과, 대한민국의 정당한 성취를 간직하고 지키려는 진정한 보수주의자들이 갈라설 때가 온다"는 것입니다.

그는 또 내년 봄 또는 이 겨울이 가기 전에 대규모 군중시위를 예감하면서, 그 양상은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를 노래하는 촛불군중과 횃불 들기도 마다하지 않는 배고프고 성난 군중의 결합으로 시작되기 십상이라고 전망했습니다.

이렇게 됐을 때 "관건은 '촛불소녀'로 상징되는 발랄함과 유쾌함이 한층 절박해진 군중과의 결합을 통해 또 한번 새로운 시위문화를 창출하는 일"이며, "이번에는 대중의 토론과 합의를 이어받아 언론과 여러 전문집단, 권익집단을 포함한 시민사회가 정당들과 함께 건설적으로 국정에 기여하는 길을 마련해야 한다"고 주문했습니다.

원래 시민사회단체 활동가들은 '판 짜는 일'에 익숙합니다. 여기에 백 교수가 화두를 던진 셈입니다. 현 단계에서 필요한 판짜기의 영역이 '거버넌스'라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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