늘 그랬듯이 다사다난했던 2008년이 지나가고 있습니다. 올해에는 세계적 차원에서 미국발 금융위기가 전 세계를 강타하는 속에서 미국에서는 오바마가 새 대통령으로 당선되었습니다. 북미관계에서는 양국이 우여곡절을 겪다가 10월에 북한의 테러지원국 해제가 이뤄지더니 막판인 12월 6자회담이 성과 없이 끝났으며, 남북관계에서는 이명박 정부가 들어선 이래 아무런 교류 협력도 진행되지 않았습니다. 통일뉴스는 <2008년 송년특집>으로 ①국제정세 ②북미관계 ③남북관계 ④한미관계 ⑤북한내부 ⑥민간통일운동 순으로 게재합니다. / 편집자 주

올해 북미관계의 진전을 상징하는 사건은 2.26 뉴욕필하모닉교향악단의 평양 공연과 10.11 대북 테러지원국 해제라고 할 수 있다.

이후 북.미관계가 한 단계 더 도약하기 위한 정서적, 정치적 디딤돌을 놓았다는 평가다.

수준 높은 '음악정치'의 향연

지난 2.25 송석환 북 문화성 부상 등은 평양 순안공항에서 지휘자 로린 마젤을 비롯한 뉴욕필하모닉 교향악단 105명을 맞았다.

북한 당국은 바다 건너 온 문화사절단을 위해 연회와 예술공연을 펼쳤다. 이에 앞서 2.22 북 관영 <조선중앙통신>은 "문화성과 조선예술교류협회의 초청으로 미국의 뉴욕교향악단이 곧 평양을 방문한다"고 알렸다.

2.26 오후 6시, 1842년 설립된 이 교향악단의 14,558번째 공연이 동평양대극장에서 시작됐다. 기술적으로 교전상태인 양국의 '애국가', '별 빛나는 깃발'이 연주되자, 1,500여명의 북한 관객이 기립했다.

이 광경은 <AP>, <로이터>, <AFP> 등 3대 통신사와 <뉴욕타임스>, <워싱턴포스트> 등 신문, <CNN>, <ABC>, <BBC>, <NHK>, <MBC> 등 방송을 비롯해 130여명의 취재진에 의해 전세계로 실시간 중계됐다.

연주곡들은 섬세하게 선택됐다. 오페라 '로엔그린' 중 제3막 전주곡은 이어지는 '혼례의 합창'을 암시했다. '파리의 미국인' 연주 직전에, 지휘자 로린 마젤은 "'평양의 미국인'이 나올지도 모른다"고 말했다. '음악정치'의 향연이었다는 평이 쏟아졌다.

미 백악관측은 "콘서트일 뿐 외교적 쿠데타는 아니다"고 했지만, <뉴욕타임스>는 뉴욕 필 단원들의 말을 인용해 "믿을 수 없을 정도의 기쁨과 슬픔 그리고 여태껏 경험하지 못한 종류의 연대감이 있었다"고 이날의 감흥을 전했다. <워싱턴포스트>는 "로린 마젤의 음악적 그리고 외교적 승리"라고 평가했다. "우리가 작은 문을 여는 데 기여했을 수 있다"는 마젤의 소감도 덧붙였다.

북한 관영 <조선중앙통신>도 "역사가 오래고 세계에 널리 알려져 있는 뉴욕교향악단은 수석지휘자 로린 마젤의 지휘 하에 섬세하고 세련된 연주와 높은 형상력을 보여 주었다"고 후하게 평가했다.

우여곡절 끝, 대북 테러지원국 해제

콘돌리자 라이스 미 국무장관은 '검증 패키지 합의'를 이유로 10.11 북한을 테러지원국 목록에서 해제하는 데 최종 서명했다고 발표했다.

10.12 북 외무성 대변인도 미국의 조치를 '환영'하면서 "미국이 정치보상의무 이행을 끝내고 조(북)미 쌍방 사이에 무력화(불능화) 단계에 부합되는 공정한 검증절차가 합의된 데 따라 우리도 '행동 대 행동' 원칙에서 영변핵시설의 무력화를 재개하며 미국과 국제원자력기구 감시성원들의 임무수행을 다시 허용하기로 하였다"고 밝혔다.

이 과정은 순조롭지 않았다. '신고.불능화 vs 정치.경제적 보상'를 내용으로 하는 '10.3합의' 이행이 지연되면서, 테러지원국 해제를 둘러싼 북.미간 줄다리기가 2008년 내내 이어졌다. 여기에는 대북 강경파들과 한.일 보수정권의 반발도 한 몫 했다.

강경파들의 대북 공세가 극에 달했던 시점은 3월말에서 4월초였다. 한편에서는 '북한이 넘겨준 고강도알루미늄 시편에서 우라늄 입자가 검출됐다'고 흘렸고, 다른 한편에서는 북한의 '화폐위조설'을 제기했다. 물 만난 네오콘들은 "6자회담을 중지해야 한다(존 볼튼)"고 을러댔으며, 일본은 재일총련에 대한 제재를 강화했다.

이 위기를 수습한 것이 4.8 싱가포르 북.미회동이었다. "회담결과 합의 이행을 완결하는 데서 관건적인 미국의 정치적 보상조치와 핵신고 문제에서 견해 일치가 이룩되었다"면서 "이번 싱가포르 합의는 조(북)미회담의 효과성을 그대로 보여주었다"는 4.9 북 외무성 대변인의 평가가 이를 뒷받침한다.

5.10 북한은 성김 미 국무부 한국과장 일행에게 1만8천쪽 분량의 영변 핵시설 가동문서를 지참시켜 판문점을 통과시켰다. 이에 호응해 5.16 미 국무부는 50만톤 규모의 대북 식량지원 조치를 발표했다. 

이어 북한은 6.10 외무성 대변인 명의의 '반테러 성명'을 발표했고 6.26 6자회담 의장국인 중국에 핵신고서를 제출했다. 6.27에는 영변 냉각탑 폭파를 전세계에 생중계했다. 미국도 북한에 대한 적성국교역법 적용을 종료하고 테러지원국 해제 절차에 착수한다고 발표했다.

7월 베이징 6자회담에서 언론보도문이 채택되면서 2단계는 일단락된 듯 했으나, '검증' 문제가 발목을 잡았다.

검증에서 핵심쟁점은 '우라늄농축프로그램(UEP)'과 연계된 '미신고시설 접근'과 '과학적 절차'로 에둘러 표현된 '시료채취(sampling)'였다. 이에 힐 차관보가 10.1~3일간 방북했다. 그 결과 미 국무부는 먼저 플루토늄 검증에 집중하는 '순차검증안'에 합의했으며, '시료채취에 대해서는 구두이해가 됐다'며 테러지원국 해제를 발효했다.

12월 베이징 6자 수석대표회의, 오바마, 그리고 향후 북.미 관계?

북한이 테러지원국 목록에서 삭제되자, 미국 내 강경파들과 한.일의 '보수' 세력은 거세게 반발했다. 부시 행정부는 이에 대해 '철저한 검증'을 앵무새처럼 반복하면서 방어적인 태도를 견지했다.

이같이 어정쩡한 대응은 12월 베이징 6자회담의 실패로 이어졌다. 절충안도 없고 동맹국들을 한 방향으로 이끌어갈 리더쉽도 없는 상황에서, 힐 차관보의 개인적 역량과 북한의 성의에 기대어 임기 말 외교적 성과를 도출하려 했던 부시 행정부의 판단착오가 부른 결과였다.

미국의 정권교체기와 맞물려 당분간 6자회담의 공전도 불가피할 전망이다. 2003년 북한과의 직접 협상을 피하기 위한 수단으로 시작했던 6자회담이 부시 행정부와 함께 역사의 무대에서 퇴장하고 있는 성급한 평가도 나온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2008년 한 해 북.미관계는 그 어느 해보다 알찬 진전을 이뤘다는 평이다. 무엇보다 북한으로서는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북.미수교의 걸림돌로 지목했던 테러지원국 '고깔'을 벗었기 때문이다.

한편, 내년 북.미관계는 오바마 정권의 대북정책 검토가 끝나는 5월 전후에 새로운 추동력을 얻게 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부시 행정부에 비해, '터프하고 직접적인 외교'를 표방한 오바마 정권의 등장은 활발한 북.미 고위급 협상을 예고한다는 전망도 이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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